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서 챙겨줄 수 있는 그 사람들이 너를 숨 쉬게 해 줄 거야
* 아직 시청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 줄거리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스포일러는 있습니다.
연출: 이재규 ('지금 우리 학교는' 연출) , 김남수
극본: 이남규, 오보현, 김다희
스트리밍 플랫폼 : 넷플릭스 총 12화
웹툰: 이라하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웹툰 플랫폼: 네이버 금요웹툰, 200화 외 번외 전 10편과 후기
단행본으로 출간된 웹툰 시리즈다.
장르: 일상, 휴먼, 의학, 드라마
멀쩡해 보이던 여인이 갑자기 옷을 내던지고 춤을 추며 복도를 헤매인다. 흰 연기가 뿌옇게 그녀의 몸을 가리고 있지만 어느 아리따운 현대 무용을 보듯 그녀는 아름다운 자태로 처절하게 몸부림친다.
달려온 간호사가 담요로 그녀를 가리고,
그녀는 간호사에게 부축된 채 병실로 가던 중, 선 채로 소변을 싸고 만다...
그녀 이름은 오리나. 오리나씨는 조울증 환자였다.
내 눈 앞에서 펼쳐졌다면 환장할 장면을, 적절한 그래픽과 예술?로 승화시킨 표현력으로 거부감 전혀 없이 (약간의 충격과 함께) 이야기를 잘 풀어갔다.
감기가 걸리면 내과, 뼈가 부러지면 정형외과를 가듯, 마음의 면연력이 떨어지면 정신과를 가야 한다. 누구나 언제든 약해질 수 있으니까..( 본문 중)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요즘 현대인이 가진 마음의 아픔을 덤덤하게 어루만져 주는 드라마..라고 한 줄 정의 내릴 수 있는 작품이다.
더불어 처방약도 무심한 척 툭툭 던져주는 드라마.
아파도 병원에 가기 싫다며 끙끙대는 친구에게 약통을 뒤져 타이레놀 두 알과 물 한 컵 건네주 듯,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작은 처방전을 모니터 너머로 날려 보내준다.
'그래도 아프면 꼭 병원 가! 고집부리지 말고'
어느 글에서 읽은 적이 있다. 작가는 케이크 한 파이를 먹지 않고 한 조각만 먹어도 그에 대한 품평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작가는 그 맛에 관련된 이야기를 적기 위해 전체를 먹을 필요는 없다. 좋은 말이라 기억에 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한 조각만 먹고는 쓸 수 없는 이야기다.
상상력을 덧붙이기 힘든 의학 드라마에다가, 정신과 관련 디테일과 정보가 가득한 이런 이야기들은 하루 이틀 경험만으로는 쓸 수 없는 이야기이다. 그 소재들과 부대끼고 뒹굴며 넘어져서 다치기도 하고, 그렇게 성장하기도 좌절하기도 하는 작가가 보인다.
네, 오리지널 웹툰 원작 작가는 간호사 출신 작가입니다.
거기에 드라마 제작 중에도 실제 근무중인 대학병원 의료인 자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여느 정신과 배경 드라마, 예를 들면 김수현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사이코지만 괜찮아> ,와 달리, 이 이야기는 정신과적 어려움(병)을 소재로 상당히 디테일하게 표현되어 있다. 로맨스와 코미디는 톡톡 뿌려진 조미료 수준이다.
우선 웹툰과 드라마의 큰 차이점은 캐릭터 외모들이다.
웹툰은 정시나( 드라마 주인공: 정다은)만 사람 외모이고 나머지 캐릭터들은 오리, 토끼, 거북이, 여우등 귀여운 동물로 표현되어 있다.
'정. 신. 병. 자' 이야기,, 라 하면 이미 머리가 아파지고, 언덕 위 하얀 집이 떠오르고, 넋 빼고 있는 머리 헝클어진 환자가 떠오른다. 그런 선입견에 '누가 읽어?' 라며 넘길 수 있지만, 이 귀여운 동물 캐릭터들은 독자의 눈을 끌어 잡는다. 나체로 뛰어다녀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상큼, 발랄, 담백하고, 재미있고, 귀엽고, 호감형에 이쁜 박보영 (네, 사심 팬입니다 )의 이미지기에 드라마 전체 분위기가 다운되지 않고, 주인공 정다은의 시련과 아픔 또한 박보영 배우 이미지가 더해져 극의 결이 잘 유지된 채 진행되었던 거 같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모든 인물들이, 필요 없는 존재가 한 명도 없을 만큼, 얽히고설켜서 관계들을 맺어가고 서로 힘이 되어 나아지기도 하고, 그럼에도 좋지 못한 결론이 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헤쳐 나간다.
