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에 올라가니 모두가 우리를 수험생이라 불렀다. 각반 담임은 입시전담 꼰대들이었다. 우리 반 담임은 김만철 씨. 올해 초 일가족을 데리고 북한에서 귀순한 김만철 씨와 똑같이 생겨서 생겨난 별명이었다. 그의 미간에는 늘 어떤 치열함이 고여 있었다. 조회 시간마다 김만철 씨는 똑같은 얘기를 지치지도 않고 반복했다. 시험이 얼마 안 남았다. 긴장해라.
당락이 결정된다는 말은 얼마나 가혹한가. 우리는 16년 삶 최대의 도전을 앞두고 있었다. 인문계 희망자는 연합고사 한 번에 명운이 걸렸고, 실업계 희망자도 원하는 고교에 단 한 장의 원서만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는 당락이 결정되었다. 동정심도 여백도 없는 시스템이다. 다들 어디서 구했는지 작년까지는 본 적 없던 철딱서니를 한 자루씩 지고 다녔다.
김만철 씨는 아침자습시간에도 교실에 들어와 어슬렁거렸다. 딱딱한 막대기를 들고 분단 사이를 돌아다니며, 졸고 있는 애들을 귀신같이 찾아내 머리통을 갈겼다. 칠판 오른쪽 꼭대기에는 <D-OOO>을 적어놓고 아침마다 주번이 숫자를 덜어냈다.
집 앞 골목 한 귀퉁이에 서점이 생겼다. 주택가 한가운데 구멍가게도 아니고 서점이라니. 심지어 그곳은 상가도 아니고, 어느 집 주차장이 있던 자리였다. 방마다 다른 세입자가 살고 있던 그 집에는 대문 옆에 셔터가 내려진 주차장이 붙어 있었는데, 먼 데 사는 집주인이 비어 있는 주차장에도 세를 놓은 것이다.
사업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유동인구는 따로 분석이 필요 없었다. 가게 앞을 지나는 사람의 9할은 동네 주민, 나머지는 계란, 생선, 야채, 고물, 생강엿을 싣고 다니는 리어카였다. 그들 중에서 책을 읽을 것으로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공사하는 소리에 호기심을 보였던 주민들은 그곳의 정체가 생필품을 파는 ‘상회’가 아니라 서점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곧 관심을 끊어 버렸다. 소비자가 등을 돌린 가게에는 금세 나른한 패배주의가 들어찼다. 밖에서 보면 언제나 주인아저씨 혼자 두꺼운 법전 같은 것을 읽고 있었다. 그는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도 쳐다보지 않았다. 반색하며 손님을 쫓아다니는 가게 주인의 참견만큼 부담스러운 것이 없기에, 그의 무관심은 어떤 환대보다 편안했다.
서점 한쪽 벽은 문고판의 영역이었다. 범우사, 삼중당, 을유문화사. 크기도 가격도 만만했다. 나는 제목이 끌리는 대로 한 권 골랐다. 지와 사랑. 헤세는 유일하게 아는 작가였다. 마당문고. 천 원. 내돈내산 첫 소설.
지금도 새 책을 사면 첫 장을 펴기 전, 잠깐 망설이는 찰나가 있다. 접을까, 말까. 확실하게 결정을 해야 갈등이 조기에 종식되고, 이후의 시간이 편해진다. 빳빳한 표지를 손바닥으로 야무지게 문질러 단숨에 헌책을 만들어 버리는 돌격대의 독서를 할 것인가, 아니면 종이 사이에 빨대를 꽂아 글자만 살살 빨아먹는 닌자의 독서를 할 것인가. 그때 나는 당연히 후자를 선택했다. 처음으로 돈 들여 산 책에 생채기를 남기기 싫었던 것이다. 종이끼리 붙어 안 떨어지면 검지에 침을 묻히는 대신, 신경을 연필처럼 뾰족하게 깎아 그 끝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지막 장이 넘어갔고, 나는 뒷 표지에서 신비한 표정으로 먼 데를 바라보는 흑백의 헤세와 마주하고 있었다. 엄청난 중력장에 빨려들어갔다가, 다시 반대 방향으로 거칠게 내쳐진 듯 머리가 어지러웠다. 책상 위에는 직사각형의 사물이 놓여 있다. 몇 시간 동안 신경이 곤두선 채 만지작거리던 것인데, 다시 보니 남의 물건처럼 낯설었다. 아직 누구에게도 함부로 비밀을 노출한 적 없다는 듯, 책은 뻣뻣하고 오연했다. 몸 속에 북을 하나 매달아 놓은 것처럼 둥둥둥둥 낮은 울림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책을 집어 들고 다시 서점으로 향했다. 아직 주머니에 용돈이 남아 있다. 이 괴상한 울림의 정체를 알려면 한 번은 더 그 세계로 다녀와야 했다.
