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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Dec 16. 2021

시골사람이 개업한 시골 카페

손님들이 자꾸만 사장님네 아버지를 찾아요

 나의 담당 관할 지역 내에도 드디어 멋진 카페가 개업을 했다. 한 번 찾아가 인사라도 한다고 생각만 하다가 개업 한 달이 훅 지나서야 일부러 들렀다. 여행사를 하던 자매가 함께 이렇게 대단한 공사 끝에 멋진 카페를 차렸다는 사실에 놀랐다. 멋 부릴 줄 모르는 자매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묘하게 섞어 놓은 듯 큰 키와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만큼이나 호탕하고 쾌활하고 붙임성이 좋았다. 특히나 두 자매는 유기견을 입양할 정도로 애견인이고 카페는 반려동물을 동반해도 된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안녕하세요? 송산 마을 보건 진료소장입니다. 개업 축하드립니다."

"아! 네! 엄마가 전화하셨더라고요. 소장님 오신다고 커피 신경 써서 맛나게 잘 뽑으라고" 

혹시나 가는 날이 하필 쉬는 날이면 어쩌나 싶어 사장님의 어머니께 살짝 전화로 물었었는데, 역시나 자상하신 그 어머니는 요양보호사 선생님이시다. 처음 방문한 나를 친근하게 맞아주며 개업 선물도 준비 못한 내게 기념 타월을 면 보건지소 직원들 숫자대로 챙겨 주고 카페 내부를 안내해 주는 사장님과 금세 친해져 버렸다. 

"도대체 저 밖에 꽃들은 다 누가 심은 거예요?"

우리 둘이서 여름 내내 다 심었어요. 힘들어서 죽을 뻔했어요."

그렇게 말하는 자매 사장님들의 얼굴은 잔뜩 그을려 있었다. 커피를 내주는 손도 거칠대로 거칠어져 있었다.

"저렇게 아름답게 꾸미시느라 고생 많으셨겠어요."

"아직은 개업 초기라서 가을이라 꽃이 점점 시들어 없어지는데 우리만 보려니 너무 아까워요..." 

 깔끔하고 아늑하고 느긋한 시간으로 채워진 실내의 인테리어는 물론, 카페 정원의 빈틈없는 꽃과 나무들이 매력 있는 이 카페와 친절하고 싹싹한 자매에게 나는 금세 반했다. 주변에 딱히 특별한 관광지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장사가 잘 될는지는 조금 걱정스러웠지만 일단은 내 건물이고 인건비가 안 나가니 손해를 보진 않을 거라고 초긍정으로 쾌활하게 웃는 자매 사장님들이 매력 있었다. 


 한여름의 그날부터 지금까지 출장길에 오다가다 들러 여름 내내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보건지소 직원들과 함께 들르기도 하고 테이크 아웃해서 사 가지고 가기도 하며 참새 방앗간처럼 들르는, 마을길에 있는 이 카페가 나의 익숙한 쉼터가 되어가던 즈음,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였다. 내가 들르는 시간이 주로 낮 시간이기도 하지만 갈 때마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이들은 거의 다 마을 사람들 아니면 60대, 70대의 연령층이 주 고객인 날이 많았다. 아메리카노보다는 '맥* 화*트 골드 커피믹스'를 즐길 것 같은 분들이 둘러앉아 느긋하게 나누는 이야기들은 버지니아 울프의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이 아니라 여느 경로당에서 오가는 내용들이 주제였다. '누구네 누가 죽었다'던가 '배추가 죄다 죽어서 몇 번을 모종을 사다 심었어도 김장이 모자라게 적었다'던가 '올해 하우스에 일찌감치 고추 심은 사람은 대박이 났다더라, 내년에는 고추를 더 심어야겠다'하는 말씀에 '네가 많이 심으면 남들도 많이 심는다'며 박장대소하는 그런 이야기들.


 늦더위로 땀이 나던 늦가을 그날, 역시나 지나던 길에 아이스커피를 한 잔 주문해서 가지고 가려고 기다리는데 아버님 손님들이 서너 분 우르르 들어오신다. 커피를 뽑으며 사장님이 반색을 한다.

"오셨어요?" 

들어서시는 아버님 한분이 묻는다.

"아버지 뭐하셔?" 

"집에 계시겠죠"

"나오시라고 해"

자리에 앉으시는 아버님들은 사장님들의 아버지 친구들인 모양이다. 사장님이 전화를 하신다. 

"아부지, OO 아저씨 오셨어요."

그리고는 '나오신단다'라고 알린다. 그 모습이 마치 우리 집에 놀러 오신 아버지 친구들과 딸 모습 같아 친근하고 정답다. 손 소독과 명부 작성, 체온 측정과 거리두기, 마스크 정확하게 쓰기를 요구하는 카페 사장님들의 사무적인 태도는 어쩐지 커피 맛도 떨어뜨리는 요즘이다. 나도 옛날 사람이라 커피 리필에 추가 요금을 받는 그런 시내의 카페보다 리필도 기분에 따라 선뜻 공짜로 주고 금세 구워져 나온 고구마빵을 자랑하고 싶다며 하나 내주는, 그리고 서로의 근황을 알고 묻는 그런 동네 카페라 발길이 더 닿는다. 

"아버지 엄마 친구들이 많이 오시나 봐요?"

커피를 받으며 내가 묻자 사장님이 피식 웃는다. 

"평일 낮시간에는 주로 그래요. 근데 그나마 해 떨어지면 다들 밖엘 나오지 않으셔서 우리 둘이서 불 켜놓고 음악 듣는 날이 많아요. 밤에 불 켜놓으면 진짜 예쁜데 너무 아까워요....."

밝게 웃는 사장님의 그을린 얼굴이 다정하다. 

"사람들이 오시면 앉기도 전에 아부지 먼저 찾아요. 이러다가 여기가 어르신들 사랑방 되겠어요."

우리는 마주 보고 함께 소리 내어 웃었다. 아버지 친구들이 메뉴를 고르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우릴 쳐다본다. 

"얘, 은경아, 나는 대추차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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