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로니카의 참견 Dec 18. 2021

그분이 오셨어요.

하필 오늘 코로나19 선별 진료소 민원 업무

 기온 -9도, 체감 온도 -12도 강풍 특보, 강화버스 터미널 이용자 전수 검사, 어린이집 전수 검사, 관내 성당 당일 미사 참석자 전수 검사, OO회사 확진자 접촉자 전수 검사....... 하필 이런 날 따뜻한 온풍기가 돌아가는 컨테이너 안에서 하는 검체 채취 업무가 아닌 야외에서 민원 업무라니. 그 와중에 어제 파견근무로 진료소를 비우고 연달아 또 코로나 선별 진료소 근무이니 이틀의 진료 공백이 생긴 진료소 관할 주민들이, 주말에 먹을 혈압약이 떨어졌다는 민원 전화도 착신된 대전화로 연신 울리는 중이다. 겪진 못했지만 1.4 후퇴 때 무찌르면 또 나타나고 무찌르면 또 나타났다는 중공군의 남하가 이랬을까? 손 소독과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게 하고 검사 사유를 묻고 역학조사서에 상세 인적사항을 기입하게 하여 역학 조사실 앞에 줄을 세우는 안내를 해도 해도 쉬지 않고 밀려오는 민원인들을 응대하며 추위에 얼어버린 귀가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할 시간도 없다. 결루가 생긴 페이스 실드 안쪽이 얼어 앞이 안 보인다. 나르 지켜야 하니 벗을 수도 없고 그걸 닦을 시간도 없어서 보이지 않는 가운데 눈을 크게 뜨자니 이마에 잡힌 주름 때문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그런데 그분이 오셨다.


 절대로 다 그렇지 않다. 어제 선별 진료소에서 겪은 그분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오자마자 말도 없이 볼펜 먼저 집어 든다. 역학조사서에 이름을 딱 쓰시는데 삼국지의 관우가 언월도를 든 채 말을 타고 달리듯 글씨체가 화려하고 호기롭다. 오랜 진료소 근무로 생긴 감이 오고 당장 정신이 바짝 긴장이 된다.

"선생님, 손 소독하시고 비닐장갑 먼저 껴주실까요?"

상냥하고 친절한 나의 말투가 부끄럽게 눈길도 주지 않고 불쾌한 표정으로 볼펜을 딱, 내려놓더니 손 소독은 패스하고 장갑을 낀다.

"좀 전에 손 닦고 왔어요"

내가 뭐라고는 하지 않았는데 나의 침묵에 대답하듯 퉁명스럽다.

"검사 사유가 어떻게 되실까요? 강화 버스 터미널 이용하셨나요?"

대답 없이 볼펜을 들고 다시 쓰기 시작하는데 '55년생'이시다. 내가 가장 대하기 어려운 세대이다. 공적인 장소에서 만나는 50년대 생들을, 대화하려 하지 않고 일단 화부터 내는 분들을 나는 대하기 어렵다.(울상)

"선생님, 검사받으시려는 사유가 어떻게 되실까요?"

다시 물으니 '그냥 받아 보고 싶어서'라고 대답하시며 주소를 적으시는데 게다가 주소가 관외 지역이시다.

"선생님, 혹시 주소지가 인천이 아니신가요?"

"요기 강화 다리 건너 바로 그 동네예요."

"주소가 원래 K시 이신가요?"

"아니에요. 집은 K시내 OO동이에요."

"그러면 자가격리는 집에서 하시는 거죠?"

"집에서 해야죠. 여기는 집은 아니고 조그만 농막인데..."

"아, 사실은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으시면 자가격리 통지서가 나갑니다. 자가격리를 인천과 강화 지역에서 하시는 분들에 한하여 검사가 가능하십니다. 양성 판정이 나오는 경우를 포함해서 각 관할 지역에서 관리를 받으시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있어야지 뭐, 요기 다리 건너 동네라니까요."

"가깝기는 하지만 주소지 관할의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으시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리 건너 바로 있는 그 동네라니까! 여기가 더 가까운데 일부러 더 먼 K시 보건소까지 가라고?"

"어쨌든 주소가 K시라서 관할이 다르니 주소지의 보건소 가셔서 검사를 받으셔야 관리가 가능합니다. 저희는 원칙대로 해야 해서요"

"다 같은 대한민국에서 뭘 그런 걸 따져? 다리 건너 바로인데 여기가 더 가까워서 여기로 온 거라니까"

"저희로서는 원칙에 의해 정한 지침대로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정 사정이 그러시면 길 건너에 있는 B병원 선별 진료소로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거기는 자가격리에 대한 법적 의무도 없고 검사비로 무료이고, 결과도 여기보다 조금 빨리 나옵니다."

