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은 우리 뇌의 신경 전달 물질로, 흔히 기분 좋음, 혹은 성취감으로 인한 쾌감을 느끼게 해주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도파민이 원활하게 분비되는 사람은 하루 동안 기분 좋은 상태가 유지되고, 활력이 있고 마음이 편안합니다. 반대로 도파민 분비가 원활하지 않은 사람은 이유 없이 불안하고 무기력합니다. 도파민 분비가 원활해지지 않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이중에서 안나 렘케 박사는 그녀의 저서 도파민 공화국 (Dopamine Nation)에서 과한 자극에 계속 노출되다 보면 도파민 회로가 무뎌져 쾌감을 느끼는 능력이 저하되는 현상에 주목합니다. 기분 좋은 자극의 홍수 속에서 사는 현대인이 갈수록 불행해지는 이유에 대해 직관적으로 와닿는 설명이죠.
도파민 디톡스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한동안 미서부 SNS에서 유행했던, 일종의 '자극 다이어트'라고 합니다. 기분 좋음을 선사하는 도파민을 늘려나가야 할 판에 디톡스라니, 조금 의아할 수도 있습니다. 끊임 없는 도파민 회로 자극을 선사하는 스마트폰부터 멀리하면서 시작되는 도파민 디톡스는, 도파민 회로를 자극할 만한 행위를 한동안 다 끊어서 무뎌진 도파민 회로를 다시 원상태로 돌려 놓는게 목적입니다. 아직 이렇다할 연구로 그 효과가 증명된 바는 없지만, 처음엔 저도 솔깃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같은 세상에, 자극이 될만한 것은 전부 피하기만 하는게 쉽지만은 않더라구요. 가끔, 하루를 평온하게 보내고 나면 맑은 아침 공기에도 감격하는 기분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정말 사는건가 고민이 되는 순간이 오더군요. 게다가, 저를 찾아오는 우울 증세를 보이는 내담자들은 특히나 회색빛 무기력과 씨름 중인데, 거기에다 도파민 디톡스를 하라고 말해주는 건 왠지 좀 아닌 것 같은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도파민은 여러 기능을 하지만, 균형 잡힌 뇌 (The Balanced Brain)의 저자 카밀라 노드 박사는 이중에서 학습을 강화하는 기능에 주목합니다. 주로 생존에 도움이 되는 기분 좋은 일을 겪고 나면, 우리 뇌는 이를 잘 기억해뒀다가, 비슷한 느낌의 상황이 발생하면 욕구를 생성해냅니다. 그래서 피곤하다가도 맛있는 음식이 보이거나, 매력적인 이성과 마주치거나, 사회적으로 인정 받을 기회가 생기면 갑자기 활력이 돋는 경험을 전부 해보셨을 겁니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 구분해두어야 하는건, 이런 기분 좋은 일이 발생하는 동안이 아닌, 그 직전에 활력이 가장 넘친다는 겁니다.
도파민은 알고 보면 기분 좋음을 선사하는 기쁨의 천사가 아니라, 기분이 좋을 수 있는 가능성을 포착했을 때 마음 속 욕구를 생성해내는, 일종의 빚쟁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게 욕구가 있다는 건, 내 안에 결핍을 인식했다는 걸 의미하거든요. 결핍을 인식하고 나면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한 강한 동기가 생기며, 그 동기를 연료 삼아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겁니다. 빚을 졌으니 에너지를 동원해 그 빚을 갚아 나가며 활력 있게 생활하지만, 빚을 냈다가 그 빚을 다 갚았을 때의 쾌감을 행복으로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항상 기분 좋고 즐거운 경험만 추구하는 사람일수록 불안 증세나 우울 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빚을 내서 욕구를 생성해내고 그걸 갚아 나가는 일은 생각보다 지치는 일이거든요. 마치 빚더미에 올라 있는 사람이 이판사판이니 신용카드나 마구 긁고 다니자는 마음으로 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인간은 항상 즐겁도록 설계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즐거움보다는 생존이 우선이기 때문에, 자꾸만 기분이 좋기만 하면 뇌에서 '이거 뭔가 잘못됐구나' 싶어, 기분 나쁨 정도를 높여 균형을 맞추려 하거든요.
그래서 이미 탑재된 도파민 회로를 가장 똑똑하게 활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저는 단순히 기분 좋음을 늘리고 기분 나쁨을 피하는 대신, 오히려 기분 나쁨을 견딜 만큼 의미 있는 삶의 목적을 찾아냈을 때 진정한 의미에서의 행복을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때의 도파민은 단순한 쾌감을 선사하기 위한 일회성 도구가 아닌, 내가 이루고자 하는 일을 동기 부여를 통해 뒷받침해주는 든든한 아군이 됩니다. 빚을 내서 여행이나 쇼핑이나 술에다가 다 써버리는 대신, 내 가족을 위한 집을 마련하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하기 위한 사업의 밑천으로 활용하는 것과 같달까요.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내가 선택한 고통인 나만의 목표를 이루었을 때의 성취감과, 그 마음의 빚을 다 갚았을 때의 평온함과 충만함은 오늘 하루의 단순한 즐거움과는 그 질이 다를거라 생각합니다.
연습 1. 나는 어떤 무엇을 세상에 기여하고 갈 것인가?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 중에,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일은 어떤 것들인가?
연습 2. 지금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두려워서 회피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 일을 오늘 당장 시작해보기.
연습 3. 나의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을 상상해보자. 그들은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고 있는가?
참고.
Lembke, A. (2021). Dopamine nation: Finding balance in the age of indulgence. Dutton.
Nord, C. (2024). The balanced brain: The science of mental health. Princeton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