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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광시곡

by 명랑도리




도미노가 시작되었다. 운동장에 일렬로 서 있던 아이들은 최에게 뺨을 맞자마자 차례로 쓰러졌다. 수평으로 회전운동하던 손바닥이 ‘찰싹’ 소리와 함께 타인의 얼굴과 충돌하는 것이 우리가 아는 싸대기의 정의라면, 최의 구타는 다른 이름이 필요했다. 토르의 망치처럼 손바닥은 허공에서 수직으로 낙하했다. 맞으면 얼굴이 옆으로 획! 돌아가는 대신, 땅으로 고개가 푹! 꺾였다.


하교하는 길이었다. 운동장에서 하키부가 기합을 받고 있었다. 최는 하키부 감독이다. 싸대기는 앞으로 전개될 광시곡의 서막이었다. 쓰러진 이들은 스프링이라도 밟은 듯 재빨리 열중쉬어 자세로 복귀했다. 마지막 얼굴에서 도돌이표라도 읽은 것처럼, 최는 처음으로 돌아가 같은 짓을 반복했다. 손바닥이 얼얼하면 2악장으로 넘어갔다. 도구가 등장한다. 최가 하키 채를 찾는 동안 아이들은 신속하게 맞춤형 자세를 취했다. 엎드려 뻗쳐. 이번에는 엉덩이다. 내리칠 때마다 자루처럼 몸이 바닥에 쏟아졌다. 어느새 아이들은 처음의 자세로 돌아와 뒷짐을 지고 서있다. 클라이막스. 최는 서있는 허벅지에 하키 채를 휘둘렀다. 여태껏 찍 소리도 내지 않던 아이들의 입에서 결국 비명이 터졌다.


- 솔직히 우리가 낸 돈으로 하키부가 호강하는 거 아냐?


자습시간, 민주는 울분을 쏟아냈다. 예민한 문제여서, 근처에 앉은 모든 아이들이 민주 곁으로 몰려들었다.


- 생각할수록 화가 나 죽겠어. 무턱대고 왜 돈을 걷어? 너무 부당해. 내가 하키부랑 뭔 상관이야. 내가 왜 피 같은 오백 원을 뜯겨야 하냐구. 그 돈이면 내가 사고 싶은 거 하나라도 더 사겠어. 에이씨 우리 집이 제일 가난한데!


민주는 자기가 뱉은 말에 취해 점점 격해지는, 감정의 자가발전 시스템을 지녔다. 아이들도 덩달아 침울해졌다. 가난하기로는 다들 민주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하키부는 우리 학교의 자랑이었다. 전국 소년체전에서 금메달도 몇 번이나 땄다. 체육 교사 출신의 교장선생님은 애국조회 때마다 하키부의 공적을 전교생에게 강조하곤 했다. 우리들은 일 년에 몇 번씩 효창운동장으로 하키부의 경기를 응원하러 갔다. ‘OO배’를 쟁탈하기 위해 모인 각 학교의 선수들은 성배를 찾는 인디애나 존스처럼 날렵하고, 의욕적이었다. 평일에 수업을 째고 야외 스탠드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이미 흥분상태였다.


초등학교 때까지 필드하키라는 이름도 들어본 적 없었고, 여전히 경기의 룰도 잘 몰랐지만 상관없었다. 시합이 시작되면 보유하던 미량의 이성마저 말끔히 증발했다.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다. 운동장에서 경기를 직접 관람하는 것도 그랬지만, 우리를 날뛰게 만드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군의 소속 단위가 이토록이나 협소하다니! 이건 국가대항도 아니고, 시도대항도 아니고, 무려 ‘우리 학교 VS 다른 학교’였다. 이기면 내가 이기는 것이고, 지면 내가 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밀접접촉자들의 대리전이었다.


우리 편이 골을 잡으면, 모두가 어깨를 걸고 ‘야야 야야야야 야야야야야야야’로 시작하는, (이제는 응원가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아이랑 목동’이 터져 나왔다. 선제골이라도 넣으면 오직 인간의 육성만으로 용산구 일대를 들었다 놓는 염력을 발휘했다. 두 시간 내내 괴성을 지르고 난 다음날이면 인어공주처럼 목소리를 잃은 아이들이 몇 명씩이나 생겨났다.


