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랑도리 Nov 10. 2021

불규칙 동사 완전정복



장미가 멀리서 손을 흔들었다. 교문 앞에서 장미가 나를 기다린 것은 오랜만이다. 나는 섭섭했다. 못 본 척 땅만 보며 걸었다. 내 섭섭함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고작 외면하는 것뿐이어서 더 화가 났다. 내가 눈길을 피하니까, 장미도 굳이 나를 부르지 않았다. 마음은 정반대였다. 장미가 달려와 내 등을 툭 치며, 삐졌냐, 물어주기를 고대했다. 그랬다면 나도 5초 정도 째려보다가, 죽을래? 막혔던 말문을 열며, 결국 참내, 참내, 하면서 헛웃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하지만 한참 있다 뒤돌아 보니, 장미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남양주 어디랬나? 담임이 전학생을 소개하는 동안 교실에 정적이 흘렀다. 모두 얼이 빠졌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생겼지? 15년 인생 통틀어 만나 본 사람들 중 제일 예뻤다. 주변에 성형수술을 한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그 시절, 우리는 대부분 북방계 몽골인종의 유전자가 충실하게 구현된 외모를 하고 있었다. 한 미모 하신다는 아이들도, 그래 봐야 거기서 거기였다. 호박에 줄 그은 정도.


아이들은 한순간에 장미에게 반해 버렸다. 보고만 있어도 심미적 욕구가 충족되었다. 유난히 속눈썹이 길었던 왕눈은 태어난 지 한 달 된 시골 백구를 닮았고, 입술 양 끝으로 보조개를 만드는 살인미소는 집사의 손가락을 깨무는 새끼 고양이의 것이었다. 장미를 볼 때마다 극렬한 호감이 뇌하수체를 자극하여 도파민이 한 바가지씩 분비되었다. 질투나 텃세도 없었다. 괜히 꼬투리를 잡고 싶다가도, 장미가 말끄러미 쳐다보면 까칠했던 말의 가시가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장미순이 이름이었지만 다들 장미라 불렀다. 그 얼굴에는 미순이보다는 장미가 제격이었다.


아이들이 장미에게 반해버린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전대미문의 얼빵함이 그것이다. 유리왕의 <황조가>를 배운 날, 명숙은 장미에게 은밀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 얼마 전 고구려 무덤에서 이 시의 두 번째 연이 새로 발굴되었대. 언니가 읊어볼 테니 한 번 들어 봐.

관심 없다는 장미를 굳이 앞에 두고, 명숙은 진지한 표정으로 낭송을 시작했다.


- 펄펄 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다운데,  외로워라 이 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 여기까지가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고

- 문밖에는 귀뚜라미 울고, 산새들 지저귀는데, 내 님은 오시지는 않고, 어둠만이 짙어가네... 이게 이번에 발굴된 두 번째 연이야.  

 

김범룡의 팬이었던 명숙이 오늘의 개소리를 발행한 것이다. 내친김에 명숙은 무리수까지 두었다. 황조가는 중요한 작품이라 중간고사에서 틀림없이 외워쓰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특히 2연.

혹시나 하고 귀를 열어두었던 아이들이, 역시나 하며 혀를 찼다. 하지만 쉬는 시간마다 중얼중얼 '바람바람바람'의 가사를 연습장에 옮겨 적는 장미의 모습을 보고, 아이들은 노다지라도 발견한 것처럼 동시에 전율했다. 권태의 바다에 돌멩이 하나가 떨어진 것이다. 뭐 좀 재밌는 일 없나, 늘 무료사의 위험에 시달리던 아이들은 펜을 잡고 웅크린 장미의 뒤통수에서 새 희망의 싹을 발견한다. 곧 아무 말 대잔치의 서막이 올랐다.


장미가 제일 잘하는 말은 ‘아~ 진짜?’였다. 누가 어떤 헛소리를 지껄여도, 장미는 가뜩이나 큰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진짜? 진짜? 하면서 놀라곤 했다.


- 빨리 집에 가서 일해야 해. 집에서 돼지를 키워서 내가 아주 바쁘거든. (아, 진짜? 서울에서도 돼지를 키워?)

- 서울에서는 도시락에 소세지 싸오면 안 돼. 혼분식장려운동이랑 소세지금지가 한 세트야. 지난달에도 3학년 두 명이 소세지 싸왔다가 정학 먹었어. (아... 진짜? 나 소세지 좋아하는데...)

