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을 경험한 사람이 계약직이 되었을 때
이렇게까지 배신감을 느끼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기대하지 않고, 너무 깊이 섞이지 않고,
“여기는 잠시 머무는 곳”이라고 스스로를 정리했어야 한다.
그건 냉정함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방식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한 번
정규직으로 조직에 소속되어 일해본 경험이 있었다.
회의실에서 이름을 불리던 순간,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고민하던 시간,
성과 이전에 관계가 먼저였던 기억.
‘나는 여기에 속해 있다’는 감각을
이미 몸으로 알고 있었다.
그 사이에 육아로 인한 경력 공백도 있었다.
의도한 선택이었고,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다시 일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내가 돌아갈 수 있는 자리는
계약직이라는 형태였다.
그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때의 나는 일을 하고 싶었고,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더 성실히 일했다.
누구보다 빠르게 적응했고,
누구보다 책임감을 가지려 했다.
일하는 시간은 즐거웠고,
업무에 몰입하는 감각도 오랜만에 느꼈다.
마지막 손님까지 맡는 날이 많았고
정시 퇴근이 거의 없었지만
그 자체가 크게 억울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내 역할 안에서
조직과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문제는 늘 중요한 순간에 나타났다.
선택이 필요한 순간,
설명이 있어야 할 순간,
책임 있는 말 한마디가 나와야 할 순간마다
나는 다시 ‘계약직’이 되어 있었다.
“열심히 하면 길이 있겠지”라는 말은 들었지만
그 길이 무엇인지,
어디로 이어지는지,
선택할 수 있는 길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기대만 남고, 정보는 주어지지 않았다.
문제를 제기했을 때도 비슷했다.
조사 과정은 공유되지 않았고,
결과는 이유 없이 ‘불인정’으로 통보되었다.
상처가 되었던 말들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는 말로
전면 부정되었다.
의도는 지워졌고, 감정만 남았다.
짐을 싸서 나오던 날,
아무도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느끼는 감정의 정체는
분노가 아니라 배신감과 허탈감이라는 것을.
이 배신감은
계약이 끝났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었다.
애초부터 관계가 없었다는 사실을 가장 마지막에
알게 되었기 때문에 생긴 감정이었다.
기대를 낮추고,
말 한마디에 의미를 덜 부여했더라면,
아마 덜 아팠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사람으로 소속되는 경험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 부재를 정확히 느껴버렸다.
이 경험은 나를 냉소적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다만 하나의 기준을 분명하게 만들어 주었다.
말보다 제도를 보게 되었고,
약속보다 구조를 보게 되었으며,
“열심히 하면…”이라는 말 앞에서
한 번 더 질문하게 되었다.
열정은 언제나 개인의 것이지만,
그 열정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온전히 구조의 문제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떤 조직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끝이 정해져 있다.
이제 나는 환상을 버리기로 했다.
대신 기준을 얻었다.
다시 일하게 된다면
나는 계약서뿐 아니라
설명받을 권리,
선택할 수 있는 정보,
존중받을 가능성까지 함께 확인할 것이다.
이 글은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해 쓴 기록이 아니다.
다만 비슷한 위치에서 일하고 있는 누군가가
비슷한 순간에 서 있다면
이 말을 전해주고 싶어서 남긴다.
"당신이 이렇게 아픈 이유는
약해서가 아니라
사람으로 일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내가 살아온 시간을 꺼내기 시작한 첫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