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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Dec 23. 2021

나야 모르지, 우리 엄마가 그렇게 하더라고

동지에는 팥죽

  을 싫어한다. 뜨겁고 씹는 맛도 없이 후루룩 넘어가니 그것이 싫다. 그래서 '어도 싫다'는 말을, 에 대해 거부하며 자주 사용한다. 반대로 엄마는 을 좋아하셨다. 밥보다는 이셨고, 밥도 진 밥을 좋아하셔서 평생 아버지와 싸우셨다. 아버진 밥이 조금이라도 질면 망설임 없이 찬물을 부어 말아서 드셨다. 어떤 날은 벌컥 화를 내기도 하셨다. 급한 성격 탓에 뜨거운 음식이 식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조차 싫어하셨다. 그러니 엄마와 아버지는 '어뭘싸사' 즉 '어차피 뭘 해도 싸우는 사이'로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까지 '1도 안 맞는다.'라며 때로는 참고 자주 싸우며 평생을 사셨다. 서론이 길었지만 어쨌든 가족이 아프건 남편이 위내시경 검사를 했건 이런저런 을 끓이기는 하지만 먹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계셨던 요양원에 마지막 방문했을 때도 닭을 고아 녹두죽을 쑤어서 갖다 드렸는데, 겨우 한 숟갈 드시고는 고개를 저으셨다. 하루에 '요플*' 한 숟갈 정도밖에 못 드시게 될 정도로 노환이 깊어지셨다. 날이 무더워지고 있었고 더위에 약하신 분이라 닭을 고아 그 국물로 녹두죽을 쑤었는데 그것도 '넘어가지 않는다'라며 못 드셨다. 평생 을 싫어하셨던 분이 마지막 드신 것이 이었다. 


 어쨌든 나는 아파도 죽은 싫어서 차라리 밥을 한 숟갈 먹는 사람이지만 동지를 앞둔 지난 주말에는 맘먹고 팥을 꺼내 담갔다. 매 해마다 동지에는 새알심이 든 팥죽을 쑤어 드시는 엄마가 동지라는 말만 들어도 얼마나 팥죽이 드시고 싶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충청도 양반댁 아기씨 출신으로 우리가 어릴 적부터 뭐든 절기와 명절에 먹는 음식은 꼭 챙기셨다. 설엔 가래떡과 만두를 꼭 하셨고, 정월대보름엔 자고 있는 우리들을 이른 아침 강제로 깨워 부럼을 깨물게 하고, 오곡밥과 나물을 산더미처럼 준비하셨다. 한여름 복날엔 **탕을, 추석에는 이불만큼 많은 떡 반죽을 앞에 놓고 둘러앉아 송편 빚기에 고사리 손까지 모두 동원되곤 했다. 어릴 적 나는 엄마의 그 일 년은 싫었다. 푹 끓여 퍼진 떡국이나 입에 설고 질척한 오곡밥이 싫었고 마른 나뭇잎을 씹는 것 같은 나물 반찬이 싫었다. 콩이 와글와글 든 송편이 싫었고 동지라고 국 대접으로 한 그릇씩 떠주는 뜨거운 팥죽이 싫었다. 하지만 엄마는 줄기차게 모든 절기와 명절에 먹어야 한다는 그 음식들을 손 크게 만들어서 우릴 먹이고 이웃에 퍼돌렸다. 


 친정 엄마는 75세에 교통사고로 늑골이 골절되면서 폐가 손상된 엄마는 중환자실에 세 번이나 들어갔다 나왔다 하시면 죽음 근처까지 갔다가 극적으로 이겨내신 이후로 목숨은 건지셨지만 호흡곤란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으며 사시는 중이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날 같다'라고 여전히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계시지만 마음으로는 태산도 떠 매어 올 것 같은 엄마는 이제 마음을 따라주지 못하는 몸의 불편함은 엄마를 7년째 묶어 놓았다. 화도 나셨다가 울적하기도 하셨다가 그나마 다행이라고 감사하기도 하며 자신의 무능해짐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다. 입이 아픈 것은 아니니 이런저런 먹던 습관이 든 음식들을 찾으셨고 함께 사는 동생도 나도 그런 것들을 찾아 만들어 엄마 앞에 내놓아야 했다. 안 그러면 엄마는 슬그머니 전동휠체어를 타고 시장에 나가 마을 사람 모두를 먹일 만큼의 재료를 사다 놓으시고 감당을 못해 바라만 보면서 화를 내곤 하셨다. 먹고는 싶지만 내가 만들어야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라는 것이 죄다 엄마가 특히 좋아하는 음식들이니 달리 도리가 없었다. 거기에 덧붙여 그걸 달게 드시는 엄마를 바라보는 마음이 또 그렇게나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먹이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된 것도 엄마 덕분이다. 


 쭉정이를 골라내고 담가 놓았던 팥을 깨끗이 씻어 우르르 한 번 끓여 첫 물을 버리고 압력솥에 넣고 삶았다. 시간도 절약되고 물도 보충하지 않아도 되니 압력솥에 팥을 삶으라고 알려 주신 분께 감사하며 손으로 살짝 뭉개면 으깨질 정도로 잘 삶아진 팥을 블랜더에 넣고 곱게 갈았다. 엄마는 지켜 서서 푹 삶은 팥을 일일이 채에 으깨고 뭉개어 껍질을 걸러내는 힘들고 고단한 공정을 거치느라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던 그 과정을 나는 후다닥 쉽게 해냈다. 곱게 간 팥을 솥에 넣고 묽어서 주르르 흐를 정도로 농도를 맞추어 소금으로 간을 한 후 팔팔 끓으면 익반죽 해놓았던 찹쌀 새알을 넣고 떠올라서 푹 익도록 끓인 다음, 미리 담갔다가 불린 맵쌀에 팥물을 넣고 갈아 놓은 쌀 물로 농도를 맞추었다. 내 입에 간이 딱 맞으니 분명 엄마도 "간도 딱 맞고 새알도 크기가 딱 좋다'며 '내가 한 거랑 맛이 똑같다'라고 하실 것이고 아주 맛있게 드실 것이다. 


 "이걸 어떻게 이렇게 할 생각을 하셨어요?"

'동지에는 팥죽'이라며 팥죽 한 그릇을 떠서 맛보라고 가져다 주니 아래층 사는 동네 동생이 그런다. 

"나야 모르지, 우리 엄마가 그렇게 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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