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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도리 Nov 03. 2021

저 들에 콩깍지

   



담임이 얘기했다. 공부 잘하네? 선생님이 앞으로 아주 기대가 커.

머릿속에서 전구가 켜졌다. 태어나서 처음 듣는 말이었다. 기대가 크다니. 나한테? 이렇게 상냥한 목소리로, 내게 이런 얘기를 들려준 사람은 없었다.        


2학년 첫날, 새 담임이 앞문으로 들어왔다. 문틈으로 찐한 향수 냄새가 사람보다 먼저 입장했다. 도합 8년을 학교에 다니며 한 번도 본 적 없는 스타일의 선생님이었다. 1980년대 대한민국에서,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자에게 기대할 수 있는 이미지란 뻔했다. 첫째는 단정함, 둘째는 빈곤함, 셋째는 앞의 두 가지가 만나 필연적으로 탄생한 구림. 문이 열리고 그녀가 등장했다. 화려하고, 럭셔리하고, 아름다웠다.


아이들은 모두 얼이 빠졌다. 담임은 브로콜리 같은 펌을 말지도 않았고, 무릎 아래로 어정쩡하게 내려오는 고동색 스커트도 입지 않았으며, 로션만 바른 얼굴에 두꺼운 뿔테 안경을 걸친 것도 아니었다. 단발머리는 좌우의 길이가 달라 해괴했고, 눈과 뺨과 입술에는 소신이 뚜렷한 컬러가 제각기 존재감을 뽐내는 중이었다. 그녀는 올해 처음으로 선생님이 되었고, (당연한 말이지만) 담임을 맡은 것도 처음이기에, 우리가 자신의 첫 제자라며 서서히 감격의 게이지를 올리기 시작했다.   

   

우리 반 교실은 교무실과 최단거리에 위치했다. 교실 뒷문에서 열 발자국만 걸어가면 바로 교무실 앞문이었다. 그 사실을 개똥만큼이라도 신경 쓰는 사람은 우리 중에 한 명도 없었다. 우리 반은 그 누구보다 공부를 못했지만 (13개 반 중에서 12등이나 13등), 호연지기만큼은 남부럽지 않아서 성정은 대범하고 목소리는 우렁찼다. 선생님들은 쉬는 시간마다 교실 뒷문으로 쳐들어와 소리를 질렀다. 조용히 좀 하라고. 무슨 애들이 이러냐고, 살다살다 첨 봤다고, 도대체 일을 할 수가 없다고.


모르는 선생님의 고함소리에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던 아이들은, 소리를 지른 선생님이 채 뒷문을 닫기도 전에 도로 떠들어댔다. 담임은 동료 선생들이 자신의 금쪽같은 제자들에게 고래고래 욕을 퍼붓는 장면과, 아무리 욕을 해도 좀처럼 욕이 스며들지 않는 제자들의 두터운 맷집을 흥미로운 표정으로 훔쳐보곤 했다. 시끄러운 건 약과였다. 우리는 대체로 2교시가 끝나면 밥을 먹었다. 쉬는 시간이 가까워지면 여기저기서 부시럭부시럭 뭔가를 준비하는 소리가 들렸다. 종이 울리자마자 일제히 뚜껑이 열리고, 빠르게 돌린 비디오테이프처럼 가공할 속도로 도시락이 비워졌다. 행동이 느려터진 몇 명을 제외하고, 60명 중 50명 정도는 그 시간에 밥을 먹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방금 도시락을 삼킨 위장은 완벽하게 초기화되었고, 우리는 다시 사발면이나 노을빵을 찾아 매점으로 우르르 2차 원정을 떠났다.


선생님들은 우리 반 3교시에 수업이 배정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3교시에 들어온 선생님들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100종 이상의 반찬 냄새에 급성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창문을 열고 복도에서 5분 정도를 서성이다가 손수건으로 코를 막고 들어오는 선생님들도 있었다. 한 번만 더 이러면 모조리 벌점을 먹이겠다는 협박파, 다른 요일은 실컷 먹어도 좋으니 내 수업이 3교시인 그날만 참아달라는 님비족, 야이 돼지새끼들아, 다짜고짜 화부터 내는 분노조절 실패자, 정말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365일 우직하게 수업을 강행하는 비염 추정자... 선생님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지만, 아침 먹은 지 한두 시간도 지나지 않은 그 시간에 이렇게 정열적으로 밥을 들이마신 우리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은 비슷했다.      


