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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Feb 10. 2022

마른 새우 한 줌

사랑해야 할 때 사랑하지 않은 죄를 물을 수 있다.

 "마귀들과 싸울지라 죄악 벗은 형제여~ 담대하게 싸울지라 저기 악한 적병과~ 심판 날과 멸망의 날에 네가 섰는 눈앞에 곧 다가오리라~ 영광 영광 할렐루야~~ 소장님, 소장님은 예수 믿으시나요?"


 참 어렵다.

지난여름에 이어 다시 육아휴직으로 공석인 또 다른 진료소 파견 근무 첫날, 누군가가 민원인 대기실에서 찬송가를 쉬지 않고 우렁차게 부르고 있었다. 관할 3개 마을에서 오늘만 기다리다가 오신 분들이 모처럼 만나 반가움으로 삼삼오오 이야기꽃을 피우는 어르신들의 왁자한 저마다의 수다, 귀가 잘 안 들리시는지 TV를 크게 틀고 '세계 테마여행'을 보고 계시는 어르신은 '소장님, 프랑스 파리 가보셨어요? 마담이 무슨 뜻인지 알아요?'라고 하시고 , 쉬지 않고 돌아가는 약 포장기 요란한 소음이 북새통을 이루는 가운데 찬송가 부르는 소리까지 더해지니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다. 호그와트 마법 학교 교장 알버스 덤블도어의 지팡이를 빌려 내 목에 대고 "silence!!!"라고 소리치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자니 미간에 '내 천'자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하며 최대한 친절하게 어린이집 원장님처럼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반응하고 하나씩 해결하는 가운데 모든 어르신들이 돌아가고 나서 마지막 남은 사람은 가장 먼저 와서 모두에게 순서를 양보한 '찬송가 집사님'이다. 진료실 민원용 의자에 앉아서도 찬송가는 그치지 않았다. 손에 들고 들어온 검정 비닐봉지에서는 비린내가 폴폴 나고 한눈에도 정신이 온전하진 않아 보이니 급 피로가 몰려왔다. '예수 믿으시냐'는 물음으로 노래를 마무리하시는 분에게 그제야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새로 오신 소장님이신가요?"

"아닙니다. 육아 휴직 들어간 전임 소장님 대신 화요일, 목요일만 오는 임시 파견입니다. 새 소장님은 신규 교육이 끝나야 오실 겁니다."

"아... 그러시구나....."

검정 비닐봉지를 한 손에 들고 들어오셔서 민원용 의자에 앉으신 집사님은 첫 대면인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블라우스 두 번째 단추를 지적하신다.

"단추가 열렸어요...."

"오마나!"

가운 안에 입은 단추가 열린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진료를 하는 중이었던 모양이다. 오목눈으로 예리하게 나를 응시하는 시선이 공연히 불쾌하다. 단추 지적으로 짜증이 점점 올라온다.

"여자들은 항상 옷차림이 단정해야지...."

그렇게 말씀하시는 집사님의 옷차림은 몹시 낡고 허술하고 지저분하다. 머리도 까치집을 지었다. 분명 누워서 뭉개다가 입은 채로 오신 분이다.

"성함이 어떻게 되실까요?"

"제 이름이 'OO 남'인데 옛날에는 남동생 보라고 '남'자를 넣어서 이름을 지었어요. 그래서 제 이름이 OO남이 되었어요. 그게 효과가 있다니까... 내가 밑으로 남동생을 보았어요. 옛날 사람들이 참 지혜로웠어...."

 진료 기록부를 보니 특이 사항란에 '조현병'이라 적혀있다. 내 경험상 조현병이 있으신 분들과는 말을 많이 섞으면 분쟁이 나거나 자리가 길어진다. 집사님이 다른 말을 더 하기 전에 재빨리 물었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응~ 나는 맨날 목이 칼칼하고 가래가 심하게 끼어서 목소리가 잘 나오질 않아요. 천송 부를 때 이렇게 목소리가 허스키하고 탁탁 막혀"

그렇게 말씀하시면서도 집사님은 쉬지 않고 나를 관찰하는 중이다.

"(찬송가를 그렇게 쉬지 않고 부르니 목이 쉴 수밖에요...) 약 드려 볼게요..."

진료 기록을 하며 눈길도 주지 않고 말하는 나를 계속 응시하는 시선이 신경 쓰이고 불편했다. '피곤하다....'

파견 온 진료소지만 작은 십자고상과 성가정 상을 지니고 왔다. 언제나 바라 보이는 자리에 놓아두며 감사하려고.   

집사님은 내가 진료 기록을 하는 동안 다시 찬송가를 흥얼거린다. 그의 눈길이 책상 위 십자고상과 성가정상으로 집중된다.

