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수다 @ 뉴욕 New York City
친구를 만나러 커피숍에 갔습니다. 얼마 전 다녀온 여행은 어땠냐 물어봅니다.
그리고 신나게 여행 가서 느낀 점과 관광했던 것을 이야기하며 떠들다가, 의식의 흐름대로 뜬금없는 아무 이야기로 넘어가는 우리들의 수다.. 코비드 팬더믹 동안, 전에 항상 떠나던 여행이 그리웠고, 커피 브레익이 부쩍 필요했던 그때... 친구와 침 튀기며 이야기하던 비말 토크가 그리웠어요..
하나..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경험
매일 24시간 북적이는 도시.
우리가 뉴욕,, 하면 떠오르는 맨해튼.
그 땅 면적만 생각하면, 하루 안에 걸어서 횡단할 수 있는 작은 사이즈이다. 20대를 그곳에서 보내면서 느낀 점은, 뉴욕은 미국이라기보다 모든 것이 집약된 콤팩트한 국제 도시라 해야 할까... 적은 면적이지만 딴딴하게, 그리고 보이지 않는 어마한 에너지를 가진 도시. 경제면 경제, 문화, 음식, 패션.. 모든 것이 한 곳에 모여 그 트렌디를 이끌고 있는 거대한 도시인 뉴욕.
처음 뉴욕에 갔을 때 한국의 서울보다 작아 보여서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지하철을 타면 북쪽 꼭대기 할렘 지역부터 남쪽 바다가 보이는 배터리팍 (The Battery Park)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미디어 영상화면을 통해 뉴욕을 접했던지라, 실제로는 생각보다 근사하지 않았다. 처음에 왔을 땐 '아,, 미국의 영상기술과 편집 프로듀서가 많이 뛰어나구나,,' 싶을 만큼 약간 실망스러웠다. 물론 작다고 표현하면 안 되긴 하다. 맨해튼이 뉴욕시의 전체가 아니므로. New York City는 5개의 보로(boroughs)로 이루어져 있다. 그 다섯 개의 보로는 맨해튼 (Manhattan), 퀸즈(Queens), 더 브롱스(The Bronx), 브루클린(Brooklyn), 그리고 스테이튼 아일랜드(Staten Island)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 지하철과 통근 배로 연결되어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실망도 잠시뿐, 20대였던 나에겐 그저 모든 게 낭만적이었다. 여름이면 푹푹 찌고 가끔 쥐가 레일 위를 꼬물꼬물 기어가는 오래된 퀴퀴한 지하철역도, 더벅머리로 대충 연주하는 듯하는 거리 악사들의 연주도, 빠른 걸음으로 걸어 다니는 키 큰 뉴요커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피하면서 같은 스피드로 걸어다니는 것도... 모든 것이 흥미롭고 낭만적이었다.
거리를 걸으며 올려다보면, 19세기 오래된 건축물부터 21세기 최신 건축물이 조화롭게 이루어져 있는 마천루를 구경하며 걷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즐거웠고 하루가 금세 지나갔다. 유럽은 디테일이 많은 오래된 전통 빌딩들이 어우러져 있고, 한국은 최신 건물들이 쭉쭉 올라가는 세련된 도시이기에 근대 빌딩은 사실 길거리에서 보기 힘들다. 그런데 신기하게 (비록 건축 전문가는 아니지만) 뉴욕은 그 모든 시대의 건물들이 잘 어우러져 있는 거 같다.
랭귀지 학생 때는 수업이 끝나면, 그 오후 시간엔 여행 가이드 책 한권과 지도를 들고 일일이 돌아다녔다. 맨해튼을 걸어서 다 돌아보고싶었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첼시를 갔다면 그 책 지도에 그려진 대로 따라 걸으며 포인트 장소에 서서 그곳에 관련된 짤막하게 적인 역사를 읽었다. 유홍준 교수님 말씀처럼 아는 만큼 느끼고 싶어서였다 할까.. 다음날은 소호지역, 다음은 이스트 웨스트 지역... 맨해튼 지역구 별로 하루씩 몇날을 돌았다. 당시 여행저널도 적어가면서 말이다. 그때 봤던 울월쓰 빌딩, 트리니티 교회, 크라이슬러 빌딩, 지금은 사라진 뉴욕의 상처가 된 쌍둥이 빌딩 월드 트레이드 센터, 엠파이어 스테잇 빌딩, 소호의 주철 건물 등.. 내 눈엔 도시 전체가 마치 건축 박물관 같았다.
