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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블리 Jan 20. 2021

식구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


   문득 예전 '비열한 거리'라는 영화에서 조인성이 '식구'의 의미에 대해 부르짖었던 장면이 떠올랐다. 액션 영화 마니아라 그 영화에 대한 기억 대부분은 조인성의 초반 격투 장면(주인공은 수십대를 맞아도 멀쩡하나 조연, 단역들은 스치는 바람에도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인생에서도 조연, 단역은 서글프다)인데 유독 그 '식구'를 이야기하는 장면도 마치 하나의 그림처럼 머리와 마음에 남아있다.


오늘 그 장면이 생각나서 과연 사전에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찾아봤다. 네이버 검색 결과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란다. '한 조직에 속하여..'의 의미는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니까 첫 번째 의미만 취한다. 혹시 몰라서 내가 갖고 있는 '교학사'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역시 동일하다. 그렇다. '식구'라는 말은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가족'이란 단어의 의미는 어떻게 정의되고 있을까? 역시 네이버를 찾아봤다.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뭔가 정이 없다. 뜻은 이해가 되나 마치 어떤 계약 관계(비록 어쩔 수 없어도)로 느껴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의 의미는 이 정 없는 문장보다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그런 이유로 이 글에서 나의 가족은 '식구'라고 쓰겠다.



   

지난 글에도 썼지만 뭐라도 쓰고 싶어 졌다. 가급적 내가 쓰고 싶은 날에 쓰고 싶은 주제를 자유롭게, 쉽게 말하면 그냥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아무거나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흔히 말하는 '오마카세' 같은 느낌이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제공한다. 맛을 느끼고 만족할지 또 찾아올지는 글을 읽는 사람들의 몫이다. 물론, 우리가 익히 아는 '오마카세'는 주방장의 높은 실력에서 나오는 것이고 나는 설익은 자기 독백과 가끔 얻어걸릴지 모르는 괜찮은 문장들 사이를 위태롭게 오가겠지만 가장 최악의 결과라고 해봤자 그냥 아무도 읽지 않는 글로 남는 거 아니겠나? 대신, 어떤 꾸준함은 나 스스로에게 '제공'하고 싶었고 매일은 아니더라도 뭐라도 쓸 수 있는 소재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새삼 고민할 것도 없었다.


오늘 쓰고자 하는 글은 앞으로 계속 이어질 내용이고 어떤 식으로든 쓰고자 했던 이야기다. 어디까지 쓰게 될지 알 수 없고 굉장히 많은 선택지를 가진 열린 결말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겠다. 언제 쓰기 시작하느냐의 시점만 있었는데 적당한 시기가 찾아왔다.


'식구'

감성 어리고 모두가 부러워할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내가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나의 '식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즉, 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적당한 시기가 찾아왔다고 했다.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형이 찾아왔다. 하나뿐인 형제다. 운이 좋게도(?) 우리는 같은 그룹사에서 근무하고 있고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사무실이 있다. 각자 근무하는 건물 사이를 회사 버스가 수시로 오가고 있어 얼굴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자주 보는 사이는 아니지만 몸은 가까이 있다는 의미다. 마음의 거리는 글쎄... 나도 모르겠다.


우선, 오늘 점심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사무실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 식당으로 내려가는 시간이었다. 갑작스러운 방문은 아니었다. 엄마가 형한테 전해주라고 부탁한 이런저런 서류를 받기 위해 미리 시간을 맞췄고 그게 오늘이었다. 이상한가? 하나뿐인 형제라고 했는데 엄마가 부탁한 서류는 내가 들고 있다? 맞다. 형은 결혼을 해서 독립한 지 오래고 내가 엄마와 살고 있다. 더 설명을 해주면 좋겠지만 그런 건 나중에 이야기하자. 급하지 않다.


회사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대화는 없었다. 원래도 대화를 많이 하지 않지만 코로나 19 때문에 요즘 회사 식당 테이블에는 투명 칸막이가 우뚝 서 있다. 그 칸막이는 어떤 날에는 소통을 단절하는 장벽이 되고 어떤 날에는 소통에서 보호해주는 울타리가 되어주기도 한다. 오늘은 중간 정도라고 말해야 하나? 우린 별다른 생각 없이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대화 없이' 조용히 각자 앞에 놓인 식사에 집중했다.


무미건조한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커피를 사서 마주 앉았다.


나는 하나뿐인 형제, 형과 둘이 마주 앉아 있으면 가끔 참을 수 없는, 마치 타인을 대할 때와 비슷한 어색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의 말들은 길을 잃는다.


다행히 오늘은 길을 잃지 않았다. 빠르게 한 방 먹었기 때문이다. '엄마한테 화 좀 그만 내라' 황당한 말이었다. 엄마는 종종 나와의 사소한 말다툼조차 형이나 이모들에게 다소 양념을 보태 '브리핑'하는 것 같았다. 변론할 기회 혹은 반론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그런 상황들에 나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고 사안에 따라서는 심각한 억울함에 사로잡히곤 했는데 오늘은 그게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형이 말했다.


'엄마 병원 검사 다시 받는 거 아냐? 이번 주 CT 찍어야 한다더라'


그 말을 하는 형의 얼굴에서 찰나와도 같이 시꺼멓게 짙은 어둠이 스쳐 지나가는걸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내 마음에도 섬광처럼 괴로운 기시감이 스쳐 지나갔다. 익숙하지도 않았지만 낯설지도 않았다.


병원 검사를 받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제 너무 당연한 질문을 해야 할 차례였다.


'왜?'


짧은 질문을 하면서 내가 듣고 싶은 대답 몇 개를 마음속으로 떠올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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