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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Apr 12. 2021

명미당을 아십니까?

강화도에 오면 시간 내서 둘러보아야 하는 곳(1)

 '가장 불행한 자가 나의 처 아니겠는가'

망처서숙인에 대한 묘지명亡妻徐淑人墓志錄


'지志'라는 것은 기록한다는 뜻이니, 사람에게 잊지 않게 한다는 뜻이다. 태어나서 다행히  남자가 되어 공덕과 문장의 실적이 있었다면 그가 죽음에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을 것이니, 이런 경우 기록할 것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부인의 경우는 남자에 비하여 우선 불행하다. 그런 중에도 다행히 부인이 남편과 해로하여 부귀와 잔수를 누렸다든지, 더더욱 다행히 자녀들을 낳아 기르고 후손을 잇게 하여 살아서는 크게 사랑해 주는 이가 있고 죽어서는 크게 슬퍼하는 이가 있는 경우라면, 이것 또한 잊을 수 없음으로 기록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신분이 부인인 데다 불행히 요절하여 남편과 해로하지도 못하고, 또 후손을 낳아 잇게 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 이에 다른 여자가 후처로 들어옴에 죽은 자의 자취는 없어져서 더 이상 남아 있는 것이 없게 되고, 그 결과 사람으로 하여금 잊지 않게 하는 것은 오직 황량한 산에 하나의 무덤뿐이다.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은 기록으로 남기지 않을 수 없다. 나 완산完山 이봉조李鳳藻가 기록하고자 하는 것은 나의 처 숙인淑人 달성서 씨徐氏에 관한 것이다...... [조선의 마지막 문장, 송희준 엮어 옮김, 글항아리]



 초등교사인 언니는 생활고충 상담소로 나를 자주 애용한다. 코로나 19 창궐 이전이던 여름, 대학 동기 모임을 준비하던 언니를 위해 화도면 선수 포구 인근 마을 이장님이신 내 남사친의 회집 펜션을 소개해 주었다. 1층은 낙조가 보이는 횟집, 2층은 독채 펜션이고 1차 식사를 한 후 이층에 올라가 인근 면소재지에서 오는 치킨이나 족발 배달을 시켜 맥주를 한 잔 할 수 있는 친구의 펜션을 나는 아주 선호한다. 사전답사 후 매우 만족하신 언니 고객님께서 내게 감사의 뜻으로 근사한 저녁을 사주려고 예약했고, 우리는 모처럼 해안선을 따라 드라이브했다. 저녁 식사 시간까지는 두어 시간 여유가 있어 '어디 잠깐 카페 같은데라도 갈까?' 하는 언니에게 '언니 혹시 명미당 알아?' 했다.  


 "제과점이니? 아니면 혹시 무슨 고택?"

"명미당明美堂은 영재寧齋 이건창李建昌 선생의 당호야. 영재 이건창 선생은 아시지? 사기리에 있는 이건창 선생 생가인데 아직 안 가봤구나?"

"양도면 지나다니면서 '이건창 묘'라고 적힌 이정표는 보았는데 생가는 한 번도 안 가봤네."

언니는 선생님인 데다가 역사에 관심이 많아 한국사 급수도 따신 분이시니 흔쾌히 함께 했다. 그때 나는 송희준 선생이 엮어 옮긴 명미당집을 옮긴 책을 탐독 중이어서 꼭 한 번 느긋하게 화도면 사기리에 있는 선생의 생가에 오고 싶었던 참이었다. 특히 그 책 가운데 영재 선생께서 쓴 '亡妻徐淑人墓志錄'을 읽으며 울고 또 읽으며 울던 때였다. 첫째 부인 서 씨는 후손 없이 22살에 시름시름 알다가 죽어 '죽은 뒤 14일 만에 강화도 사곡리 우리 집 옆, 선영의 기슭에 장례를 치렀네. 아! 백 년 뒤에는 나도 이 무덤으로 돌아가리.'라고 글을 맺고 있어서 꼭 명미당 옆 선생의 선영을 찾아 서 씨의 묘비를 어루만져 죽은 이를 위로하며 나 스스로도 위로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영재 선생의 생가로 들어섰다. 다른 사적들의 고택과 크게 다르지 않고 규모도 작았지만 우리는 고택의 마당이 보이는 툇마루에 나란히 앉아 조선말의 상황과 시대를 잘못 만난 천재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계유년(1873) 3월 모일에 죽으니, 나이는 22세였고 자식은 없다. 아! 내가 앞에서 말한 바 부인 중에 가장 불행한 자가 바로 나의 처가 아니겠는가? 상심이 되는구나.'라는 선생의 그 애닮은 마음이 선비의 유려한 필체로 막힘없고 군더더기 없이 기술되어 있다. 그 가운데에도 전해지는 영재 선생의 애틋하고 슬픈 마음은 '망처에게 올리는 제문祭亡妻文'에서 진솔하게 담겨 있다. 유교의 법도가 지엄한 선비들에게 사사로운 감정을 묘비와 제문에 담는다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허용되지 못하던 시대였겠지만 그저 학문의 깊이가 남다른 학자 선비이기 전에 시대가 인정한 천재적인 문장가였다.