우리 학교는 ‘하키 명문’ 답게 대부분의 경기에서 우승이나 준우승을 했다. 경기를 마친 선수들이 관중석을 향해 인사를 할 때면, 가슴속에서 뿌듯함이 급속도로 부풀어 올라 심장이나 갈비뼈가 튿어질 것 같았다. 선수들 중 누군가 팔뚝으로 눈물이라도 훔치면, 응원석에 휘발유를 뿌리고 라이터를 던진 것처럼 순식간에 오열이 번졌다. 옆좌석의 친구와 부둥켜안고 꺼이꺼이 소리까지 냈다.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국가대표 축구팀이 월드컵 4강에 올랐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 난 끝까지 안 낼 거야. 내가 안 내면 그만이지 지들이 무슨 수가 있는데?


윤서는 왼쪽 입술을 삐죽이며 결의를 다졌다. 평소에도 이죽이는 표정을 짓기 좋아하는 윤서는 하키부 성금 얘기만 나오면 얼굴이 더 한쪽으로 구겨졌다. '지들'이 누구인지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안 내고 버티면 윤서 말처럼 뾰족한 수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지들이 어쩔 거냐, 는 말을 하며 윤서는 정아를 꼬나보았다. 정아는 하키부다. 정아는 책상에 엎어져 자는 중이었다. 정아의 초콜릿 색 허벅지에는 빨강, 파랑, 노랑, 보라, 초록의 무지개가 피었다. 나는 사람의 몸에 그토록 다채로운 멍이 들 수 있다는 사실을, 정아의 다리를 보며 처음 알았다. 멍은 발생한 순서에 따라 색깔을 바꾸며 계절화처럼 피고 졌다.


교실에서 정아는 대부분 잤다. 수업을 빠지고 운동장에 있거나, 훈련이 없으면 교실에서 자거나, 둘 중 하나였다. 선생님들도 당연한 듯 깨우지 않았다. 씩씩거리며 자다가도 쉬는 시간이 되면 귀신같이 일어나, 가방에서 노을빵이나 보름달 같은 것을 꺼내 물도 없이 먹었다. 빵 봉지를 뜯기 전에는 반드시 옆의 아이들에게 같이 먹자고 권해서, 별명이 ‘한입만’이었던 진영은 단골로 정아의 빵을 얻어먹었다. 가끔씩 정아는 빵을 한 봉지 더 꺼내어 아무에게나 주었는데, 그때마다 아이들이 아마존강의 피라니아처럼 몰려들었다. 우리도 정아처럼 마른 빵을 한입씩 나눠 물고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어울릴 시간이 없으니, 반에는 정아와 친한 아이가 별로 없었다. 자느라 말을 못하는 것인지, 원래 과묵한 건지 모르지만 말수도 적었다. 작정하고 뜯어보면 순한 얼굴이었는데, 몸이 주는 인상이 너무 압도적이어서 접근하기가 두려웠다. 종일 운동장에서 뛰던 정아의 근육질 체형과 점점 지방 집권형 권력구조로 개편되던 우리의 몸은, 유전자가 다른 이민족처럼 까마득히 이질적이었다. 키도 컸고, 무엇보다 너무 까맸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애국조회 때 교장의 훈화였다.


- 하키부가 올해도 하계 훈련을 떠나는데, 우리 학교의 자랑인 하키부를 위해, 여러분의 응원하는 마음을 성금으로 모아주기 바란다.


아이들이 술렁였다. 여느 때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돈을 걷었다면 아무 일 없었을 텐데, 올해는 어쩐 일인지 교장이 어설픈 대의명분을 강조하는 바람에 괜한 분란이 싹튼 것이다.


- 응원하는 마음을 성금으로 모으라규? 마음을 돈으로 보답하라는 소리야? 그럼 마음이 없으면 돈을 안 내도 되는 거야? 나는 원래부터 응원한 적 없는데? 아니 응원을 했다고 쳐. 그게 그렇게 큰 죄야? 응원하면 벌금을 내라니. 오백 원씩 이천오백 명이면, 백만 원도 넘는데, 그렇게 큰돈으로 뭘 하려는 거야? 매일 고기만 먹는 거 아냐?


