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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Nov 01. 2021

시골도 70이면 되고 80이면 안 되는 것

시골 사람의 황혼 재혼 어떻게 생각하세요?

 옛날 옛적에 과부와 세 아들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큰 아들이 밤에 소변이 마려워 일어났는데 어머니가 자리에 안 계셨다. 이상하게 생각하여 이리저리 찾았으나 안보이던 어머니가 새벽녘이 되어 흠뻑 젖은 채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자리에 드는 것이었다. 큰 아들은 이를 수상히 여겨 다음 날 밤부터 자는 척을 하며 어머니를 지켰다. 마침내 어머니가 한밤 중에 슬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나가자 큰아들은 몰래 뒤를 따랐다. 어머니는 옷이 다 젖는 것도 개의치 않고 개울을 건너 홀아비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큰 아들은 분개하여 어쩔 줄 몰랐다. 그러나 밤을 새워 곰곰이 생각하던 아들은 아침이 되자 동생들을 깨워 함께 힘을 모아 개울에 징검다리를 놓았다. 어머니가 물에 젖지 않도록 해드리기 위함이었다........


 그런 옛날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부부로 인연을 맺고 함께 백년해로를 약속하지만 사람의 일이란 사람의 뜻에 있지 않아 이런저런 이유로 백년가약이 깨지는 경우가 있다. 특히 부부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세상을 뜨는 경우엔 죽은 사람도 불쌍하지만, 남은 한 사람의 인생이 말할 수 없이 길고 외롭고 지루하다고들 한다. 시골에서 홀몸이 되어 보내는 노년은 특히 더 그렇다.


 코로나 시대 이전, 집합 보수교육이 한창이던 3년 전 충북 오송에서 휴대폰에 착신된 전화를 받았다.

"어, 소장. 지금 어딨지? 아까 진료소 가니까 없던데?"

일제 강점기에 형사를 지내셨다는 93세의 'P'어르신의 말투는 독립운동가를 취조하듯 전화상으로도 한결같이 고압적이시다. 어르신 며느리의 초대로 그 댁에 점심을 먹으러 가 있어도, '자리를 비우고 여기 와 있으면 어떡하냐'라고 나무라듯 지적하시는 그런 분이다.

"어르신, 제가 지금 충청도에 보수교육받으러 와 있습니다. 진료소 현관에 안내문도 붙이고 이장님께서 마을 방송도 하셨는데 모르셨군요? 헛걸음하시게 되어 죄송합니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내가 농민 신문을 꼭 보거든. 그런데 요즘 눈이 침침하고 잘 안 보이는데 약이 있나?"

"아직 100세도 안되셨는데 벌써 눈을 안보이시면 어떡하죠?"

"그러게 말이야!"

나의 예능을 진심 다큐로 받아들이시는 어르신께서는 진료소에 오실 때마다 한참을 앉아서 현 대통령과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시거나 국민의 혈세로 월급을 받는 공직자의 의무 등을 길게 강의하시곤 하는데 마지막으로 꼭 덧붙이는 레퍼토리는 바로 재혼 문제이다.

"내 나이 70에 할멈이 죽었는데, 내가 이렇게 오래 살 줄 알았으면 그때 재혼을 할 걸 그랬어!"

그렇게 말씀하시는 어르신은 사는 것이 지루하고 적적하다고 하셨다. '지금이라도?'라는 나의 물음에 어르신은 '상대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기꺼이 재혼하고 싶다'라고 하셨다. 물론 P 어르신은 100세에 무사히 골인하지 못하시고 요양원에서 3년을 못 버티고 97세에 돌아가셨다. 그분을 기억하면 자동으로 고령화되는 지역 사회에서의 홀몸 어르신들의 황혼 재혼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이전 근무지의 관할 지역 주민이셨던 J어르신은 친구의 권유로 노인대학에 등록하여 다니다가 여자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암을 앓던 부인과 사별한 지 10년이 되었을 때였고 나이는 80 초반이었는데 도시에서 이사 오신 참한 어머니와 좋은 친구가 되고 나니 사는 것이 매일 즐겁고 기대된다고 하셨다. 근 이삼 년을 교제하시면서 손을 잡고 논으로 밭으로 다니며 함께 하는 시간이 늘었다. '덕분에 다시 남자가 되었다'시며 운동으로 건강관리도 열심하시던 J 어르신을 마을 모두가 수군댔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당당하게 행동하시는 모습이 멋졌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여자 친구의 출입 뚝 끊겼다. 어르신께 이유를 물었더니 속상하시다면 그러셨다.

