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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verly Story Mar 23. 2024

앤텔롭 캐년 Antelope Canyon

강풍과 Mrs.?

오지랖 넓으신 고마운  Mrs.?

 

긴 로드트립에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가족용 오디세이 미니밴을 여러 차들 사이에 주차한 후 일행은 가이드 오피스를 향했다. 바람이 거세어 비니를 눌러썼다.  

바람이 셀뿐이지 날씨는 따뜻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반팔 셔츠에 나름 가벼운 복장으로 가이드 오피스로 들어섰다. 사람들은 간단한 간식거리나 기념품들을 둘러보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그룹 투어 확인을 위해 데스크 앞에 줄을 서 있었다.   


앤텔롭 캐년은 개인적으로 차를 몰고 갈 수 없다. 애리조나에 위치한 앤텔롭 캐년은 나바호 부족 공원에 있기에 인디언이 운영하는 가이드 회사에 시간별로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그 오피스에 관광객들이 모여 투어 버스로 이동을 한다. 그곳 가이드 일은 나바호족 인디언 Native american만 할 수 있다.  


미국은 그 터에서 살아온 인디언 원주민들에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몇 가지 독점 산업을 국가가 주었다. 물론 그 국가를 그들이 인정하는지는 몰라도 일단 그들도 미국 시민권자다. 대신 겜블링장처럼 몇 가지 독점 산업은 인디언만 할 수 있고, 세금 혜택도 있다. 그곳에서 살아온 원주민들에게 국가가 주는 혜택이었다. 그 속 내막이야 시끄러운 말이 떠돌지만, 적어도 국가가 주는 혜택은 있지 않은가. 억지스러운 생각일 수 있으나 우리나라 고구려땅에 살아온 한민족이 미국 네이티브 인디언처럼 세금이나 독점 산업 혜택을 받으며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  

나바호족은 앤텔롭 캐년에 살아왔던 원주민이기에 캐년 가이드 산업을 그들이 하게 되었다.


숙소에서 이른 아침 출발하여 여기까지는 약 한 시간  걸렸다. 거기에다 흙과 절벽이 즐비한 자연 속으로 투어를 가니 서둘러 아이들을 데리고 화장실 줄을 섰다.

생각보다 복잡했다.

알고 보니 우리 그룹 이전에 이른 아침,  캐년을 다녀왔던 앞그룹이 화장실에  몰려있었던 것이었다.  낯선이들 사이에서 아이들과 줄을 서 있을 때 앞에 계신 한 아시안계 여성분이 나를 돌아보았다. 순간 눈이 마주쳤다. 그래서 눈인사를 했다. 미국은 눈이 마주치면 보통 미소를 짓는 관습이 있다. (적어도 뉴욕, 캘리포니아는 그렇다).   


" 지금 캐년으로 가는 거예요?"


나와 아이들을 훑어보며 말을 걸었다.


"네, 다음 버스로 들어가요."


"어후 지금 이 차림으로 가면 안돼요.  오늘 바람이 너무 불어.  모래바람이 장난이 아니야.  차에 캡 cap ( 챙 있는 야구모자 스타일)이랑 선글라스 없어요? "


"어머 날씨가 그 정도예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반문하였다.


" 두 공주님도 모자 씌우고 옷도 더 입혀야 해. 거기가 훨씬 추워요."


Mrs.? 는 마치 한국의 어느 휴게소에서 처음 만난 (엄마처럼 잔소리를 하시던)  낯선 아주머니 느낌이었다. 아시안 어머니들은 다 비슷한가..?


"어서 빨리 차로 가서 챙겨 와요.! "


"(지금 따뜻하게 쓰고 있는) 비니도 안 되나요?"


"안돼 안돼. 비추에요. 캡 cap을 써요."


비니를 쓰고 있어도 모래를 흠뻑 맞는단다. 그리고 얼굴을 보호할 챙이 있는 모자가 좋단다.

그래 내가 좋아하는 수프림 비니인데 아끼자.

