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시인은 허공을 응시하며 얘기하는 버릇이 있었다.
강의 도중 그는 멈춤 버튼을 누른 듯 고요히 먼 곳을 바라보았다. 듣는 우리들도 덩달아 숨을 죽이고 그의 기색을 살폈다. 시인은 강의실의 뒷벽과 천장이 만나 이루는 모서리 어디쯤을 바라보다가 다시 말을 잇곤 했다. 그는 말보다, 침묵으로 웅변했다.
나는 그 정지된 시간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경로를 타고 시인에게 그 위대한 시들이 깃드는 것이라 추측했다.
그날 시인이 들려준 시는 백석의 것이었다.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아는 시라고 생각했으나, 착각이었다. 우린 같은 글자를 읽었지만, 시인은 내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았다.
'시창작론' 시간이었는데, 강의를 듣는다고 타고나지 못한 영감이 샘솟을 리 만무했으므로 강의의 목적을 이루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을 통과하는 순간, 익히 알고 있던 시들이 전혀 다르게 창작되었으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성공이었다. 시인은 시가 어떻게 사람에게 스며드는지를 몸소 보여주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라 했던 그의 말처럼, 시는 한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를 품고 ‘방문객’처럼 왔다.
남신의주, 압록강과 가까운 국경 근처, 버드나무가 많은 동네, 박시봉이라는 소박한 이름을 지닌 목수의 집 방 한 간. 강의실 한 구석이 순식간에 춥고 누굿한 공간으로 변했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지디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門窓)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天障)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백석,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1948년에 백석이 칩거하던 그 공간이 내 속의 그곳과 너무 닮아 깜짝 놀랐다. 습내 나고, 춥고, 누추한 그 방은 더할 나위 없이 내 것이었다. 창 밖에 칼바람이 불고, 천장은 까마득하게 높은 그곳. 뜻 모를 글자를 끄적이며, 슬픔과 어리석음을 되씹다가 그것에 눌려 죽을 것 같았던 날들. 친절한 자습서에 따르면 이 시의 주제는 ‘무기력한 삶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였지만, 내게 그 시는 그저 나를 닮은 공간으로 왔다. 숨어 있기 좋은 방.
시를 읽으며 자주 가는 술집을 떠올렸다. 가게 이름은 ‘낡은 구두’.
지하에 자리 잡은 그곳은 정말 낡은 장화처럼 깊고 칙칙했다. 공기는 질소와 산소와 곰팡이 냄새로 이루어졌고, 너무 깜깜해서 가게에 들어가면 눈이 어둠에 순응할 때까지 더듬거리며 자리를 잡아야 했다. 일행과 테이블 정도만 겨우 알아볼 수 있도록 천장에는 콩알만 한 백열등 몇 개만 달렸을 뿐이었다. 어둠과 소리와 냄새로 조리한 유동식처럼 밀도 높은 어떤 물질이 공간을 뻑뻑하게 채우고 있었다. 웬만한 힘으로는 벗어나기 어려웠기에, 방심한 채 그곳에 들렀다가는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주인아저씨의 하얀 턱수염은 어둠 속에서 단연 빛났다. 그는 여간해선 말하는 법이 없었고, 메뉴랄 것도 없는 간단한 안주와 터무니없이 싼 캔맥주를 팔았다.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거꾸로 집어 들고 탈탈 흔드는 것처럼 그곳의 문을 열고 지하 계단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속에 있는 것들이 마구 쏟아졌다.
20대의 탄식 중 절반 이상에 그곳에 방목되었고, 자구책으로 움켜쥔 변덕과 치졸과 위악도 그곳에서 잉태되었다. 모든 연애와 결별 역시 그곳에 근거지를 두었다. 너무 많은 말들이 나를 떠났지만, 내 잘못은 아니었다. 말할 때마다 입에서 개구리와 벌레가 튀어나오는 페로 동화의 계모처럼, 난 내가 쏟아놓은 말들에 제일 크게 놀라서 자빠지곤 했다. 계모를 그렇게 만든 것이 어떤 저주라면, 배설물처럼 게워내던 내 말들 역시 공간에 깃든 마력에 기인했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 텅 빈 방문을 닫은 채로
아직도 남아 있는 너의 향기 내 텅 빈 방 안에 가득한데
이렇게 홀로 누워 천정을 보니 눈앞에 글썽이는 너의 모습
잊으려 돌아 누운 내 눈가에 말없이 흐르는 이슬방울들
지나간 시간은 추억 속에 묻히면 그만인 것을
나는 왜 이렇게 긴긴 밤을또 잊지 못해 새울까
창 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어제 보다 커진 내 방 안에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 저마다 아름답지만
내 맘속에 빛나는 별 하나 오직 너만 있을 뿐이야
창 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어제 보다 커진 내 방 안에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 김광석,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시와 닮은 낡은 방 하나가 노래로도 왔다.
김광석이 직접 쓴 노랫말 속 공간은 영락없는 박시봉의 문간방이다. 유리창에 그리운 이름을 썼다 지우는 그는 화롯불 재 속에 뜻 없는 글자를 끄적이는 백석을 닮았다. 창 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올 때까지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그리던 연인은 어쩌면 눈 오는 밤 쓸쓸히 소주를 마시며 떠올리던 백석의 나타샤일지도 모르겠다. 가수는 문창을 두드리는 싸락눈처럼 투명한 목소리로 아무렇지도 않게 저 쓸쓸함을 노래한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회한과 그리움을 술 없이 견디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쿵짝이 잘 맞는 콤비처럼, 동경과 좌절은 번갈아가며 20대의 나를 찾았다. 그 성가신 방문객이 올 때마다 대접할 것이 변변치 않은 탓에, 나는 또 하릴없이 '낡은 구두'의 낡은 계단을 내려가곤 했던 것이다.
언젠가 한참이나 술집 문이 잠겨 있던 적이 있었다. 가게 문 앞에 종이 하나가 붙었다.
喪中
다시 찾은 그곳에서는 가끔 가게에서 마주치던 파리한 낯의 중년 여인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흰 수염이 빛나던 아저씨의 미망인이었다.
* 표지 사진,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