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에요, 가족
* 아직 시청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 줄거리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스포일러는 있습니다.
연출/감독: 민홍남 (부산행 조감독)
극본: 연상호('지옥' 웹툰스토리, 드라마 제작/ 영화 '부산행', '정이'제작) , 민홍남, 황은영
스트리밍 플랫폼: 넷플릭스 6부작
웹툰: 강태경, 조눈, 리도, 연상호, 민홍남, 황은영
웹툰 플랫폼: 카카오웹툰 30화 완결
장르: 미스터리, 스릴러, 범죄, 서스펜스, 공포
" 이 분들 무슨 관계예요?"
"가족이에요, 가족"
선산에 있는 한 묘를 덮던 남자가 윤서하(김현주 배우)에게 물었다.
과연 그녀는 무슨 답을 할까... 궁금해서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조금 뜸 들인 후 그 남자에게 대답을 하였다. 가족이라고. 그게 정답이었다. 모든 복잡한 관계도 가족이라는 단어 하나로 해명이 되고, 어떤 형태의 가족이든 거짓 정보 또한 아니다.
시작부터 음침한 느낌으로 시작하는 가족 드라마다.
6회인지라 금세 정주행을 하였다.
잡식성인 드라마퀸이라 미스터리, 스릴러도 좋아하지만, 개인적으로 별로 찾아보지 않는 소재가 몇 있다.
그중 이 드라마는 두 개를 가졌다.
샤머니즘, 근친상간...
일단 쾌쾌하고 찜찜하다. 무당과 굿이 나오면 타다 만 향내음이 온 공간을 채우며 내 코를 자극하는 듯하다.
공포도 아닌 이상한 기운이 불편하다.
우리나라 무속신앙인만큼 어쩌면 여전히 굿을 행하는 집이 있을지도 모른다.
초등학생 때 우연히 어느 집 마당에서 굿 하는 것을 본 적 있다. 80년대였지만 여느 집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었다. 사람이 몰려서 얼떨결에 잠시 구경했던 거 같지만, 꽹과리 소리도 시끄럽고 어린 내게는 그 기운이 싫었다. 공기 중에 떠도는 낯선 기운. 정말 근처에 귀신이 있을 거 같은 느낌. 없던 귀신도 부를 것만 같은 기운. 그래서 가던 길을 계속 갔던 적이 있다.
물론 한국 전통 무속 신앙인만큼, 우리나라 전통문화의 한부류로 존중한다.
의상과 문양 관련 아트도 연구할 가치가 있을 만큼 신기롭다.
굿판에서 무당과 윤명호의 긴장감이 도는 장면이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거 같다.(윗 사진) 강렬하기도 했고, 여러가지 질문도 떠오르게 했던 장면이다.
'저 자는 귀신 씐 미친자가 아니다. 그런데 왜 저럴까..'
드라마퀸의 미스테리물 보는 자세
미스터리나 추리물은 나도 모르게 범인을 잡기 위해 드라마에 꽤 집중한다.
이번에는 작가가 범인을 어떻게 숨겨놨을까,,
뒤엉키고 흐트러진 실타래 정리를 다짐하는 마음으로 TV 모니터 앞에 앉는다.
마치 코난도일의 작품을 읽으며 범인을 찾던 그 시절로 간 듯, 작가의 의도와 배우 특성까지 고려해서 추리를 시작한다. 일단 이복동생은 아니다. 웹툰 포스터에 덩그러니 나와 있지 않은가.
물론 가위바위보에서 처음부터 바위를 내 듯, 제작자가 범인을 처음부터 드러내 놓기도 한다. 그럴 땐 오히려 설마,, 다른 꿍꿍이가 있을거야,, 의심하며 보다가 틀리는 경우도 있었다.