- 나 사실 중학교 재수했어. 앞으로 언니라고 불러. (아, 진짜...요?)


중삐리의 상상력이 허락하는 온갖 유치찬란한 말들이 책상 사이로 강물처럼 범람했다. 정말이지 더럽게 재밌었다. 신나서 떠들던 자가, 이야기 끝에 ‘뻥이야’라고 소리치면, 장미는 ‘어우야~~’하면서 반달눈을 만들었다.  그 표정에 중독된 아이들은 자신에게 허락된 창의력의 마지막 한 점까지 끌어모아, 장미를 놀리는 데 탕진했다.      




그 당시 나는 영어의 불규칙 동사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중이었다. 부모의 경제력과 시험 점수가 양의 상관관계를 이루는 대표적 과목이 영어다. 영어에 대해서라면 나는 새벽에 내린 첫눈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완전무결한 백지 상태 혹은 백치 상태. 알파벳조차 중학교에 들어가 처음 외웠다. 대문자에 소문자, 인쇄체에 필기체가 내연의 애인처럼 숨어 있었다는 사실에는 큰 충격을 먹기도 했다. 선생님은 알파벳 4세트를 내일까지 외워오라고 (미션임파서블 계의 조상인 팥쥐 엄마처럼) 얘기했다. 헷갈려 돌아가실 것 같았다. 뻑하면 b와 d, p와 q를 바꿔 썼다. 필기체는 보면서도 따라 쓰기가 힘들었다. 영어가 그렇게 어렵다더니, 드디어 소문의 실체와 마주한 것 같았다.  

나는 알파벳이 소리문자라는 사실도 몰랐었다. 교과서 1과 첫 문장은 Good morning. 나는 일단 단어 아래에 ‘군모닝’이라 한글로 적어놓고, ‘엠오알엔아이엔지’는 주문처럼 따로 외웠다. 발음기호를 배우고 나서야, 생짜로 머릿속에 쑤셔 넣던 스펠링이 사실은 소리값을 지닌 음성 기호의 나열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우쳤다. 암실에서 전등 스위치를 찾은 것처럼, 돈오의 불빛이 번쩍했다.

영어는 그런 과목이었다. 단서를 숨겨놓은 방탈출 게임 같은 것. 주어진 것은 교과서 한 권과 만사 심드렁한 교사 한 명뿐. 참고서도, mp3 파일도, 원어민 친구도 없었다. 세계지도 한 장 쥐고 뉴욕에 사는 토마스를 찾아 나서는 것만큼 막막했다. 새 단원이 시작되고, 그 장의 Grammar & Structure가 등장하면, 이번에는 또 어떤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지 몰라 미리부터 마음이 어수선했다.


불규칙 동사는 깡패 중 깡패였다. 따라올 테면 따라와 보든가. 난수표와 같은 무작위 정보가 앞에서 달려가면, ‘닥치고 암기!’를 복창하며 볼펜과 연습장이 뒤를 따랐다. 대환장 카오스의 문이 열린 것이다. 우주는 넓고 동사는 하늘의 별처럼 많았다. (적어도 그때 내 기분에는 그랬다) cut-cut-cut이나 hit-hit-hit처럼 단순한 별자리도 있었고, come-came-come,  run-ran-run처럼 촐싹이 별도 있었다. taught와 thought, bought와 brought는 소리도 글자도 다 헷갈려서 견우성, 직녀성처럼 쌍으로 내게 덫을 놓았다. 심지어 go나 be처럼 쉬운 단어가 과거형은 어이없게 went와 was였다. 원형과 철자가 한 개도 겹치지 않는 낯선 모습. 가장 친숙한 존재가 가장 이질적인 얼굴로 돌변하는 그들에게서, 생의 밑바닥에 도사린 배반의 향기마저 느껴졌다. 유주얼 서스펙트의 카이저소제와 같은 놈들이었다.

규칙 동사들은 고요했다. 마주한 자를 시험에 빠뜨리지 않는다. 과거도, 그보다 더 먼 시간도 투시가 가능했다. 어제가 그랬듯이 내일도 다를 것은 없다고, 그들은 의심 많은 나를 다독여 주었다. 이렇게 명확한 룰이 있는데 왜 어떤 말들은 미친 망나니처럼 날뛰는 걸까. lie, lay, lain, laid, lied와 씨름하다가 그냥 영어를 포기해야겠다고 결심하려는데, 말들이 내 귀에 속삭였다. 뻔하기만 하면 재미없지 않냐고.