어느 날인가는 담임이 교실을 급습했다. 5분 내로 도시락을 비우고 화장실까지 다녀오자면 여간 바쁜 것이 아니었다. 하루 중 제일 경황이 없는 시간에 갑자기 담임이 등장하자 모두 버퍼링이라도 걸린 것처럼 머뭇거렸다. 이미 절반도 넘게 먹었는데 이제와 뚜껑을 닫기도 애매했고, 그렇다고 명색이 담임인데 대놓고 무시하기도 어려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눈치만 보고 있던 그때, 담임이 갑자기 재킷 주머니에서 숟가락을 꺼냈다.

축제의 폭죽이 터지듯 사방에서 웃음이 폭발했다. 주춤했던 아이들은 다시 대오를 정비했고, 교실은 잔치가 열린 장터처럼 활기로 흥성거렸다. 그녀는 통로를 돌아다니며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밥을 뺏어 먹었다. 선생님 앞에 내놓기 부끄러웠던 신 김치나 장아찌 반찬도 고르게 털렸다. 이후로도 담임은 심심찮게 출몰했고, 그녀가 다녀간 날의 종례시간에는 여지없이 한 보따리나 되는 아이스크림이 등장했다. 밥을 얻어먹은 사람이 디저트는 쏘는 거라나.


그녀의 모든 것이 그저 신기했다. 학생 면담 주간이 시작되자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연예인과 만나는 팬의 마음이 이런 걸까. 언니도 없고 교회도 안 다니던 나는, 젊고 예쁜 여자 어른과 연을 맺어본 적이 없었다. 고모들은 담임과 비슷한 또래였지만, 그들에게는 담임에게 넘치는 결정적인 한 가지가 부재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좌르르르 소리를 내며 흐르는... 갖고 싶다고 어디 가서 살 수도 없고, 급하다고 순식간에 날조하기도 어려운... 살면서 돈 때문에 곤란했던 기억이 없어 보이는 자의 얼굴에 어리는... 그것. 담임에게서는 온통 부티가 흘렀다.


여중생들의 질투와 선망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종례 시간에 담임이 돌린 빠삐코를 빨고 있으면, 먼저 끝난 다른 반 애들이 복도에서 우리 반을 흘끗거렸다. 괜히 어깨가 올라갔다. 그런 그녀가 면담시간에 내게 말했다. 기대가 크다고. 마음속에 작은 씨앗 하나가 뿌리를 내렸다.




여름방학이 되자 담임은 또 다른 이벤트로 우리를 놀라게 했다. 서울 근교에 아버지의 별장이 있다면서, 반 아이들 중 몇 명을 그 집으로 초대한 것이다. 하루 날 잡아서 신나게 놀자며, 담임이 우리보다 먼저 들떴다. 선생님이 학생한테 친구처럼 같이 놀자고 하는 것도 신기했지만, 우리의 입이 떡 벌어진 데는 더 큰 이유가 있었다. 별장이라니! 같이 모여 놀자고 한 곳이 관악산이나 한강도 아니고 무려 별장이었다. 별장. 오로지 휴식과 놀이만을 위해 마련된 별도의 공간. 드라마에서나 보았을 뿐 그런 곳에 실제로 가봤다는 사람은 주변에 없었다. 별장은커녕 우리들 중에는 온 식구가 방 하나에 모여 사는 아이들도 흔했다.


그 설레는 잔치에 초대받은 아이들은 열명 남짓. 다들 나처럼 조금은 어리둥절했다. 학교 선생님은 일종의 공공재와 비슷한 개념이어서, 이렇게 소수가 독차치하는 일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은근한 선민의식도 발동했다. 파티의 입장권은 오로지 선택받은 에게만 허락되었다. 같이 오지 못한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고 싶었다. 축제의 초대장은 네가 아니라, 내가 받았어.


