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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Jun 24. 2021

직장의 신과 함께

섬 마을 코로나19 예방 접종 업무 출장기

 60세 이상 연령에 대한 COVID19 접종이 한창이던 지난주의 일이다. 코로나 관련 업무에 대한 포상휴가를 받아 실로 수개월 만에 감격스러운 영월 여행을 가 있던 내게 행정팀 실무관이 전화를 했다.

"소장님, 다음 주 화요일에 섬에 출장 접종 나가셔야겠어요."

직전에 이미 단체 대화방에서 5년 차 후배인 A와 B, 두 사람이 출장 가는 것으로 공지가 되었던 걸 읽은 참이라 갑자기 내게 거길 가라니 의아했다.

"출장자가 B 선생에서 저로 바뀐 이유를 물어봐도 됩니까?"

"아, 부서장님께서 연륜 있고 경력 많은 분이 가시는 것이 나올 것 같다고 하셔서요. 결재하시면서 선생님을 지명하셨어요."

"그렇군요....."

라고 했지만 기분은 별로였다.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조직이니 항명하기는 어려웠지만 굳이 그 일이 경력과 연륜이 요구되는 업무는 아니라고 여겨지니 유쾌하진 않았다. 출장지는 배를 타고 40분을 가야 하는 섬이었고 별다른 설명 없이 날짜만 통보받은 것도 받아들이기 불쾌했다. 모든 업무를 'SOAP(Subjective Objective Assessment Plan) '에 의해 수행하는 훈련이 되어 있는 나는 알려지지 않은 업무에 대해선 여전히 불안감이 있었으나 어쨌든 휴가 기분을 망치지 않으려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런데 사흘 만에 다시 전화가 왔다. '가실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그냥  A 선생님 한 분만 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가 번복이 되니 김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마음에도 없이, '그러지 말고 그냥 A 대신 제가 가는 것으로 해요. 배 타려면 새벽에 서줄러야 하는데 A는 아기도 있고 하니 제가 혼자 갈게요'하고 진심이 담긴 건의 했지만 이미 명령이 났다면서 기분 좋게 거절되었다. 막상 출장이 취소되니 다시 기분이 좋았다. 어쨌든 하기 싫은 일이 공적으로 면제되니 다행이었다. 하지만 혼자 고생할 후배 생각에 조금은 불편한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출장 직전 날 퇴근 중에 전화가 왔다.

"소장님 너무 죄송해요. 내일 출장을 가셔야 하게 되었어요."

"아오! 왜 이랬다 저랬다 해!! 난 벌써 퇴근 중이라고!"

"그러게요... 죄송해요.... 최대한 빨리 전화한 건데 조금 전에 결정이 나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실무자에게 화를 내봤자 뭔 소용이 있으랴. 다시 차를 돌려 진료소로 되돌아갔다. 1인 사업소인지라 출장이 잡히면 출입문에 출장 안내문도 붙여야 하고 휴대폰으로 전화 착신도 해야 하고 이장님들에게 안내방송도 부탁하여야 하기 때문에 번거로운 일이 많았다. 아장님들은 왜 이제야 연락을 하느냐 고 한 마디씩 하셨지만 그냥 그렇게 되었다고 웃으며 얼렁뚱땅 넘어가야 했다. 그렇게 가운을 싸들고 집으로 와 아침 일찍 배를 타러 나갈 마음의 준비를 하는데 옛 생각이 꼬리를 문다. 섬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다사다난했던 시간들....

결국 전날 밤늦게 받은 업무의 내용은 이랬다. 접종 대상은 세 개의 섬 볼음도, 아차도, 주문도 거주자들인 60세부터 74세 사이의 거동불편자들이다. 배를 타고 읍내로 나와 접종센터를 방문하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출장 접종을 나가는 일인데 접종 대상 인원이 많지 않으니 어려운 업무는 아니었다. 하지만 배를 타는 일, 백신의 보존 온도를 신경 쓰는 일, 잔여백신으로 인해 소실되는 분량 없이 인원을 맞추는 일들이 조금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출장 날은 아침부터 비가 많이 왔다. 배가 운항을 하는데 비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일기가 불순하면 파도가 높이 치기 때문에 걱정이었다. 아침 일찍 소속 앰뷸런스를 타고 외포항으로 갔다. 최근 새로 건조된 강화군 행정선 '아라호'가 우릴 맞아주었다. 마치 요트처럼 유려한 선체와 실내가 근사했다. 승객은 후배 A와 나, 우리 둘 뿐. 하지만 백신은 흔들리면 안 되고 적정 온도를 유지해야 하니 우리보다 더 귀한 손님이다. 다행히 최신형 아라호는 조금 울렁거리기는 해도 기존에 타보았던 행정 선보다 크기가 커서 안정적이었다. 게다가 40분 걸리는 운항 시간이 20분으로 절반이나 단축된다는 놀라운 선장님의 말에 일단 우리는 '신났다.' 배를 타고 40분은 멀고 지루하다. 배는 출발했고 연안을 벗어나자 뱃전을 거칠게 때리는 파도와 물보라 때문에 밖으로는 나가지도 못하고 요트 여행에 대한 로망을 수다로만 대신하며 '볼음도'에 후배를 먼저 내려 주고 다시 나는 조금 더 배를 타고 '주문도' 선착장에 내렸다. 이미 나와 있던 반가운 팀장의 얼굴은 걱정과 불만으로 어두워 보였다.