갈고리 같은 물음표가 꼬리를 물었다. 성금은 제멋대로 벌금이 됐고, 논리는 애저녁에 사라졌다. 반항심이 드글드글 치솟았지만, 누구도 총대를 매고 대들 용기는 없으니, 할 수 있는 것은 노여움을 공유하는 일뿐이었다. 한 명이 쫑알거리며 화를 내면, 다른 아이가 그것 받고 두배 더 배팅하는 식으로 점점 분노의 판이 커졌다. 대결구도가 성립되려면 서로의 의견이 달라야 하는데, 같은 편끼리 같은 패를 쥐고 덤비는 꼴이었다. 한참 흥분해서 소리 지르다가는 결국 다 같이 어리둥절해졌다.

현타가 온 아이들은 응징할 대상을 물색했다. 정아에 대한 시선이 차가워졌다. 정아가 빵을 내밀어도 아무도 받지 않았다.


오늘도 하키부는 기합을 받는 중이었다. 이것밖에 못하나? 최는 매번 같은 레퍼토리다. 이것밖에 못하냐고. 다들 정신상태가 썩었다고. 이런 식으로는 선수생활도 할 수 없고, 고등학교도 갈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유통기간이 짧은 신선식품처럼 그놈의 정신상태는 어째서 그렇게 자꾸 썩었던 것일까. 몽둥이에 강력한 방부제라도 발랐는지, 최는 걸핏하면 매를 들었다.


하키부 아이들은 대부분 가난했고, 운동을 하지 않으면 고등학교를 포기하거나 야간고등학교로 진학해야 할 형편이었다. 대회에서 수상을 하면, 하키부가 있는 고등학교로 장학금까지 받으면서 갈 수 있다. 어쩌면 국가대표가 되어 빛나는 삶을 살게 될지도 몰랐다. 최는 제 미래를 좌우하는 동아줄이었기에, 아무리 최가 괴물로 날뛰어도 아이들은 붙잡은 목숨줄을 놓지 못했다.


운동장에서 최에게 얻어맞는 아이들을 보면 무방비로 눈물이 솟았다. 얼마나 무서울까. 나는 가혹한 말이나 사나운 표정에도 쉽게 기가 죽는 편이었다. 괴팍한 성격의 친할머니는 작은 실수에도 항상 언성을 높이곤 했다. 어떤 폭력도 괜찮은 적은 없었다. 가난에 황폐해진 엄마의 손찌검도, 만성화된 할머니의 냉대도... 폭력의 상처는 시간의 풍화작용에서 빗겨 서 있다. 엄마에게 맞은 일은 슬픔으로 필사되었고, 할머니의 구타는 멸시와 천대로 기록되었다. 보존 상태가 좋은 유물처럼 그 기억들은 한 점 한 점 다른 해석을 달고 마음의 다락방에 밀봉되었다.

딱딱한 하키 스틱이 딱딱한 대퇴근과 충돌하는 파열음은, 겪어 본 적 없는 사람조차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100미터를 20초에 뛰는 정선은 자기가 이럴 줄 알고 하키부에 들어가지 않은 거라며, 자기는 저렇게 때리면 차라리 죽은 척할 거라고 가상의 대비책까지 마련했다.


- 너무 불쌍해. 정말 개새끼 아니니? 저렇게 때리면 사람이 죽지 않나?


모르는 얼굴보다 아는 얼굴의 고통은 몇 배나 감정전이가 심해서, 최의 하키 채에 정아가 나가떨어지자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졌다. 쩔뚝이며 다시 일어서는 정아의 표정은 덤덤했는데, 괜히 나혼자 눈물바람이었다.

모금 마감일은 금요일. 반장은 다른 반도 거부 운동에 동참하기로 했다며 은밀한 소식을 전했다.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는데, 결전의 날이 다가오자 아이들은 절로 비장했다.


- 너 설마 돈 가져온 건 아니지?


드디어 D-day 였다. 배신자의 첫 삽이 소심한 기회주의자들에게 공든 탑을 무너뜨릴 명분을 제공할까 봐, 강경론자들은 기민하게 주변을 단도리했다.


- 야, 민정아. 너 운동부라 힘세잖아. 이 쓰레기는 니가 버리고 와.


