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사정

칼을 들고 왔던 이유는...?

by 밤결


"꺄악!"

흐느껴 울던 손님 갑자기 칼을 꺼내 들었다.


사무실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건.


비명소리가 울리고 이내

우당탕탕 의자가 넘어졌다.

쇠붙이의 서늘함이

한여름 사무실을 강타했다.





다행히도 나는 시원한 녹차를 타기 위해

손님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나도 너무 놀라 녹차에 얼음을 넣다 말고

움직임을 멈췄다.

칼을 꺼내든 손님도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그 찰나의 순간이 멈춘 듯 길게만 느껴졌다.


비가 쏟아지던 날,

따뜻하지만 흔한 녹차를 낯설게 바라보고

젖은 손으로 온기를 갈구하던

덩치 큰 아저씨의 손이

칼을 쥐고 있었다.


얼어붙은 공기를 깬 것은 아저씨의 말이었다.




"저 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

"크흑.... 내가 다치면 될까요, 죽기는 무서운데..."


그리고는 자신의 배를 찌르겠다며

웃통을 걷어 올렸다.

짐짓 기세 좋게 행동했지만,

여전히 서럽게 울고 있었다.


약간 정신이 돌아와 보니,

손에 들린 칼은 작은 과도였다.

칼을 쥔 손이 떨리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이

내 책임인 것만 같았다.




나는 아저씨에게로 한 걸음 내디뎠다.

별다를 반응이 없었다.

용기를 내어 두 걸음, 세 걸음 걸어가

얼음이 반쯤 녹아버린 녹차를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칼을 쥔 손이 녹차를 보고는 약간 내려왔다.


천천히 손을 뻗어 칼을 빼앗았다.

칼을 쥔 손에 힘이 빠져있었다.


나는 일부러 소리를 크게 내며

칼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땡그랑'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간 사무실 공기가 녹아내렸다.






"다음에 또 이런 행동하시면 다시는 안 볼 겁니다"

"의자 세워 놓고 앉으세요. 어떤 게 그렇게 힘드세요"


내 말이 어쩐지 곱게 나가지가 않았다.


살짝 까칠한 재질의 말이 건네졌다.

덩치 큰 아저씨는 의자를 세워 앉아

고개를 숙인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더 이상 울지도 않는 체념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아저씨는 정신적인 문제로 일을 못한다고 했다.

당연히 신체 멀쩡해 보이니

특별한 도움을 받을 수 없었고,


집세를 내지 못해 쫓겨나 버스정류장 뒤 텐트에서

노숙을 하게 됐다고...


비 오는 날 너무 추워서

사무실에 피신했는데,

그날 마신 녹차 생각에 다시 왔다고.


무단으로 설치한 텐트를 철거해 갈까 두려워서

쓰레기통에서 과도 하나를 주웠고,


지금은 비도 안 오고 몸도 멀쩡해 보이니

어렵다고 힘들다고 얘기해도 무시당할까 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작은 과도를 들고 왔다고.




나는 천사가 아니다.

월급 받는 직장인이

몸이 멀쩡하고,

주소도 일정치 않은 덩치 큰 아저씨를

도울 방법은 많지 않았다.


상담 끝에

인근 노숙인쉼터에 전화를 걸어본 뒤

전화번호를 적은 쪽지를 건네주었다.


아저씨는 더 울지도, 더 요구하지도,

난동을 부리지도 않았다.


그저 고개를 꾸벅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아마도 또 다른 낯선 장소에

텐트가 출몰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나도 고개만 꾸벅했다.


그날,

애써 충전해 둔 천사마인드가 전부 갈려나갔다.

비어버린 가슴에 나쁜 마음이 덕지덕지 붙었다.


그날 오후,

탕비실에서는 커피콩 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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