"잘 지냈어요?"

"그렇죠 뭐..."

"힘들지요?"

"힘들긴 뭐...."

"필요한 것 있으면 미리 말하라는데 왜 연락 안 했어요?"

"필요한 거 없어요..."

오랜 동료이자 남동생 같은 팀장은 말꼬리 흐리는 버릇이 여전했다.

"난 보건지소 근무가 처음이라...."

'그렇구나... 그래서 그리 표정이 어두웠구나. 걱정마라 누나가 왔잖나'

혼자서 그리 생각하고 팀장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서도면 보건지소로 향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섬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섬이지만 어촌이라기보다 농촌에 가까운 강화군 부속 섬들의 특징이 주문도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었다. 처음 와 보는 섬인데 조금도 낯설지 않은 것이 그 때문인 듯하였다. 언덕 위에 위치한 보건지소는 면사무소와 마주 보고 있었지만 리조트였다면 끝내주는 뷰라고 할 만하게 전망은 좋았다. 면 사무소에서 차로 한 번에 모셔온 덕분에 접종 대상자는 벌써 여섯 분이 와 계셨고 직원은 간호조무사 2명과 팀장 그리고 보건지소장인 공중보건의사가 전부였다. 미리 마련된 장소로 들어가 '아이스박스님'(나름 고가의 장비이다. 내가 입고 걸친 것들 모두 합해도 이 아이스박스님이 더 비싸다.) 온도 체크를 한 후 가운을 입고 페이스 실드를 쓰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K주사기'로 재기 시작한다. 언론 보도대로 10인분용의 백신을 용량대로 재는데 13명 분이 나왔다! K주사기 최고다!

"자, 준비 완료! 시작하자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내가 그렇게 말했지만 접종이 시작이 되지 않고 있었다. 직원들은 그저 우왕좌왕할 뿐 마치 메인 MC가 멘트를 시작하기를 기다리는 쇼처럼 보였다.

"헤이, K주사님, 우리가 접종을 시작하지 않는 이유가 뭐지?"

나의 물음에 그녀는

"지금 시작하시면 돼요."

라고 대답했다. 결국 이유가 없었다. 나는 직원의 가운에 새겨진 이름을 확인했다.

"이름표 좀 봅시다. Kㅇㅇ씨, 저분들 문진표 작성 다 되었습니까?"
"네"

"안 오신 분 몇 분이죠?"

"다섯 분입니다."

"지금 안 오신 그 다섯 분에게 전화하세요. 신분증 가지고 '지금' 오시라고. 그리고 자기야, 이름이? 아, Pㅇㅇ씨, P주사님은 얼른 인터폰 해서 의사 슨상님 내려오시라고 해요. 준비 다 됐으니까 지금 내려오시면 시작이라고 말씀드리세요. 자, 시작합시다!"

그제야 그 섬 출신의 두 직원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금방 얼굴을 씻은 듯 해끔하고 젊은 의사 양반이 내려오시고 접종은 물 흐르듯 시작되었다.  


 그런데 면장님께서 보건지소 팀장과 뭔가를 수군거린다. 팀장은 난감한 표정이다. 분명 뭔가 곤란한 요구가 오고 가는 모양이다.

"무슨 문제 있습니까?"

"아차도에 한 분이 계시는데 거동이 많이 불편하십니다. 그분은 선생님들이 직접 집으로 방문해서 접종해 주시면 안 될까요?"

아차도에 사시는 한 분을 면 사무소 소속의 쾌속선으로 모시고 와서 다시 차로 옮겨 태워 보건지소까지 모시고 오려니 사실상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했다.