- 잘 못 샀니?
주인은 문제가 생겼냐는 표정으로 물었다. 몇 시간도 안 돼서 사간 물건을 도로 가져왔으니 착오가 생긴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 다른 책으로 바꿔줄까?
순간, 귀를 의심했다. 눈이 번쩍 띄었다.
- 바꿔도 돼요?
- 그래. 다시 골라 봐.
악마가 손을 내미는 순간이다. 하지만 소심과 정직의 연맹이 유혹을 물리쳤다.
- 근데 벌써 다 읽었어요... 그래도 바꿔도 돼요?
원래 있던 자리에 책을 꽂으려다가 주인은 당황한 기색으로 멈칫했다. 그때 내 절박함이 묘안을 내놓았다.
- 혹시 책값의 절반만 내고 바꾸어 가면 안 될까요? 대신 지금처럼 깨끗하게 읽고 금방 가져올게요. (어차피 손님도 없잖아요.)
주인은 잠깐 고민하는 시늉을 하더니 곧 시큰둥한 얼굴로 대답했다.
- 어차피 손님도 없으니 그렇게 해. 대신 이틀을 넘기면 안 된다.
빅딜! 이어서 세부 조항에 대한 양해각서가 체결되었다. 대상은 문고판 도서로 한정. 비용은 5백 원으로 통일. 문고판 도서의 가격은 비슷했기에, 일일이 정가를 확인하는 번거로움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뜻밖의 횡재에 기쁜 나머지, 웬만하면 하루를 넘기지 않겠다는 특약까지 남발했다.
아다지오로 흘러가던 일상의 리듬이 프레스토로 돌변했다. 하루에 책 한 권을 완독 하자니 꼬리에 불을 붙인 듯 마음이 바빠졌다. 하굣길에 책을 바꿔 자기 전까지 읽고, 그래도 못 다 읽으면 학교에 가져가 어떻게든 해결했다. 두께에 따라 조금씩 달랐지만, 문고판은 얼추 이틀이면 결말에 도달했다. 수업이 늦게 끝난 날에는 조급한 마음에 서점까지 달렸다. 숨을 몰아쉬며 유리문을 열면, 주인은 해파리가 부유하는 투명한 주머니 속에 담겨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무언가를 읽고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신속하게 책을 고르고 프런트에 동전을 올려놓고, 눈치 빠른 고양이처럼 발소리도 없이 그곳을 빠져나왔다.
커다란 책장 앞에서 나는 매일 시험을 치르는 기분이었다. 이번에는 어떤 책인가. 내게는 상식이 없었고, 세상에는 인터넷이 없었다. 유일한 단서는 표지 디자인과 제목. 하지만 문고판 시리즈는 디자인의 차별성마저 희석해버려서, 내게 남은 것은 제목이 주는 느낌적 느낌뿐이었다.
워낙에 소양이 없으니 선입견도 없어서, 백지처럼 하얀 마음으로 블라인드 선발에 돌입했다. 마음이 이끄는 제목의 책을 고르고, 그다음에는 맨땅에 헤딩하는 마음으로 무조건 달리는 것이다.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었지만, 내게 500원은 큰돈이었다. 너무 어려운 책을 고른 바람에 ‘이번 판은 나가리’라고 선언하고 싶을 때면, 엄격한 경제관념이 '본전 생각'은 안 할 거냐며 내 나약함을 꾸짖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순진한 내게 함정을 파고 빅엿을 선사한 제목의 계략을 저주했다.
<적과 흑>을 집어 들며 나는 유년의 치열했던 이전투구를 떠올렸다. 매일 흙구덩이를 뒹굴며 주먹싸움을 하던 아이들. 흑이 아니라 흙이라고 써야 하는 거 아닌가, 아주 잠깐 생각했지만 곧 잊었다. 앞에 놓인 ‘적’이 너무 강렬해서 다른 가능성은 자동으로 삭제되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적도, 흑도, 흙도 없었다. 꼬박 하루를 빙의된 채 살았던 쥘리앙 소렐이 끝내 단두대에서 처형되어 버리는 바람에 내 목이 잘린 것 같은 충격이 덮쳤을 뿐.
<인형의 집>은 알콩달콩한 동화인 줄 알았다가 조금씩 심란해졌고, <병신과 머저리>는 얄개가 등장하는 덤엔더머 풍의 코믹 활극을 기대했다가 완벽하게 실망했다. <사반의 십자가>는 로마시대를 배경으로 예수님이 등장하는 벤허 류의 내용이었는데, 작가가 한국 사람인 것이 의아해서 몇 번이나 책 표지를 확인하곤 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춘희>였다. 춘희는 둘째 고모의 이름이었다. 친구를 좋아하고, 맥주를 좋아하고, 미용사인 친구들과 그 미용실에서 맥주 마시는 것을 좋아하던 춘희 고모. 친구 미용실에서 곁눈으로 배운 파마 기술로 마당에서 할머니의 머리를 말아주던 춘희. 시집도 안 간 처녀였지만 화통한 목소리로 껄껄껄껄 웃고, 검붉은 얼굴빛이 유비 동생 장비를 닮았던 춘희. 수가 틀릴 때마다 나와 동생에게 욕도 시원시원하게 하고 대신 먹을 것도 선뜻 잘 사주던 춘희.