윤서가 교실 뒤편의 쓰레기 더미를 정아에게 발로 밀었다. 대청소 날이라 묵은 종이가 커다란 쓰레기통을 가득 채웠다. 윤서 무리는 지난주 벌점을 먹어 이번 주 쓰레기 당번이었다. 윤서의 말은 (구걸하는) 운동부니까, 그 대신 이거라도 하라는 말로 들려 어쩐지 불편했다. 그런데 그 파렴치한 윤서의 말에 오히려 주변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아는 멍하니 아이들을 바라보더니, 그대로 가방을 싸서 교실을 나갔다. 종례 시간에도 정아는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그날 우리는 아무도 성금을 내지 않았다. 담임은 의외로 별 말이 없었다. 사태를 파악한 교장만 길길이 날뛰었다. 오천 원도 아니고, 그깟 오백 원에 이렇게 의리 없게 굴다니, 이건 분명 빨갱이 같은 젊은 선생들의 책동이라며, 교장은 특정 선생들을 싸잡아 의심했다.

교장의 의심은 일견 합리적이었다. 사실 아이들의 용기는 각반 담임의 암묵적 동조에 기대고 있었다. 올해 우리 학교에는 서른 전후의 젊은 선생님들이 열 명도 넘게 발령되어 왔고, 그들이 모두 2학년 담임이 되었다. 부당한 것은 부당하다 말해도 된다는 가르침은 그들에게서 처음으로 배웠다.


다음 주 운동장 조회에서 교장은 침통한 목소리로 학생들의 철없는 짓거리를 꾸짖었다. 올 가을 예정된 서울 아시안 게임에 우리 학교 출신의 선배들이 하키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것을 알고 있느냐며, 그들이 조국의 명예를 드높일 수 있으려면 국민들의 성원과 기도가 필요한데, 어떻게 같은 학교의 후배로서 그런 후안무치한 행동을 할 수 있느냐고, 학생들을 이렇게밖에 교육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 크다며, 교장은 안경을 올리고 눈물을 닦는 시늉까지 했다. 우리는 한순간에 국가를 배반하고, 민족을 저버린 반역자로 전락했다.

아이들은 갑자기 풀이 죽었다. 애국 이데올로기에 대항하기에 우리는 심약하고 무식했다. 일주일째 오백 원을 가방에 넣고만 다니는 아이도 있었고, 돈을 받은 즉시 떡볶이집에 갖다 바친 아이도 있었다. 부담스러운 액수여서 아직 집에 말도 못 꺼낸 나 같은 아이도 여럿 되었다. 회개할 기회를 주겠다는 의미에서, 교장은 마감일을 일주일 연장했다.


- 아이씨, 그래서 어쩔 건데? 낼 거야? 이건 아니지. 우리 모두 교장한테 속은 거 같다니까.


윤서가 아무리 들쑤셔도, 매너리즘에 빠진 시즌제 드라마처럼 돌파구 없는 반항에 아이들이 점점 지쳐갔다. 지지세력이 심드렁할수록 윤서는 더 독해졌다.


체육 시간에 피구를 하던 중이었다. 윤서는 공을 잡기만 하면 보란 듯이 정아를 겨냥했다. 윤서의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어서 모두가 곧 그들을 주목했다. 지루했던 운동장에 흥미꺼리가 생겼다. 아이들은 이제 공을 잡기만 하면 윤서에게 패스했고, 윤서는 그 공으로 다시 정아를 공격했다. 공을 던지는 사람만 헐떡거릴 뿐 피하는 정아는 크게 움직이지도 않았다.


마침내 지친 윤서가 제풀에 나가떨어지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다같이 윤서가 된 것이다. 약속도 안 했는데, 공만 잡으면 모두 정아를 겨눴다. 처음에는 몸을 풀듯 슬슬 공을 피하던 정아도, 묘한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무리 피해도 공은 다시 날아왔다. 정아도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한 마음으로 정아가 죽기를 염원했다. 죽기살기로 던지고 또 던져도 정아는 쉽사리 공에 맞지 않았고, 모두들 조금씩 정아에게 조롱당한 기분이 되었다. 드디어 체육부장이 공을 잡아 불꽃슛을 날리자, 대놓고 통쾌한 함성마저 질러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피하기만 하던 정아는 체육부장의 강슛을 한 손으로 잡아서는, 전광석화처럼 윤서에게 되돌려주었다. 멍청하게 구경하던 윤서는 정아의 공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고 쓰러졌다. 모두 얼음이 되었다. 윤서의 얼굴은 코피가 터져 피투성이였다.

씨발년.

