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무조건 그를 반겼다. 익숙한 동요 덕분에, 아이들은 집배원의 큰 가방에는 늘 반가운 소식이 한가득 담겨 있다고 상상했다.
청구서나, 명세서 같은 공적 문서들이 우편함을 꽉 채우고 있는 요즘과 다르게, 그때 우체부가 집집마다 실어 나른 것은 주로 개인적인 서신이었다. 골목에서 놀다가도, 그가 나타나면 나는 냉큼 일어나 대문 우편함에 꽂힌 우편물을 확인하곤 했다. 편지 봉투에 적힌 발신자와 수신자의 이름을 훑고, 엽서는 뒤집어서 일일이 내용도 읽었다.
국민학교 시절, 내가 정기적으로 구독하던 우편물은 부산에서 날아온 이혜자의 엽서였다. 이혜자는 엄마의 어릴 적 고향친구다. 혜자 씨는 결혼과 동시에 남편을 따라 부산으로 내려갔고, 그 이후로 엄마와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녀의 엽서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도착했는데, 그 엽서를 제일 먼저 읽는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골목 앞을 뒹굴며 노는 나였다. 몇 년을 한결같이 엽서를 보내오는 걸 보면 정말로 친구가 그리운가 보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뒷면의 내용을 읽다 보면 조금 어리둥절해졌다.
- 보고 싶은 순아, 잘 지내니? 여기는 바람이 분다. 추운 줄 알고 두꺼운 옷을 입고 바닷가에 나갔는데, 어느새 봄바람이 불고 있구나. 보고 싶은 순아, 잘 지내렴.
- 보고 싶은 순아, 봄인 줄 알고 바닷가에 나갔는데, 어느덧 여름 햇살이 따가워 깜짝 놀랐다. 보고 싶은 순아, 그럼 잘 지내렴.
-보고 싶은 순아, 여름인 줄 알고... 벌써 가을이...
전형적인 수미쌍관식 구성에다가, 4계절이 꼬리를 물고 반복되는 무한루프 같은 서신이었다. <편지쓰기 교본> 같은 책이 있다면, '날씨 얘기로 시작하는 자연스러운 도입' 챕터의 샘플로 쓰일 법한 문장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어리둥절했던 이유는, 아직 본론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그럼 안녕'으로 거침없이 도약하는 호방한 전개방식 때문이었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노란 관제엽서가 담고 있는 문장은 거기까지였다. 필체는 삐뚤삐뚤했고, 글자 크기는 15포인트. 더 담고 싶은 말이 있더라도 이미 여백은 없었다.
고작 이런 말을 뭣 때문에 굳이 비싼 우표까지 낭비하면서 줄기차게 보내는 걸까. 남의 편지를 훔쳐 읽는 자가 할 말은 아니지만, 조금 한심하기까지 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온 엄마도 엽서를 5초 정도 쓱 훑어보고는, ‘혜자도 참...’ 그러고는 끝이었다. 고단한 엄마가 답장을 쓰는 일은 일 년에 한두 번이 될까말까였지만, 혜자 씨는 그러거나 말거나 공갈빵처럼 허탈한 엽서를 지치지도 않고 보내왔다.
엄마 말고도 우리 집에 편지의 수신자들은 많았다. 미혼의 고모가 넷이었다. 그들에게도 혜자 씨처럼 친한 벗들이 있었다. 매일 누군가에게 편지나 엽서가 도착했고, 또 그 숫자만큼 답장이 탄생했다. 고모들은 수시로 구멍가게에서 우표나 엽서를 사오라며 내게 심부름을 보냈다. 빈 엽서와 우표를 사다 주면, 이번에는 써놓은 편지를 우체통에 넣고 오라는 두 번째 오더를 내렸다. 우체부 아저씨와 나는 2인 1조의 메신저였던 셈이다.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여느 때처럼 대문 틈으로 한 다발의 편지가 쑥 들어왔다. 놀랍게도 거기, 나에게 온 엽서가 있었다. 앞 면에 우체국의 소인이 찍힌 정식 우편물이었다. 딱지 모양으로 접어 야매로 주고받던 쪽지가 아니라, 국가기관의 공인을 거쳐 내 손에 도달한 최초의 서신이었다. 갑자기 가슴이 쿵쾅거렸다. 발신자는 같은 반 친구. 방학이라 안부를 전하는 것이고, 숙제는 많이 했는지 궁금하며, 개학하면 반갑게 보자, 는 것이 용건이었다.
진정이 되지 않았다. 친한 단짝도 아니었는데, 그 애는 어쩌자고 이토록 은밀한 편지를 보낸 것일까. 엽서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하루 종일 몇 번이나 꺼내어 읽었다. 엽서 앞면의 우표디자인과 보랏빛 소인도 더듬어 보았다. 혜자 씨의 엽서를 수십 장 받았으면서도, 관제엽서를 이렇게 자세하게 관찰한 것은 처음이었다.