나는 당연히 그 책이 김유정의 <봄봄> 같은 내용일 거라고 믿었다. 점순이한테 놀아나는 어리버리한 소년 대신 왁자지껄하고 우악스러운 춘희가 벌이는 한바탕의 소극(笑劇). ‘봄봄’ 대신 봄의 여인 춘희. 하지만 뒤마의 마르가르트는 춘희 고모와 닮은 구석이 전혀 없었고, 나는 마르가르트라는 비련의 여인이 어째서 춘희인지 그 가당치 않은 작명 솜씨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
500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결국 포기한 책도 있었다.
- 파우스트, 팡세, 델러웨이 부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유리알 유희, 구토,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목만으로도 허영심과 공명심이 충족되는 책들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읽을 수는 없었다. 분명 한국어로 적혀 있는데 끝내 독해가 불가능했다. 알 수 없는 외계인의 말로 이토록 두꺼운 책을 채울 수 있다니, 작가의 위대함이란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대여와 반납이 반복되면서 내 가슴속에도 살금살금 나만의 명작이 쌓여갔다.
- 수레바퀴 아래서, 싯다르타, 슬픔이여 안녕, 삼포 가는 길, 멋진 신세계, 페스트, 위대한 개츠비, 무진기행, 설국, 대지. 달과 6펜스, 날개, 이방인, 성, 테스, 타인의 방...
책을 덮고 나서도 한 동안 가슴앓이가 멈추지 않았다. 주로 주인공의 갈망과 좌절이 선명한 작품들이었다. 이런 삶도 있구나. 우여곡절로 가득한 그들의 일생에 동행하다 보면, 어떤 이벤트도 없이 편협했던 내 일상이 대륙과 역사를 넘나들며 확장되었다. 가혹한 운명에 정통으로 때려 맞은 듯 매일 마음이 노곤했다. 시간은 늘 촉박했다. 어제 읽은 책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데, 곧 다른 책을 골라 들었다. 아직 내 속에 누군가 살고 있는 데, 또다시 누군가에게 초대장을 띄웠다. 프레스코 천정화처럼 수많은 인물들의 삶이 덧칠되어, 나중에는 지금 이 울렁증이 누구 때문인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지경이었다. 바이러스 걸린 동영상 파일처럼 종일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되는 장면들 때문에 신경증 직전에 몰리는가 하면, 내 간절함을 짓밟는 비극적 결말에는 며칠 동안 회한에 사로잡혀 모든 의욕을 잃어버리기도 하였다.
내가 호랑나비의 꿈을 꾼 것인지, 호랑나비가 내 꿈을 꾼 것인지 헷갈려 죽겠다던 장자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과 완벽하게 달랐지만, 500원짜리 백동전 하나면 그 별천지로 향하는 문이 마법처럼 열렸다. 책은 반납할 수 있어도, 남겨진 여운은 반납이 불가능했다.
이 고매한 일상의 가장 큰 훼방꾼은 담임이었다. 담임은 중3이 무슨 죽을 날 받아놓은 시한부 환자라도 되는 양, 허구한 날 시간을 아껴 쓰라며 안달이었다. 초월적 삶을 꿈꾸는 내게 고작 연합고사를 논하다니. 천박하고 속물적이다. 박차를 가하라니, 내가 말이냐? 긴장을 바짝 죄라니, 내가 봇짐이냐? 한마디를 하면 열 마디 반발이 목구멍을 치고 올라 헛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담임은 아이들의 연간 모의고사 성적표를 책처럼 다발로 묶어 매일 들여다보았다. 60명 중에서 인문계 합격자는 25명 정도. 좋은 여상을 가려면 반에서 10등 안에는 들어야 한다. 담임은 자기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모두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있다면서, 눈에서 레이저 빔을 뿜었다.
담임의 결연함은 내 관심 밖이었다. 나는 자습시간마다 소설을 읽었다. 전 생을 통틀어 가장 주목할 만한 저항이었다. 눈에 튀는 뻘짓은 없었지만, 남들 다 공부하는 공간에서 바로 그걸 안 하고 버티는 것 자체가 엄청난 반역이고 비행이었다.
