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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콤플렉스

by 명랑도리



이생망.

그때, 외모에 관해서라면 우리들은 비슷비슷한 패배주의에 빠져 있었다. 왜 나는 이렇게 태어났을까. 하필이면 이런 패를 뽑아가지고는, 평생 못난이의 가시밭 삶을 살아야 하는가. 다들 자기 외모에서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었다. 망했다. 이번 생은.


우리는 위로를 품앗이했다.

- 야! 너 정도면 괜찮지. 난 이게 뭐냐.

- 뭔 소리야, 내가 너라면 걱정도 안 한다.


너 정도면 걱정이 없겠다면서도 친구한테 딱 맞는 별명은 귀신같이도 찾아냈다. 비짜루, 하마, 대갈공주, 버펄로, 불타는 고구마... 별명을 붙인 자와 너 정도면 괜찮다고 등을 두드린 자는 대부분 동일인물이다. 별명을 부르는 사람은 애칭이라고 우기지만, 당사자들은 자신의 치부를 극대화한 동물이나 사물이 자신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닉네임으로 퍼져가는 모습에 좌절했다.


미옥의 콤플렉스는 목소리였다. 남들보다 한 옥타브 정도 높은 음색이었는데, 말투가 근엄했고, 기본 성량이 컸다. 조금만 흥분하면, 버르장머리 없는 후궁 때문에 뚜껑이 열린 대비마마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교실 벽에 부딪치면, 목욕탕도 아닌데 에코까지 울렸다. 그럴 때마다 같이 놀던 애들이 앗, 깜짝이야, 하면서 미옥을 쳐다보았다.

패션 취향도 목소리와 콤비를 이뤄 단연 고지식했다. 첫 단추부터 야무지게 채운 셔츠, 부들부들하고 품이 넓은 기지 바지, 풍신한 모직 점퍼... 한창 조다쉬 블랙진과 써지오 바렌테 스트라이프 청바지가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던 시절이었다.


하여 미옥의 별명은 '엄마'였다. 14살 소녀에게 엄마라니, 얼마나 가당치도 않은 네이밍인지. 어른의 말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삐딱선에 올라타고 보던 그때, 인생을 통틀어 엄마 말을 제일로 안 들어 X먹는 사춘기에 하필 별명이 엄마라니! 하지만 다른 대안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그 말은 미옥과 찰떡처럼 어울렸고, 목소리와 달리 착하고 순했던 미옥도 제 별명을 그다지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말의 힘은 무서워서, 미옥을 엄마라고 부르자 미옥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달라졌다. 미옥이 진짜 엄마라도 되는 것처럼 굴었다. 미옥의 물건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아이들의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이거 나줘'가 나왔다. 이 세상 모든 딸년들의 가슴에 공통으로 내재된 '엄마꺼는 내꺼'라는 신념의 발현이었다. 힘들거나 곤란한 일이 생겨도 미옥을 찾았다. 무거운 물건을 옮기거나, 더러운 것을 처리해야 할 때 아이들은 힐끗 미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미옥은 엄마니까. 밥상머리에서 맛있는 반찬은 자식들 앞으로 슬그머니 밀어내는 사람이 엄마들이니까.


어느 날인가는 미옥의 짝꿍이 호들갑을 떨며 반 애들을 불러 모았다. 미옥의 필통에서 키티 스티커를 발견한 것이다. 세상에 이거 미옥이 꺼야. 짝꿍은 미옥의 필통에서 온갖 포즈를 취하는 키티를 끄집어내며 세상 제일 재밌는 광경을 목격한 듯 깔깔거렸다. 책상 위로 줄줄이 등장하는 깜찍한 고양이 때문에 아이들의 얼굴에 곧 터질 것 같은 웃음이 고였다. 열네 살이면 한창 캐릭터를 좋아할 나이였다. 주영이는 쉬는 시간마다 연습장에 <미스터 블랙>이나 <아뉴스데이>와 같은 황미나 만화의 주인공을 그렸다. 모래요정 바람돌이를 사랑했던 진주는 걸핏하면 아이들에게 '카피카피름름'을 외쳤다. 심지어 우리 반에는 키티를 사랑하는 아이가 한 명 더 있었다. 앞줄의 유미도 키티 마니아였다. 유미는 직접 그린 키티를 오려서 하드보드지에 붙이고는 그 위에 아세테이지를 덮어 수제 필통을 만들기까지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유미와 미옥이는 완벽한 동갑이다. 유미의 키티는 깜찍했는데, 미옥의 키티는 어쩐지 주책스러웠다. 미옥의 또 다른 콤플렉스는 노안이었다.


