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로니카의 참견 Jul 31. 2020

먹이로 유인하기

다 큰 아이들 집에 오고 싶게 만드는 법

 "빈 둥지 증후군. 의사 말이 제가 그거래요."


 그녀의 남편이 나와 동기이고 그녀는 나보다 두 살 아래다. 남매를 나보다 먼저 내보냈다. 아이들이 집엘 안 온다고 끓어대기를 꽤 오래전부터 했었다. 김치며 반찬을 해서 가져가면 싫어하진 않으면서 어버이 날도, 부모 생일에도 오지 못했단다. 명절에도 하루 전날 와서 차례 지내고 금방 가버린다. 그저 단순히 시간이 나질 않는단다. 늘 바쁘단다. 애들 엄마는 하루 아침에 실직자처럼 무기력 해지고 입 맛도 없고 울적하고 혼자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벌컥 화가 나거나 눈물이 주르르 흐른단다. 의사를 찾아가라고 권유하였다. 상담 결과, 갱년기 증상을 동반하여 우울성향이 강하단다.


 "언니, 잘 아시잖아요. 저, 애들 진짜 공들여 키웠거든요......."


 내가 잘 안다. 그녀와는 십 년 넘게 이웃지간이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운동을 같이 다녔고 심지어 친목모임도 함께 하니 모르는 것 빼고 거의 다 안다. 그는 모임 날짜를 철썩 같이 매겨 놓고도 막상 당일에 연락 두절과 동시에 잠수를 타곤 했었다. 나중에 알고 보면 '애들이 와서'거나 '애들 밥 챙겨줘야 해서'가 이유였다. 지난 주 우리 모임 부부동반 함께 가는 휴가도 서른이 다 된 딸을 데려가도 되냐고 해서 모두를 아연실색 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삶의 목표는 애들이고 기쁨도 행복도 애들을 보며 얻는다고 했다. 그런 사람이 그 소중한 애들을 못 보니 병이 났다.

  

 우리 애들은 지금도 거의 매주 온다. 고등학교까지는 이곳 강화도에서 다녔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울살이를 시작한 지 벌써 6년이 넘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피치 못할 일이 아니면 거의 매 주말마다 집에 온다. 시골이 집인 사람들은 다 안다. 매주 시골집에 온다는 것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신촌이나 홍대 입구에서 강화까지 3000번 버스를 타고 꼬박 두 시간 이상을 와야 한다. 거리는 가까워도 정거장마다 정차를 하니 긴 시간 탑승에 허리가 너무 아프단다. 금요일 퇴근하고 곧장 와도 집에 오면 밤 11시다. 그럴 땐 엄마 아빠가 시골에 사는 것이 본의 아니게 미안하다.  


 워킹맘들이 다 그렇듯 나 역시 남들만큼 애들한테 큰 공을 들여보지 못했다. 아기 때는 친정어머니께 맡기기 일쑤였고 공직에 있다 보니 몇 칠씩 떼어 놓고 교육도 가야 했고 비상이 걸리면 주말에도 엄마는 집에 없었고 명절에 함께 시골에 가지 못할 때도 많았다. 심지어 한창 사춘기를 겪는 나이 땐 엄마인 내가 배를 두 번 타는 섬으로 전근이 되어 일 년을 떨어져 살았다. 게다가 아빠도 전역하기 직전 현역 시절 6년을 송탄에서 근무하며 주말 가족으로 살았다. 우리 애들은 그냥 혼자 컸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어른이 되어서도 '집 가고 싶다'라던가, '엄마 밥 먹고 싶다'라고 하고 거의 매주 집에 오고, 오면 엄마하고 함께 미사 가는 것을 좋아하니 아이들이 참 착하기도 하다.


 '나는 주로 먹이로 유인하는 편이야.' 

 다 큰 애들을 주말마다 집에 오게 만드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는 이들이 더러 있다. '그냥 지들이 착해서 그렇다'라고 대답하면 '그래도 엄마 아빠가 엄청 잘해 주는 뭐가 있겠지'한다. 내가 '먹이로 유인한다'는 말을 하면 다들 빵, 터진다. 나는 진짜로 '먹이'로 유인한다. 거의 매주 특별하게 맛있는 것, 새로운 것,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 먹인다. 다행히 음식은 좀 하는 편이다. 어떤 음식이든 레시피를 보면 비슷하게 흉내를 낼 수 있고 미각도 조금 예민한 편이다. 이젠 목요일이나 금요일쯤 되면 가족 단체 대화방에 '닭 한 마리 돼요?'라던가, '알리오에 올리오 먹고 싶어요' 등등의 예약 주문이 뜬다. 그도 저도 없으면 뭘 해서 먹일까 궁리하면서 주말을 맞이한다. 심지어 비린내를 못 참는 내가 고등어조림도 해 준다. 재료 구하기 불가능한 거 빼고 거의 다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주말이면 나의 엥겔지수가 확 올라가도 감수한다.   