드라마퀸의 추리력으로 처음부터 범인으로 몰아가던 이복동생이 진범이 아닐거라 여겼다. 오히려 그는 주인공을 챙기고 걱정하는 듯해 보였고, 생사나 정체를 모르는 그의 엄마가 범인일 거라 생각하며 시청했다.
처자식을 두고 갑자기 가출을 한 윤명호(아버지)도 이해되지 않았다. 딸에게 졸업 선물을 보내기도 했으면서, 교복 입고 멀리 찾아온 딸에게 매정하던 아빠.
‘이러면 서로 불편하지 않겠느냐’라 말하던 아버지가 많이 이상해서 욕을 하긴 했다.
내연녀가 지독히 전처 자식을 싫어하나 보군... 아들 낳고 두 집 살림하더라도, 전처 자식도 본인의 자식인데.
찾아온 딸아이는 분명 무슨 일이 생겨 왔을 터인데, 애써 인연을 끊는다. 모진사람 같으니라고.
도대체 그 내연녀 누구야!
결국 중후반에 범인이 누구일지 간파하였다. '에헤이,, 이거 이거 몹쓸 드라마군.'
감독의 인터뷰를 보지 않았더라면 계속 그렇게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요즘 살짝 식상해져 가는 회빙환에 비해 여운을 남길 수 있는 소재긴 하지만, 나처럼 금기깨기를 불편해하는 시청자라면 6시간 남짓 정주행 했던 시간을 허비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다행히 인터뷰 기사를 읽은 후 작가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웹툰 스토리 제작과 극본을 맡은 연상호 감독은 근친상간, 그 자체 보다 '가족의 이중성'을 표현한 거라고 당부하였다. 근친상간에 매몰되지 말라고 당부했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는 이런 설명도 하였다.
연 감독은 "서사가 이성적으로는 생각하기 힘든 방향으로 가는 원동력이 '가족'이었다. 가족이 종교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업보, 액막이, 죄의 대물림이라는 가족적인 단어가 무속 이미지와도 맞는다고 생각해 만들어내게 됐다"며 근친상간의 당사자이자 굿을 하는 승려 캐릭터를 설립하게 된 이유를 전했다. <Zum 연예 인터뷰>
감독 말대로 근친상간에 매몰되지 않고, 작가 의도에 맞춘 시각으로 바라보자면, 그가 말하고자 했던 바가 보인다.
이런 작가 인터뷰를 읽지 않았다면, 나 또한 '선산'을 좋은 기억으로 남기지 못할 뻔했다.
폭력과 함께 금기 깨기도 자극적인 소재 중 하나이고, 결국 여러 가지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금기지만 사실 유럽 역사에도 등장하는 이야기고, 몇 년 전 방영되었던 왕좌의 게임 (Game of throne)에도 근친상간이 소재로 나온 적은 있다. (작은 소재중 일부였다. 워낙 자극적인 드라마였는지라)
하지만 여전히 한국 정서상 찜찜한 소재이기는 하다.
웹툰, 드라마 모두 연상호 감독과 그 팀이 제작을 해서 그런지 스토리는 같았다.
단지 웹툰 속 장남은 단정한 머리 스타일이었고 둘째 아들 머리스타일이 장발이라 기억에 남았는데, 드라마에서 장남인 윤명호 헤어스타일이 그 인상적인 장발이었다.
주인공 윤서하는 가족이 존재하는지도 모른채 살아오다, 밑도끝도 없이 선산을 상속 받아야하고 그 과정에 가족이라는 사람들로 부터 크게 상처를 받았다. 그 모든 상처들이 곯고 터진 후에 그녀는 오히려 선산을 팔지 않았다. 대대로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산이니 가지고 있기로 했다며. 결국 그녀는 그렇게 상처를 줬던 가족들을 가족애로 보듬고 묻어준다. 결국 핏줄이기에.
가족 드라마지만, 항상 밝은 가족 드라마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몇백 년 조상 대대로 한국에서 살아왔다면, 어느 집안이건 쉬쉬하는 별별일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스토리는 그중 하나일 뿐.
