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꺼내 본 내 아이들 aka 디카 조상들
빛과 순간을 좋아한다.
그 빛과 순간을 찍기 좋아한다.
좋은 빛이 있는 마땅한 장소에서 친구와 몇 시간이고 사진을 찍으며 놀았다.
작품을 위한 사진도, 자료용 사진도 아니었다.
미대생이었던 우리는 그저 빛과 카메라로 놀았다.
그날이 기억에 남는다.
커오면서 봐오던 카메라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무거운 순수동 니콘 카메라였다. 값비싼 물건이라 어린 내가 함부로 손댈 수 없는 기기였다. 그 수동 카메라는 아빠의 손에 맞는 크고 무겁고 단단한, 다루기 힘든 기계처럼 보였다.
예술 감각이 있던 외가쪽에, 유학을 다녀오신 사진작가셨던 외할아버지뻘 친척 어른이 계셨다. 어릴 때만 해도 자주 왕래하였으므로, 할아버지 댁에 가면 신기한 물건 (각종 카메라와 렌즈, 액세서리들)이 많았지만 함부로 물건을 건드릴 수 없었고, 아이들은 그 방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매번 가족사진 찍으러 할아버지 스튜디오에 가서 촬영을 하고, 즐겁게 놀다 온 기억만 있다. 그리고 앨범에는 그분이 찍어 주셨던 흑백이나 컬러로 인화된 내 백일사진, 돌사진, 가족사진이 채워져 갔다.
내가 세상에 없던 시절, 나만 없는 가족 네 명 사진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사진에 대해 자연스레 다가갔던 거 같다.
사진 전공은 아니다.
하지만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길을 가다 영감이 오는 장면을 막 찍는 편이다. 하늘, 구름, 자동차, 홈리스(거지), 대화하는 사람들, 독특한 페셔니스타?들, 나무, 건물등.. 특히 내 아이들을 포함 사람 찍는걸 좋아한다.
학창 시절 전공 선택 과목으로 사진입문을 들은 적 있지만 그 외 사진에 대해 따로 배운 기억은 없다.
필름으로 사진을 찍고, 암실에 들어가 사진 인화도 그때 해봤던 거 같다. 인화지에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는 사진 한장한장, 기다리며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다가 누가 출입하며 한줄기 빛이라도 암실에 들어오면 큰일났다.
사진과 친구들과 어울리며 사진이론을 어깨너머로 배웠지만, 찍어대는 것만 좋아했지 그 기술을 따로 업그레이드시킬 관심은 많이 없었던 듯하다. 사실 그 기술 관련 용어며 소수점들은 이상하게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디지털카메라가 일반인에게도 적정가로 출시되었다. ( 앞으로 '디카'로 적겠습니다.)
최초로 발명된 디지털카메라는 1975년 엔지니어 스티븐 새슨 Steve Sasson이 제작하였다. 그는 CCD 이미지 센서를 이용한 최초의 전자식 카메라를 발명하였다. 초기에는 주로 군사용, 과학용으로 사용하였으나 점점 의학, 방송 분야로 넓혀 나갔다. 그리고 1990년 중후반에 일반인에게 보급되기 시작하다가 2000년대 초반에 디지털카메라 붐이 일었다. 그리고 2003년도에 디카 판매량이 필름카메라를 넘었다. 당시 캐논 피워샷과 소니 사이버샷등 일본 브랜드들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나의 첫 디카도 2000년대 초반에 구입했던 아이다.
소니 사이버샷 SONY Cybershot 1.3 메가픽셀.
지금 최신 아이폰 15프로는 메인 카메라가 48메가픽셀로, 나의 첫 디카에 비해 몇십 배 높은 화질을 가지고 있다. 디카가 아닌 휴대폰에 딸린 카메라가 이 정도 퀄러티니, 2000년 초반 당시 최신형 디카의 1.3 메가픽셀 퀄리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되는지.. (생각보다 사진은 볼만하다.)
일반인을 위한 컴팩형 디지털카메라의 조상이자 화석과도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요즘 젊은층이 그 퀄리티를 본다면 잡음 섞인 LP판을 좋아하는 것처럼, 잡음 있는 화면을 보며 레트로 Retro 라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특히 어두운 곳에서 찍은 피사체의 큼직한 픽셀 자국이 눈에 다 들어온다.