윤서는 한참이나 정아를 노려보다가 욕과 피가 섞인 침을 땅바닥에 뱉고는 양호실로 사라졌다. 아무도 정아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결국 이 문제는 반마다 투표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찬성표가 많은 반은 성금을 내고, 반대표가 많은 반은 내지 않는, 누가 봐도 이상한 방식이었지만, 아이들은 절묘하고도 지혜로운 결론이라며 환호했다. 적어도 제 의사는 표명할 수 있으니 불만은 없었다. 피구공 사태 이후 윤서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고, 정아는 이제 빵도 먹지 않고 잠만 잤다.


투표 당일, 담임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은 해도 된다고 마지막 발언의 장을 열었다. 더 무슨 할 말이 있을까. 그동안 너무 많은 말을 했다. 이제는 윤서조차 입을 다물었다.


그때 현정이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코알라처럼 순한 현정이 아이들 앞에 나서는 것은 처음이었다.


- 비밀투표인 것은 알지만, 그냥 한마디만 말하고 싶어요. 나는 우리 학교에 배정된 것이 싫었어요. 집에서도 멀고, 학교도 낡았고, 친한 친구는 시설 좋은 학교를 다녀서 부러웠고... 근데 하키부 응원을 다니면서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어요. 우리 학교가 너무 자랑스러웠어요. 우리 팀 이기라고 막 소리 지르면, 진짜 우리 팀이 막 이겼고, 다들 멋있어서 눈물도 막 쏟아졌어요. 저는 응원하는 마음을 성금으로 모아 달라는 말에 동의해요. 그게 부당한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제 마음은 오백 원보다 훨씬 커요. 저는 정아 팬이에요.


어디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엎어져 자는 척하던 정아였다. 최의 매질에도 꼼짝 않던 정아가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다. 낯선 슬픔이 아이들을 출렁이게 했다. 사실 현정뿐만 아니라 우리는 모두 정아의 팬이었다. 경기장을 누비는 저 멋진 친구가 우리 반의 민정아라고, 오늘 두 번째 골을 넣은 영웅이 내 친구라고, 효창공원의 언덕을 내려오며 우리의 어깨는 하늘까지 치솟았었다. 지역대회에서 우승한 다음날 나 역시 노을빵을 사서, 정화의 책상 서랍에 몰래 넣어둔 적도 있었다. 그날처럼 울음이 관중석을 급습했다.


모두 알고 있었다. 정아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정아에게 그러면 안 됐다는 걸. 오백 원은 핑계였고, 조금씩 화를 내는 맛에 길들여지고 있었다는 걸. 우리는 부당함에 항거해도 된다는 것만 겨우 배웠을 뿐, 아직 그 방법까지는 익히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정아가 태연한 것이 못마땅했는지도 몰랐다. 우리에게 적선을 바라는 주제에 비굴하지도, 침울하지도 않은 정아가 싫었던 것이다. 다 같이 힘을 모아 정아의 오금을 내리쳐서, 그 강인한 무릎을 보란 듯이 우리 앞에 꿇리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망나니처럼 각자의 마음에서 잉태된 말의 퍼즐을 정아에게 던졌다. 작고 희미해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치부했던 증오의 부스러기들. 완성태를 숨겼던 직소퍼즐처럼 최후의 한 조각이 제자리를 찾자 그것은 본 모양을 드러냈다. 커다란 칼날이었다.


하키부 성금은 다음 해부터 폐지되었다. 그해 가을 우리나라 필드하키팀은 서울 아시안 게임에서 사상 최초로 남녀 동반 금메달을 차지했고, 하키는 순식간에 효자종목으로 부상했다. 국가적 지원도 늘어나,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 학교의 하키 꿈나무들은 장학금과 함께 체육 명문고로 진학했다.





TV에서 하키 경기를 방송하면 자동으로 정아가 생각났다.

웅크리고 울던 정아의 어깨.

하키 스틱에 맞아도 끄떡없던 다부진 몸이 그날은 봇물이 터진듯 울고 또 울었다.

정아의 박물관에 그날의 기억은 어떻게 보관되어 있을까.

마음의 동통은 다리의 멍처럼 시간이 흐른다고 절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가끔은 정아의 오늘이 궁금하기도 하다.


멀리서나마 내 작은 염원도 보낸다.


슬픔을 보관하는 그 낡은 궤짝에 반짝거리던 추억들도 함께 동봉하기를.

선하고 강했던 그날의 너를 향해,

우리의 어리석음이 던진 칼날뿐만 아니라,

경탄과 환호로 쏘아 올린 우정의 폭죽도 부디,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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