"여자 친구의 자녀들이 여행을 떠나서 혼자 있다길래 그 집에 가서 함께 오붓하게 저녁을 먹고 느긋하게 함께 쉬는데 여행 스케줄이 변경되어 한 밤 중에 어머니의 자녀들이 들이닥쳤지 뭐야"

좀 더 있다가 두 사람이 합치게 되면 자녀들에게 이야기하려던 두 어르신의 연애가 그렇게 자식들에게 들통이 나고 말았단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상견례 대신 양 가에 폭탄이 터졌고 어머니의 자녀들은, '뒤늦게 식모살이하다가 송장 치를 일 있냐'라고 막말을 했고, 어르신의 딸은 '예전 우리 엄마에게는 그렇게 모질게 대하고 밥상을 수도 없이 엎던 아버지가, 여자 친구와 함께 버스에서 내릴 때 손까지 잡아주는 걸 목격했다'라고 울며 내게 하소연했다. 결국 두 어르신의 결합은 좌절되었고 두 분의 연애는 자녀들의 극렬한 반대로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H 어르신은 나이에 비해 체격도 건장하시고 젊어 보이시는 건강한 70대시다. H어르신 역시 암 투병 중이던 아내와 사별하고 홀몸이 되었다. 한 번은 설사를 하신다고 진료를 받으러 오셨는데, 문진을 하다 보니 냉장고에 오래 넣어 두었던 닭고기를 대충 데워서 드신 것이 원인인 듯했다. 아내가 뭐든 다 했던 탓에 라면도 끓일 줄 모르던 어르신은 '밥이 제일 문제'라고 하셨다. 결국 H어르신은 누군가의 소개로 식당을 오래 해서 음식 솜씨가 좋다는 60대 어머니를 집에 들였다. 아들과 며느리에게  '재혼을 반대하려면 들어와서 함께 살던지 안 그러면 재산을 한 푼도 물려주지 않겠다'는 아버님의 선언에 자녀들도 마지못해 받아들였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새 아내는 자신 앞으로 재산을 돌려주기를 원했다. 그래서 어르신은 새 아내의 명의로 땅 한 자리를 돌려주었다. 그런데 들어온 새 아내는 첫 해에 무릎에 인공 관절 전치 수술을 받았고 이듬해에는 척추 수술을 받는 등 밥도 못하고 누워있는 날이 많은 병치레가 잦았고, 심지어 새 아내의 자녀들이 드나들기 시작하자 집안이 평안할 날이 없었다. 결국 '내가 이 집에 밥이나 해주러 들어왔냐'라고 싸운 끝에 H 어르신은 새 아내와 헤어졌다.


 기초수급권자이며 독거노인으로 등록되어 있으면 이런저런 혜택이 많은 편이다. 진료비는 물론 월 급여도 적지 않다. 보건소에서도 종합비타민 영양제와 어머니들의 최애 템인 케토프로펜, 일명 '케토톱' 파스며 이런저런 물품들을 무료로 매 월 받으신다. 상용 보건진료소에 파견 근무를 온 첫날 내소 하신 M어머니는 아버님과 함께 나란히 오토바이를 타고 오셨다. 혈압약을 지어 드렸는데, '나 영양제랑 파스 그런 거 안 줘요?' 하신다. 관리기록부를 열어보니 기초수급권자이며 독거노인으로 등록되어 있다. 두 말도 하지 않고 이런저런 물품을 챙겨 드리는데 나를 보며 눈을 끔벅끔벅하신다. '저이는 그냥 동거인으로 되어 있다'라고 하시면서. 묻지도 않았는데 그리 말씀하시니 M어머니의 이웃에게 살짝 물어보니 한 동네는 아니지만 전부터 알던 사람인데 각자 혼자되어 함께 의지하고 사시는 모양이다. 대신 호적 정리도 하지 않고 재산도 건드리지 않는 조건으로 자녀들에게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둘 중 하나 죽으면 어떡할 건지 모르지 뭐....' 하시는 이웃의 걱정과 상반되게 '사는 그날까지 서로를 돌보며 함께 하자'고 하신단다.