 이건창 선생(1852~1898)은 강화 출생으로 본관은 전주, 자는 봉조鳳藻, 호는 영재寧齋, 당호는 명미당明美堂이다. 가학인 양명학을 계승했으며, 김택영, 황현과 함께 한말 삼재로 불렸다. 고종 3년 15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한 역대 최연소 과거 급제자이다. 1870년 벼슬을 시작했지만 1875년 암행어사로 관찰사 조병식을 탄핵했다가 벽동으로 유배돼 벼슬 생활을 접었다. 이후 고종이 부를 때마다 어사로 나가 비리를 고발하며 민폐를 해결했으나, 갑오개혁 이후에는 일체 부름에 은하지 않다가 왕의 미움을 사고 고군산도에 유배되기도 했다. 병인양요 때 조부의 자결을 목도하면서 현실과 역사에 눈뜬 후 서양과 일본의 침략을 철저히 배격했고, 양명학자로서 정치, 경제의 기반을 심학心學에 두고 비주체적 개화를 극력 반대했다. 무엇보다 이건창은 김택영에 의해 여한구가麗韓九家에 꼽힐 정도로 천재적인 문장가였다. 저서로 [명미당집明美堂集]과 [당의통략黨議通略] 등이 있다.  -지은이 이건창에 대한 소개-


 내가 읽었던 책이 소개하는 강화에서 태어난 이 천재는, 말보다 글을 먼저 배웠다 할 정도로 10살에 이미 사서삼경을 떼었단다. 구한말 3대 문장가로, 고려와 조선을 망라하여 우수한 고문가 9명으로 뽑힐 정도로 순수하고 강건한 체를 지닌 고문古文을 애써 추구했다고 한다. 23세에 서장관으로 중국에 갔을 때, 중국의 명가들이 "이 사람이 중국에서 태어났더라면 마땅히 우리가 이 벼슬자리를 양보해야 할 것이다."라고 할 정도였고, 스스로 조선조 500년의 문장가 중 제 일인자가 될 것을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밥을 먹어도 맛있는 줄 모르고 갖옷의 소매를 가지고 옷깃인 줄 알았다' 할 정도로 창작에 몰두하였으며 "다른 일을 다 폐하고 적막한 곳에서 오직 전념하고 고심해야만 훌륭한 작품의 창작이 가능하다."라고 말하곤 했단다. 곧은 성격 탓에 순탄치 낳은 벼슬길을 걸었던 그는 곳곳이 부패한 당시 상황에서 참으로 외로운 투쟁을 하였다고 전한다. 문장 이론, 논설과 평론, 충성과 절개, 가족과 나, 백성들의 삶과 효부 열녀 등을 서술한 그의 산문들은 영재 이건창 선생의 탁월한 문장과 인간적 삶의 애환을 느끼게 해 준다.


 "아! 슬프다. 봄바람이 때맞춰 불어와 만물이 생기가 나는데, 어찌하여 반짝반짝하던 눈동자는 다시 볼 수 없고 다정한 말소리는 다시 들을 수 없는가? 아! 마음이 아프구나."


 12살에 동갑인 이건창에게 시집와 11년의 결혼 생활을 하고 22세에 자식도 없이 죽은 아내를 기억하며 지은 그의 글은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 여기에 있는 나를 울린다. 명미당 고택의 안채를 돌아 집 뒤켠 언덕에 있는 그의 가족 묘들을 둘러본다. 물론 돌에 새겨진 한자들을 아무리 손가락으로 더듬어 보아도 아는 글자가 몇 개 되지 않지만 그의 글을 쓰는 자세와 정신을 되새기며 봄 볕을 나른하게 즐긴다. 강화도에 혹시 바람 쐬러 오거든 맛집 찾아 맛있는 음식 사진 찍어 SNS에 많이 자랑하고 예쁜 카페 찾아가 낯설고 이국적인 정취에 흠뻑 취하며 도시에서 시달린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 바란다. 그러나 최소한 강화도가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 보기도 하고, 관광지가 아니어서 찾는 이들은 적지만 글 좀 쓴다면 꼭 찾아가 보기를 권하는 장소를 소개한다.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 조선 마지막 문장가 이건창 생가. 그곳에 우리의 글쓰기 사부의 뜻이 머물고 있다.


 "무릇 글을 읽을 때는 반드시 천천히 심구尋究하고 익숙히 사념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씹어보고, 깨물어보고 삶아 익히기도 하고, 단련하기도 하고, 당기기도 하고, 떨어뜨리기도 하고, 흔들기도 하고, 끌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그 글을 억양抑揚하고 곡절曲折하며 선회旋回하고 반복해봄에, 소리가 울려 아름다운 리듬이 있어야 합니다. 참으로 능히 하루에 한 번 고쳐서 일 년에 몇 편을 짓고, 또 몇 편 중에서 산삭刪削하여 남겨두는 것이 몇 편이 되게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하기를 10년 동안 하면 진실로 한 권의 책이 될 것입니다."

[글을 어떻게 지어야 훌륭한 문장이 될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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