수십 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가끔 그날이 생각난다. 1986년. 여름. 태어나서 열다섯이 될 때까지 내가 가본 모든 장소 중 가장 현실감이 없었다. 버스로 겨우 몇 시간을 달려갔을 뿐인데, 시간과 공간을 싹둑 잘라 다른 곳에 이어붙인 듯 눈앞에 펼쳐진 풍광은 놀라울 정도로 딴세상이었다. 자, 이제 다 왔어. 발랄한 담임의 목소리도 영화 속 더빙처럼 들렸다.

넓은 잔디밭에서 목줄도 없이 뛰어놀던 레트리버가 선생님을 보자 꼬리를 흔들며 달려왔다. 잔디밭 저 끝에는 테라스가 있는 이층 집이 보였다.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한 분이 마당에서 꽃을 가꾸고 있다가 우리를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별장은 수상한 선교사가 길에서 나누어주던 천국의 상상도와 놀라울 정도로 흡사했다.


집 앞에는 작은 개울이 흘렀다. 잠깐 발만 담그고 들어가자는 담임의 계략에 넘어가, 순식간에 우리는 물에 빠진 시궁쥐가 되었다. 과감하게 먼저 입수한 담임이 손에 잡히는 족족 우리를 붙잡아, 물귀신처럼 개울로 끌어들인 것이다. 쭈뼛거리던 소심둥이도, 완강하던 고집쟁이도 담임의 파상공격 앞에서는 쪽도 못쓰고 나뒹굴었다. 마스카라가 녹아 검은 눈물을 흘리는 담임은 그야말로 지옥에서 건너온 사신 같았다. 이 무슨 날벼락인가,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 구경하던 나도 사신에게 뒷덜미를 잡혀 마음의 준비도 없이 물속에 처박혔다. 이쯤 되니 체면도 급류에 떠내려갔다. 열 명도 넘는 주책바가지들이 그 바가지로 물을 퍼서 광년이처럼 사방으로 흩뿌렸다. 얼굴에 정통으로 물대포를 맞은 아이들이 콧물과 침이 범벅된 낯으로 정체 모를 괴성을 내지르는 통에, 고요했던 산골짜기에 기괴한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는 한 팀이 되어 담임을 에워쌌다. 집중된 공격에도 끄떡없던 그녀는 인해전술로 퍼부어대는 물살에 조금씩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더니 결국 뒤통수부터 물에 처박히고 말았다. 어찌나 속이 후련하던지. 한참만에야 물에서 올라온 그녀는 홀딱 젖은 머리카락을 비 맞은 개처럼 훼훼 털면서, 오랫동안 실성한 듯 깔깔거렸다. 웃음이 물보라처럼 방울방울 번져갔다.

순간, 그 장면이 찰칵! 마음에 담겼다. 살아가면서 ‘잊지 못할 선생님’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어쩐지 나는 그날의 웃음소리가 떠오르곤 했다.


반나절을 허우적거리다 별장에 돌아오니 이번에는 또 다른 세상의 문이 열렸다. 우리는 동시에 탄성을 질렀다. 아주 기다란 식탁 가득 어마어마한 먹을 것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헨젤과 그레텔에 등장하는 사탕의 집처럼 아이들을 유혹하려고 단단히 작정한  상차림이었다. 다들 배 고프지? 하나마나한 질문을 하며 담임이 웃었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하루였다.


2학기가 시작된 후에도 별장의 기억은 수시로 머릿속에서 출몰했다. 기억은 신기루와 같아서, 가끔은 그날의 일이 꿈처럼 아득하기도 했다. 실수로 웜홀이 열려 잠깐 다른 세상에 다녀온 것도 같았다. 그녀가 사는 세상은 여기와 달랐다. 어쩐지 예사롭지 않더라니. 어떻게 사람에게서 저렇게 은 냄새가 나나. 저런 옷은 대체 어디에서 사나. 분명 한국 사람인데 어째서 머리카락이 연갈색인가. 어떻게 매일 다른 옷을 입고 오나. 무엇보다 왜 늘 행복해 보일까.

