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자는 최일선에서 고객이나 민원인을 직접 상대한다.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타인의 감정을 받아내는 행위가 일의 일부가 된다.
문제는 감정 조절 행위가 노동으로 명확히 인식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감정노동자는 결정권을 갖지 못한다.
규정과 기준은 이미 위에서 정해져 있고, 감정노동자는 그 결과를 설명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 과정에서 결정에 따른 책임은 구조와 지배가 아닌 최일선의 노동자에게 깃든다.
결국 권한 없는 책임자는 먹이사슬 제일 아래로 추락하게 된다.
먹이사슬에서 아래에 위치한 존재는 필연적으로 선택권을 가지지 못한다. 감정노동자 역시 마찬가지다.
거절할 수 없고, 판단을 미룰 수 없으며,
상대의 불만을 그대로 감당해야 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친절의 의무화다.
호의가 반복되면 권리가 된다더라.
감정노동자는 친절하고 공감적인 태도를 기본값으로 요구받는다. 친절은 원래 선택일 때 의미를 갖지만,
업무 기준이 되는 순간 평가 항목이 된다.
이때 감정노동자는 화를 내지 않는 사람, 불편함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 웃음으로 상황을 종결시킬 것을 기대받는다.
감정노동자는 늘 중간자 역할을 한다.
민원인과 제도 사이, 고객과 조직 사이에서
양쪽의 감정을 동시에 떠안는다.
이 구조에서 위로부터 통제받고, 아래로부터 공격받기 일쑤다.
감정노동자가 먹이사슬의 최하단에 위치한 이유는 개인의 성향이나 능력 때문이 아니다.
감정을 사용하는 일이 노동으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감정을 쓰는 일은 비용이 들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고,
그 비용은 개인이 감당하는 것으로 처리된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비용 투입이 없이 무한정 창출 가능한 동력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작용의 결과로 인해
감정노동자는
가장 많은 감정을 소모하면서도
가장 낮은 위치에 머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