"소장님은 천주교회 다니나 보다.... 책상에 이게 있네.... 대룡리에도 천주교회가 있는데... 가보셨어요?"

"네...."

짧게 대답하면서 스스로 '아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지만 더는 입을 벌리기가 싫다. 피곤하다. 약제실에서 약을 조제하는 동안도 찬송가는 멈추지 않았다.


 문을 열자마자 몰려온 민원인들을 응대하느라고 이미 피곤하지만 최대한 평온하고 예의 바르게 약 복용법을 설명하고 '물을 많이 마시고 큰 소리를 지르지 마시고 체온 조절을 잘하라'는 등의 건강 교육을 하는 동안 얌전하게 앉아 고개를 끄덕이던 집사님이 나를 계속 뚫어지게 응시하더니 한 마디 하신다.

"소장님, 이마가 빛나요."

"네?"

"이마가 반짝거려요."

"제 이마 가요? 화장품 때문에 번들거리나요?"

놀란 내가 부리나케 책상 서랍에 넣어 둔 손거울을 꺼냈다. 출근하여 문을 열자마자 2시간 넘게 쉬지 않고 한꺼번에 밀려드는 민원인과 '오늘 진료하는가'를 묻는 전화를 응대하느라 거울을 보기는커녕 화장실 갈 시간도 없는 상황인데 이마가 빛이 난다니 분명 아침에 바른 에센스 커버가 뭉개지고 번들거리는 모양이라 생각에 당황하였다. 거울 속에 그냥 그런 아줌마 미간에 내 천자를 깊게 잡은 채 노려보고 있다. 뭔가 화 나 보인다. 하지만 이마가 그다지 번들거리진 않아 한숨을 쉬며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이마에 손바닥을 대는 내게 집사님이 그러신다.

"소장님은 좋은 사람인가 봐요. 목소리도 듣기 좋게 다정하고 마음씨도 따뜻한 사람 같아요. 난 소장님이 마음에 드네요. 이마를 보면 딱 알 수 있거든. 좋은 사람들은 이마에 빛이 나요. 내 눈에는 보이지. 혹시 새우 좋아하세요?"

"네? 새우요?"

"내가 대룡시장에 가서 마른 새우를 샀는데 이게 심심할 때 하나씩 집어 먹으면 맛있어요."

집사님은 두리번거리더니 티슈 한 장을 책상에 펼치고 그 위에 검정 봉지 안에 든 마른 새우 한 줌을 집어 티슈 위에 놓는다. 비린내가 확, 풍긴다. 비린 것을 싫어하니 순간 속이 슬쩍 뒤집힌다.

"아이고.... 저는 괜찮아요! 그냥 마음만 받을 게요."

"아니에요. 내가 주고 싶어서 그래요."

기어이 마른 새우 한 줌을 책상 위에 앉아 놓고 집사님은 해맑은 얼굴로 웃어 보이고는 진료소를 나갔다. 새우 비린내 때문에 숨을 참으며 그걸 비닐팩에 넣었다. 진땀이 날 지경이다. 출근하자마자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청소도 하고 정리도 하면서 느긋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패턴이 깨지면 속 좁은 밴댕이가 되어 버리는 나를 돌아보며 자책한다.


 '이마가 빛이 난다......'

온종일 그 말을 곱씹었다. '좋은 사람은 이마가 빛이 난다'라고 하신다. 나는 좋은 사람인가. 한꺼번에 밀려든 환자를 보느라 신경이 곤두서서 마음속으로 일어나는 짜증의 흙탕물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아예 거기에 '화'의 불을 때서 부글부글 꿇는 와중에 찬송가를 부르는 조현병 환자를 얼른 보내고 싶은 마음뿐인 상태로 그분을 대했다. 친절한 척 친절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나를 보고 '좋은 사람'이라고 따뜻한 말을 남긴 분을 나는 사실 사랑하지 않고 있었다. 사랑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내가 무시한 조현병 환자가 나보다 한 수 위다. 나는 또 넘어졌다.


 나는 오늘 사랑해야 할 대상을 그저 처리해야 할 민원으로 생각한 나의 부족함이 나를 걸려 넘어지게 만들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아침 기도를 하며 '전능하신 하느님, 오늘도 저희 생각과 말과 행위를 주님의 평화로 이끌어주소서.'라고 하면서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처럼 행동한다.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세상의 법규를 지키는 일,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일,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하는 일은 악인들도 하는 일이다. 남을 미워하지 않는 정도로는 그들과 다를 바가 없다. 분명한 것은 내가 살면서 입으로 고백한 모든 것들은 나를 재는 저울이 된다는 것이다. 훗날 그 어떤 날, 하느님 앞에 섰을 때 그분이 내게 '사랑해야 할 때 사랑하지 않은 죄'를 묻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사랑해야 할 때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며 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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