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미역국에 도전했던 스무 살, 나는 미역이 그토록 위험한 사물인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늦은 밤 배가 고파 싱크대를 뒤지다가, 라면인 줄 알고 집어 든 것이 건미역이었다. 그것은 작은 비닐 봉다리 속에 시무룩하게 웅크리고 있었다. (이때 정체를 눈치챘어야 했는데!) 라면은 없었고, 배는 고팠고, 미역국 정도라면 해볼 만했다. 물을 붓고 끓이면 되는 거 아닌가? 짜면 물을 더, 싱거우면 소금을 더.
나는 넉넉한 냄비에 물을 받아, 봉지에 담긴 미역을 톡 털어 넣었다. 너무 가벼워 냄비가 허전했다. 한 봉지 더 넣어야 하나 망설였지만, 한 끼 정도는 먹을 수 있겠지 싶어 그냥 참았다. 냄비를 불에 올리고, 방으로 들어가 친구와 잠깐 통화를 했다. 그러고 나서 몇 분 뒤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생지옥을 경험한다.
부엌에서 양은 냄비가 비명을 질렀다. 큰일 났어. 빨리 와 봐. 얼른, 얼른, 얼른!
달그락달그락-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 치이익치이익- 물과 불이 다투는 소리, 철퍼덕철퍼덕- 점액질이 마루로 낙하하는 소리. 어마어마한 환란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그것이 있었다. 검은 머리를 풀어헤친 그것이.
귀기 넘치는 염력으로 뚜껑을 들썩거리던 그것은, 냄비 속에서 사부작사부작 세력을 키우더니, 마침내 두둥! 본모습을 드러냈다. 냄비 바닥에 지옥과 이어지는 터널이라도 뚫린 듯, 검은 머리를 산발한 괴물이 성난 마그마처럼 꾸역꾸역 흘러넘쳤다. 텔레비전 밖으로 기어 나오는 영화 <링>의 사다코 유령 같았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가스불을 잠갔다. 냄비 속에서는 아직 본때를 다 보여주지 못한 잔존세력들이 분한 듯 숨을 몰아쉬었고, 봉두난발로 바닥에 떨어진 것들은 해방감에 한껏 팔다리를 뻗었다. 이 공포스러운 현상의 정체는 무엇일까. 혹시 내가 개봉한 것이 평범한 미역 포장지가 아니라, 천년 봉인되었던 원귀의 은신처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어째서 그것은 건질 것 하나 없는 우리 집에 숨어 있다가, 하필 나처럼 심약한 쫄보를 덮친 것일까.
싱크대에 나뒹구는 포장지를 찾아 요리조리 살펴보다가, 나는 봉지 하단에서 경악스러운 문구를 발견하기에 이른다.
- 50g. 20인분.
2인분이래도 놀랄 판인데, 20인분. 이 작은 한 봉지면 무려 스무 명이 먹을 미역국을 만들 수 있다는 소리였다. 20인분도 놀라웠지만, 50g이라는 숫자도 경이로웠다. 뭐랄까, 질량과 부피와 물질의 변화 양상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물리화학적 실체를 지니고 지구에 존재할 수 있는 생명체는 아닌 것 같았다. 20명 먹일 국을 끓이려면 스머프 수프를 꿈꾸는 가가멜의 무쇠솥만큼이나 큰 그릇이 필요할 것이다. 냄비 하나에도 허전했던 그 가벼운 미역이, 큰 솥을 가득 채울 정도로 변신한다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지 않았다. 도대체 저 순정하고 유익한 갈조류한테 무슨 사연이 숨어있는 것일까.
정체를 감춘 채 은둔하다가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 모든 것을 압도해버린다는 측면에서 볼 때, 마른미역은 슈퍼맨, 헐크, 스파이더맨의 계보를 잇는 변신 히어로의 정통 적자라 할 것이다. 아직도 나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마트 선반에 숨어있는 봉지 미역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그날의 충격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눈은 못 속인다. 나는 검지와 장지를 쭉 펴서 내 눈과 그놈의 눈을 번갈아 찌르고 돌아선다.
