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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Apr 22. 2022

 需于血 出自穴

 고통스럽지만 때를 기다리는 방법

 그리스도교인이 아니신 분들에겐 지루하게 여겨질 글입니다. 신앙과 삶의 이야기이니까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의 집안일을 정리하여라. 너는 회복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는 예언자 이사야의 말에 벽을 보고 슬피 통곡하였다.

''아, 주님. 제가 당신 앞에서 성실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걸어왔고, 당신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해 온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히즈키야는 그렇게 애원하며 통곡하였다고 한다. 나도 울었다. 회복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는 말을 듣는 것과 같은 절망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히즈키야가 부르짖었던 그 성실함, 그 온전한 마음, 어떤 좋은 일을 있었던가......

'나는 그냥 회복하지 못하고 죽겠구나.'

그래도 그날 나는 울면서 나 자신을 위해 주님께 눈물로 애원했다. 아마도 그날이 처음이 아니었을까, 나 자신을 위해 울며 애원해 보긴.....

 [六四 需于血 出自穴 육사 수우혈 출자혈
육사는 피투성이가 된 상태에서 대기하면 구멍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象曰 需于血 順以聽也 상왕 수우혈 순이청야
상에서 말했다. “피투성이가 된 상태에서 대기하는 것은 순리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역에서 내가 아는 유일한 대목이다. 몇 년 전 '맹자'를 공부할 때 선생님께서 주신 수많은 가르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이기도 하다. 그 구절을 매일매일 새기며 다녔다. 마치 주님의 때를 기다리듯 나는 그 구절을 새기며 납작 엎드려 기다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언제일지 모르는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오히려 전력으로 질주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장이 터질 것 같이 고통스럽고 끝이 보이지 않는 두려움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된 상태, 그러나 포기 상태는 아닌 그런 상태가 되었을 때 땅바닥만 바라보던 인간은 비로소 하느님을 향해 머리를 든다. 또한 그 어떠한 것, 아주 사소한 것에도 탓이 없게 되는 상태, 그러나 포기하는 것은 아닌 상태가 된다는 것은, 오로지 하느님의 결정과 도움을 기다리는 것이다.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자주 들려주는 이 말이, 실은 내가 나 자신을 위로하고 견디기를 다짐할 때 늘 떠올리는 말이다. 모든 신앙인들, 모든 위인들과 고난을 극복한 모든 이들은 이 말을 납득하고 인정할 것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이들은 아직 더 겪어야 한다고 모질게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아, 맘 내키면 느리지만 그 길 위에서 벗어나지 말고 아주 조금씩 앞으로 가자. 내가 옆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내 주변의 고통받는 이들에게 늘 내가 주는 편지글이다. 최근 내가 만난 키가 크고 아름다운 여인에게도 나는 편지를 썼다. 그녀가 내게 쓴 편지에 답장이었다. 사실 답장을 쓸 생각은 없었지만 저절로 마음이 쏠렸다.


 [알렐루야! 주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사랑하는 실비아 자매님, 부활 축하드립니다.

써내신 편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자매님의 진지한 마음이 담긴 글이 제 마음을 울리더군요. 꽁꽁 언 냇물의 얼음 밑으로 조용히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자매님의 시간은 흘러 왔나 봅니다.


 판관기에서, 하느님을 잊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저마다 제 눈에 옳게 보이는 대로" 하였다고 쓰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당연히 '제 눈에 옳게 보이는 대로' 살아갑니다. 자매님 역시 아주 어릴 적부터 보고 배우며 자란 대로, 옳다고 여기는 방향으로 허튼짓 하지 않고, 앞만 보며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오셨을 거라 짐작합니다. 그러나 문득 멈추어 돌아본 어떤 날, 희망이라 여긴 것은 나를 속였고, 행복이라 여긴 현실은 나를 고통스럽게 넘어뜨렸고, 내가 알던 지식은 내 마음을 채워주지 못하니 온통 마음이 공허합니다. 믿었던 이들은 나를 배신하고, 여태껏 공들여 쌓은 삶은 한낱 보잘것없는 허울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아주 잘 인내하고 최선을 다하며 잘 살아오셨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이번 사순 시기 동안 저는 새로운 마음으로 '모세오경'을 다시 묵상했습니다. 나이를 먹어 그렇겠지요? 예전과 다르게 거기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들 하나하나가 제 자신 같아서 매일을 울고 웃으며 40일을 보내고 마침내 기쁜 부활을 맞았습니다. 하느님의 구원으로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계명을 받은 시나이 산까지 약 두 달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애초에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까지는 38년이 넘게 걸렸답니다. 마치 우리들 자신의 모습 같지 뭡니까? 육신의 습관을 고치는 것은 두 달 정도면 가능하지만 정신, 마음, 영혼의 습관을 고치는 것은 죽을 때까지도 힘들다는 것이지요. 자매님이 성당에 발을 들인 지 딱 두 달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함께 닿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느끼시지요? 하지만 그 기나긴 40년 광야 생활 중에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했던 탈출 1세대는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들 중 단 한 사람도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몸은 이집트를 벗어나 해방되었지만 노예의 마음을 버리지 못한 그들입니다.


 하느님께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녀가 되신 실비아 자매님,

살아온 날 만큼 살아갈 날을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신다면 지금부터 자매님의 나날들은 매일 기쁘고, 매일 감사하고, 매일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길 기도하겠습니다. 그런데 설마 그런 삶을 살려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40년을 더 기다려야 가능할까요? 생각만 해도 멀미가 나지요? 걱정 마십시오. 지금 당장 가능합니다. "찐 자유와 찐 행복"을 누리는 것은 다름 아닌 '내가 다시 태어나면' 가능합니다. 이미 태어났는데 어떻게? 엄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나? 불교에서처럼 다음 생? 아닙니다. 니코데모가 밤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온 것도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이지요? 예수님께서는 그러십니다.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면 가능"이라고 말입니다. 바로 '성령'으로 우리는 그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지만, 비록 나도 어제까지 세속의 종살이를 하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보내 주신 성령이 이끄는 대로 따른다면 그 은총의 나라를 살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보이지 않지만 어머니와 같은 돌봄과 위로, 아버지와 같은 보호와 용기로 우리를 감싸시고 우리에게 모든 은총을 누리며 살아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합니다. 매일매일 기쁘고 싶으신가요? 매일매일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예수님처럼 하십시오. 복음을 읽고 또 읽어 예수님이 복음에서 하신 대로 하시면 됩니다.

'누군가를 변화 사키고 싶다면, 당신의 머리를 그의 발아래 놓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구원이 시작된 자매님의 가정에 언제나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매일 자매님을 위하여 하는 기도를 전합니다.

'주 하느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판관기 16,28)


                                            2022년 부활 팔 일축제 목요일 실비아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베로니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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