나름대로는 친절하고 자상하게 안내를 해드렸지만 굳은 얼굴로 나를 쏘아보더니 갑자기 화를 버럭 내며 끼고 있던 비닐장갑을 벗어서 바닥에 내동댕이를 치신다.

"여기까지 왔는데 뭘 또 어디로 가라는 거야? 난 B병원이 어딘지도 모르는데! 원칙이 뭐가 원칙이야? 그걸 누가 정했어? 대한민국 국민이면 어디 가도 다 돼야 되는 거 아냐? 더러워서 안 받아! 내가 들어가서 소장 좀 만나야겠구먼! 니들 이 따위로 원칙이라면서 나 무시하는 거야?"


 '나 무시하는 거야?'라는 말이 나오니 나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인내의 한계치 언저리까지 감정의 수위가 어른거리고 있었지만 어르신들이 '나 무시하는 거냐'라는 말이 나오면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상책이다. 안에서 역학 조사 업무를 하던 직원이 어떻게 보았는지 달려 나왔다. 그리고 젊은 혈기가 있는 청년이라서일까 함께 언성을 높인다. 젊은 청년이 언성을 높이자 XYZ 같은 욕설을 남기고 휙 돌아서서 거친 발길로 주차장으로 향한다.

"더러워서 안 받아! 이 XYZ들! 내가 코로나 걸리고 말지 더러워서 검사 안 해! 에잇!"

그분의 차가 주차장을 급히 빠져나간다. 그냥 문득 궁금했다. 그분이 원래 어떤 분인지...... 그래서 천막 뒤로 돌아서 그분의 차가 나가는 방향을 지켜보았다. 그분의 차는 맞은편 B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분이 가셨다. 후배 직원도 나도 또 너덜너덜해진 감정을 추스르느라 난로 앞에 나란히 엉덩이를 대고 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매번 선별 진료소 근무마다 꼭 그분은 오신다. 억지를 부리고 특별 대우를 받으려고 하고 수 틀리면 화를 내고 거친 말로 우리들의 사기를 꺾는다...... 하필 오늘이어서, 그래서 더 지치고 고단했다. 강풍에 냉기에 사람에 시달리고 점심시간을 반납한 채 자리를 떠 30분 거리의 진료소에 가서 주말에 떨어지는 혈압약을 걱정하는 분과 하루라도 안 먹으면 큰일 난다고 믿는 당뇨 환자인 분을 위해 진료를 하고 다시 선별 진료소로 향하는데 담당 직원이 그새 전화를 한다.

"소장님, 어디실까요?"

순간 울컥 화가 치밀지만 심호흡을 하며 대답한다.

"자기 마음속!"

사람 좋은 척 크게 웃었다. 웃고 나니 화가 가라앉는다. 역시 스마일 매직이다.

"팀장에게는 보고했고 급하게 진료 봐드리고 다시 나가는 중입니다."

"아, 네.... 천천히 오세요."

 

 저녁 6시 정각에 정리를 하고 불을 끄는데 누군가 어둠 속에 서서 선별 진료소를 향해 사진을 찍는다.

"선생님, 검사받으러 오셨나요?"

"저, OOO입니다."

수년 전부터 자치단체장 후보를 꿈꾸시는 정치인이시다. 그는 몰랐으리라. 우리가 오늘 얼마나 수많은 이들을 위해 쉬지 않고 하지만 최대한 친절하게 응대를 하며 그들에게 정확한 검사를 받게 해 주기 위해 강풍 속에 서서 고군분투했는지. 우리가 지금 얼마나 서둘러 따뜻한 집으로 가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몸을 녹이고 싶은지..... 그는 절대 모를 것이다. 오늘 받았던 우리들의 모든 감정의 학대를 시원한맥주 한 잔으로 씻어내 버리고 싶은지....모르지 않고서야 마감하고 불 꺼진 야외 선별 진료소에 우리를 세워 놓고 서서, '검사 결과는 언제 나오느냐, 보건소가 B병원보다 결과가 늦다는 말이 있다, 왜 그런 것이냐, 자가격리는 언제까지 해야 하느냐....' 따위의, 보건소장이 내는 보도자료만 읽어보아도 알 수 있는 내용들을 질문하고 있지는 않으리라.....

그분이 오시기 전에 내가 빨리 퇴근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어제는 그분보다 내가 먼저 그 자리를 떠났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이런 이야기들을 추억하게 될 날을 맞을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시골사람이 개업한 시골 카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