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복하는 사회복지사의 이야기
천사 아니지만... 형사도 아닙니다.
나는 천사 아니지만... 형사는 더더욱 아니다.
근데 내가 왜... 차에서 매복을...?
모처럼 충전해 둔 천사마인드가 바사삭 부서진 지 오래.
나는 또 하루를 커피로 버텨내고 있는 중이다.
이건 충전이라기보다는 비워내는 행위이다.
사무실에서의 커피는
일을 시작하기 전 지내는 기우제요,
일을 버텨내기 위한 노동요이자,
일을 마치기 위한 제사 같은 것이었다.
나에게 일터는 딱 그 정도의 의미였다.
마지막 커피콩을 갈아내고 커피를 내리는 순간
직장에서의 시간을 끊어냈다.
그것이 감정노동자의 입장에서 살아남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오늘...
18:40. 퇴근 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에
나는 지금 차 안에서 파트너와 함께 잠복 중이다.
그것도 이틀째... 소중한 퇴근을 지키지 못했다.
"대체 저 사람이 왜 나라도움을 받고 살죠? 맨날 남편이 사줬다, 시어머니가 사줬다, 아이랑 해외 놀러 간다 자랑을 그렇게 하고 다니는데. 영세민이라고요?"
"이게 말이 돼요? 민원 넣을 거예요! 확인해 보세요!"
... 나는 내가 무슨 죽을 죄라도 지었는 줄 알았다...
... 그냥 월급 받는 직장인일 뿐인데...
작정하고 속이려 드는 사람을 무슨 수로 잡아내겠는가.
괜히 억울하고 분했다.
마음은 이미 갈릴 데로 갈려
미움을 담아둘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전화에 대고 한 마디 쏘아붙였다.
"저기 죄송한데요. 이미 기초생활수급자 선정은 다른 지자체에서 됐고, 저는 이제 처음 통화하면서 부정수급 사실을 알았잖아요? 인지했으니 폭언은 하지 말아 주세요"
화가 났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기필코 잡아내고 말리라.
지금 이 매복은 대단한 사명감이 아니었다.
화를 참지 못한 대가이자, 오기였다.
그래서 나는 오늘 퇴근도 하지 못하고...
차 안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고 있다
"후루룩... 저 사람 같은데요? 맞는 것 같은데..."
"아이랑 같이 가는 저 사람들? 아니야. 우리 지금 40세 여성과 7살 여자아이 같이 가는 거 찾는 거야. 방금은 아저씨랑 여자아이였잖아? 아니야..."
아이 표정이 해맑았다.
"어.... 아닌데요. 저 집 맞잖아요? 우리 지금 저 집 보는 건데? 따라가 볼까요?"
"잠깐 기다렸다가 가자. 무섭다.... 가서 뭐라고 하냐... 어유. 너도 좀 참지!"
덩치가 산 만한 유도부 팀장의 말이었다.
그렇게 떨며 기다리는 시간이 삼십 분쯤 지났을 때였다.
"어, 저기! 맞죠..?"
"됐다. 가자!"
드디어 기다리던 40대 여자가 나타났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문 앞으로 다가갔다.
"부정수급 제보받고 나왔습니다.
현재 한부모가족이신데 죄송하지만, 사실 아까 자녀분이 어떤 남자분이랑 저기 집으로 들어가는 걸 봤어요"
나는 여기서도 죄송해졌다.
다행히 그 여자도 죄송해했다.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실제 남편과 이혼 후 살기가 어려워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했고, 한부모가족으로 나라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던 중 최근 전남편과 화해하게 되어 다시 합치게 된 지 3주 정도 됐다고...
미리 말하지 못해 이렇게 고생시켜 드려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번 주 내로 사무실로 오세요. 3주 정도 되셨으면 아직 이번 달 급여가 안 나갔으니 다행이에요. 꼭 오셔야 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내일 바로 가겠습니다"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차로 돌아왔다.
하마터면 또 '죄송합니다'라고 마무리할 뻔했다.
그렇게 홧김에 시작한 매복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다음 날 그 여자는 찾아와
조용히 수급포기원을 제출하고 갔다.
어제의 매복을 토대로 조사해 본 결과
여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문제가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나는 천사는 아니지만, 죄를 쫓는 형사도 아니다.
제보를 한 사람도 나라 세금을 걱정했을 것이고,
재결합을 알려야지 생각하다 늦어진 가족도
죽을죄를 지은 것은 아니었다.
물론 매복하여 일을 해결한 나도 말이다.
그날 커피콩을 갈아낼 때는 조금 색다르게
다시 뭉친 가족의 행복을 빌어보았다.
도를 닦는 심정으로.
천사도, 형사도 아닌 사회복지사의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