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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Jan 25. 2021

지켜보는 엄마, 바라보는 엄마 2

자식 뒷바라지를 꼭 돈으로 하는 건 아니다.

 

주말, 집에 오는 버스를 탔다는 애가 갑자기 라멘이 먹고 싶단다.

 엊그제 토요일 오전, 집에 오는 버스를 탔다는 큰 딸애가 '라멘'이 먹고 싶단다. 그리고 우리 집에 다행히 제품으로 나오는 삿포로 라멘이 있었고 차슈는 없어서 돼지고기 앞다리 살을 차슈 맛이 나게 조려 얹어 주었다.

"엄마~~~"

감동에 젖은 딸의 탄성에 대한 나의 대답.

"다알리아 사건 알잖아?"

   

 지금은 미대를 졸업하고 광고 회사에 디자이너로 일하는 큰 딸이 대학생 시절 이야기이다. 어느 날 딸애가 불쑥 대화방에 '다알리아 꽃' 구할 수 있냐고 물었었다. '급하지는 않다'라고 하니 나도 바쁜 와중이어서 '늦어도 10월까지는 피는 꽃이니 화원에 부탁해 볼게' 했었다. 여름이 아주 빠르게 지나고 추석 연휴가 지났다. 가을로 접어드니 각종 지역 행사에 연속 의료지원 근무를 나가야 했고 이어서 독감접종이 시작되니 또 정신없이 10월도 후딱 지났다. 서로 바빠서 애도 나도 다알리아 꽃은 기억 저 편 안드로메다로 날아갔다.


 그런데 어느 주말, 집에 온 딸애가 '이번 주에 다알리아 꽃 사진을 찍어 가야 한다'라고 폭탄의 타이머를 작동시켰다. 온라인에 올라와 있는 사진으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구도가 있다고 했다. 놀라지는 않았다. 그 아이는 아기 때부터 늘 그런 식이었다. 다섯 살 땐 명절에 온갖 진미를 차려 놓고 먹으려는 순간, '김치찌개'를 찾는다. 그러면 김치찌개를 끓여서 제 앞에 놓아주어야 그제서 인류의 평화가 도래하곤 했다. 자고 일어나면 잊어버리는 다른 어린이들과 달리 네 살 땐 자고 일어나 눈 뜨자마자 간밤에 할머니가 약속한 '빨간 볼펜'을 찾으며 손을 내미는 그런 아이였다. 그러니 무슨 수를 쓰더라도 다알리아를 찾아내어야 했다. 꽃집에선 아예 묻기도 전에 고개를 저었다. '끝났다'는 것이다. 정원이 예쁜 펜션을 운영하시는 분께 혹시나 하여 전화를 드렸더니 '조그만 꽃봉오리가 하나 맺히긴 했으니 다음 주쯤 와보라'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다음 주에는 애가 전시회 준비로 바빠서 주말에 집에 오지 못했다. 비슷한 다른 꽃도 안되고 반드시 다알리아여야 하는데 꽃 시장에 나가 볼 시간이 도저히 없으니 엄마가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시면 좋겠다다.

 그날부터 내 머릿속은 온통 다알리아 생각으로 가득했다. 길가에 보이는 정원이 있는 집의 마당에 심긴 꽃들만 유심히 보게 되고 국화만 보아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던 길을 멈추었다. 친구들에게 단체 대화방에서 도움을 청해 보기도 했지만 서리도 내린 지금 다알리아가 있을 리 없다고 했다. 결국 다알리아 사진이 꼭 있어야 하는 날을 앞에 두고, 딸애는 토요일 오전에 집에 오자마자 작업실에서 밤을 새웠다면서 곧바로 방으로 들어가 누워서 자다 깨다를 반복 하다가 주일 미사를 다녀온 직후에 시험공부해야 한다고 밥도 못 먹고 급히 가버렸다. '다알리아 사진 어쩌냐.' 하는 걱정만 남긴 채.

  

 숙제를 다 못 한 것 같은 불편한 마음으로 월요일이 되었고 아침 출근을 위해 주차장에 내려가서야 자동차 키를 두고 나온 걸 알았다. 아직 집에 계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간이 없으니 작은 헝겊 파우치에 넣어서 던져 달라고 하고는 고개를 길게 빼고 우리 집을 올려다보는 순간, 우리 라인 1층 집 앞 베란다에 심긴 꽃이 눈에 들어왔다. 

'아! 저건 분명 다알리아렸다?!!'

마치 심산계곡에서 산삼이라도 본 듯 눈이 훤해지는 것이었다! 서둘러 기어 올라가 보니 분명 다알리아가 맞다. 미친 듯이 쉬지 않고 요리조리 사진 찍는 걸 아침 출근하려고 줄지어 선 차마다 앉아 있는 이들이 일제히 목을 길게 빼고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자식이 뭔지 부끄러울 사이도 없다. 다알리아는 이렇게 예쁜 꽃이었구나... 잎새 위에 웅크리고 잠든 벌레도 사랑스럽기는 처음이었다.

11월 초 서리도 내렸는데 양지 바른 아파트 바로 앞이어서 아직도 청청하게 피어 있는 다알리아여!

