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의 <사랑의 썰물>

임지훈과 김광석

by 명랑도리




박은 우기는 데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대다수가 온종일 데친 시금치처럼 널브러져 있던 고3 교실에서 박의 목소리는 단연 튀었다. 박은 목소리도 크고 입도 컸기에, 우기기에 적합한 하드웨어를 타고났다. 박의 목소리는 한여름의 플라타너스 잎처럼 왕성한 생명력을 머금고 펄럭였다.


목소리뿐 아니라 웃는 소리도 컸고, 리엑션도 화려했다. 별 것도 아닌 사건들이, 박의 편집을 거치면 한 편의 드라마나 코미디로 둔갑했다. 박의 손과 머리통은 자신의 음성 신호와 긴밀하게 조응했다. 입으로 말을 뱉는 동안 양손은 물레방아처럼 힘차게 돌아갔고, 머리통은 앞뒤로 크게 출렁거렸다.

차임벨과 동시에 바람이 빠져버리는 풍선처럼,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상반신을 책상에 밀착한 채 급 숙면에 떨어졌다. 옆의 친구가 발을 밟고 지나가도 모른 채 씩씩거리며 잠자던 아이들이, 박의 떠들썩한 말소리에 놀라 벌떡벌떡 일어나곤 했다.


박은 인싸 중의 핵인싸였다. 재미있고 화통했으며 씀씀이도 컸다. 결정적으로 공부도 잘했다. 어울려 다니는 단짝도 있었지만, 아무 하고나 덥석덥석 잘 놀았다. 뭐든 시원시원했다. 친절하지도 상냥하지도 않았지만 누구에게도 부당하게 구는 법은 없었다.


주장하거나 칭찬하거나 비난하거나 감탄하거나 박의 말투는 한결같았다. 뒤따르는 내용과 상관없이 박은 일단 야!라고 소리 지르고 문장을 시작했다. 야!는 이제부터 말을 시작한다는 신호탄 같은 것이었다. 문법상으로는 감탄사 내지는 간투사였겠지만, 기능적으로는 출정의 북소리나 경마장의 총소리 같은 것이었다. 야!로 시작한 문장은 주로 ‘~잖아.’로 라임을 맞추며 끝났다.


칭찬 - 야! 이거 뭐야, 멋있잖아.

비아냥 - 야! 이거 뭐야, 아주 멋지↗구나.↘

감탄 - 야~ 이거 뭐야, 멋있잖아?

우기기는 더 쉽다. 그냥 아무렇게나 말해도 다 우기는 것 같다.

야! 이게 뭐야! 멋있잖아. (안 멋지다고 한 놈 누구야?)


뭐 이런 식.


사정이 이러니 박의 발화법은 종종 불필요한 논쟁을 불렀다. 다른 애들하고는 얘기할 때는 그저 ‘그런가?’ 하고 넘어갈 말들이, 박과 얘기하다 보면 갑자기 토론으로 번졌다. 토론의 정의가 합리성과 개연성을 지닌 주장을 펼치기 위해 쌍방이 서로 논리적 근거를 대며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박과의 다툼은 엄밀히 말해 토론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쌈박질에 가까웠다. 멍 때리고 아무 말이나 떠들던 아이들이, 박의 야! 소리에 놀라, 본능적 전투욕에 발동을 거는 그런 식이다.


지금이라면 휴대폰을 꺼내어 잠깐 검색해보면 끝날 만한 사소한 정보가 그때는 누군가의 기억에 의존해 진위를 가려야 했다.

88 올림픽에서 첫 번째 금메달을 딴 사람이 누구인가,

'영웅본색1'과 '영웅본색2' 중에 어느 것이 더 관객이 많았나,

헤리슨 포드와 주윤발 중에서 누가 더 어린가, 이런 것들이다.

‘긴가민가’와 ‘아리까리’가 만연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장땡’이라는 명제가 위력을 발휘했다. 그런 면에서 박은 늘 장땡을 손에 쥔 타짜였다. 장땡뿐이랴, 누구와 붙든 박은 삼팔광땡이었다. 정확한 정보를 확인할 루트가 마땅하지 않은 많은 대립은 주로 박이 손을 들어주는 쪽으로 승기가 쏠렸다.


