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캐나다에 와보니, 친절하기로 소문난 이곳 사람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개인주의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서양인들 (혹은 미국인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식당이든 버스 정거장이든, 언제나 주변을 살피며 민폐를 끼치지 않을까 조심조심하는 모습에 감명받기도 합니다. 반면, 그러지 않는 사람에 대한 혹독한 평가가 있기도 하더군요. 캐나다 사람들을 상담하면서 남의 평가가 두려워 자기 행동을 지나치게 검열하면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나라와 같은 유교권 사회에서도 타인의 평가에 대해 상당히 민감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눈치가 없는, 즉 남의 입장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상황에 맞는 말과 행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편이죠 (Robertson, 2019). 서로서로 배려하는 사회 분위기 안에서 내 입장만 생각하는 사람은 여러 사람 불편하게 만드니까, 주변에서 훈계도 하고, 심한 경우 무리에서 내쳐지기도 합니다. 이런 분위기라면 당연히 남의 입장을 항상 염두에 두는 습관이 생기겠죠.
그런데 마음의 결핍이 있을 때는 남에 대한 배려도 왜곡될 수 있습니다. 나를 스스로 인정하는 대신 남의 인정으로 그 결핍을 채우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상대에 대한 배려가 넉넉함에서 우러나는 선택 사항이 아닌, 지키지 않으면 큰일 날 것만 같은 위협감에서 출발합니다. 남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것과 남을 진심으로 신경 써주는 것은 엄연하 다릅니다. 전자는 타인의 긍정적인 평가를 통해 나의 인정 욕구를 채우고자 하는, 자기 중심적인 동기에서 나옵니다. 반면, 후자는 내 결핍이 채워진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넘치는 이타적인 동기에서 나옵니다. 마음에 결핍이 있을 때는 상대를 '배려'해주고 나면 안도하는 기분이 듭니다. 그런데 결핍이 없을 때는 남을 배려해주면서 느끼는 연결감 자체에 행복해합니다.
마음의 결핍을 타인의 인정으로 채우려는 사람은 몇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이들은 배려도 하나의 거래처럼 생각한다는 겁니다. 내가 이만큼 신경 써줬으면, 상대도 나에게 적어도 이만큼은 해주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기대가 있습니다. 혹은 상대가 나의 노고를 그만큼 알아주기를 기대하는 귀여운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가 그 암묵적인 기대를 저버렸을 때는 서운함이 밀려옵니다. 화나고 섭섭한 그 어린 아이 같은 마음에 귀 한번 기울여 준다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요.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그 최선이 충분치 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닌지, 어쩌면 나 자신이 충분치 않다는 이야기는 아닌지요.
저는 한때 남의 눈치를 보느라 저의 취향이 불분명해졌던 적이 있습니다. 나의 싫고 좋음조차도 남의 평가를 신경 쓰다가 점차 흐려져 구분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나의 좋고 싫음을 모르니 평소 인간관계 속에서 내 욕구는 당연히 뒷전이 되고, 이렇게 쌓인 서운함이 엉뚱한 곳에서 터지는 것을 경험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상 속에서 내가 싫은 것과 좋은 것을 구분해보는 간단한 연습을 하기로 했습니다. 싫고 좋음에는 납득할 만한 이유 따위는 없습니다. 싫은 건 그냥 싫고, 좋은 건 그냥 좋은 겁니다. 내 욕구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일은 내 안의 결핍을 키우지 않고 남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살 수 있는 균형점을 찾기 위한 첫 걸음입니다.
남한테 베풀 때는 당분간 아무것도 돌려받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만 베풀어 보는 게 어떨까요. 내 마음이 아직 온전하지 않다면, 그 정도가 아주 작을 수도 있어요. 무리한 부탁은 정중히 거절하고, 나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양해를 구하고 직설적으로 요구하는 것도 좋습니다. 나중에 섭섭해질 것 같으면 나를 지키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게 나를 사랑하는 연습입니다.
상대에 대해 진심으로 관심을 기울여 보는 것도 의외로 좋은 연습이더라구요. 눈치를 심하게 보는 사람은 의외로 상대방에 대해 깜짝 놀랄만큼 무지한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가 자신을 알아주는지 않는지에만 초집중하는 사람은 상대의 속깊은 생각, 엉뚱한 취향, 혹은 요즘 고민거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만한 여유가 없거든요. 이런 피상적인 관계는 나 자신도, 상대에게도 괴롭습니다. 평소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걱정이 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억지 안부가 아닌 진짜 안부를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요즘 그 사람이 고민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 사람도 모르는 엉뚱한 매력은 없는지, 세심하게 살펴보는 연습을 하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해주는 만큼 받아야 한다는 기분이 든다면, 요즘 이곳 SNS에 자주 등장하는 Pay It Forward라는 말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원래 Pay it Back이라는 말은 진 빚을 되갚다라는 뜻이 되는데, Pay it Forward라 함은 나에게 베푼 사람에게 그대로 되갚아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은 것을 제3자에게 베풀어주는 개념입니다. 결핍이 있는 상황에서 남에게 베푼 사람은 반드시 베푼 만큼 거두어들여야 합니다. 결핍을 채워야만 하니까요. 그런데 진정 이타적인 동기에서 베푼 사람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냅니다. 자신은 보람과 연결감을 느끼고, 받은 사람은 받은 것이 있으니까요. 그 상태에서 받은 사람이 제3자에게 또 베푼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한층 풍요로워집니다.
연습 1. 내가 베푼 만큼 나를 생각해주지 않는 사람이 있어 서운하거나 화가 난다면, 서운하거나 화가 난 나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건지 진심 어린 궁금증을 품고 대화를 나눠보기.
연습 2. 평소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한 사람을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그 사람에게 연락을 해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 사람의 고민을 30분 동안 들어주거나, 그 사람의 의외의 매력 하나 찾아내기.
연습 3. 오늘 하루 댓가를 바라지 않고, 아무나에게 작은 친절을 하나 베풀어보기. 그리고 그 친절을 베푼 후 나의 기분이 어땠는지 일기장에 적어보기.
참고.
Robertson, S. (2019). Nunchi, ritual, and early Confucian ethics. Dao, 18, 2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