어떻게 답장을 써야 하나. 크리스마스도 아니고, 생일도 아닌데... 특별한 주제가 없는 날에는 친구에게 어떤 말로 인사를 시작하나 난감했다.꼬박 하루를 고민하고 나서 마침내 고모 방에서 새 엽서를 하나 빼돌려서는 방바닥에 엎드려 글짓기를 시작한다. 받은 엽서의 무지개반사 정도의 내용이었다. 너도 잘 지내니? 나는 아직 숙제가 많이 남았는데, 너는 어떠니? 개학하면 반갑게 만나자.
개학을 하고 보니 친구의 엽서를 받은 사람은 나 하나가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먼저 사춘기에 돌입한 그 친구는 종일 누군가에게 편지를 썼다. 자음의 각을 동글동글하게 굴린 예쁜 글씨체로 빈 종이를 채우고, 누군가의 주소를 적고, 편지가 빨간 우체통에 떨어지며 울려 퍼지는 텅- 소리를 듣는 그 모든 과정을 그 애는 좋아했다. 글로 연결되는 그 성숙하고 내밀한 세계에 눈을 뜬 것이다. 그 애가 첫 삽을 뜨는 바람에, 이 색다른 네트워크는 들불처럼 우리 사이에 번져갔다. 가입인사를 신호탄으로 본격적인 맞팔이 여기저기서 뚫리기 시작한 것이다.
마음에 드는 이성의 번호를 따듯, 아이들은 서로 주소를 물었다. 문방구에서 특별히 ‘주소록’이 두툼한 수첩을 골라, 보물이라도 되듯 그것을 옮겨 적기도 했다. 유행은 변이와 진화를 수반하는 것이 속성이기에, 도구도 나날이 발전했다. 그전까지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던 꽃편지지에 관심이 폭발했다. 문방구에서는 꽃편지지 세트라는 카테고리의 상품들이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절찬리에 판매 중이었다. 고모 방에서 열악한 관제엽서를 빼돌리는 짓은 곧 그만두었다. 사무적 폰트에 촌스럽게 우표까지 박아서 인쇄된 단색의 엽서는 하루에도 열두 번 색깔을 바꾸는 이 변덕스러운 마음을 담기에 적합한 도구가 아니었다. 질감도, 크기도, 디자인도 다른 편지지를 눈앞에 펼쳐두면, 이미 마음에 촉촉한 바람이 불었다.
2학년. 체육시간에 체육선생이 체육부장에게 노래를 시켰다. 씩씩한 표정으로 뛰어나온 체육부장은 갑자기 아련한 눈빛으로 돌변하더니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노래를 불렀다. 세월이 흘러가면 어디로 가는지, 나는 아직 모르잖아요. 그대 내 곁에 있어요. 떠나가지 말아요. 나는 아직 그대 사랑해요.
어... 이게 뭐지? 화창한 운동장에 슬픔의 비가 내렸다. 15년 인생에서 처음 겪는 감수성의 빅뱅. 노래 하나에 마음이 대책 없이 싱숭생숭해졌다. 체육부장이 음치였다면 조금 달랐을까. 하필 가무에 능했던 그 애는 음정과 박자는 물론 노래의 처연한 감성을 담아내는 데도 능란했다. 물기 그렁그렁한 눈빛의 표현력까지 더해져, 그 노래는 막다른 골목까지 나를 몰아붙이고는 내 마음을 단숨에 강탈해 버렸다.
어딜 가야 그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나. 텔레비전은 원하는 가수의 출연을 보장해주지 않는 랜덤박스였고, 콘서트라는 단어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줄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하굣길에 나는 큰길로 달려갔다. 일단 노래 테이프부터 확보해야 한다. 이.문.세. 그날이 입덕 첫날인 셈이다. 이미 이문세 3집은 리어카 앞줄을 차지하고 있는 히트상품이었다.
- 아이씨, 이문세 너무 좋아. 도대체 어디가야 만날 수 있는 거야?
해적판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어도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노래보다 가수에 더 열광하는 나이였으니까.
- 그럼 별밤을 들어. 빙신아.
친구의 상냥한 조언에 개안을 한 듯 충격이 밀려왔다. 별밤이 대체 뭐야?
우리 집에서 라디오는 할아버지의 매체였다. 평안도가 고향인 할아버지는 밤마다 잠들기 전까지 머리맡에 라디오를 켜놓았다. 머나먼 이국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는 동포들의 사연을 소개하는 방송이었다. 엽서를 읽어주는 DJ의 목소리에는 늘 공손한 연민이 서려 있었다. 아무리 갈망해도 도달할 수 없는 곳. 그들이 유폐된 흑룡강성, 길림성, 사할린은 어쩐지 까마득한 전설의 땅을 연상하게 만드는 이름이어서, 할아버지가 라디오를 켜면 활강하는 검은 숲의 용이 떠올라 마음이 늘 뒤숭숭했다.
