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잃을 줄 몰랐다 4
이제껏 삶의 스피드는 100미터 달리기에 가까운 스피드였다.
숨이 꼴딱꼴딱 넘어갈 정도로 달리며 일을 처리할 때도 있고,
업무를 완벽하게 시간 맞춰 해치우는게 급선무였다.
그리고 100미터 냅다 뛰고 나면 바닥에 드러누워 숨을 돌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육아는 마라톤.
오랜시간을 빠른 스피드로 살아온 나에게 아기가 생겼고,
처음엔 육아가 일이년이면 끝나는 일인 줄 알고, 새로운 프로젝트처럼 생각을 하였다.
육아책처럼 착착 진행하고, 남들처럼 아이를 키우며 남은 공부와 포트폴리오 제작을 하고,
나도 다시 내 분야의 커리어 우먼으로 돌아갈 거라 여겼다.
아가는 나의 소유물이 아니고 나와 다른 독립 인격체로 아이와 부모, 서로 존중하며 드라마 시트콤처럼 '알콩달콩' 가족 모두 행복하게 살아 갈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독립 인격체로 살기엔 엄마가 관리해야 할 것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게 끝이 없드라.
24시간 밤잠을 설쳐가며 정성을 들여도
집안일은 그대로 어질러져 있고, 육아와 가사는 끝이 없었다.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던 내 프로젝트들과는 전혀 다른 집안일. 이 삶은 모지..
행복은 있었지만, 노동이나 노력 후에 맞이하던 성취감과 만족은 가질 수 없는 일상이었다.
일단 아이는 나의 트로피가 아니다. 내 노동의 결과물이 될 수 없는 존재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사랑을 주고, 아이와 노는것은 즐거웠지만, 육아와 더불어 따라오는 요리, 가사등의 주부일은 당장 성취감과 보상을 받는 그런 업무와는 전혀 달랐다.
매일이 반복되는 일상에,
조금 적응해서 안정기에 접었다 싶으면 아기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또 변수들이 생겼다.
예를 들면, 잠교육을 잘 들여서 나도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싶었는데,
성장통이나 티딩 (Teething,치아가 나느라 통증과 가려움이 동반한다.)으로 아가가 잠을 못 자 몇일을 울고 고생하던가, 장꼬임인지 개스가 찬건지 이유없이 울어대서 밤새 배마사지를 해주어야 했다.
그러고 나면 수면습관은 다시 흐트러졌다.
이래서 신이 신을 대신해 세상에 엄마라는 존재를 보내셨다는 말이 와 닿았다.
아기들에게 엄마는 없으면 안되는 존재였다.
엄마가 곁에 있어야 했다.
이번에는 그렇게 프로가 되기 위해 달리던 스피드의 전혀 반대 속도로 육아를 하여야 했다.
그런데 삶의 태도에도 관성의 법칙이 작용을 하는지 몰랐다.
적응이 아주 힘들었다.
물론 육아도 빨리 움직이고, 말도 빨리 할 수 있다.
그런데, 엄마의 스피드가 빠르면 아이가 다치더라.
서두르던 엄마가 생각없이 무심코 던진 말이 아이 마음에 상처가 되기도하고,
급하게 움직이는 엄마몸이나 손가락, 손톱, 가방에 부딪혀서 아이가 할켜지거나 넘어지기도 한다.
성격이 급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유아에게 '빨리빨리'란 말이 툭툭 튀어나왔다.
되도록 '빨리 빨리' 란 단어를 쓰지 않을려고 하는데 그 때마다 큰 한숨이 나왔다.
사실 어린 아이들에게 빠릿함은 좋은 스피드가 아니다.
아이에겐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행동하고, 또박또박 또렷이 이야기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무엇을 하든 기다려 주어야한다.
신생아가 젖을 먹다 잠들면, 그 잠든 아기 깨워서 먹이다 다시 잠들고,,
아장아장 걸음마 하는 유아의 걸음에 맞춰서 거북이 처럼 느릿느릿 걸어줘야하고,
아이가 꼬물꼬물 옷을 직접 입고, 신발도 신다보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기다려주어야한다.
