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수다 - 미국 어느 부자의 고마움

by Beverlymom

문화 공간


가끔 바람을 쐬러 게티센터란 곳에 간다.

그곳은 언덕위에 위치한 뮤지움으로 미술작품들과 조각상들을 전시하고, 이쁜 정원도 있고 그곳에서 탁 트인 LA 전망을 바라만 봐도 머리 식히기에 좋은 곳이다.


게티센터는 산타모니카와 인접해 있는 브렌트우드 Brentwood 에 위치해 있다. 그 곳은 아이들이 뛰어다닐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으므로 가족들이 함께 나들이 하기도 좋고, 타주나 한국에서 가족이나 지인이 오면 관광하러 데리고 가기도 한다.


입장료는 개개인이 티켓을 살 필요가 없이 차 한대당으로 주차비를 내는것이 다다.


게티란 인물.. 미국 석유 재벌이다.

그 집안에 손주가 납치되었던 비극이 있었고, 자린고비로도 소문난 사람이다.

납치된 손주를 바로 구하지 않고 납치범이랑 네고를 하여 그들이 요구한 가격을 깎을 정도인 인물. 그 와중에 손주의 귀는 잘리고,,


그런데 신기하게 그 정도로 짠돌이였는데 미술품에 관심이 많아서 작품들을 수집했다고 한다.

물론 미술품 조차도 가격을 딜해서 깎았다는 말이 있다.


그렇게 수집된 작품들을 게티 재단은 모던한 디자인의 게티센터 (Getty center)를 짓고, 그 작품들을 전시하게 되었다. 건물과 주변환경도 디자인이 잘 되어서 그 자체도 작품 같다.


현시대 작가나 근대작가들의 특별전들도 열린다.

게티센터는 전망도 좋아 팬더믹 전에는 데이트하고 저녁을 먹을 분위기 좋은 고급 레스토랑도 내에 있었다.

그 곳은 그렇게 엘에이 시민들에게 휴식과 문화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그 후 게티빌라(Getty Villa)를 퍼시픽 팔리사이드란 곳, 말리부 근처에 지었다.

그곳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 건축과 구조로 지어졌고, 그 시대의 조각, 벽화, 아트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두 곳 모두 공통된 점은 야외에 큰 공원이 있다는 점이다.

실내 전시관 사람들 속에서 작품을 돌아보다가도 잠시 야외로 나갈 수 있게 만들어둔 공간이 있다. 전시장을 돌다가 가끔 나가 시원한 바람맞으며 멀리 드넓은 엘에이 전망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 그리고 다시 아티스트들의 작품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야외에 마련된 공원 같은 특별한 큰 공간이, 사계절이 있는 뉴욕의 뮤지움들과 다른 점 같다.

물론 뉴욕에도 작은 야외 마당(?)들이 있지만, 지역이 지역인지라 그 크기가 다르다.


게티센터나 게티 빌라뿐만이 아니라 엘에이 뮤지움인 LACMA도 야외 환경이 잘 꾸며져 있어 아트 작품도 보지만, 때로는 야외에서 와인 마시며 공연도 보고, 뮤지움 건물 밖에서 아이들은 뛰어논다.


주로 야외에도 설치 작품이 있는데, 줄을 쳐놓고 시큐리티가 혹여 만질까 노려보며 관리하는 것이 아니고,

아이들이 작품 속에 들어가서 놀 수 있도록 제작된 작품들도 있다.

아마도 일년 중 따뜻한 날씨가 더 많은 사우스 캘리포니아라 가능한 문화 공간이 아닌가 싶다.


그 지역이면 상업빌딩 타운을 조성해 돈을 더 벌 수 있엇을텐데, 그런 큰 문화공간을 마련하여 모아 온 작품들을 시민들에게 오픈하여 즐기게 해 줘서 대단하다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동부에는 락커펠러란 재벌가가 있다.

그는 뉴욕시를 위해 많은 일을 했다.


그 중 하나는 뉴욕 시민들이 마시는 수돗물의 질을 높이고 그 비용을 오래도록 지불하기도 했다. 나도 그 수돗물을 무료로 사용하며 잠시 뉴욕에 살았었다.