자식은 뒷바라지를 해서 키워야 한다. 앞장서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장사를 하는 친구 부부가 있었다. 여고 동창생이었는데 슬하에 남매를 두었고 내 자식만큼은 자신들처럼 힘들게 살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초등학생 때 벌써 고액 과외를 시켰다. 수학과 영어 점수가 안 나오면 두 과목을 합해 어느 청년의 한 달 아르바이트 수입과 맞먹는 돈을 내고 개인 과외를 시켰다. 국어가 점수가 안 나오면 학습지도시켰고 기타 과목을 위해 학원도 보냈다. 아이가 게임에 빠졌다고 아이 방에 CC 카메라를 달았다고 했다. 뭐든 돈으로 해결 안 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니 자식도 돈으로 키우겠다고 했다. 초등학교 시절 어느 여름 방학에 그 아이를 영어마을 캠프에 보냈다. 캐리어에 매일 갈아입기만 하면 되도록 속옷, 양말, 바지와 셔츠를 요일별로 패키지로 묶어 넣어 주었다. 결국 사흘 만에 영어 마을에서 연락이 와서 아이를 데려가라 했단다.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니 캠프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캐리어를 열어 보지도 않았던 것 같아. 내가 가방을 싸준 대로 고대로 있더라고."


 그 아이도 우리 아이와 동갑이니 이제는 스물다섯 살 청년이 되었겠다. 군대는 잘 다녀왔는지, 대학은 어디를 갔는지 근황이 가끔 궁금하다. 자식은 내 뒤를 보며 큰다. 내 말투와 내 행동 그리고 가치관에 젖어들며 어른이 된다. 자식이 자라는 동안 부모는 자식을 감시하며 미리미리 앞길을 열어 주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내가 했던 시행착오를 내 자식이 반복할까 봐, 내가 했던 고생이 대물림 될까 봐 두려워하며 미리 앞에 서서 안내를 하느라 고단한 이들이 딱하다.  

'自化(자화)'라는 말이 있다.

꽃은 혼자 피어난다. 애벌레도 혼자 고치를 짓고 혼자 나비가 된다. 달걀에서 병아리가 깨고 나오기 힘들까 봐 미리 살짝 깨 준다면 어찌 될까? 꽃이 잘 피어나라고 봉오리를 미리 까준다면 어찌 될까? 번데기를 뚫고 나오는 것이 힘들까 봐 미리 칼집을 내준다면 어떻게 될까? 아이들도 측두엽이 발달한 후 후두엽이 발달을 하고 마지막으로 전두엽이 발달한다고 한다.(EBS 다큐 아이의 사생활 참고) 아기가 세 살이 될 때까지는 쉬지 않고 아기에게 말을 걸어 준다. 귀가 가장 먼저 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듣는 아이'가 된다. 그런 후에 그림책이나 그림 카드를 보여준다. 어린 아기에게 무조건 동영상부터 틀어 주면 '말 안 듣는 아이'가 된단다.

'요즘 애들은 듣질 않는다. 들어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그래서 너무 힘들다.'

초등학교 교사인 내 언니의 한탄이다. 모르긴 해도 언니 맡고 있는 지금 초등학교 4~5학년 아이들이라면 대부분 스마트폰 동영상을 보며 자란 아이들일 것이다. 나이가 들어 자식과 교류하고 부모는 자식에게 지혜를 말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최신 유행과 첨단 기기 사용법을 전할 수 있으려면 서로에게 귀 기울일 수 있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아빠 엄마가 하는 말은 무조건 다 잔소리라고 여기는 자식들은 부모와의 대화 시간을 피한다. 혹시 내 자식이 나와 대화하기를 꺼린다면 나는 '자식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잘못할 때만을 노렸다가 고쳐주려고 하는 부모'는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최근 주말마다 한 차례씩 나가야 했던 요양시설 코로나 방역 점검이 전담제로 바뀌면서 나는 그 업무에서 놓여 났다. 하지만 딸들이 다소 서운해한다. 엄마 심심할까 봐 동행해 주던 딸들은 그 시간이 엄마와 드라이브하며 대화를 나누기 좋았다고 한다. 사실 점검을 나가는 그 길에 동행해주는 것이 고마워 예쁜 해안가 카페에도 가고 해안도로 드라이브도 하곤 했었던 날들이 나도 좋았다.


 자식 뒷바라지를 꼭 돈으로 하는 건 아니다. 나 역시 부모가 되어서 자식에게 더 좋은 집 못 얻어 주는 것, 대학원 학비 못 보태 주는 것, 유학 못 보내주고 결혼 자금이라며 한몫 도와주지 못하는 것 때문에 때로 자괴감 들 때 있다. 자식이 힘들어하는데 그저 묵묵히 보고만 있는 것이 힘들다. 그렇다고 꽃봉오리 억지로 까주고, 번데기 고치 칼집 내주고 달걀 금 가게 해 놓을 수는 없다. 그건 내 자식이 자신의 인생에서 패스해야 할 과정 중 아주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늘 나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자식이 잘 가고 있는지 바라보아 주는 것이 부모 된 자가 해야 할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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