"코로나 예방접종 백신은 지정된 접종실 밖으로의 반출이 원칙상 금지이고 설령 방문 접종을 한다고 해도 이상반응에 대한 즉각적인 대처가 불가능합니다. 혹여 문제가 생겼을 때 의사 선생님, 면장님, 팀장님, 저 이렇게 넷이 책임을 져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코로나 감염증은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전 인류가 동시에 가고 있는 팬데믹입니다. 누구 하나라도 '삑사리'를 내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고 큰 희생을 치릅니다. 모두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   

생각해 보면, 보건지소의 팀장은 면 사무소 직원들과 매일 얼굴을 보며 수시로 대화하는 사이일 터였다. 곤란하지만 거절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었다. 결국 우리가 '쌕쌕이'라고 부르는 면사무소 소속의 행정선으로 아차도 주민 한 분을 모셔 왔다. 가슴과 허벅지가 붙을 정도로 몸이 굽은 아차도 어르신을 위해 직원 P에게 문진표 작성을 돕도록 부탁했다.

"어머니, 여기에 '정'이렇게 한 글자만 쓰시고 동그라미 치세요~"

"여기다 사인하라고??!!"  

보건지소 안에 웃음이 가득했다. 면장님도 훌륭하신 분이다. 말씀드린 원칙을 존중하고 받아들여 그 원칙대로 즉각 행동하시는 선한 공무원이시다. 덕분에 일단 예약하신 11명 중 연락이 안 된 'no show' 한 분을 빼고 10명의 접종을 완료하였을 때 잔여 백신은 3개.  볼음도의 부속섬인 '말도'의 주민 세 분이 이곳으로 온다는 연락을 받은 직후였다. 다행히 '딱' 맞겠다 생각해 기분이 좋아지려는 순간, 지난달 75세 이상 접종 당시 읍내 접종센터로 이동이 어려워 접종을 받지 못하신 90이 넘으신 고령의 어르신이 오셨다. 휠체어를 타고 들어오신 어르신. 귀가 절벽이다. 문진 하는 의사가 거의 악을 쓸 정도로 큰 소리로 물어도 답을 못하신다. 접종을 위해 내 앞에 오신 어르신에게 본인 확인을 위해, '어르신, 이름이 뭐예요?'하고 물어도 전혀 못 알아들으시니 대답도 전혀 못하신다. 나는 몸 간격을 한껏 띄우고 마스크를 벗은 후 '어르신 이름!?'하고 물었다.

"ㅇㅇㅇ!!!"

귀는 절벽인데 목소리는 천둥소리처럼 우렁차다. 다시 보건지소가 웃음바다가 된다. 마스크 때문에 입 모양을 볼 수 없게 된 탓에 말을 배우는 유아는 물론 난청이신 어르신들의 일상도 어려움이 많다..... 어쨌든 문제는 어르신 접종을 하게 되면 잔여백신은 2개, 백신 한 명 분의 모자랄 수 있다. 여유분으로 가져온 새 백신을 따면 남은 12명 분을 모두 소비하고 돌아가야 하는데 난감했다. 그렇다고 어렵게 오신 분을 되돌려 보낼 수는 없어 P주사에게 일단 문진표 작성을 도와드리게 했다.

귀는 잔뜩 먹었지만 목소리는 천둥소리 같던 어르신은 평생 조개 밭에서 생을 보내셨다.

팀장은 남을 예정인 12명 분에 대해 미리 예약을 받을까 하고 묻는다. 면 사무소 직원들로만 받아도 충분하고 농협 출장소와 행정선 직원들도 있으니 어렵진 않다고 한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일단 접종 끝나고 봅시다. 그분들한테 미리 얘기는 해 놓는데 접종이 끝나 봐야 결정이 된다고 해주세요."

결국 접종이 끝나고 보니 깔끔하게 맞춤하게 끝났다. 먼저 접종을 끝낸 볼음도에서 백신 1명 분을 남겨 왔고 말도 3명이 때맞춰 도착하여 새로 백신을 따지 않고 12시 전에 접종이 완료되었다. 면장님께서 점심을 대접하신다고 하였으나 비가 계속 오고 있었고 행정선 아라호는 뭔가 검사를 받아야 할 예정이어서 아쉬움을 남기고 서둘러 배에 올랐다. 후배 A와 오는 내내 기가 막힌 타이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사히 돌아온 외포항에서 미리 나와 기다리던 앰뷸런스를 타고 복귀한 우리들은 예방접종 담당자에게 남은 백신과 작성된 문진표 등을 넘기고 부서장에게 복귀 인사를 하러 올라갔다. 고생했다고 반갑게 맞아 주시는 부서장은 커피 한 잔을 권한다. 오랜 세월 함께 했던 나의 부서장은 내년에 정년을 맞을 예정이다.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어려운 책임을 맡아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코로나 감염증 대응 업무로 얼마나 고단했을까....

