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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Nov 06. 2021

I am sailing stormy waters

조각배를 타고 쉼 없이 흔들리고 있는 그대에게 쓰는 편지

  바울라 씨,

 지난여름 폭염에 초등학교 코로나 전수검사를 마치고 방호복 안에서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이 된 것 같은 나는, 너무  힘들어서 사표를 생각하며 진료소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지금의 나보다 더 힘들고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했습니다. 가장 먼저 그대가 떠올랐어요. 그날로부터 오늘까지도 내내 생각날 때마다 그대를 위해 화살기도를 날립니다.


 문득 생각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기, 보고 싶은 사람 있으면 당장 전화하기. 그래서 문득 생각나는 그대를 위해 기도했고, 보고 싶은 그대에게 당장 전화를 했었죠.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가슴이 철렁했었어요. 직장이 없는 그대가 전화를 안 받는 일이란 없었는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나, 두려운 마음을 진정시키며 전화를 끊었지요. 진료소에 도착해 땀으로 젖은 근무복 가운을 갈아입으면서도 온통 그대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곧 그대가 전화를 했지요. 안도의 한숨도 잠시, 그대의 가라앉은 목소리를 의식하며 '더운데 어찌 지내냐'라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물었어요.

'내가 지금 병원이에요. 하도 머리가 아파서 CT 찍느라고 전화를 못 받았어요'

그대의 말에 지난 몇 개월 우리가 연락이 없던 동안 어떻게 지냈을지 금세 알 수 있었어요.

'애들 아빠 항암이 반응이 별로 없어서.... 너무 힘들어하니까 나도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너무 머리가 아파서 혹시나 하고 검사를 좀 받았어요.'

항상 그렇듯 담담하게 하는 말이었지만 무던하게 모든 일을 감당해 온 그대에게 지워진 그 모든 짐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공연히 눈물이 핑 돌았어요.


 우리는 동갑이어서 금세 친해졌지요. 특히나 잠시지만 공직 생활을 했던 그대는 내 처지와 마음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어서 내게 많은 응원과 위로를 주었죠. 돌이켜 보면, 그때 막 항암을 마치고 일상을 회복 중인 남편을 위해 공기 좋고 조용한 강화도로 이사를 온 상태여서 친구도 이웃도 없었던 그대에게, 나는 별로 힘이 되어 주진 못했어요. 도시로 출퇴근하는 남편과 고3이 되는 아이에게 신경을 쓰고 집중하느라 그대는 긴 시간 지체하지 못하고 서둘러 집에 돌아가야 했죠. 무엇보다 그대와 나는 끝내 말을 놓는 친구 사이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채 그대는 다시 도시로 이사를 해야 했어요. 출퇴근이 힘들어 도시의 본가에서 지내고 주말에만 내려오는 남편의 끼니를 챙기는 일이 더 이상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선언하신 그대의 시어머니에 대해 나도 서운한데 그대는 조금도 원망의 말을 하지 않는 것에 나는 놀랐어요. 모든 감정에 솔직하고 실시간으로 온갖 불평과 원망을 순식간에 만들어 내는 나의 급한 성정이 그대라는 거울에 비추어 보니 그 얼마나 경솔하고 유치하던지 말입니다. 어쨌든 항상 잔잔한 호수 같은 그대의 차분하고 단단한 그리고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대의 성격이 부럽고 그렇지 못한 나는 부끄러웠어요.


 바울라 씨, 그대가 이사를 간 후 몇 달간 자주 그대를 생각했어요. 함께 했던 짧은 시간들, 우리 그 추웠던 겨울의 피정이 기억나나요? 알싸하게 찬 바람을 맞으며 줄지어 걷기 묵상을 했던 그 벌판의 농로에서 내 뒤를 따라 걸었던 그대가 내게 그랬어요.

'이 사람의 뒤를 따라 걷는다는 것이 참 다행이고 고맙구나.... 이런 사람이 내 앞에 걷고 있어서 나는 그냥 따라만 가면 된다는 것이 편안해서 좋았다....'

사실 나 역시 그때 어떤 일로 많이 힘들었던 시간이었고 앞에 가는 사람, 뒤에 오는 사람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어요. 그런데 그대의 그런 말, 누구에게도 들어 본 적이 없어서 부끄럽지만 행복했습니다. 마치 내가 무슨 '김 구 선생'이라도 된 듯 마음이 비장해지기까지 했더랬어요. 강화에 뿌리를 내리려던 계획이 불과 이삼 년 만에 없던 일로 되었고 이사를 가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서운함보다 좀 더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어야 했다는 후회로, 그대에게 뭔가 좀 더 많은 것들을 나누어 주지 못했다는 미안함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이사를 가서도 간간히 내 안부를 물어와 주는 그대 덕분에 숨을 돌리기도 했고 마치 뭔 대단한 능력자라도 되는 양 내게 용기를 주고 응원을 주는 그대 덕분에 갑자기 닥친 코로나 사태 속에서 힘을 낼 수 있었어요.