 시골에서 30년을 넘게 일을 하다 보니 이렇게 저렇게 많은 사연들을 접하게 된다. 황혼에 홀몸이 되어 외로움에 밤 잠을 못 이루시는 어르신들의 사정은 도시에서 바쁘게 사는 자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딱하다. 해가 떨어지면 시골은 적막강산이다. 문을 닫아걸고 일찌감치 저녁을 해 먹고 들어앉아 전기가 아까워 실내등은 모두 끄고 귀가 어두운 탓으로 볼륨을 한껏 높인 채 TV를 보다가 까무룩 잠이 드는 것은 9시도 안된 초저녁이다. 그렇게 잠깐 잠이 들었다가 한숨 자고 깨면 밤 11시. 그때부터 시간은 느리디 느리게 흐른다. 불면증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시계를 보아도 아직 새벽 1시, 1시 반, 2시, 2시 반...... 시간은 더디게 흐르고 잠을 청해 보아도 도통 잠이 오지 않고 진 채 혼자 움직이는 TV는 눈이 피로해 길게 보기도 어렵다. 내일이 온다 해도 딱히 별다른 일은 없지만 어서 동이 트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두어 달에 한 번 내려오는 자식들은 그저 '그만 하라고'만 하지만 농사를 그만두자니 풀이 가득하면 남이 흉을 본다. 그나마 농사를 지어 마늘이며 고구마며 김장거리를 마련해 주면 좋아라 하면서 싣고 가는 자식들을 보고 싶어서 진통제를 먹으면서 밭에서 매일 엎드려 산다. 식사 역시 그저 김치나 짠지 하나 놓고 대충 한 숟갈 먹는 둥 마는 둥 시간도 일정하지 않다. 웃을 일도 없고 달리 희망도 없는 삶이니 이렇게 살다가 그냥 잠자듯 죽기만 소원이다.....

   

 시골 경로당에서는 나이가 어릴수록 대우를 받는다. 나이가 너무 많으면 눈치를 주고 무시하며 뭘 해도 끼워주질 않는다. '앉아서 잔소리나 하고 대우받기만 좋아한다'며 싫어한다. 젊은 이들은 나이로 서열을 정하는 우리의 습성 탓으로 몇 개월이라도 차이가 나면 '빠른'이라면서 대우를 받으려는 것과는 달리, 경로당에서는 80대는 구박이요, 70대면 당당하게 큰소리치는 모습을 보곤 한다. 친정 엄마도 출생 신고가 늦은 탓에 아직 70대에 머물러 계신데, '경로당에서 무시를 당하지 않는다'시며 나이가 줄어든 것을 환영하신다. 어머니들은 '내가 상대가 돈이 많고 나이가 6, 70대라면 혹시 생각할 볼 수 있다'는 황혼 재혼이 80세를 넘으면 불가다. 어머니들은 홀몸이 되신 분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화투놀이도 하고 간식과 국수도 함께 먹으며 하루하루를 신나게 사시는 편이다. 재혼에 대해 크게 미련을 두지 않는다. 아마도 평생을 남편 수발과 자녀 양육에 대가 없이 몸과 마음을 모두 바친 탓으로 이제야 얻은 자유를 누리는 것에서 즐거움을 맛본 까닭이겠다.


 반면 홀몸 아버님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70이든 80이든 90이든 나이에 상관없이, '할 수만 있다면 좋지!'라고 하신다. '상대는 어릴수록 좋지'라는 말속에는 '여전히 남자'라는 자부심도 들어 있다. 홀몸 아버님들의 가장 큰 문제는 '밥'이다. 자녀들이 반찬을 만들어 날라도 마땅찮고, 그렇다고 어디 나가서 외식을 하자니 그 역시 번거롭다. '밥 해 주는 사람을 고용이라도 하고 싶다'는 분도 있다. 시골 아버님들은 경로당에도 잘 안 나오신다. 귀찮다고 하신다.


 진료소에 근무를 하면서 내가 느끼기에 시골 황혼 재혼의 가장 큰 걸림돌은 자녀들이다. 자신의 부모가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의리를 지켜내기를 바라는 마음은 차라리 애교다. 자녀들이 가장 걱정하는 바는 바로 재산 문제이다. 재혼하신 부모의 사후에 일어나는 상속과 관련한 분쟁이 적지 않다. 재산이 많은 분들이 재혼한다고 나서는 경우일수록 자녀들과 갈등이 심하다. 재혼을 선택한 어머니들은 지극 정성 돌보던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그의 자녀들에게 내쳐지는 경우가 많다 보니 아예 계약서를 작성하기를 원한다. 일정액의 재산을 나누어 받는 조건을 걸거나 호적에 올려 달라고 요구하게 된다. 당연히 자녀들과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남녀의 입장 차이를 극복한다고 해도 황혼 재혼은 여러 가지 난관을 극복해야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이다. 홀몸으로 힘겹게 농사를 지으며 살림을 꾸려 나가는 어머니들을 보면 안쓰럽고, 혼자 밥을 해 드시다가 상한 음식을 먹고 탈이 나 고생하시거나 입은 옷이 더럽고 냄새가 나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아버님들을 보면 기가 막힌다. 그냥 그렇게 홀로 살아가는 세월도 70세면 30년, 80세면 20년이다. 생각보다 긴 시간을 홀로 외롭게 살아야 한다. 부부의 연을 맺지 않더라도, 집을 떠나 양로원에 들어가지 않아도 함께 어울려 서로 돕고 위로하는 그런 공동체라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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