박의 말투에 욱해서 싸움을 시작했던 아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 백기투항하고 말았다. 단전으로부터 끌어올린 야! 소리를 듣는 순간, 이미 전의가 절반쯤 뿌직 꺾였다. 박이 본격적으로 사자후를 뿜어대면, 그 목소리는 스스로 부피와 질량을 지닌 딱딱한 바위 같아서 그것에 대항하느니 사소한 진실이나 신념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마음이 되어 버렸다. 아마 심수봉이 아이유보다 동생이라고 해도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박의 말들은 아메리카 대륙을 질주하는 버펄로처럼 우악스럽고 튼튼했다. 그것들이 쓸고 지나간 자리는 딱딱한 발굽에 파여 없던 길이 났고, 패배자들은 흙먼지와 눈물을 동시에 삼키며 그 길을 뒤따라야 했다.


지금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중 하나는 박이 역사 선생님을 짝사랑했던 사건이었다.

역사 선생님을 좋아했던 여학생은 전교에서 박이 유일했다. 아무리 우주만큼 광대한 개방성을 지닌 것이 개인의 취향이라지만, 역사 선생님의 외모와 성격은 이성에 대한 여고생의 선호도를 그린 표준분포곡선에서 수직선과 만나기 직전의 마지막 한 점을 차지할 만한 평점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인지 (그 미스터리는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박은 역사 선생님이 귀엽고, (자세히 보면) 심지어 잘생겼으며, 재치 넘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어느 때보다도 힘세게 아이들에게 전도했다.


학기가 끝날 무렵, 우리들 중 일부는 절개를 판 매국노처럼 박의 주장에 부화뇌동하기 시작했고, 또 다른 일부는 천 개의 반박할 말을 품고도 그것을 입밖에 꺼내지 않는 암묵적 동조자로 타락했다. 극소수의 용자만이 진리와 목숨을 맞바꾸려는 기백을 떨쳤는데, 그것도 장기전으로 넘어가자 내구성이 부족한 순서대로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마침내 역사 선생님은 오지호를 닮았던 수학 선생님을 제치고 우리 학교 최고 미남으로 등극했다. 나중에 '쿵푸허슬' 돼지촌의 여주인을 볼 때마다 나는 박이 떠오르곤 했다.


나와 정은 박의 측근이었다. 정은 박과 정반대의 기질을 지녔다. 다윈이 성격만으로 종을 분류했더라면 정과 박은 나무늘보와 딱따구리, 혹은 해파리와 멧돼지, 뭐 이 정도로 머나먼 상관관계였을 것이다. 정은 다 같이 모여 뭐 먹을까,라고 물었을 때 백만 번 중에 백만 한 번을 ‘난 아무거나 괜찮아’라고 대답할 그런 애였다.


나는 평소에는 박이 무슨 말을 하든 별로 개의치 않고 실실거리며, O이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드러워서 피하는 사람의 표정을 연출하느라 고심하는 축이었다. 동시에 일 년에 몇 번쯤 주기적 지랄발광을 뿜으며, 아직 죽지 않았다는 지렁이의 저항정신을 실천했다. 일일이 대꾸하자니 당이 떨어졌고, 그렇다고 정처럼 살려니, 다윈의 왕국에서는 나 역시 정과는 다른 종이라 불가했다.


그런 내가 박에게 무릎을 꿇었던 가장 비참한 사건이 벌어졌다. 고3 내내 박과 나는 같은 독서실을 다녔다. 돌아버릴 정도로 잠이 많았던 나는 공부하는 시간과 조는 시간이 공평하게 이분되어 있었다. 잠을 쫓는 유일한 수단은 그저 마이마이(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꺼내 음악을 듣는 것 정도였다.

그날도 정신없이 졸고 있던 나를 박이 흔들어 깨웠다. 박은 자신이 요즘 꽂힌 가수라면서 내게 이어폰을 내밀었다. 임지훈이었다. <사랑의 썰물>


박은 노래가 끝나기를 기다려 내 동의를 요구했다. 좋지? 너무 좋지? 그지?