이것은 주머니에 넣고 다닐 만큼 작은 카메라는 아니다. 하지만 콤팩트한 디카가 나온 지 오래되지 않았을 때라 당시 타브랜드 제품들도 대부분 비슷한 사이즈였고, 디자인과 사이즈를 바꿔가며 새 제품들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이 아이는 애장품으로 가지고 다니며 이것저것 찍고, 가지고 놀기 좋은 카메라였다.
몸체에 모니터가 부착되어 있고, 그것을 들어 올려 180도 돌려서 화면에 내 모습을 보면서 셀카도 찍을 수 있었다. 필터앱도, 빛조절 기능도 전혀 없이 짧은 줌 zoom만 되던 시절이었지만, 우리들이 아마도 셀카 원조 세대들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한때는 셀카쟁이질에 빠져 우울할 때나 기분 좋을 때 본인 사진 찍는 재미가 있었다. 한창 스티커 사진이 유행할 때라 셀카 찍는게 어색하지 않았다.
전시할 작품 사진을 찍는 것도 아니고, 가끔 미니홈피에 올리긴 했지만, 신기술 덕분에 남은 필름수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빛과 렌즈와 놀 수 있는 시절이 시작되었다.
Nikon Coolpix 5700
그다음 디카는 미국 회사에 취업비자를 받고 정규직으로 취직한 기념으로 샀던 카메라였다.
내가 직접 나에게 첫 월급으로 선물을 해주었던 Nikon Coolpix 5700.
당시 미대생들 작품은 컬러감이 좋은 니콘 NIkon(미국에선 '나이콘'이라 발음한다.)이나 라이카 카메라로 많이 찍었다. 수동은 무척 고가였고, 나는 당시 붐이었던 중간가 디카로 구입하였다.
이 아이는 당시 2000달러(한화 200만 원 남짓) 짜리 니콘 반수동 콤팩트 디카였다.
사진과 전공 친구들처럼 700만원, 천만원 이상 호가하던 전문 카메라나 장비에 비하면 장난감이라 할 수 있지만, 내 인생 첫 고가 카메라였다.
졸업하면서 취업비자 스폰 회사를 찾느라,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여러 회사에 보내고 혼자 긴장하여 손에 땀을 흘리며 인터뷰를 봤다. 당시 뉴욕 경제가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취업에 성공했던 내게, 갓 나온 그 반수동 신형 디카를 큰 마음먹고 구입해 준 것은, 그동안 힘들었던 시간에 대한 내가 내게 준 큰 선물이었다.
"고생했어"
그 아이를 소중히 닦아 참하게 넘은 검정 사각 카메라 가방을 메고 다니며 무척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수동을 감당하기에 아직 자신이 없었고, 반수동 콤팩트 사이즈라 가지고 다니기 용의 했다. 그런데 몇 달 지나지 않아, 친구 가족과 휴가를 갔었고, 그곳에서 나의 절친 아들, 4살짜리 조카가 카메라줄을 잡아끌어 디카는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두둥 @@……카메라는 더 이상 작동 되지 않았다.
술을 마시지 않았음에도 속이 많이 쓰렸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며 가정을 잡아가던 친구를 생각해서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카메라 겉은 멀쩡해 보였지만, 식물인간처럼 죽어버렸던 나의 소중한 카메라.
차마 화도 못 내고, 배상도 못 물어보고 끙끙 앓았다. 수리를 할 수가 없단다. 그대로 보낼 수 없어 카메라 가방에 두고, 쓰린 마음과 함께 고이 모셔두었다.
몇 년이 지나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을 때, 나의 그 디카는 자신 몸을 임상실험에 기증하듯, 특별했던 수업에 자료가 되어 주었다. 나는 그 아이를 분해하여 일일이 펜으로 그리고, 분석하였다. 일주일여 동안 A4사이즈, 7-8페이지의 분석과 큰 한장의 커버페이지를 그렸고, 덕분에 프레젠테이션을 잘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영원히 길을 떠났다.
사실 아직도 가슴이 찢어진다.