여전히 세상에는 수많은 괴물들이 인간의 삶 속에 공존한다. 관심의 사각지대에 숨어 있다가 인간의 방심이 통로를 열어주면, 그 기회를 타고 나약한 인간의 일상 여기저기로 출몰한다.
3월이면 그놈이 깨어났다.
3월의 괴물. 그놈 때문에 3월이면 나는 대체로 불행했다. 3월에는 학교에 가는 것이 고역이었다. 굼벵이가 7년 절치부심을 종식하고마침내 가공할 성량을 지닌 매미로 우화 하듯,3월만 되면 그놈은 오랜 칩거생활을 끝내고자 굼싯굼싯 몸을 풀었다.
3월 2일. 새 학년의 첫날, 교실의 자리는 아직 주인이 정해지지 않아, 등교한 아이들은 저마다 쭈뼛거리며 앉을 곳을 탐색했다. 어디에 앉아야 하나. 책상은 두 개씩 짝을 지어 5분단으로 도열되었다. 나는 뒷문으로 들어가 빈자리를 스캐닝한다. 두뇌가 원심분리기의 속도로 회전한다. 이미 누군가 옆자리에 앉아 있는 책상은 제일 먼저 선택지에서 삭제된다. 환영받지 못할 일말의 가능성이 두렵기 때문이다. 어... 여기 앉을라구? 인사 대신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이런 질문부터 던지는 자와 짝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발생 가능한 리스크를 순식간에 분석하고 나면, 곧이어 60개의 옵션 중에서 가장 적합한 결론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빈 책상 중 가급적벽과 붙은 자리를 고르는 것이다.자리를 정하고 나면 문제는 이제 내 손을 떠났다. 과연 누가 내 옆에 앉을 것인가, 남은 것은 이것 하나다.
아이들이 한 명씩 교실로 들어올 때마다, 바짝바짝 신경이 곤두섰다. 기왕이면 마음에 드는 애랑 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가, 아무도 내 옆에 앉기 싫어하면 어쩌나, 금세 현타가 몰려오기도 했다.그러면서 겉으로는 무심한 표정까지 연기하느라 안 그래도 부실한 멘털이 조각조각 쪼개질 지경이었다. 교실의 책상 수는 어차피 학생 수와 일치하기에, 결국 빈자리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모두에게 배척받는 최후의 일인이 되는 상상을 하다가 미리부터 알아서 풀이 죽곤 했다.
3월 첫 주는 내내 이런 식이다. 3월의 괴물이 나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마징가제트에 탑승한 쇠돌이처럼, 괴물은 내 심장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제멋대로 이리저리 나를 흔들었다. 나는 고분고분 그의 말에 순종한다. 고개를 숙이고, 여기저기 눈치를 보면서,누구한테도 먼저 말을 붙이지 않는다. 내 욕망은 괴물의 의지와 달랐기에, 마음은 늘 두 갈래로 갈라져 분열된 심장에 통증이 밀려왔다. 활발한 아이들이 여기저기 말을 트고, 하나둘씩 무리가 되어가는 과정을 나는 뒤통수로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한눈에 반할 만큼 마음에 드는 친구도 있었지만, 그래 봤자 소용없다. 3월의 괴물이 내 입을 꽁꽁 닫아, 진심이 밖으로 세나가지 못했다. 친해지고 싶었던 아이가, 다른 이들과 조금씩 가까워지다가 결국 단짝이 되는 모습을 나는 무기력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커다란 귀는 심장에 붙었고, 입은 흔적기관처럼 기능을 잃었다.
가끔 교실 한 구석에서 나와 비슷한 눈빛을 한 아이들을 만날 때도 있다. 역시나 3월의 괴물에게 마음을 저당 잡힌 아이들이다. 우리는 단박에 서로의 처지를 눈치 채지만, 같은 극을 밀어내는 자석처럼 오히려 한걸음 물러설 뿐이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지만 누구의 주목도 받지 않도록 우리들은 조심조심 교실문을 여닫곤 했다.
