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안에서의 감정노동자
“야! 니들 좀 심하다. 느그 엄마한테나 그래라!” 우리는 친해졌고 가까워졌고 익숙해졌고, 그리고 딱 그만큼 미안함은 사소해졌고, 고마움을 흐릿해졌으며 엄마는 당연해졌다. 엄마는 아팠다.
<응답하라 1994>의 한 장면이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학생들은 신촌하숙에서 가족이 되었다. 아줌마는 어무이가 됐고, 엄마는 아파졌다. 편한 사이에서의 익숙함은 고마움과 미안함을 흐릿하게 했다.
언제부터 엄마는 항상 미안해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하지 마. 진짜. 내가 얘기했잖아. 언니랑 같이 안 한다고 내가 얘기했잖아. 왜 맨날 내 말은 안 듣는데, 내가 언니랑 생일 같이 하기 싫다고 엄마랑 아빠한테 작년에도 그랬잖아. 재작년에도. 왜 맨날 나한테만 그래? 내가 만만해? 나는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사람이야? 왜 나만 계란후라이 안 해줘? 왜 노을이만 월드콘 사줘? 나도 닭다리 먹을 줄 알거든?”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이다. 가족의 둘째 딸 덕선이는 생일이 같은 날도 아닌데 언니의 생일에 촛불만 얹어 생일축하를 받고, 언제나 닭다리와 계란후라이를 양보한다. 속상해 집을 나와있다가 아빠가 슬쩍 내민 아이스크림에 기분이 풀려 다시 덕선이로 돌아갔다.
둘째는 언제부터 눈치를 보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일까.
<응답하라>시리즈는 엄청난 세대적 공감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한 마디로 시대를 관통하는 주제를 대중과 공유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엄마와 덕선이가 존재했다. 10년이 지난 영상을 보는데 그때와는 전혀 다른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들은 중재자이자 감정노동자였다.
감정노동은 가족 안에서도 발생한다.
가족은 가장 안전한 관계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감정노동이 가장 당연시되는 관계이기도 하다. 가족 안에는 모두 알지만 모른 척하고 있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
화를 누그러뜨리는 사람, 분위기를 정리하는 사람, 중재하는 사람.
이 역할은 공식적으로 정해진 적이 없지만, 자연스레 특정 사람에게 고정되곤 한다. 그 사람은 가족 안에서 갈등을 중재하고, 상처를 덮고, 불편한 말을 삼킨다.
엄마는 늘 마지막에 남는다. 싸움이 끝난 뒤 설거지를 하면서, 방으로 들어간 아이의 방문을 두드리면서, 말없는 남편의 등을 두드리면서. 엄마는 집안의 감정도 분리수거하고 있었다. 상처가 덜 될 말을 골라 식탁 위로 올렸고, 독한 말은 혼자 삼켜냈다.
둘째 딸은 그걸 보고 자랐다. 첫째는 기준이었고 막내는 보호였다. 둘째는 그 사이에서 눈치를 배운다. 누가 화가 났는지 먼저 알아차리고, 누가 더 예민한지 계산하고, 자기의 말은 뒤로 미룬다. 가족의 균형을 위해 자기 기분을 정확히 계산하는 능력을 얻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보다 강해서 그 역할을 자처하지 않았다. 다만 사회적 기대와 눈치 속에 가장 오래 버틸 수 있도록 강요되어 왔다. 마치 감정노동자가 친절을 기본값으로 기대받는 것처럼. 감정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게 되었고, 감정을 먼저 처리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다.
버티는 사람이 있었고, 그 버팀에 모두가 기대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족 내 감정노동은 능력이라기보다는 구조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감정이 버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험한 말과 함께, 거친 숨과 함께 뱉어진 감정은 남는다. 결국 누군가는 감정을 처리한다. 그리고 가족 내에서의 역할은 강요되어진다.
감정 쓰레기통은 비워지지 않으면 언젠가는 넘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