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사탕

나를 잃을 줄 몰랐다 2

by Beverlymom

동굴 찾기


가던 길을 잃어 놀란 감정.

그 감정이 비롯된 이유는 무엇일까.

시작은 남편의 해고지만, 사실 문제는 그 전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팬더믹 후 약해진 체력과 정신일 때, 내게 다가왔던 주부 우울증과 번아웃.

결혼 10년차를 넘어서며 결혼 권태기같은 무료함이 생활에 스며들 즈음,

남편의 실직으로 닥친 충격은 내가 앓고 있던 감기같은 병을 부추켰다.


사실 놀란 감정을 추스를 물리적인 '곳'은 없었다.

아직 초등학생 어린 아이들은 엄마손이 많이 필요했으므로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갖기란 쉽지않았다.


싱글이라면 아마도 가까운 곳에 일박으로라도 혼자 여행을 떠났을 듯 싶다.


주부라는 틀에서의 행동 반경은 그닥 크지 못하다.

특히 아이들의 등하교부터 방과 후 활동 수업들을 운전 해야만 했고, 학교 선생님이나 코치들과도 교류를 해야만 하므로 훌쩍 어딘가로 떠나기란 쉬운 자리가 아니다.


하지만 번아웃과 동시에 우울증 증세가 보이는 나는 나만의 동굴이 필요했고,

물리적 공간이 아닌 다른 곳으로라도 떠나야만 했다.

사실 큰 고민 없이 바로 한곳을 찾았다.


그 곳이 독서였다.

꼽힌 드라마가 있다면 밤새 멍하니 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평소 좋아하던 영화, 드라마도 흥미가 떨어졌었다.

다른 것에는 관심이 가지 않았다.


아이들 등교 후 독서를 하며 나보다 먼저 살아 가셨던 분들, 혹은 다른 경험들을 하시는 분들의 글을 읽으며 사색하는 시간이 잠시 내가 달콤한 박하사탕을 먹는 시간이었다.


눈처럼 하얀 마름모 모양의 박하사탕처럼 독서는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그런데 독서 초반에는 나의 뒤떨어져 있는 문해력에 조금 당황했다.

어릴 때 책을 좋아했던 아이라 책읽기에 어느 정도의 자신감이 있었는데, 생각을 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전문 서적만 읽었고,

취직을 한 후로는 이메일과 텍스트 같은 짧은 문장, 심지어 단어 몇개에 이모티만 사용하는 '용건만 간단히' 하는 짧은 글을 읽고 썼으며,

영어를 한답시고 (미국에서는 조금 비싼) 한국책을 굳이 주문해서 읽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영어 원서를 읽지도 않았다.


임신을 하고서 한국 육아책을 10여권 정도 읽었는데 그 또한 10여년 전 정보 수집의 의미로 읽었던 책들이었다.

물론 책을 계속 읽긴 했지만 일년에 한두권이 고작이었다. 혹은 아이들과 함께 읽던 어린이책들이 대부분 내가 읽어온 책들이었다.


독서 중 그 내용들이 머릿속에 딱 들어오지 않는 내 모습에,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도태되어가는 구나..란 생각을 하며 스스로 조금의 반성도 하였다.


아이들에게 책은 틈틈이 읽는 것이라고 가르쳤으나 정작 본인은 그러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읽다가 졸지언정 책읽기를 그만두진 않았다.

오히려 유투브를 보다가 추천하는 흥미로운 책이 있으면 한국에서 오더하거나 혹은 한인 서점에서 골라 구입하여 쌓아두었다.

맛난 간식을 미리 사서 쟁겨놓는거 처럼 말이다.

과다섭취를 해도 괜찮은 간식.


사실 머릿속은 항상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준비하고 실천해야 하는 지라, 아이 둘 엄마의 머리속은 항상 메모리가 오버되고, 가끔 버퍼링도 걸려 버벅인다.


그래서 책내용이 콕콕 박히지 않아도 계속 읽어 나갔다.

가끔 아이들처럼 소리내어 읽기도 했다.


'나중에 한번 더 읽자'라는 생각으로 머리속에 담아지지 않아도 계속 책장을 넘겼고,

읽다가 조금 어려운 듯한 책은 나머지를 대충 훑은 후 일단 책장에 다시 꼽아 넣기도 했다.


아이들 등교 후 책을 읽고 글쓰기를 하다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그래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가령 냉장고의 과일이 떨어져 있거나, 당장 저녁을 위해 허겁지겁 마켓으로 달려가야 하기도 했다.

어느날은 아이들이 가져갈 친구의 생일선물을 챙겨놓지 않아 파티에 늦은 적도 있다.


내 차림새는 집에서 입던 편한옷을 입은 채 모자만 눌러쓰고, 아이들 운전을 다니기도 했다.

남들이 볼 때 자기 관리 안되는 게으른 엄마처럼 보일수도 있으나, 아랑곳 하지 않았다.

물론 너무 허름한 차림일 때는 아이의 체면(?)을 위해 차밖으로 잘 내리지 않는다. ^^;


한동안 브런치에 올릴 글쓰기도 미룬채, 겨우 20여권을 읽고나서

다행히 나의 읽기 속도나 문해력은 조금씩 나아지는것 같았다.


처음에는 자기계발서나 간단한 단편 소설등을 위주로 읽어갔다.

물론 아이들 육아 관련책이나 브런치글도 찾아가며 읽었다.


우울에 관한 귀여운 책이 있어 구입해서 읽다보니, 더 우울해져서 그만두었다.

그래서 되도록 우울증 관련 주제나 힘든 줌마 인생을 다룬 책들은 피했다.


내 주부우울증이 조금 나아진다면 이런 주제의 글들을 다시 덤덤이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당시는 애써 찾아 읽고 싶지 않았다.


아직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내게 주어진 당장의 시간이 여유롭지 않았다.

그래서 무언가 포기해야만 했다. 가령 집안일이 눈앞에 널려있어도 일단 질끈 감아야한다.


독서가 가져다 준 나만의 동굴 속에의 사색 타임.

우선은 혼란스러워진 나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을 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일단 줌마 이전의 나를 소환 시켜보기로 했다.



나를 떠오르기는 참 힘들었다.

내가 누구였더라..

10년이면 나를 잊을만한 시간인가,,

그전에 나로 30년 살았거늘…


특히 코비드, 팬더믹 이전에 나의 과거는 마치 전생처럼 까마득하고 기억도 희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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