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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May 14. 2020

 밀가루 음식, 질척한 날과 찰진 날들   

어머니는 여전히 밀가루 음식을 사랑하신다.

 비 오는 날 생각나는 음식은? 수제비. 막걸리에는? 부침개. 점심으로 조개를 잔뜩 넣은 칼국수 한 그릇이라던가, 추운 겨울 김치 고명을 얹은 잔치국수나 야식으로 라면이며 길가에서 차를 대놓고 파는 강낭콩이 가득 박힌 밀가루+옥수수 빵 등등..... 전 세계, 또는 한국인에게도 먹거리 대표 식재료는 쌀 다음으로는 밀가루다. 그러나 내게 밀가루는 마치 이웃집에 잠시 다니러 온 이웃집 먼 친척처럼 관심도 호감도 가질 않는다. 오히려 모른 체 하고 싶은, 친하지도 않고 별로 친하고 싶지도 않은 같은 반 아이 같은 밀가루가 내겐 그저 김치 담글 때 풀을 쑤는 용도로 사놓는 식재료쯤이다. 70년대와 80년대에 유년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함께 겪은 남편은, '장모님 닮았으면 밀가루 음식 좋아할 텐데'라면 의아하게 여긴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 혼분식을 권장하는 시절만을 보낸 그는 모른다. 하루 한 끼는 혼식을 하고 한 끼는 분식을 하라고 권장하던 시절에 시어머님이 해주시던 '콩가루 국시'며 생 배추를 톡톡톡 두드려 주르르 흐르는 밀가루 반죽을 묻혀 죽죽 훑어 기름에 구워낸 '배추적'처럼 남편에게 밀가루 음식은 특별식이다. 


 밀가루 음식. 나에게 밀가루 음식은 막막함이며 두려움과 외로움에 대한 스위치이다. 한여름 덜덜거리기만 하고 회전이 안 되는 선풍기는 아버지와 막내에게 고정되어 있었고 모기를 쫓는 코일 모기향의 연기는 나한테만 오는 것 같은 숨 막히는 저녁, 60촉 백열등 하나 드리운 마루에 둘러앉아 뜨거운 칼국수를 먹어야 했던 순간을 떠올리는 기억의 스위치. 전력이 약하던 시절이었다. 전기가 나가기 전에 어서 먹으라고 성화를 하는 호랑이 같은 어머니는 뜨겁지도 않으신지 커다란 대접에 가득 담긴 칼국수를 그리도 훌훌 잘 드셨다. 더 앞으로 기억을 감아 본다. 작은 방직공장을 하시던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고 공장 기계가 멈추었던 예닐곱 살 시절. 아버지는 빚쟁이들을 피해 서울로 가시고 올망졸망 고만고만한 딸 넷을 데리고 홀로 빚쟁이들을 감당하는 어머니에게 단골 쌀가게 주인은 쌀 한 됫박 외상을 주지 않았단다. 그날 이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낯선 빚쟁이들의 방문과 동시에 몇 달 간을 수제비, 칼국수, 부침개, 막걸리로 부풀린 찐빵, 잔치국수를 돌려 가며 먹었던 그 끼니들은, 고사리 손으로 새끼줄에 꿴 연탄을 사들고 가던 장면이 떠오르게 하는 스위치이다. 뜨겁고 질척한 수제비의 밍밍한 맛과 매일매일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막연하게 어린 마음을 엄습하던 두려움의 스위치가 밀가루이다. 졸업식 날이면 일하러 가야 하는 엄마 없이 우리들끼리 가서 외상으로 먹던 짜장면도 어찌 그리 부끄럽고 눈치가 보이던지 도무지 맛있는 줄 몰랐었다. 그것들이 모두 밀가루로 된 음식들이었고 나에게 밀가루 연관 검색어는 어둡고 좁고 길고 답답한 터널이다.   


 세월이 흐르고 중년의 시간들을 더이상은 힘들이지 않고 산책하듯 지나고 있는 나는 여전히 밀가루와는 화해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누군가 칼국수 먹으러 가지고 하면 시큰둥한 채 망설인다. 길에서 파는 베개 만한 콩 박힌 빵은 쳐다도 보지 않는다. 라면은 분기에 한두 번 끓여 먹는다. 그 유명한' 짜파구리'도 마치 울란바토르에 사는 솔롱고스 씨(몽골에서 가장 흔한 여자 이름이란다.) 인양 관심 밖이다. 밀가루 음식을 먹을 때마다 켜지곤 하는 그 막연한 두려움의 스위치에 손대고 싶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이런 내가 중년이 되는 동안 친정어머니는 80 노인이 되어 거친 바람이 새는 낡은 바람 주머니 같은 폐와 심장을 지니 시계 되었다. 숨이 차서 뭘 못하신다. 입 맛도 잃으셨다. 그러니 기운을 잃지 않으시게 이것저것 드실 만한 음식을 해서 나르는 것이 주말이면 일과 중 하나가 되었다. 희한하게도 평생을 드신 밀가루 음식이라 질릴 만도 한데 어머니는 여전히 밀가루 음식을 사랑하신다. 쑥을 한 줌 뜯어 갈아 넣은 쑥 수제비 반죽도 쌍수로 환영이고, 쪽파를 뚝뚝 뜯어 넣고 해물 얹어 부친 부침개도 달게 드시고, 장국을 진하게 내어 말아 드리는 잔치 국수는 1일 1식, 묵은 김치를 넣고 빚은 만두는 얼려 두고 혼자만 드신다. 나는 여전히 입에도 대지 않으면서 어머니를 위해 매주 밀가루 음식을 만들어 내는 나 자신도 낯설다. 다만 엄마가 해주시던 기억 속의 그 질척한 수제비가 싫어서 숙성시켜 찰지게 반죽해 얇게 손으로 밀어 떼어 넣으며 소심하게 저항도 해 본다. '그래도 쌀 한 봉지 외상을 안 줄 때 밀가루는 값이 싸서 니들 배 안 곯게 해 줬다'며, '그래도 금방 질릴까 봐 하루는 수제비, 하루는 부침개, 하루는 칼국수, 하루는 찐빵.... 골고루 바꿔 가며 해 먹였다.'는 어머니는 밀가루 이야기를 마치 무용담처럼 되뇌신다. 결국 어머니에겐 밀가루 음식이 생존을 위한 고마운 식재료이자 먹어도 먹어도 여전히 맛있는 좋아하는 음식 베스트이다. 어머니 심장 상태로 보아 앞으로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날 이후로 이 애틋한 마음이 나를 너그럽게 만들어 주는 중이다. 밀가루 음식과 갑자기 친해지긴 어렵지만 한 가지씩 색다른 레시피를 찾아보며 나와 어머니를 연결해 주는 고리가 되어 준 밀가루 음식에게, 인류의 생존에 크나큰 공헌을 한 밀가루에게 경의를 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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