 '그리고 나는 애들한테 절대로 잔소리를 하지 않아'

금요일 밤에 집에 온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함께 치맥을 하든 와인을 마시든 새벽 1시, 2시까지 수다를 떤다. 지난 한 주간 세상에서 겪은 온갖 희로애락을 풀어낸다. 같이 울고 웃고 화내고 한 술 더 떠서 내 아이를 괴롭힌 못된 클라이언트에게 대신 쌍욕도 해준다. 대표님에게 잔소리, 클라이언트에게 잔소리 배가 부르게 듣고 지내다 온 아이들에게 나만은 잔소리도 핀잔도 비난도 하지 않는다. 물론 아이가 한 일에 지적질도 안 한다. 아이들이 친구와 다퉜다고 내게 고발하면 무조건 아이 편들어준다. 우리끼리니까 막 그런다. 어릴 땐 '네가 친구에게 더 친절하게 대해'라고 했던 엄마가, 같이 욕하고 분개하고 편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큰 위로와 에너지를 충전한다. 그리고 다음 날 해가 중천에 뜨고 정오가 지나도록 일어나지 않는 아이들이지만 그냥 내버려 둔다. 집에 와서나 좀 실컷 자라고. 가끔 한번씩 숨 잘 쉬나 확인만 하면 된다. 누워있건 안 씻건 거실을 쓰레기장으로 만들건 내버려둔다. 피해 다니면 된다. 한 주간 내내 이제 막 제 힘으로 만든 어설프고 작고 시원찮은 조각배를 타고 세상이라는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그래도 나침반대로 잘 가려고 홀로 고군분투했을 딸아이들에게 내가 작은 만이 되어 주고 싶다. 그곳에 잠시 정박하면 바람도 비도 피하고 주유도 하고 물도 식량도 채워 넣어 주는 이름 없는 항구 말이다. 그렇게 충전하고 새로운 의욕을 장착한 아이들은 주일 오후에 다시 서울로 향한다. 그러면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함께 한 시간 즐거웠어. 빨래랑 설거지랑 분리배출이랑 그런 거 도와주어서 고마웠어. 또 놀러 와~'

서울로 돌아가는 터미널에 아이들을 데려다주면서 내가 매주 하는 말이다. 이제 여기는 아이들의 집이 아니다. 엄마 아빠의 집이다. 아이들은 잠시 다니러 왔다 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도 주말에 할 일이 많고 더 바쁘지만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쪼개서 내어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두 딸들은 이제 우리 부부의 친구가 되어 가는 중이다. 대신 나는 내가 아이들에게 내어 줄 에너지를 틈틈이 스스로 충전하여야 한다. 엄마와 아빠가 허구한 날 다투거나 엄마가 피곤하고 늘어져 누워만 있으면 누가 집에 오고 싶겠나! 그러므로 활력을 유지해아 하니 정 안되면 보약이라도 먹어야 한다. 나는 친구 만나 수다도 떨고 쇼핑도 하고 휴가도 가야 한다. 남편은 평일에 쉬는 직업이지만 틈틈이 원목가구도 만들고 패러글라이딩도 한다. 내가 휴가를 가는 동안 두 아이는 시간을 내어 번갈아 내 집에 와서 강아지를 돌보고 정수기 케어도 받고 택배도 챙겨 주어야 한다. 아이들은 그러면서 다른 이를 위한 배려를 배우고 몸에 습관으로 익혀 어른으로 성숙되어 간다. 당당하고 멋지게 앞에 서서 세상이라는 밀림을 헤쳐 나가는 엄마를 아이들은 뒤따라 오며 여자 어른이 하는 역할을 배우고 있다. 나는 '빈 둥지 증후군'을 겪지 않는다. 여긴 좋은 것은 뭐든 다로 가득 찬 둥지이기 때문이다. 이 둥지에서 여전히 챙길 것이 많은 아이들은, 그래서 지들이 자란 둥지를 찾아 매주 날아든다. 그래서 오늘이 금요일이라는 것이 나는 설레고 기다려진다.  

작가의 이전글 자가격리와 위리안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