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께서 내게 두툼한 서류를 주시면서 '함경도에 대해 알아보라'라고 하셨다. 나는 놀라고 걱정하면서 함경도는 북한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이러다가 혹시나 북한으로 발령을 받는 것인지도 걱정스러웠다. 꿈에.]
잠에서 깨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복권을 사야 하나, 라는 것이었지만 딱히 복권도 사지 않고 하루가 지나갔다. 그리고 일주일 간격으로 인천시장이 주는 공로상과 표창장, 두 개를 연거푸 받았다. 물론 인천시 로고가 새겨진 손목시계도 부상으로 받았다. 대통령을 만나는 꿈을 꾸었으면 당연히 로또 복권을 사야지 가문의 영광뿐인 상을 받았느냐고 친구와 남편은 아쉬워했다. 로또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이 꾼 꿈은 대부분 대통령을 만났다거나 대통령에게 상장이나 명함 등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가 로또에 당첨되지 못하는 이유는, 일단 복권을 사지 않기 때문이다. 상을 두 개나 받고 축하 파티는 며칠에 걸쳐 매일 했다. 30년 직장 생활을 허투루 하지 않았다는 인정이라도 받은 느낌이어서 명예뿐인 상이어도 상을 받으니 가만히 있기 어렵게 기뻤다. 꿈 덕분이라는 기분 좋은 착각도 하면서.
어릴 때부터 나는 꿈을 잘 꾸었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아이들이 흔히 키 크려고 꾸는 꿈부터, 운전도 할 줄 모르고 면허도 없으면서 버스를 몰고 좁은 길을 가는 위태롭고 무서운 꿈을 꾸고 일어나 운 적도 있었다. 철이 들고 나서도 꾸는 꿈이라는 것이 시험 보는 꿈이거나(꿈속에서 나는 언제나 시험 범위까지 한 번도 다 읽어 보지 못하곤 했다.) 길을 몰라 헤매는 꿈이 허다했다. 대학 시절 정신간호학을 배우면서 비로소 내가 어릴 적부터 몹시도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가진 항상 고뇌하는 어린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 스스로를 측은히 여겼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현대 과학에서는 꿈은 그저 의미 없는 뇌의 활동일 뿐이라고 단정 짓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싱겁게 단정하기엔, 어떤 꿈은 참으로 기묘하기도 하다. 오죽하면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도 있지만 한때 내가 꾼 꿈의 의미를 알고 싶어서 매달리기도 했다.
섭섭하게도 현대 과학이 꿈을 그저 정신 활동일 뿐이라고 말할지라도, 나는 그리스도교인으로서 성경에도 많이 언급되는 꿈을 통해 신이 인간에게 말하려는 것이 무엇일까 궁금해하며 꿈을 꾸고 나면 해몽에 대해 이런저런 사이트를 검색하곤 했었다. 하지만 꿈 해몽이라는 것은 마치 한여름 벌판에 가득한 망초꽃처럼 하도 분분하여 속 시원한 걸 찾긴 늘 어려웠다. 그래서 꿈을 꾸고 나면 그 꿈이 무슨 뜻일까 종일 생각에 매달리며 성찰 일기를 쓰는 나에게, 내가 꾸는 꿈은 유의미했다. 궁금하고 답답했지만 그저 기록하는 정도로 나는 그렇게 꿈을 대하고 있었다. 그 당시 새로 부임하신 주임 신부님과 미사를 준비하고 미사를 거행할 때 신자들을 돕는 전례 봉사자였던 나는 잘 맞지 않았다. 매사에 부딪치고 불만은 쌓여 갔지만 순명도 신앙에서는 미덕이기에 딱히 어쩌지 못하면서도 마음속으로만 불만을 키우고 심지어 사제를 위한 기도를 매일 하면서도 동시에 남편에게 신부님을 험담까지 하는 일까지 저지르게 되었을 때 바로 그 꿈을 꾸었다.