미옥의 노안처럼 대중의 공감대를 얻은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콤플렉스는 남들은 모르는 혼자만의 뜨락에서 싹을 틔웠다. 그 후미진 응달에는 오직 나만을 비추는 거울이 걸렸다. 팩폭의 마녀가 거주하는 거울이다. 거울은 제 앞에 선 자에게 수시로 속삭였다.


- 너 눈이 왜 이렇게 작아? 설마 그거 다 주근깨야? 허벅지만 보면 영락없는 씨름선수야. 넌 송곳니가 그 모양이니 드라큘라가 여동생 하자고 하겠다. 니 얼굴을 보면 코 밑에 그 점밖에 안 보여. 혹시 이다음에라도 오토바이는 타지마. 맞는 헬멧을 찾기는 힘들 것 같아. 이거이거 여드름 어쩔!


매일 아침 거울 앞에 서면 친절한 마녀는 가장 감추고 싶은 곳만 골라서 스포트라이트를 쏘아 주었다.


명아는 하체가 불만이었다. 마르고 여리여리한 상체와 달리, 골반이 크고 살집이 붙은 하체가 명아는 늘 못마땅했다. 다른 아이들은 명아의 가녀린 팔뚝을 부러워했지만, 명아의 눈에는 제 튼실한 엉덩이만 들어왔다. 정신 건강을 위해 잊으려 해도, 매일 붙어 다니는 단짝 연숙이 때문에 그것도 어려웠다. 연숙이는 반에서 제일 키가 컸다. 장래 희망이 모델이라고 말한대도, 아무도 비웃지 못할 몸매였다. 명아의 거울은 종종 매직쇼를 보여주었다. 거울이 짧고 굵은 명아의 다리를 세로로 쭉 잡아늘이자, 어느새 연숙의 하체로 변신하는 깜짝쇼.

연숙의 거울은 푸석한 머리카락에 꽂혔다. 머리카락에 기름기가 전혀 없었고, 오래 입은 양복처럼 색이 바랬다. 마치 거미줄을 둘둘 말아 머리에 얹은 것처럼 보였다. 아이들은 연숙을 비짜루라 불렀다. 큰 키를 반영하여 싸리비라고 부르는 아이들도 있었다. 은아는 클래오파트라처럼 생머리가 찰랑거렸는데, 점심시간에 은아가 엎드려 잠이 들면 연숙이 촘촘한 빗으로 은아의 머리를 빗어주곤 했다.


은아의 고민은 씨름선수 이만기처럼 종아리에 박힌 알통이었다. 더운 날에도 절대 반바지를 입지 않았다. 종아는 좌우상하 제멋대로 꼬불거리는 앞머리와 싸우다 지친 나머지, 차라리 삭발을 해서 자기를 약 올리는 앞머리에 복수를 하겠노라고 씨근덕거렸다. 미선이는 둘째 발가락이 유난히 길어 샌들을 신지 못했다.

나로 말하자면, 어느 한 군데만 지목할 수 있는 것들의 여유가 차라리 부러웠다. 영화 평점 방식으로 요약하면, 별 다섯 개 만점에 별 하나. 종합 평은 그냥 간결하게 ‘못생겼다’ 되시겠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외모에 대한 고민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날이 갈수록 눈사람이나 텔레토비와 닮아가는 몸매가 원인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체중이 인생기록을 경신했고, 엉덩이, 허벅지, 팔뚝처럼 옷맵시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부위만을 골라 지능적으로 지방이 이주했다.

