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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Nov 02. 2021

동물에게도 영혼이 있을까요?

너와의 이별을 준비하면서....

 "신부님, 죽은 강아지를 위해서 연미사를 올려도 될까요?"

"안됩니다. 개에게는 영혼이 없습니다."

"말만 못 하지 사람하고 똑같은데도 영혼이 없을까요?"

"네, 교회에서는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혹시 있다고 해도 사람의 영혼과는 다른 존재라고 봅니다."


천둥이는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버렸다.

 10년 전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정방문 출장길에 주운 강아지 천둥이는 약 2개월 정도의 아기였는데 주인을 아무리 찾아도 나타나지 않아서 우리 가족이 되었다. 집에 온 첫날 쏜살같이 베란다로 달려 나가 배변을 하던 천둥이는 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데도 이미 모든 걸 알고 태어난 천재견이었다. 내가 손가락을 다쳤다고 울상을 지으면 다친 손가락을 핥아 주며 공감해 주었다. 어디에 있더라고 부르면 냉큼 달려왔고 우리 가족과 여름휴가로 간 맹방 해수욕장에서 함께 바다수영도 했다. 믹스견이었지만 데리고 다니면 유려한 몸체를 가지고 있어서 지나가던 사람도 발길을 멈추고 한참 감탄하는 멋진 녀석이었다. 가족이 식사를 하는 동안은 점잖게 옆에 앉아 있었고 낯선 이를 보아도 절대 으르렁대는 법이 없었다. 단 한 번도 훈련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도 그렇게 잘 타고난 개였다. 그런 개가 로드킬을 당했을 때 일주일을 울면서 다녔다. 믿을 수도 없었고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다. 가족을 잃었던 슬픔과 비교해 조금도 차이가 없었다. '말문만 트이면 사람'이라고 할 정도였던 천둥이가 죽었을 때 연미사를 올리고 천둥이의 영혼과 나의 슬픔을 위로받고 싶었지만, 신부님은 안된다고 하셨다. 우수에 찬 눈빛으로 먼 곳을 바라보던 천둥이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분명 영혼이 들어 있는 눈빛이었는데...


 천둥이가 갑자기 죽고 매일 울며 다니는 우리 가족이 서로 눈만 마주쳐도 울던 그 일주일 후, 친한 후배가 강아지 한 마리를 내게 의탁하고 싶어 했다. 나는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겠다'라고 결심했던 탓에 단번에 거절을 했다. 하지만 네 번의 파양을 당했다는 강아지의 이야기를 들으니 데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하필 키울 형편이 안 되는 이들의 집으로만 입양이 되었던 바로 지금의 몰티즈종 우리 '두부'이다. 두부를 데려 오던 날을 잊을 수 없다. 그야말로 노숙견 가까스로 면한, 돌본 지 아주 오래된 몰골로 현관 앞에서만 빙빙 돌고 배변 습관도 완전히 퇴행된 엉망진창의 강아지였다. 천둥이를 잊지 못하던 남편은 상대적으로 두부를 내켜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 딸아이들은 천둥이를 잃은 슬픔을 두부 덕분에 극복했다.  

나 혀로 코 닿는다!
이 장면은 절대로 설정이 아닌 우연이다.

 어느 브런치 작가님께서 반려견 비용을 이야기하신 글을 관심 있게 읽었다. 천둥이도 두부도 그리 큰 비용이 들지 않았다. 두 강아지 모두 중성화 수술 비용이 5만 원이었다. 잘 아는 수의사 선생님께서 거저 해주셨는데 너무 죄송해서 선물을 사드렸다. 백신도 동물 약품상에서 종합 백신을 사서 직접 주사해 주고 있다. 구충제와 심장사상충 약도 직접 구입하여 매월 규칙적으로 먹였다. 5년 전 어느 저녁,  두부는 소변을 보지 못하고 밤새도록 거실을 배회했다. 배변판을 오르내리기만 할 뿐 소변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 강아지를 데리고 시내의 동물병원에 갔을 때 요로결석으로 요로가 폐쇄된 두부의 방광은 이미 찢어져 있었다. 응급수술을 했고 그날 밤을 넘기지 못할 정도로 위독했다. 요독증으로 계속 경련을 일으키는 강아지를 입원실에 두고 집으로 와 고운 아사천을 준비하면서 얼마나 울었던지.