담임은 학년 초부터 팀워크를 강조했다. 심지어 급훈도 담임이 마음대로 정했다. 단단한 차돌보다 끈끈한 밥알이 되자. 다른 반의 클래시컬한 급훈 -정직, 성실, 최선, 헌신-에 비해 얼마나 구리고, 구차하고, 구구절절하고, 구질구질한가. 아무튼 담임은 누구 혼자 잘나서 튀는 것보다 모든 구성원이 똘똘 뭉쳐 집단의 위력을 과시하는 것을 더 중시했다. 그런 그에게 내 태도는 식물로 치면 눈엣가시, 동물로 치면 미꾸라지 같은 것이었다.
모두가 문제집을 풀고 있는 평화로운 아침자습 시간, 혼자 엉뚱한 책을 꺼내 읽는 관종 같은 내 모습에 담임은 결국 나를 호출했다.
- 이 새끼가 정신 안 차려? 너 혼자 사는 세상이야? 공부 안 해?
드디어 내게도 세계와 자아의 한판 투쟁이 발발했다. 삿된 세력과 싸우는 결사대처럼 나는 싸가지를 버리고 대항했다.
- 공부 다 했는데요?
하지만 이 터무니없는 대답에 담임은 그저 픽 웃고 말았다. 대꾸하기도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 제발 잘 하자, 응?
화석연료마냥 이글이글 불타오르던 반항심이 담임의 웃음 때문에 힘을 잃었다.
D-day는 12월 8일. 시험은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아이들은 동아출판사나 교학사의 <15년간 고입 총정리>를 펴놓고 막판 스퍼트를 내는 중이었다. 매달 치르던 모의고사는 시험이 가까워오자 격주로 당겨졌다. 시험이 있는 주간에는 담임과 나의 신경전은 더 날이 섰다. 나는 여전히 보란 듯이 자습시간에 소설책을 폈고, 한참 있다가 옆통수가 찌릿해서 고개를 들면 담임이 퇴학시켜 버리고 싶다,는 표정으로 째려보고 있었다.
공부를 접은 것은 아니었다. 공부를 다했다,는 지나가던 똥개도 웃을만한 뻥을 첬으니, 일말의 대비는 필요했다. 집에 돌아가면 시간을 정해놓고 밀린 공부를 몰아쳤다. 담임 앞에서 문제집을 펴기는 싫었다. 우리는 이미 너무 멀리 왔다. 책 반납은 이틀을 넘기면 눈치가 보였기에 소설도 읽어야 했다. 시간이 모자라 죽을 지경이었다. 고3 때도 그때처럼 치열하게 시간을 아껴 쓴 적은 없었다. 사춘기 반항이 해괴한 장르로 꽃을 피웠던 탓에 하루하루가 단거리 경주처럼 숨차게 흘러갔다.
이 가열찬 신경전은 엉뚱한 이유로 종식되었다. 하교 길에 서점에 들렀더니 이사가 한창이었다. 너 같은 애들만 꼬이니 내가 망하지. 아저씨가 나를 발견하고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충격에 말문이 막혔다. 내 손에 최후로 남은 책은 <백 년 동안의 고독>.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익히는 단계에서부터 막혀 결국 눈물을 머금고 포기한 책이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의 아들은 호세 아르카디오와 아우렐리아노이고, 다시 아우렐리아노의 아들은 아우렐리아노 호세, 다시 아울레리아노 호세의 조카는 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와 아우렐리아노 세군도. 그들의 아들은 다시 호세 아르카디오. 그의 조카는 다시 아우렐리아노. 아이큐가 500쯤 되어야 족보 파악이 가능할 것 같았다.
이제 어떡하지? 망가진 나침반처럼 나는 짐을 싸는 일꾼들 주변을 맴돌았다. 집에 책이라고는 없다. 누가 산 것인지 알 수 없는 오래된 선데이서울 몇 권, 한자가 절반 이상 섞인 양장판 수필집 한 질, 그게 다였다. 학교에 도서관이 있다는 풍문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유일한 영혼의 급식처가 폐업을 한 것이다. 모든 희망은 끝났고, 이제 나에게는 백 년 동안 이어질 고독만 남았다.
며칠을 뒹굴다 보니, 심심했다. 시험은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왔다. 자습시간에 드디어 문제집을 꺼냈다. 담임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굴욕스러웠지만, 어차피 담임과의 신경전에도 예전만큼 흥미가 없었다. 공부도 그저 그랬다. 시간에 쫓기며 숨어서 공부할 때에는 집중도 잘 됐었는데, 종일 문제집을 들여다 보고 있자니 오히려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모든 것이 시들했다. 관료주의 조직의 중간 계급처럼 총기가 사라졌다. 어차피 고등학교에 가면 헤세의 책 대신 홍성대의 책(수학의 정석)을, 괴테의 책 대신 서성문의 책(성문종합영어)을 봐야 한다.
운명의 격랑에 휩쓸려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밀려가는 주인공처럼, 정신없는 시간이 흐르고 나니 어느덧 나는 고등학생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