그런데 그 라디오 속에 이문세가 있었다니. 라디오라면 우리 방에도 하나 더 있다. 엄마가 떼인 돈 대신 어딘가에서 받아온 카세트 플레이어. 종일 이문세 테이프를 돌리면서도, 그 기계가 라디오의 기능을 겸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한쪽 구석에 얌전하게 접힌 안테나의 둥근 머리가 솜씨를 감춘 고수처럼 겸손하게 숨어 있었다.
방바닥에 엎드려 설레는 마음으로 주파수를 맞춘다. FM 95.9 MHz.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의 목소리를 기다린다. 언제든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녹음할 수 있게, 공테이프도 준비해 놓았다. 이윽고 띠링~띠링~띠링~으로밖에 따라 부를 수 없는 주제곡이 흐른다. 그 소리는 파도처럼 넘실넘실 가슴에 파고든다. 오늘 밤 같이 있어 달라고, 같이 있어 달라고 조르는 것 같다. 노래에 취할 무렵 드디어 기다리던 DJ가 등장한다. 별이. 빛나는. 밤에.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그의 목소리는 너무 다정해서, 꼭 나에게만 속삭이는 것 같다. 그의 목소리와, 그가 들려주는 노래에 빠져 이제 두 시간은 온전히 행복할 수 있겠다. 깊은 밤, 누군가의 사연을 읽어주는 그의 목소리는 어찌나 친절한지, 내 일도 아닌데 매번 감동이 밀려왔다. 이문세는 그때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유머러스했다. 나는 그의 유머를 사랑했다. 토요일 저녁마다 ‘유머일번지’를 본방 사수하고, 최양락의 ‘나는 봉이야’나, 김형곤의 ‘잘 돼야 될 텐데’를 따라 하면서도, 그건 제목만 유머일번지일뿐, 진짜 유머는 이문세가 제일이라 자부했다. 이문세의 위트야말로 카피가 불가능한 고도의 정신작용이라며 홀로 가치의 차등을 두었다.
어떻게 그 순간에 저렇게 재치 있고, 세련된 말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놀라운 사람이었다. 그는 매일 밤 빛나는 별처럼 나를 찾아왔다. 억울한 일이 많은 나이였는데, 그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슬며시 마음이 풀어졌다. 늦도록 엄마가 돌아오지 않고, 불안해진 동생이 유달리 징징거리는 밤에는, 텔레비전도 아닌데 굳이 라디오를 들여다보며 소리를 들었다.우리는 그와 함께 밤이 깊도록 키득거리며 엄마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너무 멀리 있다. 별이 아득히 멀듯이.
라디오를 켜 놓고 친구에게 엽서를 쓰다가 불현듯 놀라운 발상이 떠올랐다. 왜 이 생각을 못했지? 다른 사람의 사연을 읽는 목소리도 이렇게 좋은데, 심지어 그 목소리가 나의 이야기를 읽어 준다면 얼마나 더 황홀할까. 그건 진짜 나에게만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닌가.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연이라니, 나에게 그런 것이 있을까? 사연 있는 여자, 숨겨둔 사연, 슬픈 사연... 사연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기승전결을 갖추고 기막힌 우여곡절을 풀어내는 한 편의 완결된 서사이기에, 막상 쓰려고 하니 대단히 막막했다. 다른 사람들의 사연을 작정하고 들어 보니 그것들은 죄다 훌륭해 보였다. 문장도 매끄럽고 내용도 반전이 있어서, 재미와 감동이 찰떡처럼 쫀쫀했다. 나로 말하자면 매일 엽서를 쓰고 있다지만, 그건 내용보다 수발신행위 자체가 더 중요한 소셜 네트워킹의 일종이었을 뿐이었다.
고민이 시작되었다. 뭐라고 쓰지? 학생이라 공부하는 게 너무 피곤하다고 불쌍한 척을 할까? 피곤할 정도로 공부를 해 본 적이 없으니 그건 사기다. 흔한 레퍼토리로 짝사랑에 빠졌다고 할까? 하지만 현재 내 짝사랑의 대상은 이문세였기에, 차마 당사자에게 대놓고 고백을 하는 낯부끄러운 짓은 할 수 없었다. 친구나 가족의 생일이니 축하해달라는 식상한 엽서는 차라리 보내지 않느니만 못했다. 그래, 학교에서 있었던 재밌는 일을 보내면 다 같이 빵 터질 수 있을 거야. 아이디어는 좋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죄다 당사자만 즐거운 일들 뿐이었다.