그러던 중 한번은 실수로 할렘에 내렸던 적이 있었다. 지하철역 계단을 올라오는데 이상하게 건물이 아닌 푸른 하늘이 계속 보였고, 기분이 싸했다.
콜럼비아 대학교를 방문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그때 지하철역이 조금 헷갈리던 부분에서 영어를 잘 못하던 내가 거기 가는 길을 어느 행인에게 물었고, 나는 그 사람이 이야기해줬던 환승역에서 지하철을 갈아타지 않았던 것이었다. 콜럼비아 대학에 도착한 줄 알고 지하철 출입구로 나왔을 때 광경은 신기한 나라에 온 듯했다. 주변엔 높은 빌딩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허름한 길거리에 텐트 같은 것도 쳐져 있었다. 할렘이었던 것이었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살짝 따가웠다. 다 째려보는 느낌? 그도 그럴 것이 무서운 흑인 동네에 눈에 띄는 새파란 쟈켓에 빨간 립스틱을 바른 작은 아시안 여자아이가 통통거리며 지하철역 땅밑에서 올라왔으니. 그 사람들도 놀라서 나를 쳐다봤을 듯 싶다. 어디선가 날 지켜줄 경찰이 나타났고, 그 경찰이 나를 데리고 건너편 지하철역으로 데려가 올바른 노선을 두세 번 각인 및 반복 확인시켜주고, 내가 티켓을 넣고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까지 지켜 봐 주었다. 그렇게 나는 할렘을 잠시나마 경찰의 보호 아래 슬쩍 관광(?)하고 돌아왔고, 그날 저녁 선배로부터 할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야 내 다리가 후덜덜 거렸다. 여하튼 당시 내 입장에선 얼떨결에 맨해튼 땅은 다 밟아본 셈이었다.
뉴욕엔 멋진 뮤지움들도 많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움, 모마 (MOMA, The Museum of Modern Art), 건물 자체가 작품인 구겐하임 뮤지움, 내추럴 히스토리 뮤지움 등 며칠을 걸려 돌아봐야 충분히 다 볼만큼 큰 박물관부터 소호 길거리에 있는 작은 갤러리까지,, 아트와 사진, 패션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더없이 좋은 도시중 하나였다. 그래서인지 멋쟁이들도 많고, 독특한 사람도 많았다.
뉴욕 어느 곳을 가든 아이비리그 같은 명문대 출신들도 많았고, 대부분이 젊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대체적으로 공부를 하는 학생이거나, 막 입사한 초보 전문직(young professional)들로 본인들의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갓 결혼했던 젊은 30대 초반 지인은 아가를 키우며 낮엔 금융 관련 대기업을 다니고, 저녁엔 회사에서 학비를 대주던 로스쿨(Law school)을 다니며 변호사 자격증 준비를 하던 열정을 가진 커플도 있었다. 싱글들도 열심히 사는 건 마찬가지였다. 단지 기혼자가 아이를 볼 시간에 싱글은 파티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조금 있었다는 게 다른 점.