선산, 장남, 무당, 굿.. 핏줄.
모든 소재는 토속적이다. 스토리 구성도 탄탄하고, 거기에 조금은 현실적이고 찌질한 윤서하 캐릭터를 더하고, 류경수와 박희순 배우의 묵직한 연기에 드라마 보는 재미가 있었다.
어느 날 선산을 소유하고 있던 한 할아버지가 죽게 되고, 그 선산이 윤서하에게 상속되면서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풀어나가는 미스터리, 스릴러 물이다.
윤서하 (김현주 배우)
비정규직 대학 교수.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작은 아버지로부터 갑자기 선산을 상속받게 된다. 그 후 사건사고가 연이어 일어나고, 점점 아버지와 관련된 진실을 알게 된다.
모든 배역을 차분한 이미지로 잘 소화해내는 여배우 김현주.
김현주 배우는 연상호 감독과 '지옥', '정이'를 함께 촬영하였다. 특히 '정이'에서 액션 연기와 함께 감정 표현이 어려운 캐릭터였는데 그것을 아주 소화 잘해서 김현주 배우에 대한 눈이 달라졌던 기억이 있다.
살아온 배경과 앞으로도 살아남아야 하기에 약간 찌질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윤서하인데, 김현주 배우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듯 하면서도 이 또한 잘 소화해 내는 모습에 연상호 감독이 왜 그녀와 함께 작품을 하는지 알 거 같았다. 짝짝짝
최성준 형사 (박희순 배우)
남일 경찰서 강력 1팀 형사. 마을에 발생하는 사건이 선산과 관련되어 있음을 직감하고 조용히 파헤친다.
업보를 짊어진 양 본인의 실적과 상관없이 사건을 해결해 나가고, 그 성적은 박상민 반장에게 보낸다. 책임감 있고, 예리하고 날카로운 실력있는 형사다.
웹툰 캐릭터를 보며 박희순 배우를 연상하였는데 무척 닮았다.
박상민 반장 (박병은 배우)
남일 경찰서 강력 1팀 반장. 과거 사건으로 인해 다리를 다쳐 그 후 목발을 짚고 다닌다. 그 후 열등감과 우울함에 빠져있다. 본인 지시에 따르지 않고 개인적으로 수사를 하는 최성준 형사가 불만스럽다.
그에게 역정을 내며 싫어하는 듯 하지만, 항상 '성준형'이라 칭하는 말투에 과거 친분을 예상할 수 있다.
김영호(류경수 배우)
짝짝짝... 와,, 미친 연기였습니다.
윤서하의 이복동생. 작은 아버지의 장례식에 갑자기 나타나 윤서하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덥수룩하고 흐트러진 머리, 메마른 입술과 초점 없는 눈빛으로 살짝 광적인 인물처럼 보이고, 한편으로는 홀로 감춰져 살아온 탓인지 외로워 보이기도 한다. 윤서하집 문과 벽에 빨간 닭피로 부적그림을 크게 그린 장면으로 그를 범인몰이하지만, 결코 윤서하를 헤칠 생각은 없어 보였고, 오히려 그녀를 보호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더 크다. (부적의 의미는 보호다. 대문짝만하게 그려놓은 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그 마음은 극이 끝날 때까지 지속되는데, 유일한 혈육에 대한 애정이 보인다. 그만큼 외로웠던 모습도 함께.
윤명호 (김호연 배우)
윤서하의 아버지. 집안의 장남으로 원래 선산을 물려받아야 하지만 어쩐 일인지 작은 아버지가 선산을 물려받았다. 딸과 부인을 두고 가출하여, 그 후 김영호를 낳고 키웠다. 사건의 발단은 이 분이 아닌가 싶다.
뭔 생각이셨을까..