여름의 억이 떠오를 때마다 담임의 말도 덩달아 소환되었다. 너에게 기대가 커. 억을 말이 조금씩 힘을 키웠다. 담임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먹어본 자만이 안다는 공부의 맛을 드디어 맛 보는가 싶더니, 가을이 넘어갈 무렵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교 1등이 찍힌 성적표를 받았다. 기대한다는 사람을 실망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2학년이 끝나자 그녀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우리는 첫 번째 제자이자 마지막 제자가 된 셈이다. 처음부터 1년을 계약한 기간제 교사였다는 사실은 그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매순간 전념을 다하고 있다는 느낌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닭 쫓던 개처럼 황망했다. 그녀는 퇴직과 동시에 결혼을 했고, 결혼과 동시에 남편의 직장이 있는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코 맹맹이 소리를 내며 '스승의 날'마다 찾아갈 수도 없는, 그야말로 완벽한 이별이었다. 도달 불가능하다는 관점에서 미국은 화성이나 해저 2만 리와 다를 바 없는 곳이었다. 그 단호한 결별에 극단의 배신감까지 밀려왔다.


호들갑스럽게 담임을 따랐느냐면 그건 아니었다. 낯가림이 많아 마음은 말이 되지 못했다. 그저 담임을 욕하는 아이들이 있으면, 아무리 여론이 그쪽으로 쏠려도 끝내 뚱한 표정으로 합류하지 않는 정도가 내가 지킨 최선의 의리였다. 담임은 우리에게 늘 호의적이었지만 그 호의를 공평하게 분배하는 능란함은 부족했기에, 담임의 부산스러운 시도 뒤에는 언제나 소외된 자의 서글픔이 부산물처럼 남곤했다. 별것 아닌 누락에도 누군가의 마음에 옹이가 맺혔다. 뾰로통한 시샘이 이마의 여드름처럼 항상 몇 개쯤 솟아 있던 나이였다.

 

하지만 나는 담임의 그 허점들이 좋았다. 어른스럽지 않은 어른이라 마음이 놓였다. 앞뒤 재지 않고 즉흥적인 것이 역시 우리 반 멤버다웠다. 어른들이란 언제라도 돌변해서 화를 내는 사람들이라, 그들과 함께 있으면 는 늘 조금씩 불편했다. 우매함도, 허술함도 우리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어쩐지 우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욕을 먹었다. 허점 많은 담임은 조금씩 만만해졌고, 언제부턴가 우리는 그녀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기분이 1도 상하지 않게 되었다. 그냥 지랄하는 친구 같았다.      


- 근데 갑자기 미국에서 살면 어떨까? 매일 맛있는 것만 먹을 수 있어 좋으려나?

미현이 갑자기 담임 얘기를 꺼냈다.


- 스테이크 좋아한댔어. 뭐 잘 지내겠지.

희주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 담임이 스테이크 좋아하는지 니가 어떻게 알아?

듣고만 있던 내가 반박했다.


- 담임이 그랬어. 스테이크 좋아한다고. 나랑 민정이랑 미현이랑 담임까지 넷이서 돈가스나 비후가스 그런 거 먹으러 얼마나 돌아다녔다구. 맞다. 이건 비밀인데... 하긴. 이젠 담임도 없으니 그것도 무효지만.


어디서 싸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어떤 거부감이 마지막 허점을 파고들었다.

- 그렇게 담임이랑 친하다면서 너네는 방학 때 별장에 왜 안 왔어?


희주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 야, 거기를 어떻게 가냐? 경옥이가 면담 때 담임한테 그랬대. 태어나서 한 번도 놀러 가 본 적 없다고. 담임이 그 말 듣고 엄청난 충격을 먹은 거지. 그게 그래서 탄생한 이벤트야. 경옥이랑 비슷해 보이는 애들로 몇 명만 추린 거고. 하루만이라도 근사한 데서 실컷 먹고, 실컷 놀게 해주고 싶다더라. 너네는 부잣집에서 태어난 걸 감사하게 생각하라면서, 담임이 괜히 우리한테 뭐라고 그랬어. 그래서 우리도 맞받아쳤었지. 누가 누구한테 할 소리시냐며... 그때 담임이 우리한테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불쌍하다고. 너무 불쌍하다고.      



*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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