[나는 성당의 미사를 준비하는 제의실에서 신부님을 만났다. 다짜고짜 미사 준비를 하라고 부탁하시는데 미사에 필요한 물품들이 단 한 개도 없었다. 당황하고 막막한 나는 신부님께 '이렇게 갑자기 미사 준비를 하라고 하면 어쩌냐, 아무것도 없다'라고 투덜댔다. 그때 신부님께서 '이거나 받아요' 하시면서 내 손에 아주 오래된 듯한 낡은 태슬이 달린 옛날 열쇠 주셨다. 나는 화도 못 내고 부글부글 속을 끓이며 그 열쇠로 탁자만큼 커다란 서랍을 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수많은 칸으로 나뉜 그 서랍 안은 온갖 보물이 가득했다. 굉장히 오래된 고색창연한 보물들이 칸마다 가득 채워진 서랍을 들여다보면서도 여전히 나는 투덜대며 잠에서 깨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저 꿈을 꾸고 잠에서 깨어 일어나 앉았을 때, 단숨에 꿈이 이해가 되었다는 것이다.
잠에서 깨어 기억나는 꿈은 주로 REM(rapid eye movement) 수면 상태에서 꾼 꿈이라고 한다.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에 가까운 상태에서 꿈을 꿀 때는 깨어 있는 시간의 뇌와 비슷하게 활성화되어 있다고 한다. '꿈인가 생신가, 비몽사몽'이라는 말이 참으로 적절한 말이기도 하다. 만져질 듯 생생한 꿈을 꾸고 나서 새벽에 앉아 '수천 년을 이어져 내려오는 가톨릭 교회를 통해 신이 인간에게 주는 보화와도 같은 은총의 선물은 결국 사제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이고 그 이외의 것은 아무것도 더 소중한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이 기쁨과 감격으로 끓어오르고 그날부터 나는 주임 신부님이 하는 모든 말과 행동에 대해 그 어떤 불만도 갖지 않게 되었다. 참 신기했다. 정신분석 심리학자인 '구스타프 융'은 말했다. "꿈은 내 영혼을 인도해 주는 길잡이의 언어이다"라고. 또한 "꿈은 속이거나 거짓말하지 않는다. 꿈은 왜곡하지 않는다. 꿈은 자아가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목 하는 것을 알려 준다"라고도 했다. 그의 말이 전적으로 맞는지 부분적으로 맞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 판단이야 전문가들이 어련히 잘 알아서 할까. 하지만 오랫동안 꿈의 의미를 알고 싶고 궁금해하던 내게 꿈을 이해하는 방편이 되어 준 그 학자를 존경한다. 의식하지 못하던 나의 내면, 무의식, 영혼을 이해하는 아주 작은 생각의 시작은 꿈을 통해 가능했고 그것은 내가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나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나는 지속적으로 나 자신에게 의미 있는 꿈들을 꾸었다. 꿈 이야기를 들려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흥미로워하며 저마다의 생각대로 자신이 이해한 바를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꿈은 크고 작은 영향력을 우리에게 주고 그 꿈을 통해 편견 없는 이해가 가능하며 꿈에 담긴 의미를 다각도로 풀어 보면서 각자의 생각이 발전하고 창조되기도 한다.
간 밤에 꾼 꿈은 인간관계에서도 서로에게 대화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상대방의 심리나 영혼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고 이해하게 되는 좋은 발견이다. 어릴 때는 간밤에 꾼 꿈을 아침 밥상에 앉아 어른들께 이야기하면 '애들 꿈은 다 개꿈'이라고 묵살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런 아주 사소하고 가벼운 꿈이라도 그 꿈을 존중해 주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뇌의 활동을 통한 창의성이 배가되지 않을까. 꿈을 통해 알 수 없는 타인의 영혼을 들여다볼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의식의 세계를 여행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건강한 심리 상태와 평화로운 마음을 지니어 단잠도 자고 즐거운 상상으로 이어지는 좋은 꿈을 많이 꾸고 싶다. 꿈은 영혼을 들여다보는 통로라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