 작년 겨울 그대가 일상의 이야기를 툭 던지듯 내게 안부를 물으며 남편의 근황을 이야기했지요. 그러면서 내 생각이 났다고 했을 때, 나는 가슴이 철렁했어요.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공연히 돌팔이의 소견을 내놓을 필요는 없겠다 싶어서 그저 두루뭉술하게 답장을 했었지요.


 '보고 싶은 바울라 씨 내게도 항상 생각나고 그리운 사람입니다.

그럭저럭 살아간다니 다행이고 고마운 시기입니다. 예수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 시기가 시작되었지만 곧 오실 에수님을 기다리는 마음보다 이 험한 코로나 시기가 끝나는 날을 더 절실하게 기다리고 있는 부족하기만 한 우리 인간들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 인간이 절대로 알 수 없긴 하지만 살짝살짝 엿보이는 지혜의 그 끝자락 어디를 매일 더듬으며 어두운 밤 길을 조심스레 걷고 있습니다. 보고 싶고 사랑하는 바울라 씨, 비록 우리가 떨어져 있지만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서로 통하니 우리에게 기쁜 재회의 날을 희망해 봅니다.'

'아하! 그렇지요. 기다리는 동안 더 열심히 감사히 살고 굳건한 맘으로 깨어있게끔 나를 가르치고 계시는 거죠? 잘 견디고 있어야겠네요.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나의 안부에 그대는 그리 아름답게 대답을 했고 나는 그날 하루 종일 마음이 불안하면서도 따뜻한 어색한 감정을 지닌 채 보냈습니다. 그리고 한 달 후, 갑자기 그대가 '베로니카 씨, 어제 꿈에 나왔어요'라고 툭 말을 걸어왔어요. '내 생각 너무 하나 봄'이라고 웃으며 남편의 안부를 물었을 때 마치 지금 날씨 어떠냐 묻는 말에 대답하듯 '재발해서 항암 중'이라고 담담히 대답했지요. 놀라서 숨이 막혔지만 그대는 그저 '하루하루 닥친 당면한 일만 잘 이겨내게 해 달라'라고 기도했지요. 나는 그날 많이 울었어요. 사막을 걷는 낙타처럼 웃거나 울지도 않고 묵묵히 그 속도로 걷는 그대를 위해 내가 대신 울었어요.


 봄이 왔고 부활 대축일 인사를 건넸지만 답장이 없는 그대에게 전화라도 했어야 했는데 내 삶의 속도를 버티느라 미처 곁눈질도 하지 못한 채 여름이 되었고 새벽 미사를 가면서 다시 그대를 떠올리고 안부를 물었었죠. 병원에 다니고 있고 치료 기간이 길어진다는 짧고 사무적인 대답을 눈여기며 '이 사람 지금 지쳤나 보다....'하고 걱정을 했어요. 그날부터 더 자주 그대를 생각하고 그럴 때마다 화살기도를 하며 견디어 낼 용기와 힘을 청했어요.


 그리고 그날 다시 그대와의 음성 통화는 거의 일 년 만이었던 것 같아요. '아픈 사람은 놓아두고 내가 이래도 되나, 내가 흔들리면 안 되는데, 그런데 머리가 너무 아파서' 검사를 받았다는 그대는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어요. 울지 않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대의 남편은 그대 같은 여인이 아내라서 든든하고 좋겠다 할 정도로 참으로 담담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대가 울었어요.  


 바울라 씨,

풍랑을 만난 조각배 안에서 균형을 잃고 이리 쓰러지고 저리 넘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에요.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것은 높은 파도와 바람 때문이지 그대가 잘못 서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누구도 그대에게 비틀대지 말고 똑바로 서있으라 말하지 못해요.

그러니 그대도 스스로 자신이 균형을 잃는 것에 괴로워하지 말아요.

지금은 풍랑이 지나기를 기다리면서 소리도 지르고 무섭다고 말도 해 보고 이리저리 뒹굴더라도 견디는 것이 최선이에요. 풍랑의 급이 어떤지 조차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에겐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신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지요.

혹시 타고 있는 조각배가 부서지고 난파된다고 해도, 파도에 휩쓸려 멀리 떨어져 나간다 해도

그것은 그대의 탓이 아닙니다. 명심하세요. 그때 가서 스스로를 자책하고 스스로를 해치지 마세요.

풍랑이 그치면 해가 나고 바다는 잔잔해질 것이며 그때는 먼 곳까지 눈에 들어올 겁니다. 그때 가서 고개를 들고 가야 할 방향을 정하세요. 지금은 그 무엇도 준비하지 마세요. 지금은 풍랑의 시간입니다.

나는 늘 그렇듯 이곳에서 그대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풍랑을 견디는 인내를 청하고,

풍랑의 바다를 건널 용기를 청하고,

풍랑 후에 오는 그 어떤 상황도 받아들일 온유를 청하고,

스스로를 아끼고 돌보며,

나보다 더 힘겨운 이들을 돌아볼 수 있고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사랑을 잃지 않도록

그대를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바울라 씨,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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