뉴욕대학교 (NYU)나 쿠퍼유니온 (cooper union)같은 대학들이 있는 근처 커피샵을 가면, 테이블에 해골을 올려놓고 두꺼운 의학책들을 쌓아놓고 공부하는 사람, 본인이 만든 듯한 독특한 옷과 굽 높은 신발을 신고 패브릭과 스케치북을 한가득 안고 휘청거리며 지나가는 사람, 이지적 분위기에 두꺼운 고전 문학책을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읽고 있는 사람, 힙합차림에 흔들흔들 힙하게 걸어가는 학생등, 커피 한잔을 마시고 있더라도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다양한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더불어 그들이 다니는 학교와 전공까지 예측할 수 있어진다. 나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까만 터틀넥 셔츠에 머리에 왁스로 힘을 주고 학교 파이널 프젠 (기말 과제 발표)을 가던 건축학도, 하얀 셰프복을 입고 요리를 공부하는데 저녁이면 이쁘게 차려입고 근사한 레스토랑을 다니며 음식을 공부하던 친구, 매일매일 일에 파묻혀 눈이 반쯤 감겨 있던 로펌 신입 변호사, 커다란 가방을 메고 세련된 차림으로 사진을 찍으러 다니던 사진학도, 불편한 정장 슈트에 하이힐을 신고 프젠 시간 맞춰 뛰어가던 패션 머천다이징을 공부하던 친구. 그런 젊은 에너지들이 그 작은 땅덩어리 위에 뭉쳐져서 그 도시를 더 후끈 달아오르게 하는 거 같았다. 일이든 공부든 파티든, 뭐든 열심히 노력했던 그들.
나중에 회사를 다니면서는 학생때와 또 다른 뉴요커들을 만났다. 숫자 나이가 많아도 젊은 그들. 그래서 뉴요커들은 다 젊은거 같다. 당당하고, 친절하고, (안 챙길지언정)가식으로 남을 챙기는 법은 없는 배려와 똑부러지는 뉴요커들. 남에게 민폐를 끼치지도 않고, 선을 넘는 남의 민폐를 받기도 싫은 지극히 합리적인 개인주의라, 그래서 어쩌면 일이나 공부에 더 집중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밉지 않게 싫으면 싫고, 좋으면 좋다고 명료하게 자기 주장을 표현하는 모습은 내가 아는 대부분의 뉴요커가 가진 모습같다. 특히 그런 모습은 제2외국어를 쓰는 나로서는 엘에이 회사에서 일할때 보다 훨씬 편했다.
주변 20대들에게 뉴욕 생활 경험은 강추하고프다.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고, 견문을 넓히고 경험을 쌓기에 좋은 도시 같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각각 너무도 다른 전문직을 가지고 있고, 너무나 다른 성장 배경을 가진 많은 다양한 같은 세대 사람을 만나고,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 젊기에 스스럼없이 떠들며 이야기할 수 있었고, 친구도 될 수 있었다. 물론 이상한 사람 때문에 상처를 입기도 하고, 연애 스토리도 많고,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혼자 외로움에 울 수도 있지만, 이 모든 것 또한 20대에 겪어보는 게 낫다고 본다. 10대는 너무 어리고, 30대 이상은 더 이상 그런 재미에서 멀어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잠 안 자고 밤새 토론하고 다음날 부은 눈으로 커피잔을 들고 학교로 바삐 수업 가고, 라이브 콘서트 비좁은 곳에서 땀 흘리며 떼창을 해도 즐겁고, 당일치기로 왕복 6-7시간 운전을 해서 스노우보드를 타고 오는 미친 스케줄을 소화할 수 있는 건 20대인 것이다. 그 도시 안에서 손을 뻗치면 세계 모든 종류의 음식, 문화, 교육, 커리어, 사람들이 있고,, 그렇게 접하는 세상 모든 것을 흡수하고, 그 감각으로 각자 본인의 분야에서 표출하며, 그렇게 그들은 미래를 끌고 갈 프로페셔널로 성장한다. 그래서 뉴욕을 많이 사랑했엇다.