도시락을 먹고, 그것과 필적할 만한 양의 간식까지 산뜻하게 해치우고 나서, 우리는 부른 배를 두드리며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아? 하지만 배 부를 때는 모든 조건을 수용할 것처럼 협조적이던 식탐마귀가, 몇 시간만 지나고 나면 계약서를 찢으며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결심은 번번이 초기화되었다.


그 와중에도 순정만화 여주인공이 납신 것 같은 비현실적 외모의 재수떼기들은 존재했다. 전교에 몇 명 되지는 않았지만, 그 희소성 때문에 그들의 행운은 멀리서도 스스로 빛을 뿜었다. 중고생이 화장을 한다는 것은 상상으로도 불가능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그들은 처음부터 그냥 그렇게 태어난 것이었다. 인형의 얼굴로 탄생하여, 역변을 모른 채 위아래로만 자라난 이기주의자들. 인류의 평화와 질서를 파괴하는 그런 것들이 교실에 나타나 큰 소리로 ‘기준!’을 외치면, 나머지들은 그 외모를 기준으로 격렬하게 제 몸을 견주다가, 마침내 슬픔, 원망, 탄식, 좌절 등속의 다크한 감성에 휘말려 장렬하게 산화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포화가 쓸고 간 전쟁터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불굴의 한민족이 아닌가. 아침마다 거울이 들려주는 비관의 노래를 BGM 삼아, 아이들은 새로운 희망의 민들레를 꽃피웠다. 조잡스럽지만, 뭐라도 하는 것이다.

스카치테이프를 칼로 잘라 눈에 붙이면 감쪽같이 쌍꺼풀이 생겨나면서 갑자기 눈이 두 배로 커졌다. 커진 눈만큼 행복도 두 배로 밀려왔다. 테이프 끝단이 자꾸 눈을 찔러 따가웠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렇게 백일을 계속하면, 눈꺼풀도 원래의 자기를 잃고 체념하듯 쌍꺼풀을 헌납하리라는 믿음에, 그들은 테이프 붙인 부담스러운 눈으로 뻔뻔하게 거리를 활보했다. 아무리 눈꺼풀을 들들 볶아도, 이제는 눈두덩이에까지 지방이 들어차는 바람에, 쌍꺼풀은 커녕 원래의 눈조차 점점 작아지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친구의 집에 우르르 모여 각자 구입한 과산화수소를 대야에 모으고 머리를 감아 집단적으로 탈색을 시도하기도 하고, 색깔이 진한 립밤을 사서 어떻게든 쥐 잡아먹은 입술을 연출하고 싶어 용을 썼다. 민주가 남대문 지하상가에서 구루푸를 박스로 사 온 날에는 온 교실 아이들이 구루푸 하나씩 머리에 말고는, 반동적 옆머리를 구루푸의 물리력으로 진압하기도 하였다.




가정 수업시간이었다. 집에서 가져온 못 쓰는 헝겊에 박음질, 반박음질, 홈질, 감침질, 공그르기와 같은 것을 연습하는 중이었다. 머리에서는 쥐가 나고, 어깨는 끊어질 것 같고, 손가락은 바늘에 찔려 멍게가 되었다. 순식간에 자기들끼리 엉켜버리는 실을 푸느라, 어느새 눈은 사팔뜨기가 되었고, 미간에는 주름도 잔뜩 잡혔다.

앞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선생님이 갑자기 무심코 중얼거렸다.


- 참 예쁘다. 너네.


뭐라는 거지? 반어법의 일종인가... 대꾸할 가치가 없는 말이라 다들 조용했다. 선생님은 우리가 못 들은 줄 알고, 이번에는 부연설명까지 덧붙였다.


- 너희들 어쩜 이렇게 다 예쁘니. 인생에서 제일 예쁜 나이야. 이렇게 뭔가에 집중하고 있는 걸 보니 아주 반짝반짝 빛이 난다야.