머릿속은 알지만, 현실에서는 쉽지 않았다.
약속시간이나 다음 스케쥴을 위해 이동을 하다보면 결국 엄마인 내가 기다리다 못해 아이와 실랑이 하면서 후다닥 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겨버렸다.
그리고 들쳐안거나 손을 잡고 후다닥 움직였다.
그러면 아이의 기분은 무척 좋지 않았다.
그런일이 잦아지면 아이는 더 이상 스스로 하지 않고, 어차피 엄마가 나서서 할 것이기에, 무슨일이든 엄마를 기다리기만 한다.
그래서 빠른 행동은 육아에 도움이 되는 스피드가 아니다.
아이가 해야할 행위를 엄마가 해 버리면, 아이가 배워가야 하는 정신적, 육체적 경험을 빼앗아 버리는 것을 안다.
그렇게 아이의 속도를 맞춰주고 기다려주는 일이 중요한 일인지 알지만, 내가 쉽게 적응하지 못하였다.
그 기다려주는 일이 여간 힘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의 삶의 속도를 늦추는 과정에서 나도 아이에게 상처를 입혔고,
지금도 여전히 알게 모르게 아이들 마음에 상처를 입히고 있을지 모른다.
특히 캐릭터가 다른 두 아이를 키우다보니 각 아이와의 속도 맞춤의 중요성을 더 잘 알게 되었다.
엄마도 초보 엄마였다.
실수할 수 있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계속 스피드를 늦추는 노력을 하였다.
내 기준에서 최대한 늦추기 시작하니 아이와 눈을 맞출수 있었고,
아이도 내 말 뜻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스피드에 맞춰 기다려주며 그렇게 느리게 행동하다 보면 내가 더 지치고, 머리회전도 느려지는 듯하다.
사실 성격 급한 내가 아이의 그 속도를 맞추다 보면 답답하고 스트레스가 되어 몸속에 쌓이게 된다.
프로가 되기위해 근력을 다지며 가졌던 성장통, 반면 나의 스피드를 늦춰가며 엄마가 되기위해 또다른 통을 겪었다.
엄마가 된 후 새로운 삶의 스피드와 리듬을 아가라는 다른 존재에게 맞춤으로 육아맘의 삶에 적응을 시작했다.
물론 이 글을 읽는 워킹맘들은 그 스피드를 아침 저녁마다 피부로 느끼며 지낼 것이다.
그 조절이 안될 경우 혹은 적응기 동안은 초보 엄마도 어린 아이도 서로 힘들다.
나는 첫째와 이 스피드를 조절해 가는 과정에서 둘째를 낳고 나서는 멘붕이었다.
나도 모르게 욱도 올라왔고, 첫째에게 그 화가 많이 돌아갔다.
모자란 엄마같아서 또 미안하고, 그래서 오은영 박사의 '못참는 아이 욱하는 엄마' 라는 육아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육아는 엄마인 나에게는 사생활은 커녕 개인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아이를 낳은 엄마들은 다 알겠지만, 화장실에서 조차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다.
생각할 시간을 가질려면 이미 하루 일과에 지쳐서 코를 골며 잠들어 버린다.
생각을 해야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리고,
필요에 따라 반성도 하고, 발전을 위해 나를 다듬을 수 있는데 그럴 겨를이 없었다.
어린 아이를 위해 어른인 내가 스피드를 맞춰주는게 맞는데, 그렇게 욱하는 모습이
엄마로서의 자신감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런 와중에 가끔 보는 교육 방송이나 육아책은 도움이 되었다.
아니 사실 거기서 위로를 얻는다.
넌 잘하고 있다, 혹은 괜찬아 고치면 돼,, 라고 말해주는 그런 위로.
미성년자에서 사회인이 될 무렵 프로가 되고자 성장하는 시기도 쉽지 않았지만,
느긋한 스피드로 움직이면서 많은 업무를 감당해야 하는 엄마라는 존재로 성장하는것도 쉽지 않았다.
하루하루 아이와 함께 행복했지만,
하루하루 무의식속에 나도 모르는 주부 스트레스는 쌓여가고 있었던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