반면 어떤 아이들에게는 3월의 괴물이 힘을 쓰지 못했다. 얘들아, 안녕!!! 대상을 특정하지 않는 너그러운 인사를 덩크슛처럼 공간에 꽂아 넣으며, 아침마다 그들은 떠들썩하게 등장했다. 윤은 우리 반 대표 슈터였다.
윤은 풀 같은 아이였다. 가공할 붙임성으로 반 친구들을 순식간에 접수했다. 들판의 풀처럼 살랑살랑 흔들리다가, 넋을 놓은 이들의 일상에 딱풀처럼 들러붙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붙이는 데도 망설임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말도 붙이는 거였다.) 비 오는 날의 풀잎처럼 싱그러운 윤을 반 아이들은 모두 좋아했다.
윤이 등장하면 조용하던 아침 교실에 소나기가 내렸다. 후드득 후두둑 생기가 돌면서 곧 여기저기서 물방울 같은 웃음이 터졌다. 까만 몽돌처럼 윤기가 흐르는 얼굴에, 장난기 가득한 작은 눈을 반짝거리며 윤은 아이들을 주욱~~~ 훑어보았다. 오늘은 누구를 좀 놀려볼까.
그날의 타깃은 승연이였다. 승연의 집은 식당을 했다. 식당 이름은 마산댁 아구찜. 그날 윤은 아이들을 모아놓고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 승연이 어머님은 진짜 생각이 깊으신 거야.
또 시작인 건가. 호기심과 기대감을 번들거리며 아이들이 윤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당사자인 승연은 모종의 불안감을 느꼈지만 그 역시 다음 말이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 승연이 어머님이 식당 말고, 유치원을 하시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치자. 그럼 정말 난처한 일이 벌어지는 거지.
이 무슨 족보 없는 가정법인가? 모두 침을 삼키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잠깐 뜸을 들인 윤은 갑자기 발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꽃밭에는 꽃들이 모여 살고요, 우리들은 유치원에 모여 살아요. 마산댁 유치원, 마산댁 유치원~ 꼬맹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이런 노래를 불렀을 거 아냐.
푸하하하~~ 아이들이 동시에 나뒹굴었다. 승연만 표정이 복잡했다. 이게 지금 화를 내야 할 상황인가아닌가, 웃긴데 내가 웃어도 되나 안되나, 윤은 승연의 갈등이 끝나기도 전에 잽싸게 다음 말을 덧붙였다.
- 정말 다행이지 않냐? 유치원을 포기하시고 식당을 하신 거 말이야. 안 그랬으면 우리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식당이 없는 거잖아. 거기 되게 유명해. 엄청 맛있고. 너희도 나중에 꼭 가봐.
승연의 표정이 슬쩍 풀렸다. 이후 며칠 동안 우리 반 음원차트 1위는 ‘마산댁 유치원’이었다. 한번 입에 달라붙은 그 노래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아서, 아이들은 한동안 화장실을 가거나 청소를 하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마산댁 유치원’을 흥얼거렸다. 심지어 승연이조차.
