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이유 없이 마음이 울적해지는 날이 있습니다. 작은 일에도 짜증이 나거나 그냥 눈물이 올라오는 그런 날 있잖아요. 내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내 삶은 결국 제자리일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드는 날이요. 이런 기분이 들 때는 나 자신을 어떻게 사랑해줘야 하나요? 이 순간 나에게 진정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이유 없이 마음이 우중충해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우울해진 이유를 앞뒤 맥락 파악하여 퍼즐 맞추기 하다 보면, 그 원인을 알아낼 수 있다고도 믿습니다. 기분이 안 좋아지는 데는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호르몬 불균형, 운동 부족, 햇빛 부족, 나쁜 식습관, 부족한 잠.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다툼이나 이별, 비난이나 거부. 돈에 관련된 스트레스, 빠듯한 생활비, SNS로 엿보는 타인의 라이프스타일. 계속되는 노력과 반복되는 실패. 이 모든 상황에 대한 부정적인 해석까지 더하면 조금 언짢았던 기분이 장대비 같은 우울감으로 증폭됩니다.
그런데 마음이 이미 울적해졌다면, 지금은 그 퍼즐 맞추기를 할 때가 아닙니다. 예전에는 우울감에 잔뜩 빠진 날이면 내 기분이 왜 그런지 분석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하면 할수록, 기분은 점점 수렁으로 빠지더군요. 우울할 때 드는 생각을 일기장에 그대로 적어두었다가, 다시 기분이 맑아졌을 때 읽어본 적 있나요. 부정적이고 한쪽으로 치우친 발언들, 지금 상황을 모 아니면 도 식으로 단정하는 성급한 결론들 투성이가 아닌지요. 우울할 때 드는 생각은 마치 현실을 왜곡되게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아, 지금의 기분을 더욱 강화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지행동 심리 치료 전문가인 Burns 박사는 우울할 때 흔히 생기는 인지 왜곡을 10가지로 정리하였습니다 (Burns, 1999). 이중에는 한번의 실패를 나라는 인간 자체를 실패자로 인식하는 성급한 일반화 (Over-generalization), 상대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 멋대로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넘겨짚기 (Mind-reading), 좋은 건 모른 척하고 나쁜 것에만 집중하는 필터링 (Mental filtering)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런 왜곡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히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좌절을 겪고 나면 생존을 위해 에너지를 절약하는 전략으로 전환하는, 진화론적인 배경이 있지 않나 조심스레 추정해봅니다. 그리고 활동을 줄이려는 생존 반응의 일환으로, 뇌에서도 균형 잡힌 시각보다는 부정적인 것에만 집중하는 인지적 변화가 생기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고 마음에 비가 내리는데 이제는 생각도 똑바로 못하네, 라며 자신을 나무라지는 마세요. 오히려, 지금 내가 느끼는 참담함이 조금 과장되었을 수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기분 전환이 될 수 있습니다. 우울감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마음의 감기라는 말이 있죠. 나만 혼자 겪는 것도 아니고, 내버려두면 마치 감기처럼 지나가기도 합니다. 예외적으로, 우울한 기분이 2주 이상 지속된다면 이는 우울증으로 분류하여 심리 상담 치료나 정신과 치료를 권하기는 합니다. 2주 이상 지속되는 우울증은 실제로 우리 뇌에 변형을 가져오기 때문에, 가능한 빨리 전문가를 만나보는 것이 좋습니다 (Yale Medicine, 2021).
정식 우울증으로 발전한 경우가 아니라면, '지금 내 마음이 울적하구나'라고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왜곡된 거울의 이미지에 빠져드는 대신, '이 거울 오늘 좀 이상한데'라고 생각해 보는 거죠. 지금 내 머리 속에 맴도는 생각은 빼도 박도 못하는 진실처럼 느껴지지만, 알고보면 사실은 아니라구요. 혹은 뇌과학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지금 내가 느끼는 기분은 신경전달 물질의 일시적인 불균형으로 인한 전두엽과 해마의 기능 저하로 인한 것이라고 되뇌어 보아도 좋구요 (Yale Medicine, 2021).
마음에 비가 내리는 날이면, 나를 사랑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우산을 꺼내어 내 마음에 씌워주는 것입니다. 10분이라도 좋으니 바깥 공기를 쐬며 몸을 움직여서 기분 전환을 하거나, 편견 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할 친구나 가족과 대화를 나누거나,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건강한 음식으로 힘을 보충해주는 것. 이런 간단한 일들은 마음의 비를 그치게 하지는 않지만, 비 조금은 덜 맞게 나를 지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마음에 비가 내리는 날에 나를 사랑하는 일은 우선 이 비가 잠시 내리고 지나갈 거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굳이 더 깊은 수렁으로 나를 빠뜨리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봅니다. 그 기분에 한창 빠져 있을 때는 이 상황이 영원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압니다. 그 사실조차도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그만입니다. 그리고 비가 지나갈 때까지 나 자신에게 작은 우산이라도 씌워주며 가만히 비가 지나가기를 함께 기다려 줍니다. 그러면 내 마음도 안심하며, 이 또한 지나고 보면 별일이 아닐거고, 이 상황에서도 나는 나를 아껴줄 수 있다는 사실에 나에 대한 믿음이 커져갈 겁니다.
연습 1. 지금 기분이 이유 없이 울적하다면, 나의 생각을 비춰주는 거울이 평소와 달리 왜곡되어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해보기. 만일 생각이 극단으로 치우쳐져 있거나 지나치게 부정적이거나 단정적이라면, '내 기분이 울적해서 생각이 왜곡되었구나'를 알아차리기.
연습 2. 부정적인 기분에 더욱 빠져들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가벼운 산책, 따뜻한 차 한잔 마시기, 친구나 가족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은 가벼운 기분 전환을 위한 활동을 하기.
연습 3. 내 손으로 내 어깨를 톡톡 치며 다독여 주기. '이 기분도 언젠가는 지나갈거야,' 라고 스스로 타일러 주기.
참고.
Burns, D. D. (1999). Feeling good: The new mood therapy. Avon Books.
Yale Medicine. (2021, June 17). How depression affects the brain. Yale Medicine. https://www.yalemedicine.org/news/neurobiology-depre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