드라마를 보는 동안 이 배우에게 눈길이 갔다. 처음 보는 배우였는데, 약간의 카리스마도, 어느 정도 사이코틱한 느낌도, 누아르풍의 느낌과 소설 같은 순수함도 섞여 보였다. 김호연이란 배우를 찾아보니 정보가 많이 없었다. 백범김구의 손녀와 결혼했던 김호연 정치가, <불편한 편의점>의 김호연 작가만 나왔다. 누구지?
조금 늦은 나이에 연극무대를 시작했던 신인 배우인 듯하다. 그 외 특별한 정보가 없는 분이다.
앞으로 좋은 배우가 되시길 기원해 봅니다.
디자인 이야기 - Space, Props, Costume
스토리가 한국 토속적인 소재인 만큼 작품도 한국 고유미를 유지하는 듯해 보였다.
동양화를 보는듯, 전체적으로 여백의 미를 살린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고, 화면 구도나 구성 모두 안정적으로 차분하다.
구도는 안정되나 빛은 어렵다. 음침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함인지 역광 사용을 많이 한듯하다.
특히 <밀레의 이삭 줍기>를 연상시키던 논밭에서의 제사 장면은 가장 안정적인 구도로 잡혀있다. 반면 해를 카메라 앵글 맞은편에 두고 역광으로 촬영한 점이 특이했다. 큰 태양이 뒤에 떡 버티고 있는 씬은 자주 보지 못한 거 같다. 뒤에 타오르는 연기며 배우의 미친듯한 연기로 이는 점점 더 시청자를 미궁으로 빠뜨리게 하는 심상치 않은 장면으로 연출했다.
무당 관련 소품, 아트도 신경을 많이 쓴 듯하다. 특히 병풍이 아닌 배너가 인상적이었다. 지붕 높이까지 걸린 큰 배너 사이즈에 굿의 공간이 확장되어 보이고, 무당의 가치가 높아보인다.
큰 공간 내 무당의 굿은 공연 같아 보여 제법 신뢰할 만해 보인다. (물론 무당의 점은 틀렸다.)
굿을 할 때 무당의 검은 옷에 꽃자수, 윤서하 집 앞에 그려진 부적 문양등 화려하거나 괴팍해 보일 수 있는 것들을 현대적으로 이쁘게 디자인하여 눈길을 끌었다. (닭피로 그려진 부적 문양을 이쁘다고 표현하여 이상하지만, 새 문양 스케치를 보며 잘 그렸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드라마는 전체적으로 철저히 한국의 미를 유지하면서, 여러 소품들과 문양, 컬러로 포인트를 주며 현대적인 느낌을 가미해서 잘 표현한 거 같다. 그 느낌은 마지막 포스터에도 잘 표현되어 있다. 어스름한 무채색의 선산과 나무, 길, 그렇지만 정중앙 지점에서 반짝이는 청홍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그 청홍 또한 숨겨진 비밀의 상징으로 보인다.
드라마퀸 평가
별점: 별 네개
가족들이 말하는 가족 이야기.
나의 평가는 사실 ......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지라 억지로라도 표현은 해야 하는 법.
잘못된 가족애가 부른 참담한 이야기다.
윤서하의 가족 이야기는 (살인까지 행해지지는 않겠지만) 한국의 어느 가정에서 일어났을 수도 있을 법한 갈등이며, 결국.. 피해자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그들의 후손이다.
또 다른 가족사를 가진 최성준 경찰의 가족. 소통이 단절된 부자 관계에서 다른 이가 상처를 받았다. 다행히 이 참담한 가족사는 희망적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행복한 가족만이 아닌 또 다른 가족의 모습들을 보면서, 내 선조들의 실수가 담긴 가족사를 한번쯤 되돌아보게 했던 드라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래도 인류는 계속 이어져 내려왔고, 그렇게 선산에 묻혀왔다. 그들의 몸과 업보와 함께.
후손들은 그렇게 묻어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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