그리고 틈틈이 코미디 요소를 넣어 웃음이 쿡쿡 나게도 하고, 말 한마디에 눈물이 펑 터지기도 한다.
주변에 널린 계절별 독감 바이러스나 감기처럼, 조울증, 공황장애, 주부우울증, 가스라이팅에 의한 불안 장애, 망상등 매 회 나오는 아주 흔한 정신과적 문제와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이 잔잔한 감동으로 와닿는다.
예를 들면, 요즘 연예인들이 많이 언급하는 공황장애.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단어만 알 뿐 공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그 증상을 공감할 수 있게 눈으로 보여준다. 빨대를 입에 물고, 코를 막고 귀를 막고,, 하나 둘 숫자를 세다 보면 죽을 듯이 숨이 넘어가고, 아찔해진다. 공황장애인 그들 주변은 물로 가득 채워지고 익사할 듯 공포스러워진다. 그 10초 동안 그들은 죽을 듯하여, 119에 연락을 할지 말지 고민을 한다. 그렇게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공황장애를 시청자들에게 '보여준다'.
그렇게 증상을 표현해 주고, 일상에 다시 적응하는 그들의 치료 과정을 보며, 시청자는 그들에게 공감하고 응원을 보낸다.
줌마인 내가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회차는 5회다. ( 학부모 / 워킹맘 주부들에게 권한다)
주부 (가상) 치매 관련 이야기였다. 두뇌에 문제는 없지만, 치매와 같은 증상으로 기억력이 상당히 쇠퇴한다.
줌마들 특징 중 하나가 건망증이다. 전화기를 찾았더니 냉장고에 있더라, 콩나물 사러 갔다가 김치만 사왔다. 통화를 하면서 내 휴대폰을 찾고 있더라...
남 일로만 알았는데, 어느덧 내가 ADHD나 치매를 의심할 정도로 산만하고 기억력이 떨어졌다. 단지 출산 후 몸이라서, 노화로, 혹은 두 세 아이의 스케줄 관리에 + 집안일+ 회사일등 멀티태스킹에 지쳐서 그래.. 라며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3040대 주부들도 '남들 다 겪는 거야..'라며 일반화시킨다.
'우린 괜찮아. 그냥 바쁠 뿐..'
그런데, 5화에서 이유가 나온다.
생각지 못한 이유였다. 그건 '우울증'란다.
"머라고오??? 그럼 내 주변은 다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직업이 의사든 변호사든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아이가 둘 이상인 내 주변 엄마가 제정신으로 보이는 이는 없다. 특히 두 세째들의 방과후 활동이 시작되는 1-2학년이 되면 엄마 머리는 여러 개로 쪼개진다. 그녀의 캘린더는 식구마다 컬러를 다르게 달고, 육아가사에 더불어 스케줄 관리에 지친다.
드라마에서 보여준 처방전은 개인 자서전.
어릴 때부터 시작한 본인의 자서전을 적어보아라. 그 후 부정적인 문장에 형광펜으로 그어라.
점점 그 노랑이 가득해지는 페이지가 보인다...
드라마 속 두 워킹맘은 아이 출산 후 급격히 많아진 노란줄들을 보게 된다. 그렇게 자신의 상황을 눈으로 보며 인지하고, 우울한지도 모른 채 나를 잊고 지나온 분주했던 시간을 자각할 때,
'애 많이 쓰셨다 그죠...'
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 한마디에 마치 내가 위로를 받는 듯, 순간 울컥.. 눈물이 터졌다. ㅜㅜ
(저는 T에 가까운지라, 잘 우는 편이 아닙니다. 드라마 공감대가 아주 잘 형성되었던 거 같아요.)
'내가 행복해야 모두가 행복하다'라는 메시지를 주부들에게 강하게 알려준다.
그런 드라마다...
명신대 병원 내과 간호사 정다은이 정신과로 옮겨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 속에서 겪는 일들을 동화처럼 풀어간다. 현시대에 흔한 정신병을 다룸으로써 시청자들에게 위로를 주는 힐링 드라마다.
오프닝 영상도 환자들이 그린 듯한 오묘한 그림과 크레파스 느낌으로 만든 타이틀 로고로 구성되어 따뜻한 동화책 느낌을 준다.
정다은 (배우: 박보영)
웹툰 오리지널에서 정시나.
달달하고 깜찍한 배우 박보영과 드라마 내 다정한 주인공 캐릭터와 어울리는 '정다은' 이름으로 개명된 거 같다. 착하고, 환자에게 공감하고 보살펴 주려는 마음이 크다.