(그 조카 녀석이 올해 18살이 되었다. 영수증을 보내야 할까? ㅋㅋㅋ)
Canon Powershot
작아서 항상 소지하고 다녔고, 빠른 움직임을 찍을 수 있는 작은 사이즈의 디카로 유용하였다. 직장을 그만두고 학교로 돌아갔을 때, 과제를 위해 혹은 수업 시간 샘플 사진이나 영감이 오는 장면이나 풍경등을 ‘막’ 찍고 다녔다. 당시 돌아간 대학생활은 직장 전 내가 다니던 대학시절과 상당히 달랐다. 불과 7-8년 사이에 분위기가 정말 달랐다. 숙제도 받아 적지 않고 칠판 그대로 사진 찍고, 작업과정을 담는 프로세스 북도 사진을 찍자마자 프로그램에 얹어 뚝딱 끝났다. 노트북 앱도 있어서 수업시간에 필기 대신 타닥타닥 타이핑을 하며 받아적었다. 교수님이 보여주는 실습과정을 받아적지 않고, 그대로 동영상을 찍는 학생도 있었다.
디카와 스마트폰외 테크널러지 발달로 대학 교육 문화까지 바뀌어져 있었다.
Powershot 시리즈는 자그마한 사이즈로 핸드백이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빠른 스피드를 찍기에 용의 하였다. 컬러감은 니콘이나 라이카만하지는 않았다.
기능성도 좋고, 딴딴하여 s90 모델은 첫째아이가 가지고 논다. 카메라가 아이보다 한두살 많다.
Leica D-lux7과 Nikon D5100
첫째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빠들의 로망. 남편은 큼직한 디카를 사 왔다. (내 의지는 아니었음) 그
카메라로 아이 초상화는 몇번 찍었지만, 제대로 들여다 본 적이 없다.
지금은 개인적으로 라이카의 붉은 로고가 찍힌 작은 디카를 가지고 있다. 좋아하는 귀요미를 구입하였지만, 그 아이를 데리고 놀 시간이 충분치 않다. 그래서 아직 작동법을 다 익히지 못하고 자동으로만 가끔 사용 중이다.
기-승-전-셀폰
결국은 셀폰 (휴대폰) 카메라로 찍는다.
요즘은 전화기를 만드는 건지, 카메라를 만드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폰 기능과 인터넷, 컴퓨터 기능에 더해 카메라 기능으로 경쟁을 한다. 덕분에 휴대폰도 점점 무거워지지만, 사진 찍기 좋아하는 나로서는 전자기기를 두세 개 들고 다니지 않아서 편하다.
휴대폰 카메라는 아무데서나 찍을 수 있어서 좋다.
위험하지만 가끔 운전하다가도 하늘을 찍고, 거리를 찍는다.
갑자기 스케치하고 싶은 장면도 찍는다.
아이들과 정신없이 스케줄을 소화하는 중에 눈으로 본 기억은 바빠서 머릿속에서 지워지지만, 내 눈을 끌거나 마음이 좋았던 찰나를 언제 어디서건 휴대폰에 담을 수 있어서 좋다. 그게 휴대폰 카메라의 매력이다.
오래된 휴대폰으로 찍었던 말도 안 되는 해상도의 사진을 보면 그 시간 동안 상당히 발전한 테크놀로지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신기하리만큼 급발전된 테크놀로지
디카의 발전과 함께 '아무데서나' 찍을 수 있는 것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사회적 문제도 있지만, 반면 사건사고를 행인들이 촬영하고 증거를 남겨 사회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아이를 키우는 나로서는 카메라 가방을 따로 매고 다니지 않아서 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먼지를 깨끗이 닦아낸 카메라를 직육면체 까만 가방에 곱게 담아 매고, 영감과 순간을 찍기 위해 홀연히 돌아다닐 수 있는 날이 또 왔으면 좋겠다.
책장에 쪼롬이 앉아있던 먼지 투성이 아이들을 오랜만에 꺼내 만져보았다. 내게는 그들이 차가운 고철 덩어리가 아니라 여전히 따뜻한 빛을 찍고 있는 살아있는 디카로 여겨진다. 내 추억과 손길을 간직한 따뜻한 기계들.
먼지를 닦아주고 다시 이 디카 조상들을 책장에 올려두었다.
PS: 그나저나 저 충전기들은 어디에 있으려나요. 집안 어딘가 있긴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