별것도 아닌 얘기도 윤의 편집을 거치면 한 편의 코미디로 변모했다. 박장대소를 하며 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웃음이 교실 전체로 전염되었다. 그의 주변에는 아이들이 늘 북적거렸다. 나역시 윤이 입을 열면 저절로 귀가 커졌다. 그래서 나도 윤과 친구가 되고 싶은 줄 알았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니 꼭 그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깨달았다. 아귀가 잘 맞는 관계가 되기에는 윤과 나의 요철은 모양도 크기도 모두 달랐다. 무리에 섞여 있어도 윤은 늘 빛이 났는데, 그 빛을 오래 보고 있자면 나는 어쩐지 눈이 시렸다. 성대에 힘을 빼고 소곤소곤 얘기하는 내 말버릇과 달리 윤의 성량은 사정거리 2미터까지 커버할 정도로 거침없고 화통했다. 성격 좋은 승연이는 윤의 친구가 되었지만, 윤의 놀림에 악의가 없다 해도 소심한 나는 아마 도망치거나 홀로 낙담했을 것이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3월의 괴물도 여지없이 몸을 풀었고, 교실에는 또 다른 윤이 등장했다. 겨울 코트를 입기에도 봄 잠바를 입기에도 어정쩡한 날씨 탓에 종일 손발은 시리고 어깨는 움츠러들었다. 너는 왜 윤이 되지 못하니. 나는 나에게 따져 물었다. 집에 같이 갈 단짝을 구하지 못한 탓에 홀로 걷는 하굣길은 길고도 우울했다. 추위와 낯가림으로 침울한 하루를 보내고 나면, 온몸의 기력이 다 빠지고 아스라한 슬픔이 밀려왔다.
영혼은 점점 땅굴을 파고 가라앉았고, 땅굴 밑바닥에서는 냉정한 목소리의 메아리가 종일 같은 이야기를 내 귀에 속삭였다.
- 윤은 옳고, 너는 그르다. 윤은 우월하고, 너는 열등하다. 윤은 승리할 것이고, 너는 끝내 패배할 것이다.
하지만 3월의 괴물은 4월이 되면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세상에 하얀 벚꽃잎이 흩날릴 즈음이면, 시즌이 끝난 계절 장사를 거두듯 3월의 그놈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4월의 나는 어느새 마음이 통하고 성품이 순한 친구들과 웃고 떠든다. 도시락을 같이 먹고, 떡볶이 집에 같이 가며, 집에서는 밤늦도록 전화를 한다. 굽었던 어깨도, 꼬깃꼬깃 뒤틀렸던 마음도, 물에 잠긴 미역처럼 조금씩 유연함을 되찾곤 했다. 3월의 괴물이 가면, 이렇게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
직장에 들어와 처음으로 MBTI 검사를 하고 나서, 학창 시절 내내 나와 동행했던 그것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3월마다 출몰하던 괴물의 이름.
- 내향성.
에너지의 방향이라 해석되는 그것. 내 자아는 극내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향형들의 충전기 단자는 타인이 오지 못하는 내밀한 곳에 감춰져 있다. 에너지를 충전하려면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잠시 머물러야 한다. 혼자 있어야 활기가 차오르고, 활기가 채워져야 더 힘찬 자들과 어울릴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향해 매일 호기심 어린 촉수를 뻗던 그때에, 어쩌자고 내 에너지는 고립된 곳에서만 충전되었던 것일까. 내향형이라고 해서 세상과 사람에 대해 관심이 덜한 것도 아닌데, 그 격렬한 기웃거림이 끝나면 긴 여행에서 돌아온 탕아처럼 농축된 피로가 심신을 가득 채웠다. 겨울도 아닌데, 겨울보다 추웠던, 다가서고 싶은데 다가서기 힘들었던 그 고독한 맹춘의 갈등.
개인의 성향은 우열의 문제가 아니고, 그저 선호도에 불과하다고, 행여 무지한 오해로 좌절감에라도 빠질세라, MBTI 해설지는 경계하고 또 경고했다. 내향형이라고 해서 절대 열등한 게 아냐. 알겠지? (인간은 본래 넓은 세상에서 낯선 존재들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성장하는 것이 숙명이기에, 내향형들은 불안하고 불편한 표정으로 어디 끼워주는 곳이 없나 눈치만 살피다가,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난 원래 혼자가 더 편하다며 정신적 승리로 자위하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내향형은 절대 틀린 것이 아냐. 그냥 다른 거야. 혹시 오해할까 봐 말하는 거야.
MBTI 매뉴얼은 지혜로운 할머니처럼 내 마음을 토닥토닥 두들겨 주었다.
3월마다 내가 그토록 힘들었던 이유를 이제라도 알게 되니, 어쨌거나 지금은 속이라도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