도대체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인데 날씨 차이가 그렇게 많이 나나?


갸우뚱하면서 나도 모르게 몸은 이미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었다. 엄마의 잔소리에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이 몸뚱이는 거기서도 작동했다.  그리고 그 몸뚱이는 알았다. 엄마의 잔소리는 틀린 적이 없다는 걸.


뭔지 모르지만 비니도 안된다고 하시니 불안한 마음으로 얼른 차로 달려갔다.

온 차 안을 뒤졌지만 아이들이 쓸만한  캡은 보이지 않았다. 굴러다니던 테니스 모자도 짐 싸면서 치웠나 보다. 내가 쓸 모자 하나만 있었다. 이런… 캐년으로  떠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서둘러 남편과 아이 조끼, 바람막이 쟈켓등 보이는 옷가지들을 들고 빠른 걸음으로 오피스로 돌아왔다. 모자를 구하기 위해  가판대를 살폈더니 없었다.  모래가 잔뜩 들어간다지만 안되면 비니라도 씌워야지...

반포기 상태로 줄 서 있는 남편과 아이들 곁에 섰다. 그때 눈에 들어온  계산대 옆 한쪽에 검은색 캡..  

엔텔로페 캐년이 빨간 필기체로  앞부분에 장식되어 있고, 뒤는 흰 글씨로 애리조나 (그곳 주 state이름이다.)라고 적혀있는 기념품용 모자였다.  지금 상황에 디자인을 따질 때도 아니지만, 나쁘지도 않아 보였다. 줄을 쭉쭉 당겨 사이즈를 줄였더니 다행히 아이들에게 맞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아주머니 말씀대로 아이들 양말도 꼬깃꼬깃 등산화 안으로 꼼꼼히 집어넣고, 조끼를 입히고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모자는 버스에서 푹 눌러 씌웠다. 이쯤이면 준비된 건가...?


한참을 달려 마치 크고 광활한 절벽이 있는 사막에 남겨지듯 버스 몇 대가 캐년 입구에 섰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휙 휘리릭~~ 앗 따거.

고운 모래가 마치 동방불패에 임청하가 날리던 바늘권법처럼 내 얼굴에 와서 찔러댔다. 레이저 시술을 받아보지 않았지만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캐년 내로 들어가니 바위가 막아 트인 곳보다는 모래바람이 덜 따가웠다.


앤텔롭 캐년에 도착한 후  Mrs.? 의 말을 듣길 굉장히 잘했다고 생각했다.

세상 느껴보지 못했던 강한 모래 바람에 정신이 날리고, 우리는 입구 초반부터 다시 버스로 돌아올 때까지 모래비와 모래 바람을 맞아야 했다. 캐년을 지나는 동안 모래는 저 높은 바위 위에서 주룩주룩 흘러내렸고 옷과 눈, 귀에 수북이 쌓이며 입에는 곱디고운 모래를 씹어야만 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 어느 관광객들은 투명한 고글도 가져와 눈을 보호할 만큼 준비성이 철저했다. 반면 제대로 귀를 덮지 못했던 남편은 다음날 아침까지 귓속에서 모래 가루를 닦아내야만 했다.


물론 엔텔롭 캐년의 아름다움은 모래비를 맞으면서도 행복하게 관람하였다.

사실 모래비를 맞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여덟살양 - 모래비  photo by Beverly Story


아이들은 눈을 찌푸리면서도 위를 올려다보았고, 손으로 모래비를 담았다. 우수수 모래가 떨어질 때면 여덟살 둘째양은 조끼깃과 모자 속으로 얼굴을 파 묻었다. 가이드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모래 장난을 쳤다.


신비한 물결 모양의 오렌지빛 바위를 보며 감탄을 마지않고,수백만 년 전 그곳을 흘러가며 협곡을 만든 강물을 상상하는 일은 엄마의 몫이고,

아이들은 그곳 사막과 바위가 만들어주는 모래를 가지고 놀기에 하염없었다.