"부서장님, 혹시 부채도사세요? 어쩜 이렇게 맞춤하게 마련하셨어요? 사실 처음 이랬다 저랬다, 하도 번복을 해서 왜 이럴까, 뭔 일을 이렇게 어설프게 하나, 걱정하고 불만스러웠는데 막상 일을 마치고 보니 모든 것이 다 맞아떨어지게 일이 잘 되었어요. 주문도에 저를 보낸 것조차 아주 적절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네! 사실 오늘 새벽까지 고민했어~"

그제야 깨닫는다.

'그랬구나! 내가 잘한 줄 알았더니 이 모든 것이 직장 생활 40년 차의 직장의 신과 함께 여서 가능한 일이었구나! 마치 모든 것을 예상한 듯 기획하고 적절한 사람을 세우고 끝나고 나서의 상황까지 예상하고 점검하고 예비하고 운영하는 이런 능력을 누가 가질 수 있을까...'

 우리 부서장 정도면 진짜 꼰대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헐..... 그건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 하며 할 말 잃게 만들 때도 물론 있다. 생각해 보면 공직 생활로 40년을 보낸 분의 입사 초기 시절의 지식이라야 무엇이 대단하랴. 그야말로 '얼렁뚱땅 대충 허허실실'이 여사로 통용되던 시절이었으리라. 하지만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그녀에게는 누구도 따르지 못할 풍부한 지식과 역량이 있었다. 최신 버전의 IT기술과 그 사이 발전한 세상의 모든 지식에는 어둡고 소통에도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불꽃을 내는 열정과 집중, 그리고 대의명분에 대한 지극히 적절한 균형 감각은 그 앞에 선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출장 접종을 잘 운영하고 돌아온 내게 입에 침이 마르게 고마워하고 칭찬을 하지만, 결국 이 모든 성공적인 업무의 완수는 모두 직장의 신이 기획하고 명령한 바대로 이루어진 것이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한 시간 정도 부서장 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굉장히 잘 운영되었던 접종 센터에서의 하루하루가 실은 살얼음판 같았던 상황들의 연속이었다는 후일담을 들었다. 내  덕분도 네 덕분도 아니고 우리 모두를 그 자리에 배치하고 운영하도록 쉴 새 없이 회의를 주최하고 그 모든 사항을 명령하는 직장의 신 덕분이로다!  


 신은 세상을 창조하고 점 하나까지도 틀림이 없이 완벽하게 세상을 운영하고 있지만 인간인 우리는 지구가 도는 것조차 아무런 느낌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중이다. 거친 세상이다. 무섭고 두려운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은 망하지 않고 오늘도 저마다의 속도와 크기로 흐른다. 그것은 아마도 신께서 그 모든 것을 신의 섭리대로 이루어지도록 운영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한 신에게 인간은 믿음으로 응답하듯 부서장의 역량은 부서 구성원들의 신뢰를 이끌어 내고 명령에 따르게 하는 힘을 갖는다. 그날 하루의 끝에서 나는 고단한 출장을 통해 배운 그 기법을 되새기며 간직해 보았다.


 '꼰대'는 시니어를 일컫는 대표적 명사는 아니다. 그렇다면 옛날이야기를 하면 모두 꼰대라고 여기며 귀 담아 듣지 않는 경솔하고 교만한 젊은이는 무엇이라 부를까? 사물의 이치나 사람의 도리를 깨우치지 못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시절'이라는 말이 있다. 충남 사투리로 '바보'를 시절이라 부른다. 하지만 꼰대들은 그런 젊은이들에게 시절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이치와 도리를 깨달을 시간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가끔 나 역시 초년 시절 섬에서 고생하던 일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솔직히 옛날이야기를 나도 모르게 꺼내고 나서 즉시 후회한다. '옛날이야기한다고 나를 꼰대라 여기면 어쩌지?' 하는 스트레스도 살짝 있다. 그러나 다행히 딸의 남사친이 내게 '어머니는 짤 부자'라고 유쾌해했던 덕분에 시니어와 대화를 즐기는 기법을 젊은 친구를 통해 배웠고 세대 간 대화의 즐거움에 대해 나름 생각했던 적이 있다. 나의 곁에 있는 '시절'들을 나무라지 않고 보듬는 역량, 직장의 신인 선배의 말을 걸러 들을 수 있는 겸손함으로 스스로를 키워 나가는 지혜를 기쁘게 간직하게 된 두서없는 섬 출장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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