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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Mar 22. 2021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불편한 후배

 '파격인사'

그건 정말로 파격인사였다. 경력직 간호사를 뽑아 6개월의 교육 수료를 거쳐 8급으로 임용되던 직급에 6급으로 두 사람이 직무교육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임용되는 인사가 이루어졌다. 놀랐다. 물론 개정된 조례에 의거하여  인사팀에서 어련히 그 자격 요건을 신중하게 심사를 했을 테니, 수많은 지원자 중 가장 우수한 사람들이렸다. 하지만 문제는 내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형평성과 공정성에 대한 시비였다. 지극히 공정한 과정을 거쳐 선발되었다고 믿지만 '알고 보면 특정인과 줄이 닿아 있다'는 제법 설득력 있는 소문은 나를 아주 많이 불쾌하게 만들었다. 원래 자두나무 아래서는 갓끈 고쳐 매지 말고 참외밭에서는 신발끈 고쳐 매지 말라고 했다. 그러니 시비에 오르내리는 자체가 뭔가 마음에서 탐탁잖았다. 8급을 받고 들어와 5년 차가 되어가는 성실한 후배들의 소리 없는 좌절도, 지역 신문의 신랄한 비판성 기사도 마음에 얹히고 수양이 모자라는 인간인 나 역시 공연히 심사가 뒤틀려 '그려,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 나중에 나오면 좀 보자' 하고 벼르고 있는 나 역시 긴 시간을 기다리고 인내한 끝에 올랐던 직급을, 3단계 점핑하여 쉽게 따낸 그들에 대해 뭔가를 빼앗긴 것 같은, 또는 질투 어린 감정이 솟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저는 그냥 임상 간호사 생활이 너무 힘들었던 참에 마침 모집 공고를 보고 원서를 내고 합격이 되었어요. 지금도 매일 공무원증을 들여다보면서 가족들도, 저도 얼마나 신기하고 기쁘던지요."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아주 굵은 동아줄을 잡았다던 그의 순수한 말에 복잡한 마음으로 침묵하는 나에게 그는 덧붙였다.

"저는 공직 사회도 잘 몰라서 7급이 뭔지 6급이 얼마나 높은 건지 낮은 건지 몰라요. 저는 그냥 내가 막내다, 생각하고 열심히만 할 생각입니다."


 그런 그에게 왜 화가 났을까? 그 순수한 말에 대한 나의 대답이 내가 하면서도 냉정하고 야박하게 들렸다.

"내가 입사를 하니 나보다 한 살 아래인 S계장이 이미 입사해서 근무를 하고 있습디다. 그런데 그가 작년에 30년 만에 6급으로 승진을 했어요. 어떻게 생각해요?"

그는 잠시 당황하는 듯 보였다. 그제야 6급의 무게를 순간 짐작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공알못(공직사회를 알지 못하여)이었다가 숙연해진 그에게 내가 그랬다.

"내가 재밌게 보았던 드라마에서 그럽디다. '어떤 사람은 3루에서 태어났는데 자신이 3루타를 친 줄 안다.'라고. 나는 내가 30년 넘게 공직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실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내내 참 운이 좋았었다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왔어요. 그대는 6급으로 임용된 것이 자신의 실력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소?"

그는 '어쩐지 자신에 대해 동료들이 안 좋은 소리를 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고 서운했다'라고 했다. 나 역시 7급 승진을 열망하는 후배들의 희망을 알기에 그 서운함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생각했었다.

"어떤 이들이 8급이라는 규격의 자동차를 타고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성실하게 오롯이 정해진 속도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 길을 열심히 달려가다 보면 곧 7급이 된다는 희망에 힘들어도 묵묵히 달리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자신과 색상과 모양이 같은데 6급이라 씐 자동차를 타고 두세 배의 깜짝 놀랄 속력으로 내 옆을 쌩! 하고 지나간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그들에게 상대적인 박탈감 허탈함이 없을까요?"

나의 말이 그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남들보다 겁나 운이 좋은  그들과 싫어도 동행 해야 한다. 좌우 간에 그들과 한 패거리가 되어야 한다. 