아이들은 가끔 한 귀로 가이드의 설명을 듣긴 했고 질문도 간간이 했지만, 자연이 알려주는 몸으로 배우는 감각체험? 이 더 즐거워보였다.   


가족 여행은 함께 같은 장소를 여행하지만, 나이에 따라 각자 알아서 느끼고 배운다.

같은 장소 다른 느낌.

내가 배우고 느끼는 점을 아이에게 이야기는 할지언정 여행에서의 그 배움을 강조할 필요가 없다. 

아이도 스스로 그 곳에서 배운다. 그래서 가족여행이 재밌다. 


인디언 가이드가 캐년 설명을 하며 각 지점에서 관관객들 사진을 찍어준다. 사진을 워낙 많이 찍어서인지 좀 아시는 분이었다. 기일~~ 게 찍어주시는 센스.

앞줄에 있던 딸들이 외계인 마냥 너무 길어졌지만, 위에서 작달막하게 내리찍는 (눈은 희번덕한 순간 포착) 남편의 포토 기술보다는 훨씬 나았다. (남편 미안)

나 또한 아이들과 함께이기에 정성드려 멋진 사진을 찍을 겨를이 없는데, 가이드가 이곳저곳 멋진 광경도 직접 휴대폰을 가져다가 찍어줬다. 


꼼꼼히 여행 준비를 한다 생각했어도 여전히 모자란 준비물.  

그래서 여행 아닌가.  

생각지도 못한 만남.

그곳에서 우리는 처음 겪는 모래 강풍과 Mrs.? 를 만났다.


세상 느껴보지 못했던 강한 모래 바람에 정신도 날렸다. 그런 바람에 우리를 염려해 주셨던 Mrs.?.

모른 척 해도 상관없는 화장실 앞 스쳐 지나가던 낯선 사람인데, 그분이 먼저 그날 상태를 알려주시어 내 아이들의 눈도 보호하고, 몸도 모래 범벅이 되지 않았으며, 머리카락 사이 낀 가는 모래를 털어내는 고생도 덜 하였다. 그렇게 안전하고 즐겁게 여행할 수 있었다.    


그분께 감사했다. "복 받으세요"


가이드가 찍어준 바위눈.  어퍼 앤텔롭 캐년 입구. 사진은 바람없이 고요해 보인다 Photo by Beverly Story




오늘의 여행팁

*어퍼(upper) 앤텔롭 캐년은 조기마감되므로 미리미리 서둘러 티켓 예약을 권한다. 로우(Lower) 앤텔롭 캐년은 계단을 타고 내려가서 지상아래에 있는 협곡을 관람하는데 조금 더 좁고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 가족은 어퍼 앤텔롭을 다녀왔다.  

해가 있는 (11시-3시) 시간이 좋다. 비가 오면 캐년투어는 하지 않는다. 물살이 시속 100킬로일 때도 있어 사망사건이 생길 수도 있다.

공식 사이트: https://antelopeslotcanyon.com/ 


캐년 야외 투어처럼 그룹으로 관광할 경우, Mrs.? 의 경우처럼 그전 그룹에게 날씨 상태 조언을 받는 것이 좋다. 일기예보도 자주 확인한다. 미국은 광활한 사막이나 산악지역이 많아서 일기예보가 맞지 않을 때도 많다.

예를 들면, 그랜드캐년 가족 여행 때 눈소식은 없었다. 그런데 눈이 펄펄 내리고, 자동차들이 전복되고 있음에도 일기예보는 여전히 그냥 흐림이었다. 국립공원 여행 때, 특히 겨울, 봄에 날씨를 확인하자. (비와 강풍, 눈소식이 있으므로)


재미로 만든 겨울, 봄 복장. 한여름은 더우니 얇은 Dri fit 소재를 입으면 좋을 듯합니다. Photo by beverly story

*** "아이스크림 먹으러 갑니다" 는 토요일 연재였으나, 스케줄 변동으로 인해 일요일 연재로 옮겼습니다.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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