(솔직히 노래는 너무 좋았지만) 그날따라 어쩐지 쉽게 끌려가기 싫었다. 잠이 덜 깨 기분이 뚱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박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대신 나도 김광석을 꺼냈다. <너에게>

나도 물었다. 좋지? 너무 좋지?

나의 반격에 당황한 박은 김광석이 누구냐며 테이프 껍데기를 가로챘다. 요리조리 살펴보던 박의 눈이 곧 휘둥그레졌다. 놀란 박은 곧이어 역대급으로 놀랄 만한 주장을 했다.


- 야! 이거 뭐야, 임지훈이잖아.

- ???


이게 무슨 자다가 남의 허벅다리 긁는 소리인가?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어 대꾸를 못하고 있는데, 박은 제멋대로 동의의 표시로 받아들였다.


- 맞지? 이거 봐봐, 완전 같은 사람이네. 이름을 바꿔서 음반을 다시 냈나 봐.


나는 대충 정신을 수습하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물었다. 박의 대답은 간단했다.


- 봐, 똑같이 생겼잖아. 무슨 말이 더 필요해?

무슨 말이 더 필요하냐는 박의 태도가 너무 단호해서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박이 두 손에 쥐고 흔드는 임지훈의 얼굴과 김광석의 얼굴이 꼭 닮았다는 사실만은 거부하기 어려웠다. 이럴 수가. 이게 뭐야, 똑같이 생겼잖아.


- 임지훈을 왜 김광석이라고 하겠어? 그리고 목소리도 이렇게 다른데!

- 야! 그거야 모르지. 예술가의 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겠어? 가수들은 원래 마음만 먹으면 다섯 개쯤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거 아냐? 그리고 산울림과 김창완도 각자 판을 내지 않았어? 송골매랑 구창모도 따로 활동하고. 안 그래?


말끝마다 물음표를 붙이며, 박은 나를 코너에 몰고 집중타를 퍼부었다. 뭔가 안 맞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박의 기세에 눌려 나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결국 그날 김광석은 임지훈의 부캐가 되었고, 우리는 각자 같은 가수를 좋아하는 것으로 대승적 화합에 도달했다.


썰물처럼 사랑이 빠져나간 슬픔에 목이 잠긴 듯, 허스키한 음색으로 황폐한 마음을 절규했던 그가,

향기롭게 찰랑대는 사랑을 꿈꾸는 <너에게>의 맑은 음색과 동일인이라는,

이 말도 안 되는 궤변에 나는 끝내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다음날 등교해서 가요에 빠삭한 친구한테 물어보면 금세 판명날 일이었지만, 그 밤 그 독서실에는 우리 둘밖에 없었고, 이 문제는 박의 완승으로 깨끗하게 정돈되었다.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충격을 먹은 나는 임지훈과 김광석을 번갈아 들으며, 그 밤 내내 공부는 멀찌감치 집어치웠다.






언젠가 하릴없이 TV 채널을 돌리다 그 노래와 마주쳤다. ‘열린 음악회’였던가. 이제는 나이 지긋한 임지훈이 여전히 회한이 응축된 목소리로 <사랑의 썰물>을 부르고 있었다. 갑자기 슬픔이 밀물로 덮쳤다. 숨이 막히며 눈물이 핑 돌았다.

지금 그도 여기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른한 오후 깜짝 선물처럼 TV에 나타나, 하던 일을 멈추게 만들고, 화면 앞으로 나를 호출할 수만 있다면. 소극장 콘서트 기록을 갈아치우며, 언제든 거기에 가면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영원한 나의 가수로 남아주었다면. 눈가의 주름만큼이나 더 깊어진 목소리로 내 인생과 진도를 맞추며 동행할 수 있었다면.

나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김광석이 부르는 사랑의 썰물에 빠져들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박에게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에 대해 항변했지만, ‘기억나지 않는다’는 청문회식 답변을 들었다. 지금도 박은 여전히 당당하다.


- 야! 내가 살아오며 우긴 게 얼마나 많은 데, 그걸 어떻게 다 일일이 기억하냐!





*표지 이미지 - 유튜브 '옛송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