정면돌파 외에는 답이 없었다. 나는 깨끗한 종이를 놓고 교과서에 부록으로 딸린 불규칙 동사표를 베껴 썼다. A4 양면에 빽빽했다. 옮기고 나서는 종이가 닳을세라 무려 200원이나 주고 코팅까지 했다. 들고 다니며 외우고, 외우다가 속에서 천불이 나면 그걸로 부채질도 할 수 있는 (병 주고 약 주는) 능률적 사물이었다.


- 그거 뭐야?

뒤돌아보니 장미가 서 있다. 얼굴만 봐도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 너 이거 다 외웠어?

- 그게 몬데? 그거 외워야 돼?

- 야! 중간고사에 나온다고 했잖아.

- 아, 진짜?

- 넌 뭐가 맨날 아, 진짜야!


묘안이 떠올랐다. 물귀신 작전에 돌입한 것이다. 혼자 하면 생고생 같았던 일도, 같이 하면  금세 놀이가 된다. 톰 소여의 울타리 페인트칠 같은 것이다.

- 너, 내가 이거 특별히 너한테만 빌려둘 테니까, 내일까지 50개 외워 와. 내일 서로 문제 내기다. 하나 틀릴 때마다 딱밤 한 대씩. 오케?


이튿날부터 본격적인 배틀이 시작되었다. 매일 집에 가기 전에 미션을 정하고 그다음 날 붙는 것이다. 외우지 못한 죄는 머리가 저질렀으니 그 징벌도 머리에 떨어졌다. 틀린 사람은 질끈 눈을 감은 채 앞머리를 올렸고, 때리는 사람은 캬캬캬캬 웃으며, 모아둔 짜증을 손가락 끝으로 발산했다. 이때만큼은 사슴 같은 장미의 눈동자에도 승냥이의 야수성이 번뜩였다. 한두 대 맞다 보니 점점 승부욕이 치솟았고, 이마가 멍게처럼 바뀔 때쯤 우리는 종이 양면을 통틀어 모르는 단어가 하나도 없게 되었다. 매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괜한 것이 아니었다. 폭력적 스킨십은 어쩐지 프렌드십과 닮아서 우리는 어느새 딱밤 말고도 나눌 것이 많은 사이가 되었다. 사춘기 우정이 단단해지는 데는 비밀의 공유만 한 것도 없었다.      


어릴 적 얘기를 시작할 때면 장미는 매번,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다’는 전제를 깔았다. 전학 오기 전, 장미의 별명은 소피 마르소. 아이들이 뽑은 그 학교의 3대 미녀 중 하나였다. 나머지 둘은 2학년 피비 케이츠와 3학년 브룩 실즈. 장미에게는 물어보지도 않고, 장미의 남친 자리를 걸고 지들끼리 결투를 벌이는 남자애들 때문에 늘 어이가 없으셨다고... 제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다면서도 한번 발동이 걸리면 장미의 전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태어난 동네라 사람들은 친숙했고, 그 친숙한 이웃들도 우리처럼 장미를 사랑했다. 장미의 이야기는 함박눈이 흩날리는 스노볼 속의 풍경처럼 동화 같았다. 그 아름다운 낙원을 버리고, 도대체 왜 장미는 이곳에서 조금 모자란 아이처럼 허둥대고 있는 것일까.


내 궁금증을 풀어준 사람은 장미의 언니였다. 장미는 시집간 큰언니의 집에서 살았다. 실내에 계단이 있는 커다란 2층 양옥집이었다. 그 집에 놀러 간 날, 장미의 미모가 집안 내력이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장미는 자기 방으로 들어와 문을 잠갔다. 조카들한테도 따라오지 말라며 소리를 질렀다. 사람인지 인형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던 조카들은 막내 이모의 고함에 쫄아 엄마의 치마 품으로 파고들었다.


장미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앞집 남학생 얘기에 열을 올렸다. 창문을 열 때마다 자꾸 눈이 마주치는 남자애가 있는데, 그 애가 강석우를 꼭 닮았다나. 몰입해서 듣고 있던 나는 그 대목에서 강하게 반발했다. 야! 뻥치지 마. 그렇게 잘 생긴 사람이 어딨냐! 니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거겠지.


