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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푸 Sep 30. 2015

작별전야

Auckland


  내일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가야하는 곰군을 위해 오늘 일정은 오클랜드박물관으로 정해 뒀었다. 박물관 3층엔 세계대전관련 전시가 있다고 해, 밀덕부자는 어제부터 신이났다. 밤출발보다는 새벽출발이 낫다는 조언에 우리는 아저씨네 앞마당에 잠시 노숙하고 6시에 일어나 출발하기로 했다. 인사는 미리 해두었다. 예행을 아주 많이 한 탓인지 작별이 퍽 발랄하다. 
 
  도착하니 9시. 뉴질랜드 최대의 도시답게 입이 떡 벌어지게 높은 빌딩이 많아 정신없는데, 캠퍼밴 운전까지 하려니 어지럽다. 토요일 이른 아침, 도시는 아직 깨어나지 않아, 먼지가 가라앉은 것 같이 긴장된 고요함이 있다.
일찍 문을 연 핫도그 가게서 아침을 간단히 먹고 안부자는 박물관으로 향했고 우리 모녀는 2003년 여행책자에 '요즘 뜨는 쇼핑거리'로 소개되어 있던 파넬로드를 걸었다. 오래된 벽돌건물이 많아 유럽 어느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았다.

  어지간한건 우리나라보다 비싸다. 이게 도서산간의 대도시 물가라는 건가...준현은 여기와서 좀 컸나보다. 가져간 크록스가 작아져 발에 물집이 생겼다. 안아라 업어라 걷겠다...참 말 많으신 분 모시고 파넬인지 판넬인지 더는 못 가겠어서 마침 맞닥뜨린 도서관도 들러봤다가, 결국 절반도 못 가 돌아오는데 마침 안부자도 박물관 앞 잔디밭에 누워있다. 생각보다 규모가 작다나. 

오클랜드 파넬로드에서


초콜릿 가게에서 만난 마운틴 쿡 먹어버리기

  

오클랜드 도메인의 오클랜드 박물관
오클랜드 박물관에 전시된 슬픈 역사 앞에서

 
  우리는 갑자기 한식이 먹고 싶다. 애들이 아팠고 또 길 위에서 끼니를 해결하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이 밥답게 밥을 먹은 게 까마득하다. 든든히 좀 먹이자고 찾아간 한국식당에서 정작 준현은 잠들고 안부자는 제육볶음과 된장찌개에 공기밥 두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오클랜드공항에서 제일 가까운 홀팍에 정박해두고 자기 간 후에 가족이 불편할까봐 이것저것 세심히 챙기느라 바쁜 곰군을 보고 있으니 맘이 좀 짜르르하다. 뭐니뭐니해도 남편이 우리 가족의 큰 문이요 방패임을 여기와서 다시 한 번 느낀다. 
 
  이제 내일부터는 진짜 셋만 남는구나.  곰군도, 아저씨언니도, 선배도 없이...
  한편으로는 일상이 된 관계의 사슬을 잠시 끊어두고 낯선 곳이 주는 모래알같은 느낌과 그곳에서 딛는 한 발 한 발의 뜨거움에 집중하고 싶기도 하다. 서글픔, 긴장, 전투력이 함께 끓어오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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