우리들은 그제야 와하하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에에에에에이 뻥 치시네. 거짓말도 정도껏 하셔야죠. 자기가 더 예쁘면서.


일 년 내내 한결같이 우아했던 가정 선생님이 우리 같은 못난이한테 두 번이나 예쁘다고 했다. 그걸 액면가 그대로 믿는 얼뜨기가 어디에 있을까. 패션도, 화장도, 헤어도 어디 백화점에서 ‘단아함’이라는 브랜드로 토털 제품을 맞추기라도 한 듯, 그녀는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정한 미녀였다. 그런 사람이 우리한테 무슨 그런 씨알도 안 먹힐 소리를!


- 아냐, 진짜야, 나중에 너희도 알게 될 거야. 지금 너네가 얼마나 예뻤는지. 아유, 요 모습 그대로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 두고 싶다.


소녀 같았던 가정선생님의 말투가 너무 폭신해서, 하마터면 그녀의 말을 믿을 뻔했다. 지금이 가장 반짝인다는 그 말에 왜 나는 조금 슬펐던 것일까.


반짝이던 그날들이 한참 지난 후에야 우리는 그토록 마음을 옥죄던 외모 콤플렉스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눈에 거슬리던 치부들은 의학기술로 처리하거나, 습관의 개선으로 해결하거나, 정신적 승리로 극복할 수 있었다. 큰 골반은 관점을 바꾸니 오히려 자랑이 되었고, 비짜루 같았던 머릿결은 스트레이트 몇 번에 찰랑이는 생머리로 변신했다. 백만 년 테이핑으로도 꿈쩍 않던 외커플의 눈에는, 한두 시간의 수술로 느끼한 쌍꺼풀이 대번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를 절망에 빠뜨렸던 그 재수떼기 인형들도, 세월 앞에서는 공평하게 시들어버렸다는 점이 다른 무엇보다 고무적이었다.


심술궂은 백설공주의 거울도 진즉에 깨졌다. 그까짓 못생김 따위는 명함도 내밀 수 없을 정도로, 더 막강하고, 더 근원적인 열패감이 콤플렉스 왕국의 패권을 차지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근린공원을 산책하는데, 여중생 서넛이 벤치에서 한창 수다 중이다. 탁자 위에 파우치를 놓고, 한 명이 나머지에게 메이크업 레슨을 하는 모양이다.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관중의 집중력이 대단했다. 보송보송한 얼굴에 파우더가 덮이고, 곧이어 제 차례를 기다리던 도구들이 빵빵한 파우치에서 순서대로 튀어나왔다.


길에서 만나는 여중생들 중 쌩얼인 아이는 찾기가 어렵다. 화장한 초등학생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아는 여고생은 이제 맨얼굴로 집 밖에 나가는 건 상상도 할 수 없게 되었다면서, 피곤한 직장인처럼 푸념했다. 화장을 안 해도 이미 충분히 예쁘다고 말해주었지만, 그 애는 대꾸하기도 귀찮다는 듯 피식 웃었다. 됐거든요.


하교하는 학생들이 우르르 지나간다. 골목에 생기가 가득하다. 친구들과 까르르 숨 넘어가게 웃다가도, 30초에 한 번씩 핸드폰 액정에 얼굴을 비춰본다. 턱에 올라온 여드름이나, 한쪽으로 삐친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눌러보고는 다시 수다 삼매경에 빠진다. 수시로 주머니에서 빗을 꺼내 앞머리를 정돈하는 아이도 있다. 아무도 니 얼굴에 관심 없어, 엄마가 아무리 얘기해도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눈이 내 굵은 다리만 쳐다보는 시절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나간 골목에 꽃잎처럼 웃음의 파편이 흩날린다.

웃는 아이도, 찡그리는 아이도, 화장한 아이도, 맨 얼굴의 아이도, 예쁜 아이도, 못 생긴 아이도,

모두 다 어여쁘다.

나는 눈이 부셔 똑바로 쳐다볼 수 없다.


반짝반짝 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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