평범한 민가에 그 정도의 미남이 거주할 개연성에 대하여 서로 핏대를 올리며 싸우느라, 아래층에서 언니가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언니는 마침 주스가 똑 떨어졌다며 얼른 슈퍼에 가서 훼미리 주스를 하나 사 오라고 장미를 심부름 보냈다. 쌀이나 연탄도 아닌데, 부잣집에서는 주스에도 떨어진다는 말을 하는구나... 주스가 없으면 가정에 어떤 위기가 발생하는가... 이런 생각에 빠져, 나는 장미가 올 때까지 연습장에 오돌토돌한 훼미리 주스 병을 그리고 있었다. 노크 소리가 들리고 잠깐만 얘기해도 되냐면서 장미의 언니가 들어왔다.


- 미순이랑 친하게 지내줘서 고맙다말을 꼭 하고 싶었어.


조금 아픈 얘기였다. 작년에 장미의 엄마가 돌아가셨다. 늦둥이라 유별나게 장미를 사랑했다고 한다. 상심한 노년의 아빠와 사춘기 장미만 빈 집에 남았다. 오빠나 언니들 모두 장미를 사랑했지만, 보호자가 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가까운 데 사는 두 언니의 집을 거쳐, 결국 장미는 맏이의 의무를 짊어진 큰 언니의 집에 정착했다. 엄마도, 이웃도, 친구도 없는 서울. 여기서 장미는 더 이상 우주의 중심이 아니었다. 장미의 엄마가 그랬듯, 언니의 딸들이 언니의 우주였다. 음과  말을 잃은 장미를 보면서 매일 마음이 짠했다고, 언니는 얘기 끝에 결국 목이 메었다.


- 근데 걔가 어느 날부터 공부를 하더라? 깜짝 놀랐어. 단어를 외우더라고. 안 외워진다고 신경질도 막 부리고... 밤마다 둘이 받아쓰기도 했어. 자기가 오늘 몇 대를 맞았는지 아느냐면서, 내일은 꼭 복수해야 된다고. 장미가 가만두지 않겠다던 친구가 너 맞지?




3학년이 되자 반이 갈라졌다. 800명이 13반으로 나뉘어 컨테이너 박스처럼 차곡차곡 쌓였다. 장미는 앞반, 나는 뒷반. 앞반은 1,2층, 뒷반은 3,4층. 앞반과 뒷반은 위치도 다르고 과목 선생님들도 달라서, 동유럽과 서유럽처럼 가까운 듯 멀었다. 쉬는시간마다 갈라진 친구를 찾아 위아래로 오르내리던 아이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계단에 굴복하고 현실을 받아들였다. 영원을 약속했던 베프의 자리도, 매년 주인이 바뀌는 미스코리아 왕관처럼, 방금 사귄 짝꿍에게 양도되었다. 아직 마음이 여물지 않은 중학생들의 사귐이란 그런 것이었다.


지원이 아니었으면 우리의 결별도 이처럼 평범했을 것이다. 헤어지면 죽을 것처럼 슬플 줄 알았는데, 슬프기는 하지만 죽을 것 같지는 않다가, 슬픔마저 알코올처럼 휘발되고, 마침내 산뜻한 소유권만 남는 방식. 여전히 내 친구라는 사실만 분명히 하고, 자잘한 집착들은 자진해서 철수하는.

장미와 나도 비슷했다. 먼저 끝난 사람이 매일 교문에서 기다리다가, 나중에는 금요일에만 같이 가기로 약속을 바꿨다. 자주 못 만나는 대신 반가움은 백배로 커졌다.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좋아하는 선생님, 얄미운 재수떼기, 마음을 다치게 하는 가족의 말 한마디. 우리는 서로에게 오래된 대다무숲이었다.


