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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May 15. 2020

facilitator

1.(격식을) 용이하게 하는 사람   2. 촉진자

 비가 온다. 농촌을 아는 이들은 오늘 내리는 이 봄비의 소중함을 잘 안다. 아마도 지난 겨울 초에 심었던 마늘, 양파와 꽃샘 바람을 등지고 차가운 흙에 꾹꾹 박아 넣은 씨감자도 이 비를 듬뿍 머금어 포기가 늘고 키가 쑥쑥 자라겠다. 새파란 그린 카펫같이 길게 펼쳐진 못자리의 모는 물 댄 논에 이앙을 기다리며 색이 짙어지고, 주말에 도시에 나가 사는 자식들이 오면 함께 심게 될 고추와 속 노랑 고구마 모종은 얌전히 마당 한 켠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의 일터가 있는 강화도의 송산마을은 읍내를 가로 질러 북쪽으로 달리다가 검문소에서 입출입 신고서를 작성해야 통과되는 북한 접경 지역의 작은 마을이고 여기서 조금 더 가면 교동 대교를 건너 민통선 교동도까지 이르는 강화도의 북단 전형적인 농촌이다. 대부분의 농촌이 그렇듯 이곳도 시계는 있고 시간은 없는 곳, 젊은이는 없고 노인들만 힘겹게 땅을 일구고 지키는 곳. 이곳의 시간은 그저 농번기와 농한기, 그리고 해 있을 때와 해 진 후로 나누어 단순하게 흐른다.


 어제 코로나19 선별 진료소 파견근무로 온종일 자리를 비웠던 탓에 출근 직후부터 쉬지 않고 찾아 오는 환자를 진료하느라 분주한데 마을 어르신께서 전화를 하셨다.

"소장님, 어차피 오늘은 비가 와서 일도 못하는데 우덜하고 같이 점심이나 먹으러 갑시다."

지난 겨울부터 몇 번을 이리저리 둘러대며 거절하던 참이라 오늘은 기꺼이 '예'하고 나서 서둘러 나갈 채비를 한다. 어르신들에게 밥을 얻어 먹는 것이 불편하고 송구하지만 끼니 때여서 느끼는 공복감에 비 오는 날의 푸근함까지 나를 너그럽게 만들었다.


 지난 해 8월 폭염에 발령 받아 이곳 송산 마을로 전근을 와 몇 칠 되지 않았던 어느날, 차 트렁크 안에 물이 고여 젖어 버린 물건들을 볕에 말리느라 진료소 마당에 늘어 놓았다가 다시 챙겨 넣으려던 순간, 검정색 스티로폼으로 된 비상공구 케이스가 없어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당황한 나는 주변을 찾다가 문득 가까운 소나무 숲 속에 둥글게 둘러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며 간식을 드시는 어머니들을 발견했다. 첫 날 출근 도중 길에서 만나 '새로온 진료 소장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하고 인사 드렸던,  '환경 지킴이' 조끼를 입고 계셨던 바로 그 어머니들이었다. 혹시나 하여 여쭤 보려고 다가갔는데 '헉!'  그분들이 우아하게 간식과 커피를 올려 놓고 둘러 앉은 육각형의 검은 테이블이 바로 내 차의 비상공구 케이스였다. 그 해맑은 표정으로 '진료소 마당에 내놓은 쓰레기 치우면서 주운' 안성맞춤의 그 탁자 때문에 허리가 꺽이게 한바탕 웃고나서 가장 먼저 친해진 마을 분들이다. 


 읍내 추어탕 집으로 가자는 두 분 어머니를 차에 모시고 검문소 가까운 근처 부대찌개 식당으로 갔다. 푸짐한 부대찌개는 마늘을 잔뜩 넣어 얼큰하고 맛나게 끓었고 각자의 앞접시에 덜어 내어 식사를 시작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갔다. 비 오는 날 먹기 맞춤한 얼큰한 찌개로 시장기를 채워가며 한 어머니가 당당하게 '오늘 밥 값은 본인이 낼 거라'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두 분이 서로 내시겠다고 다투기 시작하신다.

"우리 영감이 간 겨울에 대상포진으로 입원했다가 퇴원해서는 꼼짝도 안하고 집에만 틀어 박혀 있었잖아. 당뇨병도 있어서 약을 타다 먹어야 하는데 작년에 뇌졸중으로 거동이 불편한데다가 대상포진 후유증에 살기 싫다고 매일 화를 내는 거야. 그래서 내가 소견서를 받아다가 진료소장께 주고 약을 달라고 하니까 대리처방이 안된다고 할아버이가 직접 와야 된다고 하는데 어찌나 야속하던지. 내가 조르고 졸라도 약을 안 줘서 집에 가서 영감한테 그랬더니 영감 말이 새로온 진료소장이 빡빡하다고 벌써 소문이 났대. 그래도 약은 타다 먹어야 겠어서 신부님께 부탁해서 교회 차로 영감을 싣고 갔었지."


 점심 값을 본인이 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먹던 밥이 잘 안 넘어가기 시작했다. 초 봄 이 어머니와 실랑이를 하던 날이 떠올랐다. '동네끼리 서로 편리를 봐줘야지'하며 화를 많이 내셨었다. 애써 침착하게 웃으며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마음 속으로 대답을 궁리하면서.


"세상에 애들이 그렇게 와서 약 잘 잡숫고 운동도 열심히 하셔야 된다고 지 아부지를 설득해도 죽으면 말지 하면서 버럭 화만 내던 영감이 진료소장 앞에 떡 허니 가 앉았는데, 그날도 화를 내면서 간 거거던. 진료소장이 조곤조곤 상냥하게 할아버이한테 설명을 해주는데 그렇게 순한 양이야. 그 날부터 자전거 타고 운동도 하고 들에도 나가고 약 타러도 혼자 가고 하잖아. 나는 소장님이 진짜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더라고. 그러니까 오늘 점심은 내가 사야 돼." 


 사실 뇌졸중으로 거동불편이 되신 직후 대상포진에 걸려 통증까지 겹쳐 그 고통으로 우울증이 온 아버님을 더 무기력하게 만든 건 적극적인 성향인 아내의 과잉 돌봄이었다는 걸 알아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 분들에게 단호하고 일관된 태도로 원칙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긴 연륜으로 닦인 기술이었고 나는 그저 질병으로 낙심한 노인에게 필요한 격려를 주고 잊고 있던 용기를 일깨워 주었을 뿐이다. 과거의 모습을 잃어버린 남편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지나친 아내는 예전에 하던 요양보호사의 역할을 자처하느라 자신도 모르게 가장의 자리를 없애고 말았었다. 그러나 지역 사회 건강 행태를 촉진하는 facilitator로서의 나는 그 누구라도, 어떤 상황이어도 할 수 있는 범위를 찾아 주고 하게 만들어 주는 임무의 방향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아파서든 속상해서든 고지서며 통지서, 갑자기 불통이 된 휴대전화든 뭐든 들고 나에게 찾아 오시는 어르신들에게 나는 딸도 되었다가 선생님도 되었다가 다툼의 중재자 노릇까지 해야 한다. 하소연을 들어 주는 일, 모르는 것을 일깨워 주는 일, 119도 되고 114도 되고 112도 되어야 하는 세상에 또 있을까 하는 이 직업을 30년 째 하고 있다. 옛날 이야기 하면 무조건 '꼰대' 소리나 듣는 세상인데, 30년 동안 겪었던 무수한 이야기를 해도 될 지 또는 들어 줄 사람은 있을지, 이런 것이 역사가 될 수 있을지 두루 궁금한 비 오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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