동고윤 (배우: 연우진)
손가락 마디를 꺾는 강박증을 가진 명신대 대장항문외과 의사.
본인의 환자라면 끝까지 고칠듯한 믿음직스러운 성품에, 약간 엉뚱한 면도 보인다. 정다은과 함께 일 때 손가락 마디를 꺾지 않기에 다은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송유찬 (배우: 장동윤)
정다은의 어린 시절부터 단짝 친구. 다은을 좋아하지만 고백할 순간을 항상 놓친다.
대기업에 입사를 하나 과중한 업무에 스트레스를 받다가 결국 공황장애가 생겼다. 회사를 그만둔 후, 공황장애를 숨기고 부모님 치킨집에서 일을 하다가, 동고윤이 이를 발견하고 다은이 도움을 주며 주변인들로 인해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 간다.
황여환 (배우: 장률)
명신대 정신과 의사. 다은과 유찬의 어릴 적 과외 선생님으로 겉으로는 툴툴 거리나 은근히 다은을 걱정하고 챙긴다. 부유하게 자란 본인과 다른 간호사 민들레를 좋아하게 되고, 얼음물을 뒤집어쓰기까지 하는 구애 끝에 그녀의 마음을 얻는다.
오리나 (배우 : 정운선)
웹툰 원작에서는 오리 캐릭터로, 이름은 같다. 43세 조울증 환자다. 평생 엄친아로 살아온 그녀는 알몸으로 춤출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소통되지 않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살아오던 착한 그녀. 어릴 적 목에 걸려 싫어하는 '포도'인데, 엄마는 그녀가 좋아하는 과일이라며 매번 가져온다. 고쳐가는 과정 중에 오리나의 엄마도 생각에 변화를 가지게 되고, 딸을 위해 포도만이 아닌 다양한 과일을 싸 오는 모습으로 그들 소통이 진행됨을 보여준다.
김서완 (배우: 노재원)
원작에서 거북이 캐릭터로, 망상 장애 환자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대답을 해주는 다은을 '중재자님'이라 부르며 잘 따른다. 호전되어 퇴원을 하나 결국 고시학원 옥상에서 게임 속 망상을 하며 투신자살을 한다. 이 사건이 다은에게 충격을 주었고, 드라마 내용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 외 보이스피싱을 당한 충격으로 망상에 잡힌 정하람 (원작: 다람), 상사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자존감이 낮아진 사회불안 장애를 가진 김성식,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었던 상습 자해 하는 박병희, 30년 정신병동 보호사로 근무 중인 모든 방면 척척박사이자 탁구왕 윤만천등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유찬의 공황장애를 알게 된 고윤과의 대화다.
"왜 말 안 했어"
"에이 쪽팔리잖아요. 본인 정신도 컨트롤 못하는 나약한 사람으로 보이잖아요."
"주변 사람들에게 맡겨. 10초 뒤 죽을 거 같은데, 옆에서 챙겨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들이 너를 숨 쉬게 해 줄 거야."
아프다고, 도와달라고, 옆에 있어달라고,, 나만의 안전장치를 찾기 위해 적어도 가족과 친한 친구들에게 알리며 도움을 청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어느 기사에서처럼 걸어 다니는 서울사람 반은 정신 질환이 있다는 말이 돌 만큼 현시대에는 서로 돕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많이 힘들다면, 전문가의 도움이 더 유용할지도 모르겠다.
전체적으로 파스텔톤으로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준다.
병원 세트는 고증과 자문을 반영하여 제작하였다. 휴게실에 식물을 많이 활용하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조성하였고, 따사한 햇살과 공기로 생기 넘치는 곳으로 만들었다.
조화성 미술감독은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벽과 공간의 풍부한 입체감을 주고자 했고 관찰자 시점으로 유리 밖의 현실 세계와 유리 안의 내부 세계의 모습이 겹겹이 쌓인 기묘한 풍경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공간의 컨셉에 대해 설명하였다. <스포츠 경향, 기사중>
드라마퀸 평가
별점: 다섯개
자칫 차갑고 어두울 수 있는 소재를 따뜻한 자연광처럼 포근하게 만든 드라마다. 현시대 공존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와 거기서부터 오는 마음의 병을 드러냄과 동시에 토닥토닥 위로하며 괜찮다고 알려준다. 또한 많은 디테일을 보여줌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그들을 이해하게 만들고, 그게 남일이 아닌 내 일이 될 수도 있음도 생각하게 만든다.
한번쯤 나를 돌아보게 하는 힐링 드라마다.
* 사진 사용상 혹 문제가 있다면 내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