 고백하건대, 나로 말하자면 8급 후배들의 대변인양 위장하며 내 쓰린 속내를 그들에게 참지 못하고 내놓았을지 모르겠다. 첫 대면에 내게 불편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던 죄 없는 6급 신입들의 6주간의 실습에서 지켜본 그들의 자세는 다행히도 성실했다. 지각도 조퇴도 없이 하나라도 배우려고 긴장하고 있었다. 내소 하시는 민원인들에게도 친절하고 가정방문 간 독거노인이나 거동불편 어르신들에게도 정성을 보였다. 실습 마지막 날 하필 각 학교 기숙사 입사생 대상 600명 전수검사를 위해 비상 근무령이 떨어져 다음 날 9시까지 선별 진료소로 나오라고 갑자기 연락을 받았던 다음 날, 내가 8시 반에 도착하니 6급 신입 실습생은 이미 와서 D레벨 방호복을 입고 너무 일찍 온 대상자 두 명의 검채를 뜨고 있는 것을 보았다. 5년 차 후배는 9시가 되어서야 설렁설렁 들어오고 있었던 날이었다. 그들을 향한 '두고 보자는 뾰족한 내 꽂이'가 순간 무뎌지던 날이었다. 속아서 비싸게 산 물건이 사실은 그 값어치가 있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을 때의 안도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다른 후배들에게 내가 그랬다.

 '다행이야. 사람은 성실하고 착한 것 같아.....'


 



 지난주에도 어김없이 돌아온 순서에 따라 코로나 19 선별 진료소 근무를 나갔다. 하필 코로나 19의 성행과 함께 입사를 한 두 6급 신입들은 내가 일하는 보건진료소 실습을 마치고 군 보건소 실습 중이었는데 자가격리 중인 사람들의 재검사를 위한 방문 검체 채취를 위해 출장 중이라고 했다. 그들과 첫 대면한 이후 두 달 여 만에 그들이 코로나 19 방역에 부족한 인력으로 사용되는 것이 공연히 속상했다. 그리고 4시가 넘어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 두 사람은 내가 일하고 있는 선별 진료소로 찾아와 두 말도 없이 나를 밀어내고 가운을 입고 장갑을 꼈다. 외국인 노동자 전수 검사로 이미 혼자서 70명 이상의 검채를 했던 날이 이었다. 쉼 없는 출장으로 온종일 방호복을 수십 번 갈아입느라 말할 수 없이 고단할 텐데..... 마음이 찡했다. 죄 없이 어색하고 불편한 후배였던 그들이 깨닫지 못하고 겪는 사이 동료요 마음 쓰이는 후배가 되어 있었다.


 세상 평지풍파 이루 말할 수 없이 심하다. 내가 근무하는 보건 진료소들만 놓고 보아도, 순차 폐쇄하고 인력 구조조정을 한다고 보건진료소장을 정년퇴직 자리를 충원하지 않고 순환근무를 하게 한 적도 있었고, 정규직 대신 계약직을 뽑거나 7급 채용인 자리를 8급으로 조정을 하더니 이제는 갑자기 우수 인력을 뽑는다면서 종합병원 간호사 경력자를 6급으로 뽑기에 이르는 이 파란만장한 세상에서, 결국 이 모든 것은 실력도 백그라운드도 아닌, 타이밍이요 운이라는 생각이다. 법을 어기지 않았고 규정에 맞는 과정을 통해 선발했으니 공정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다만 공정하다는 착각일 뿐,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주었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하지 못하는 이 풍진 세상에서 나의 희망은 오직 사람이다. 사람 안에 담긴 씨앗이다. 누구에게나 들어 있는 그 씨앗이 어떤 싹이 나고 어떤 나무가 되어 어떤 열매를 맺을지에 대한 궁금함이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풍진 세상에서 사람 안에 들어 있는 그 씨앗이 부디 긍정적이고 너그럽고 따뜻한 희망의 싹으로  돋기를 기도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 기다려 주고 칭찬과 격려를 주는 것으로 나는 희망을 키워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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