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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블리 Jan 30. 2021

꽃처럼

  


   예전에는 주말에 뭐라도 해야 한다는 압박을 스스로에게 많이 줬다. 거창하거나 화려하게 보내지 않으면 지금 이미 흘러가고 있는 젊음을 그냥 공짜로 내다 버리는  같은 조급함 이랄까? 차를 타고 지나가며 한강을 내려다보면 내가 가진 갈증은  강물을  마셔도 채워지지 않을 것만 같은 시절이 있었다는 의미다. 뭐라도 해야만 했다. 멈춰있으면 숨이 멈춘다는 상어 이야기처럼 계속 뭔가를 해야 했는데 역설적으로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긍정적인 자극은 아니었던 셈이다. 지금도  갈증이 완벽하게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돌아보면 그런 갈증을 느낄  있는 시절이 어찌 보면  평화로운 시절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갈증 따위 느낄 틈도 없이 일상이 휘몰아치면 어떤 감성적인, 지적인 욕구는 그저 사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혼란스러운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일상을 단순하게 바라보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돌아버릴지도 모르고 내가 가진 삶에 대한 충격흡수재가 너덜너덜해지고 있다면 더욱이 자극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그런 순간에 내가 쓰는 방법이 있는데 지난 글에 '나조차도 쓰지 못하게 되는 어떤 교훈을 훈수'하지 않겠다고 했으므로~주말 자체에 대해서만 말을 해보면 이제 그냥 아무것도 없는 주말에 감사하고 산다. 화려하지 않아도 그저 아무 일 없이 별일 없는 주말의 컨트롤 씌 + 컨트롤 븨만 반복해도 감사하고 만족한다. 그냥 쉴 수만 있어도 그게 어디냐 싶고 주말 힐링의 의미가 단순히 일상과 다른 것을 하며 뭔가를 채우라는 의미보다는 비워낸다는 것도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조용하게 보내는 이번 주말에 감사한다. 지난 한 주의 평일은 이런저런 분쟁에 너무나도 휩쓸리면서 보냈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번 주말에 감사하며 짧은 글을 남기려고 한다.


눈이 내린 주말이다.  


아침에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창 밖을 내다봤다. 편하게 잠들지 못해서 온몸이 쑤셨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오래된 티팟에 전원을 올리고 기지개를 켜는데 하얀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새삼스러운 일과는 아니다. 눈이 내렸나 비가 내렸나 해가 비치나 흐린가 안개가 깔렸나.. 그도 아니라면 자기 전에 소원 빌듯이 하늘로 올려 보낸 이런저런 바람들이 하늘에 닿지 못하고 땅으로 내렸나 등등을 확인하는 겨울 아침의 내 정해진 절차다. 겨울에 유독 힘들어하는 내가 오늘은 어떨지를 점쳐보는 의식 같다고 해야 하나? 눈이 내린다는 일기예보는 이미 봤었기에 뭐 별거 없구나... 하며 돌아서는데 이 꽃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 베란다에 내놓은 이 꽃이 이리 활짝 피어나다니 놀랐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했고 어떤 경외감과 함께 많은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밤새 이 추운 베란다에서 벌벌 떨면서도 어떻게든 꽃을 피워내고 피워야 하는 시간만큼 어떻게든 꽃봉오리를 떨어뜨리지 않고 견디는 꽃을 보며 나를 돌아봤다. 내가 꽃처럼 살 수 있을까?


너무나도 선명한 생명력을 뽐내는 꽃잎을 가만히 바라보다 문득 의문이 생겼다. 이 꽃은 봄에 피는 꽃으로 기억했는데 아니었나? 겨울에 피는 꽃이었나?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이 꽃을 구입해서 집에 가져오고 꽤 오래 계절을 보냈다는 걸 깨달았다. 어제, 오늘만 보는 꽃이 아닌데 그럼에도 언제 피는지도 헷갈리는 나의 무관심에 슬그머니 미안함이 들었다. 나무보다 숲을, 내일보다 모레를, 어제의 나보다 미래의 나를 그렇게 멀리 보겠다고만 두리번거리기나 했지 정작 내 가까운 곳에 있는 꽃 하나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니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걸까 꽃을 앞에 두고 한참을 서성이며 생각했다.


누구나 하는 말이지만 '꽃은 정말 강하다.'라는 걸 새삼 실감한다. 꽃은 자신에게 약속한 피어야 할 때가 되면 어떻게는 핀다. 그리고 역시 자신에게 약속한 져야 할 때가 될 때까지 꽃봉오리의 무게를 묵묵히 견딘다. 웬만한 비바람이 몰아친다고 바로 꽃잎을 떨구는 꽃은 보지 못했다. 활짝 피어나는 짧은 강렬한 시간을 위해 1년의 대부분을 묵묵히 견디며 피어나고 때가 되면 사사로운 갈구 없이 스스로 져버린다. 따지고 보면 꽃이 피어 있는 시간은 길지 않지만 그 존재감을 무시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사람은 어떤가? 아니 나는 어떤가? 자신이 언제 피고 져야 하는지도 모르고 정작 피는 시기가 와도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는 일이 얼마나 많았나 싶다. 그러면서도 합리화는 또 얼마나 했는지 이래서 미룬 거고 저래서 미룰 수밖에 없었고 나를 보호하기 급급했고 어설프고 설익은 깨달음으로 마치 세상 이치의 일부라도 깨달은 것처럼 까불기는 또 얼마나 까불었나?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 잘도 이런저런 말을 했지만 정작 나는 돌보지도 못했고 내가 말로 쉽게 위로했던 사람들이 겪었던 힘든 날의 절반 정도뿐인 힘든 날들이 닥쳐도 속절없이 무너진 날이 있지 않았었나? 어렵게 꽃을 피워내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서 조금의 바람만 불어도 스스로 꽃봉오리를 잘라버리고 꽃잎을 바닥으로 떨구며 고개를 돌려버린 적은 또 얼마나 있었나? 어떻게든 화려하고 싶어서 분칠하기 급급했던 나의 삶이 한 떨기 꽃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처럼 살고 싶다. ‘가늘고 길게’를 모토로 하기로 한 이번 삶에는 어울리지 않는 선언일지도 모르지만 나 스스로에게 꽃이 되는 인생을 살고 싶다. 만약 환생이란 게 정말 있어서 다시 사람으로 태어날게 아니라면(물론, 사람도 사람 나름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계절인 봄에 피는 꽃으로 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산다는 게 때 하나 묻지 않고 흘러가는 건 욕심 일터다. 그렇다면 필 때도 질 때도 찬란하게 아름다운 꽃이야말로 우리가 바라야 하는 이상적인 삶의 여정에 가장 가까이 근접한 존재 아닐까? 그렇게 본다면 꽃은 사람이 꺾어서 손에 들기에는 너무나도 큰 존재다.  


오후가 되니 슬슬 날씨가 풀린다. 겨울이 지나간다는 의미고 또 한 시절이 지나간다는 의미겠지. 다가올 봄, 흐드러지게 피어날 꽃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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