어느 금요일, 둘만의 그 숲으로 불청객이 등장했다. 장미가 지원과 함께 나타난 것이다. 지원은 우리 학교의 일진이었다. 지원의 무리는 주로 까만 가죽잠바를 입고 다녔고, 쇼커트에 무스를 발라 머리카락을 고슴도치처럼 뻗치게 만들었다. 가방에 담배나 본드, 부탄을 갖고 다닌다는 얘기도 있었고, 면도칼을 껌보다 자주 씹는다는 풍문도 무성했다. 싸우다가 기분이 나쁘면 씹던 면도칼을 상대방의 얼굴에 뱉는다는 무시무시한 괴담이 떠돌아 아이들은 지원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무리에 속하지 않은 다른 아이들에게는 관심도 없었다. 같이 놀지도 않았고, 말도 잘 안 섞었다. 발 딛고 선 땅이 둘로 쪼개진 듯 그들과 다른 애들 사이에는 까마득한 심연이 가로놓였다. 종례가 끝나면 반달 모양의 스포츠 가방을 하나씩 둘러매고 다들 어딘가로 몰려 나갔다. 교문을 벗어난 다음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 어디 갈 데가 있어서 앞으로는 같이 못 가.


지원이 장미의 팔짱을 꼈다. 주말을 눈앞에 둔 금요일의 하굣길. 김말이와 떡볶이를 시켜놓고 적립했던 그리움까지 세트로 나눠먹는 달콤한 시간. 장미와 함께 하는 금요일의 데이트는 내게 일주일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리고 기분이 상했다. 내가 대꾸가 없어서 장미가 머뭇거렸지만, 곧 지원이 장미의 팔을 잡아끌고는 집과 반대방향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30분도 넘게 기다렸다. 생각이 바뀌었다며, 장미가 다시 올 것 같았다. 하지만 장미는 오지 않았다. 두려움과 서러움이 번갈아 드나드는 통에, 마음에 자잘한 찰과상이 남았다.      


그날 이후 나는 복도에서 장미를 만나도 모르는 척 지나쳤다. 내 상처를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장미는 날이 갈수록 머리가 노래졌고, 술이 달린 가죽잠바 같은 것을 학교에 입고 왔다. 내가 모른 척하니까 장미 역시 나를 쌩까기 시작했다. 지나칠 때 희미한 담배냄새가 바람에 실려 왔다. 얼굴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던 냉소가 서려있어 내가 알던 그 애가 아닌 것만 같았다. 장미는 어느새 학교에서 주목하는 공식 일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아이들은 자꾸 내게 장미에 대해 물었다. 답답한 속도 모르고 나를 다그쳤다. 그 장미가 그 장미가 맞냐고, 너랑 친했으니 이유를 알 거 아니냐고...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까닭을 알 수 없었던 동사들의 반란처럼, 이 불안하고, 불편하고, 불규칙한 장미의 변화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디서 들었는지 장미는 엄마가 없어 언니랑 산다며, 아이들은 결정적 단서라도 발견한 듯 수군거렸다. 그때마다 맥이 풀렸다. 손바닥이 아프게 움켜쥐고 있던 무엇이 연기처럼 사라진 기분이었다. 서로 머리통을 쥐어박으며 낄낄거리던 일이 생각났지만, 이제 나는 지원의 표정을 닮은 장미가 어쩐지 두려웠다.       


지원의 무리는 단체로 징계를 받고 대다수가 학교에서 사라졌다. 군인이 민간인을 마음대로 잡아가던 시절이었다. 국가는 국민을 함부로 대했고, 학교도 국가의 방식을 흉내 냈다. 마음에 질풍이 몰아치는 16살 어린 국민에게도 국가의 가혹함은 예외를 두지 않았다.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타의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 글짓기를 잘해도, 그림을 잘 그려도, 공부를 잘해도 모든 상장의 문구는 '타의 모범이 되었기에' 이 상을 주는 거라고 못을 박았다. 그래서 우리는 기준에서 벗어난 자에게 국가가 조금 냉혹하더라도 그것이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길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불규칙 동사처럼 천만 가지 인생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 정도의 일탈이 사회 정의에  아무런 위해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우기 위해서는 조금 더 세월이 흘러야 했다.   

 



멀리서 장미가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이 오래된 풍경화처럼 낯설었다. 장미에게 걸어가는 몇 초 동안 여러 개의 마음이 전쟁을 벌였다. 압도적인 것은 반가움이었지만, 서러움의 목소리가 제일 컸다. 나는 결국 장미를 외면했다. 시간이 촉박해서 진심을 드러내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눈은 장미를 밀어냈지만, 귀는, 장미가 내 이름을 불러주기를 기다렸다. 불러도 들리지 않겠다 싶어 뒤돌아 보았을 때, 장미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저 들에 콩깍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