 그때 동물병원에서 시행했던 검사 결과를 보고 그제야 두부가 컵 강아지 출신이라고 했던 첫 주인에게 들었던 바대로 개월 수가 차지 않은 아기를 제왕절개로 꺼내어 사료를 한두 알만  먹이며 작게 키운 인간의 탐욕으로 선천적으로 부족하게 태어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상과 달리 간 혈관이 하나가 없었다. 당연히 간 해독에 문제가 생겨 결석이 발생하였고 크기가 큰 결석이 요로를 막고 있었다고 했다. 기가 막혔다. 다행히 두부는 고비를 잘 넘기고 두 주일 만에 무사히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그때 깜짝 놀랄만한 비용이 청구되었지만 건강보험이 적용 안 되는 동물의 병원비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만 하고 흐지부지 넘어갔다. 두부가 재발 없이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잘 지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없는 품종인 컵 강아지를 만들기 위해 인간의 탐욕은 이 생명체에게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추석 무렵, 갑자기 두부가 토하더니 시름시름하며 엎드려만 있기 시작했다. 과한 식탐 때문에 남편에게 구박 아닌 구박을 받던 녀석이 갑자기 먹기를 멈추자 무서웠다. 두부를 데리고 읍내 새로 생긴 동물 병원을 방문했다. 고백건대, 비용이 가장 무서웠다. 피검사와 소변 검사를 하고 십만 원이 넘게 나왔다. 결과는 '신부전'이라고 했다. 막막했다. 어찌 됐든 딸과 함께 다시 예전 수술을 받았던 병원에 데리고 가서 입원을 시켰다. 가족을 입원시켜 놓고 비용 때문에 죄스러워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마음이 들어 괴로웠다. 보통 한 가지 검사 항목에 1~2만 원, 많게는 3~4만 원 하는 검사를 열 가지만 해도 입원비와 합하면 4~50만 원이 훌쩍 넘었다. 뭔가 당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두부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과 별개라고 한다면 말이 되기는 할까? 이틀을 입원한 후 결과는 '신부전이니 투석 밖에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들과 이틀 동안 충분히 협의한 후 회복이 불가능하다면 그냥 집으로 데리고 와서 곁을 지켜주자고 결심했고, 동물병원 원장도 크게 이견이 없었다. 경련을 일으키는 두부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미 5년 전에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던 탓에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추석 연후 내내 어둡고 깊숙한 곳을 골라 들어가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 있는 강아지를 지켜보면서 숨을 쉬지 않는 것을 확인하는 상상 만으로 눈물이 났다. 두 딸아이도 추석 위령 미사에 가서 연도를 바치는 동안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울기보다는 두부를 생각하며 하염없이 울었다고 했다. 어르신들이 들으면 기 막힐 일이지만, 나 역시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의 무너지는 슬픔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가끔 우리가 여행을 가거나 하면 맡아서 돌봐주셨던 친정 엄마도, 그땐 '이제 하다 하다 애들을 맡기는 것도 모자라 개까지 맡긴다'라고 잔소리하셨지만 두부의 소식을 듣고 그날 우셨다고 했다. 


 내내 물만 조금씩 마시면서 시름시름 앓던 두부에게 강제로 주사기에 액상 사료를 5cc씩 먹였는데 다행히 한 주 한주를 갱신하며 생명을 이어가던 두부는 거의 3주 차가 되자 주사기로 넣어주는 액상사료를 받아먹기 시작했다. 후둘거리며 잘 걷지도 못하고 픽픽 쓰러지던 두부가 습식 사료를 자발적으로 먹던 광경은 잊을 수 없다. 그렇게 두부는 다시 한번 병을 이겨내고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물론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다. 두부는 여전히 간 수치가 빨간색으로 표시될 정도로 높고, 신장 기능도 수의사 말로는 '저렇게 걸어 다니는 게 이상할 정도'로 높다. 두부는 하루의 대부분을 잠을 자고 공을 던지면 뛰어가서 물어 오는 것은 상상도 못 하고 소파에 대놓은 경사로를 더 이상 올라가지도 못한다. 다만 밥도 잘 먹고 가족을 반기며 소파에 앉아 뜨개질하는 내 옆에 엉덩이를 착 붙인 채 엎드려 있기를 좋아한다. 최후의 순간을 상상하며 이별을 준비하였지만 결국 나는 이별을 준비하지 못했다. 자신이 없었다. 고통도 모른 채 자신이 왜 이러는지 이해를 못하고 나를 빤히 바라만 보는 저 존재를 어찌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있는가. 누군가의 도움으로만 살아가는 존재들 모두에 대해 태초에 신께서 '거느리고 돌보라' 명하신 그대로 인간에게는 의무가 주어졌다. 나와는 다르고 나보다 하찮은 존재라 여기기엔 사실 따지고 보면 그들도 엄연히 신의 창조물인 것이다. 그들에게도 신의 흔적이 담겨 있다. 들꽃 한 송이, 개미 한 마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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