단지 조금 슬픈 것은 30대 초중반이면 각자의 홈타운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함께 공부하고 일하던 친구들은 본인의 국가로 돌아가거나, 미국인 친구는 본가가 있는 주(State)로 돌아가 개업하거나 결혼을 해서 정착을 하기도 했다. 많은 이들은 직장 때문에 타주로 옮겨가기도 했다. 그렇게 대부분은 뉴욕에서 불처럼 배우고 익히고 경험을 쌓아, 다른 곳에서 인생의 다음 장을 이어갔다. 물론 뉴요커로 계속 잘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결혼을 하고 자녀가 생겨 교외지역으로 이사가는 경우가 많다. 내가 살았던 맨해튼은 이제 어린 뉴요커를 비롯해 타주, 타국에서 온 다음 세대의 젊은이들이 채우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라떼와 또 다른 트렌디를 만들어가면서.
*해피아워(Happy Hour) :퇴근 후 시간에 레스토랑이나 바(Bar)에서 간단한 음식과 알코올 음료 등을 저렴한 가격으로 파는 일종의 이벤트 시간. 그래서 퇴근 후 직장동료와 간단하게 맥주나 칵테일 한잔하고 집으로 귀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말이지,,
뉴욕,,, 하면 월스트릿이 떠오르고, 주식시장이 떠오르지..
"내 친구의 친구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물건 대신 남편에게 주식을 사달라고 했데.
그래서 남편이 T 주식을 조금 사줬는데, 그게 몇 배가 뛰어서 큰돈을 벌었데."
(주로 수다에선 친구의 친구가 자주 등장한다.)
" 정말?"
그 말을 들은 나와 친구들은 살짝 자극을 받았다.
이쁜 옷과 핸드백은 대부분의 여성은 20대와 30대 초반까진 너무 좋아한다.
물론 나이 든 할머니가 되어도 이쁜 옷과 가방은 좋아할 것이다. 그런데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은 여전히 그런 물건들을 좋아하지만, 쇼핑 후 행복은 며칠이면 많은 거다. 마땅히 차리고 입고 나갈 일도 없다.
특히 미국에선,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한국보다 외모와 유행에 덜 예민한지라 굳이 남을 의식해 꾸미고 다닐 이유는 없다. 또한 화장을 안 하고 나가도 차림새로 사람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는 사람도 없다. 즉 이쁘게 꾸밀 시간도, 저녁에 화장 지울 체력도 없는데, 잘 됐다 싶어 대충 하고 나다닌다.
이쁜 물건들을 선물로 받아도 그 기쁨을 즐길 시간은 단 며칠도 안되게 줄어든 이 시기와 나이에,, 특히 코비드 터져서 팬더믹 중엔 더더욱 그런 물건들이 필요 없었다. 안타깝지만 집에서 헐랭한 편한 차림을 하고 있어야 오히려 일인 N역할을 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생일 선물을 주식으로,, 올~ 흥미로운 방법이네..
얼굴도 모르는 그 친구의 지인에게 우린 투자에 관련된 자극과 약간의 깨우침을 받았고, 나와 친구들은 조용히 주식 어카운트를 오픈하였다. 물론 아주 작은돈을 투자하엿지만…
“우리 이러다가 왕년의 복부인들처럼 되는거 아냐? “
하고 농을 치며 새로운 곳에 가는 소풍 전날 처럼 살짝 들뜨기도 했다.
오해 말자. 코인과 주식 모두 귀여운 놀이 수준으로 용돈을 투자한것일 뿐.
그래서, 지금 어떻냐고?
잠시 환호성을 질렀던 적도 있고, 몇십불 잃고 시무룩 해지기도 했다. 나와 친구들은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 마냥 그룹챗이 후끈해질 정도로 이야기도 나누며 잠시 재미난 추억을 나누었던거 같다. 누가 보면 많은 돈을 투자한 줄 알 듯한 열기였다. 물론 모두가 이익이 있었으면 금상첨화지만,, 지금 경기로는 그냥 저축해뒀다 생각한다.. 그리고 ‘주식은 장타야,,”라고 혼자 위로하는 중이다. ^^;;
스스로 공부 안하는 주식 투자는 굳이 뛰어들지 않아도 될 거 같단 생각을 해 봅니다.
- 가이드 편은 뉴욕 두 번째 이야기에서 수다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