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이라는 말이 필요해졌을 때

결정의 조건

by 사이의 사람

그 무렵에는
‘안정’이라는 단어가
자주 떠올랐다.
막연한 바람이라기보다는
생활을 계산하게 되는 종류의 생각에 가까웠다.


앞날을 크게 그려보기보다는
다음 달, 그다음을
어떻게 넘길지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시기였다.
나이가 들고 있다는 감각도
조용히 따라왔다.
아직 늦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질문이 생겼다.


남편의 일은
계절을 탔다.
잘 되는 때와 그렇지 않은 때의 간격이 분명했고,
수입의 흐름도 일정하지 않았다.
그 리듬에 맞춰
집안의 분위기도 함께 움직였다.
그러던 중
전속 대관 계약이
재계약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큰 사건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만
앞으로를 다시 계산해야 한다는 사실이
조용히 자리 잡았다.
계획을 수정해야 했고,
선택의 기준도 조금 달라졌다.

의미나 성장보다는
매달 반복될 수 있는 구조가
더 중요해진 때였다.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일을 찾기보다는
이미 해 본 일,
익숙한 환경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일을 떠올렸다.


다시 배우는 데 시간을 쓰기보다
지금 당장
생활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쪽을 택했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는
지금도 단정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때의 나는
무언가를 증명하기보다는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자리를 찾고 있었다는 점이다.


안정이라는 말은
꿈을 접겠다는 선언이 아니었다.
그 무렵의 나는
속도를 내기보다는
버틸 수 있는 방향을
조용히 고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