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잃을 줄 몰랐다 1
프로와 육아맘
아주 어릴 적, 이제 막 기저귀를 뗀 지 얼마되지 않았을 즈음, 작은 수영복을 입고 바닷가 언저리에 앉아 젖은 모래랑 노닐었다.
찰랑찰랑 파도가 쳐서 조용이 다가오면 손으로 첨벙대며 놀았다. 그 바닷물은 쪼그려 앉은 나를 살짝 흔들흔들 놀려주고 다시 돌아갔다.
놀다가 뒤돌아보면 이쁜 수영복을 입은 늘씬한 엄마와 이모들 (엄마 친구들)이 보였고, 모래사장에서 놀던 언니와 아빠의 모습도 보였다.
안심하고 다시 놀다가 또 돌아보면 여전히 내 눈엔 수많은 사람들중 엄마의 모습이 제일 확대되어 보였고,
엄마는 팔을 뒤로 빼고 비스듬히 돗자리에 누워 이모들과 활짝 웃으며 담소중이었다.
나는 또다시 안심하고, 파도 흔들림에 즐거워하며, 모래와 물과 노는데 집중하였다.
그러다가 얼마 후 다시 뒤돌아 보았는데… 낯선이들만 가득했다.
분명 같은 곳인데 처음 보는 사람들로 해변가는 가득 차 있었다.
아무리 주변을 돌아보아도, 환하게 웃으며 손 흔들던 엄마가 보이지 않았고,
아빠도 언니도 오빠도 이모들도,, 낯익은 얼굴이 단 한 명도 없었다.
파도와 모래와 노는 사이,
그 흔들리는 파도를 타고 나는 조금씩 조금씩 밀려 가족으로부터 멀어졌지만 너무 어려서 몰랐다.
낯익은 곳에서 갑자기 낯선이들만 가득했었던 그 기묘했던 기분과 잃어버려졌다는 공포는 몇 십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잊을 수가 없다.
물론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당황과 공포에 질려 눈물을 글썽이던 나를 본 선한 분이 내 손을 잡아주었고, 그는 나를 해변 미아보호소로 데려다 주었다.
다행히 부모님의 이름정도는 기억을 하고 있었던지라, 부모님과 내 이름을 스피커로 알리며 안내방송을 했다.
헐레벌떡 달려온 아빠 품에 안김으로써 나의 하루가 잘 마무리되었고,
그 후 아빠는 우리가족을 그 해변가로 데려간 적이 없었다.
그날 부모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하는 식의 가정은 상상하기도 싫다.
그때 미아보호소에서 내 작은 두 손에 쥐어줬던 하얀 마름모 모양의 박하사탕이 여전히 생각난다.
사실, 나는 당시 그 사탕보다 땅콩이 든 알사탕이나 초콜릿을 더 좋아했었지만, 그 때 그 박하사탕은 나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그 누군가가 두려움에 떠는 어린 나를 위해 두손 가득 채워 준 눈처럼 하얗고 달달한 따뜻한 마음.
나의 육아 10년이란 시간은 나와 즐겁게 놀던 그 파도와 비슷하다.
행복과 기쁨이 가득했던 즐거움.
물론 힘들었던 일도 수없이 많았다.
부족한 잠과 호르몬의 장난등 육체적, 감정적으로 힘들기도 했었다.
힘들어서 툴툴거리면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정신없이 10년을 보내지 않았을까 싶다.
육아맘은 마음은 행복한데, 눈밑은 항상 다크서클을 가진 흥미로운 캐릭터다.
내가 태어나서 노력하고 훈련해 왔던 모든 것들이 육아를 위한 것이었나 싶을 정도로 빡센 시간이었다.
나에게 커리어와 공부도 중요했지만,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없었으므로
아이를 낳은 순간부터 그때는 무엇보다도 육아가 1순위였다.
모성애는 둘째 치더라도 그 작은 아가는 내가 없으면 혼자 먹고 자고 쌀 줄 모르는,
당장 엄마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 다시 나를 돌아보니,
그때 어린 시절처럼, 분명 낯익은 장소이지만 그곳에 중요한 것을 잃은듯한 낯선 느낌을 안고 안착해 있었다.
나는 또 나를 잃어버렸다.
또다시 미아가 되었다.
손을 뻗으면 엄마가 있었을 것처럼
내가 손을 뻗으면 나는 다시 그림 작업도 하고, 일도 하며 남은 공부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육아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나는 2-3년이면 아이를 충분히 키우고, 학교를 보내고,
다시 나는 하고 싶어 하던 일로 돌아갈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약 10여 년을 그림은 둘째 치고, 나 자신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시간이 그렇게 빨리 흘러버린지도 모른 채,
아이 둘을 낳고 키우면서 주부와 엄마로서의 역할에 집중을 하였던 것이었다.
그렇게 '나'라는 사람에서 줌마와 엄마란 존재로 변해 있었단 말이지.
고개를 들어보니 익숙한 나인 듯 하지만, 내 모습이 낯설었다.
그런데 주부와 엄마의 모습으로 쉽게 바뀌어진건 아니다.
단지 너무 바빠 인식을 못했을 뿐, 엄마가 되기 위해 아주 많이 노력하였다.
나 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육아맘들은 엄마가 되기위해 아주 많은 시간과 노동을 들인다.
그 정도의 정성, 노력이라면 사회에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피땀눈물이었을 것이다.
그 시간동안 육아와 상관없는 싱글인 친구나 남자 동기들은 이미 승진을 하거나 교수가 되어있거나, 큰 프로젝트를 하는 멋진 프로들이 되어있었다. 혹은 본인 브랜드를 가진 사업을 하거나.
10년이란 세월은 그들의 커리어를 그만큼 올려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나 또한 10년이란 시절 동안 큰 노력을 들여 새로운 존재로 만들어졌는데,
그냥 지금처럼 줌마와 엄마란 존재로 살아도 되는데,
내 속은 그러질 못 했다.
남편의 실직이 내 인생을 불안하게 만들었고,
또한, 계속 끝없는 가사노동에 시달려 산다면 20대의 나에게 미안했다.
이렇게 길을 잃은 내가 이번엔 해변가에서 처럼 미아보호소로 가진 않겠지만,
그래도 잠시 울음을 멈추고 박하사탕을 받아먹으며 엄마를 기다렸듯이,
어수선한 내 감정을 추스를 곳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