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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Jul 28. 2020

더불어 사랑하라시니 강제로 사랑해 보았다.

오늘 이 집은 구원을 얻었다.

 엊그제 주일에는 지난 4월 부활대축일에 세례를 받을 예정이시던 큰 시숙의 세례 예식 소식이 형제 단체대화방에 올라왔다. 드물게 보는 환한 표정의 가족들을 보니 더할 수 없이 나도 기쁘다. 마땅히 함께 참석하였어야 하는데 아쉬운 마음을 대신하여 축하 인사와 함께 온라인으로 케잌 쿠폰을 보내드렸다. 감회가 남다르다. 신을 믿느니 내 주먹을 믿는다던 시숙이셨다.

 결혼 26년차. 참으로 긴 시간이다. 갓난 아기인 두 딸이 아름다운 여자 어른이 되었으니 말이다. 남한을 대각선으로 가로 지르는 경북 상주, 그 머나먼 곳을 두 번의 명절과 아버님의 기일, 어머님의 생신 등의 가족 모임 백 번 이상, 왕복 만 시간이 넘게 방문하며 온갖 희노애락을 경험했다. 아파도 가고, 죽더라도 가서 죽어야 했다. 불참이라도 하면 큰 시숙은 어머니를 잡았고 어머니는 나를 잡았다. 그렇다고 해서 모여서 딱히 대단한 뭐가 있지도 않았다. 시숙들은 비즈니스다,  친구 만난다, 하여 얼굴도 못보고 어릴 때 고향 떠나 친구가 없는 남편은 어머니 따라 다니며 못한 효도하느라 얼굴도 못보고 나는 말도 음식도 낯선 곳에 홀로 쉬지 않고 노동을 했다. 누군가에겐 원래 그러려니 하는 것들이, 내겐 딱히 의미를 찾기 어려운 강요된 묵은 관습일 뿐이요,  인권의 박탈이며 지독한 성차별이라 느껴지는데, 그저 ''이 집안에 시집 온 네 팔자''라는 전혀 설득력 없는 그 이유를 억지로 받아들여야 했던 시간들이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남편을 사랑하고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냥 '쌩짜'로 참아낸 인내의 시간....

 어쨌든 코로나19로 몇 달 늦춰지긴 했지만 큰 시숙의 가톨릭 입문을 계기로 지난 설 명절 형제간 합의된 이후 처음 돌아온 아버님의 기일을 가톨릭 가정 제례 예식으로 치렀던 것이 한 달 전이었다. 내 친정에서는 이미 십수 년 전부터 해오던 '가톨릭 가정 제례 예식'을 위해
이틀 전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만든 예식서를 급히 편집하여 제본도 맡겼고(쉽지 않았다. 익숙치 않은 남편 가족들을 위해 성가와 연도 악보도 넣고, 말씀예절에서 읽을 성경 구절도 넣고 기도문도 다 넣어야 했다.) 낯선 동네 헤맬까봐 꽃도 여기서 전날 미리 사서 물처리하고 수반과 꽃가위도 챙겼다. 평일이었지만 하루를 휴가 내어 조금 일찍 도착하여 미리 준비를 해놓고 기다리니 하나둘씩 도착하는 가족들. 늘상 하는 생각이지만 남편 형제자매들은 참 효자효녀다...

 미리 예식서 설명도 하고 MR에 맞춰 성가 연습도 하고 나서 빙 둘러 앉아 제례 예식을 가졌다. 방식이 맘에 들지 않으신지 아니면 여자인 내가 나서는 것이 마땅찮은지 투덜대는 둘째 시숙을 어머니가 단 한 마디로 누르시고 낯선 이벤트에 당황하는 기색 없이 잘 따라가는 가족들, 할머니의 예식서를 넘겨 찾아주며 종교에 상관없이 함께 한 조카딸이 그리도 사랑스럽다. 서로 손을 잡고 바친 주님의 기도 중 내 손을 꼬옥 잡으시는 큰 시숙의 기쁨이 내게 전해지니 가슴도 따뜻해지고, 큰 동서님의 추어탕도 진하고 구수했고, 소고기를 사오신 둘째 시숙 덕분에 더욱 부족함 없는 풍성한 시간을 보냈다.

 가족의 해체를 당연시하게 된 현대의 시류 속에 또, 물려 받은 곤궁함을 극복하고 자수성가 해야 하는 이들이기에 서로를 돌아볼 겨를 없이 살아 온 그 긴 시간 동안 따지도 싶은 것도 많고 되돌이켜 보답 받고 싶은 것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허나 다시 생각의 깊이를 더하여 역지사지로 보면 나만큼 아프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손 잡아 일으켜 함께 가야 하는 동지이자 동반자라 여겨야 한다. 그렇게 "더불어 사랑하라"는 아버님의 유고를 지키고 이어가다 보면 그 가치가 빛나는 날이 오겠지. 가정 공동체의 중심이 가부장에서 하느님으로 바뀐다는 것은 평안하고 기쁘고 화합되며, 가톨릭 신자로서 참으로 감격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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