결국 나는 (엽서라는 것은 내용이 아니라, 보내는 정성 그 자체가 더 귀하다는) 구차한 엽서철학을 실천하기로 한다. 그냥 보내는 것이다. 그를 좋아하니까. 내용은 아무거나 상관없다.
- 오늘 내 친구 난영이가 엄마한테 개겼어요. 앞으로 죽을 때까지 엄마랑 말을 안 할 거라고 선언을 했는데, 난영이를 응원하는 뜻으로 노래 한 곡 틀어 주세요.
- 수미가 수학선생님을 사랑하는데, 진영이도 수학선생님을 사랑해요. 문제는 민정이도 수학선생님을 사랑한다는 점이에요. 더 큰 문제는 걔네들이 모두 수학을 지지리도 못한다는 것이지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응원의 노래 한 곡 틀어 주세요.
- 왜 별로 먹는 것도 없는데, 계속 살이 찌는지 혹시 이유를 아세요? 신청곡은 난아직모르잖아요,입니다.
그의 목소리가 나의 글을 읽는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의 라디오 버전.
하지만 그는 응답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보냈지만 답은 없었다. 설마 다섯 번에 한 번쯤은 방송을 타지 않겠냐고 생각했던 내 예측이 얼마나 나이브한 것이었는지 실감했다. 뭐든 결과보다 시도가 더 의미 있는 것이라는 공교육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억지로 위로하다가, 마침내 용단을 내리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도전해 보고,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이 덧없는 기획은 그만 멈추기로 한 것이다.
보통 드라마나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이런 결심을 하면, 꼭 그 마지막 도전이 성공으로 이어지면서 ‘포기하려는 마음은 성공 직전에 깃드는 법이니, 어떤 것이든 끝까지 물고 늘어지라’는 얄궂은 인생의 철리를 관객에게 던져주는 경우가 많았다. 나의 노림수가 바로 그거였다. 엽서를 쓰면서도 ‘이번이 마지막이야’, 우체통에 넣으면서도 ‘이번이 마지막이야’, 종이에 주문을 걸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MBC 라디오가 주최하는 예쁜엽서전시회에 가보고 나서야 나는 내 엽서가 그동안 왜 뽑히지 못했는지 깨닫고는 곧바로 겸손해졌다. 장소는 여의도 백화점. 고작 엽서를 보겠다고 사방에서 모인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손바닥만 한 엽서 한 장에 전국의 미술천재들이 예술혼을 하얗게 불태웠다. 애당초 나 같은 똥손이 낄 자리가 아니었다.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과 한 덩이가 되어 움직였다. 코딱지만 한 엽서에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머리를 처박고 있다가, 리어카에 실린 수박들처럼 다음 엽서로 우르르 굴러가는 방식의 관람이었다. 하도 정신이 없어서 뭘 봤는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엽서를 좋아하는 사람이 이토록 많았다는 통계적 정보가, 이 전시회로 얻은 가장 큰 소득이었다. 그날 이후 엽서의 수신자는 다시 친구들로 복귀했다. 골방에서 끄적일 때는 몰랐는데, 알고 보니 엽서는 생각보다 핫한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것이다.
중학생 아들은 종일 카톡을 한다. 숙제를 하다가도,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심지어 게임을 하는 중간에도 번개 같은 터치로 문자를 주고받는다. 중삐리 주제에 뭐 그리 급한 사무가 있다고! 한 소리 하려다가, 한때 우체국에서 백장 묶음의 엽서를 통으로 샀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줄창 붙어있다가도 집에 가면 다시 친구가 그리웠다. 그런 밤에는 책상에 앉아 라디오를 켜놓고 친구들에게 엽서를 썼다. 다음날이면 학교에서 금세 또 만날 거면서 뭘 그렇게 할 말이 많았는지 모르겠다. 등굣길에 우체통에 엽서를 들이밀고는, 학교에서 친구한테 '방금 엽서를 보냈으니 잘 받으라'는 배송출발 메시지까지 구두로 전달했다.
친해서 엽서를 보낸 친구도 있었지만, 반대로 편지를 주고받다가 절친이 된 아이도 있었다. 그런 친구들과의 추억은 함께 논 기억보다 한 박스의 편지로 남아 있다. 커다란 상자 가득 들어찬 형형색색의 꽃편지들. 다시 읽어 보아도 별 내용은 없다.
사소한 일상.
대책 없이 일렁이던 가슴의 파문.
완벽한 공감.
이제는 복원 불가능한 고순도의 우정...
....
손주에게 카톡을 배운 뒤로, 엄마는 지인들에게 톡을 보내는 재미에 빠져있다. 엄마의 폰에 지하철 앱을 깔아주고 있던 어느 날, 카톡이 울린다.
- 순아 잘 지내니? 부산은 지금 가을이 오고 있다. 나는 관절염 때문에 요즘 고생이다. 아프지 말고 잘 지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