미국 재벌들은 사실 금액을 헤아리기 힘들 만큼 돈을 많이 벌었다.

세금 공제건 인본주의건 어떤 이유에서 시작했던, 결과적으로 그 재벌들이 시민들을 위해 고급진 문화 공간을 만들고, 혹은 기부를 하여 사람들이 생활 혜택을 받기도 하며 , 특히 보이지 않게 도움을 주는 이들도 있음이 확실하다.


학교가다가 만난 세기의 비극


개인적으로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맨해튼에서 공부하던 시절 911 테러가 일어났었다.


도시는 영문도 모른 채 폭격을 당했고, 길거리에 경찰차와 소방차 외에는 달리는 차가 없었으며,

당시 나는 포트리란 곳에 살았는데, 맨해튼 밖으로 강을 건널 수 있는 모든 교통수단은 닫혔고,

한국에서 놀러와 있던 친구가 걱정되었지만 어느 누구의 셀폰도 연결되지 않았다.


경찰차와 소방차 모두 남쪽 한방향으로 사이렌을 울리며 쏜살같이 달리기만 하였다.

그 모습이 두려웠다.


그리고 도시 전체가 막혔다.

영화에서나 보던 그런 장면이 학교 밖으로 나온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고,

나는 교차로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잃었다.


하늘에는 전투기가 몇 대 짝을 지어 계속 날라다녔고,

월스트릿에서부터 흰 와이셔츠에 피를 흘리며 걸어온 사람들.

문을 닫은 지하철역과 버스터미널을 지나고,

전쟁 피난민 마냥 두려움에 떨며 인파를 따라 걷던 몇 시간 뒤.


강을 건널 수 있는 배가 준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배는 원래 허드슨강을 왕래하며 사람들이 출퇴근을 하던 배로,

이유도 모른채 마냥 북쪽으로 (사건의 반대편) 걷던 그 수많은 인파들을 무료로 강을 건너게 해 줬다.


그리고 도착한 배 정착장에 버스를 대기시켜 놓았고, 그 버스들은 여러 방면으로 가는 그 많은 사람들의 집 근처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었다.


와중에 배의 출입구에는 시원한 생수병들까지 준비되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실 정말 목이 말랐었었다.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주변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실 물이 절실했었다.


도시가 테러를 당한 후 몇 시간은 휴대폰도 사용할 수 없고, 어떤 뉴스를 들을 수도 없었기에, 영문을 모르고 우왕좌왕하던 당시 우리에겐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난리통에 교통편을 마련하고, 배와 버스 운전사들과 도우미를 모으고, 각 노선을 짜기엔 그 몇 시간이 길진 않았다고 본다.


그 시간 동안 테러 사태를 파악하고, 시민들의 목마름까지 염려하여 생수병까지 준비해줬던 것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어느 부자의 도움 덕분이었다.


당시 배의 선장이 배값을 지불하려던 우리에게 그럴 필요 없다며, 어느 부자가 앞서서 모든 비용을 기부하였다고 알려줬었다.


그 후에 정부, 기업들이나 일반인들이 기부를 하고 자원봉사를 함으로써 테러 피해에 도움을 주는 일이 뉴스에 많이 보도 되었었다.


그렇게 나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어느 미국 부자에게 인생의 위태한 시점에서 도움받았고, 아직도 그 부분은 감사한다.

진심이 아니었다면, 익명으로가 아니라 그 부자의 이름이나 회사명 정도는 알리면서 했을것이다.


천문학적인 금액을 가진 재벌들이라 하더라도 본인의 더 많은 이득만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어떤이들은 근사한 문화 공간들을 제공 하고,

국가 위급 상황에 정부보다 더 빠른 도움을 그 많은 일반 시민들에게 제공했던 것은

돈만 많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요즘처럼 LA 지역에 험한 소식과 홈리스들의 문제가 많은데,,



게티센터에서 시작하여 의식의 흐름대로 수다해보았다.


여하튼, 시민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해주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그래도 아직은 사람이 사람을 생각하긴 하는구나..라는 새삼 감사함을 가져보며 아무수다를 마무리해본다.

게티센터 (Getty Center) 퀵스케치 by Beverly 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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