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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야경'이 좋다는 뜻이란

夜景, night view의 진정한 의미는

by 감탄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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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빛은 대기로 흩어져 별빛을 차단하는 해로운 백열광으로 지구를 덮는다. 광 오염은 천문학자들에게 특히 골칫거리다. 인공 빛이 우주를 깊숙이 들여다보는 데 커다란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천문학자들은 점차 장비를 들고 칠레의 산이나 하와이 섬의 높은 사화산 같은 세계에서 몇 개 남지 않은 어두운 지역을 찾아 떠난다. 앞으로 100년쯤 뒤엔 우리의 주요 연구소들이 우주 공간이나 달에 자리를 잡게 될지도 모른다. ...(중락)... 만약 물을 마구 뿌려 낭비하는 스프링클러들이 있다고 해 보자. 매년 이런 식으로 10억 달러의 물이 낭비된다면 정부는 그것을 국가적 재난으로 선언할 게 틀림없다. 마찬가지로 낭비되거나 하늘로 날아가는 빛을 내는 데 드는 비용이 미국에서만도 연간 10억달러에 달한다고 추산된다. 그러나 돈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이렇게 낭비된 빛은 인간의 정신에서 중요한 무엇인가를 앗아간다. 우리를 낳은 우주에 대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신비주의자와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밤하늘을 말이다. ... 우리는 지금껏 밤을 인공 빛의 홍수로 낭비해 왔다."

- 쳇 레이모, 「아름다운 밤하늘」 중




꼬마 때의 기억이다. 당시 아파트로 이사온지 얼마 안되었던 무렵, 그 때는 고층아파트에 속하던 15층 아파트의 옥상에 가족들과 별을보러 간 적이 있다. 그 때 옥상에서 많은 별과 함께 별똥별을 보았다. 별똥별을 보았다는 사실이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게 꿈인지, 기억의 왜곡인지, 실제의 기억인지 사실 확신은 없다. 실제 기억이라고 하기엔 신빙성이 많이 떨이지기 때문이다. 20년 전이긴 하지만, 그 때의 도시에서 분명 별이 그렇게 많이 보였을 리가 없다. 하지만 왠지 정말 겪었던 일처럼 기억에 남아있다.


중학교 2학년 시절 여름방학에, 어쩌다보니 '과학 캠프'같은 교육행사에 참가하게 되었다. 과학에는 별 흥미가 없었기 때문에 무슨 이유로 내가 참가했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 때의 일들은 확실히 꿈이 아니라 직접 겪었던 사실이다. 프로그램 중 고성 공룡발자국 체험을 하러 그 장소에 1박 2일로 간적이 있다. 밤이 되어 '별 관측'을 하러 밖으로 나갔다. 구름도 많고 달빛밖에 보이질 않아 설마 별이 많이 보일까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구름이 걷히면서 총총한 별이 하늘을 가득 메워나갔다. 난 태어나서 그렇게 별을 많이 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은하수를 보았다. 환상적인 첫경험이었다.


그 후로 은하수를 한 번도 다시 본 적이 없다. 군대 시절 야간행군을 하다가 산 속에서 10분간 휴식을 하면서 하늘을 보았을 때 별이 많이 떠 있었다. 하지만 은하수는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은하수를 다시 보는게 소원 중의 하나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어디 멀리 여행을 간다거나 갈 계획을 세울 때 항상 '밤하늘이 별이 보일만큼 충분히 어두컴컴한가'를 고려하게 되었다. 하지만 시골 또는 별이 많이 보일 것 같은 공기 좋은 곳을 가도 이상하게 별이 잘 보이질 않고 도시의 밤하늘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빛 공해(light pollution)'라는 말이 있다. 인공조명이 너무 밝거나 지나치게 많아 야간에도 낮처럼 밝은 상태가 유지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많은 사람들이 빛 공해에 심각성에 대해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빛공해를 관리하려는 단체가 있다. '국제암야협회' 또는 '국제 어두운 밤하늘 협회(International Dark-Sky Association)'로 불리는 단체이다. (http://darksky.org) 이 단체는 전 세계에서 어두운 밤하늘을 유지하는 장소를 찾아 '세계 어두운 밤하늘 공원' 인증을 해준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인증받은 장소는 아직 없다. 이제 그 때의 은하수를 다시 보려면 이러한 장소를 찾아가는 수 밖에 없을까. (참고: IDA 지정 ‘어두운 밤하늘 공원’)



많은 사람들이 야경 좋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하지만 대부분 99%는 인공 빛이 얼마나 화려한가의 뜻으로 야경의 등급을 메긴다. 야경이라는 뜻이 원래 그런 뜻일까 하여 사전을 찾아보니 간단히 '밤의 경치'라고만 되어있다. 하지만 국어사전의 예문에도 '서울의 야경이 불타고 있었다~'라고 하여 인공 빛의 뜻으로 정의하고 있다. '야경'으로 이미지 검색을 해도 100% 인공 빛의 야경 사진 뿐이다.

언제부터 왜 '야경'이라는 단어는 '화려한 인공 빛'의 뜻으로만 통용되어온 것일까.

밤의 경치가 왜 당연히 인공 빛의 밤 경치만으로 인식되는 걸까. 난 이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야경 좋다'라고 감탄하며 감성에 젖는 경치에는 전혀 감흥도 공감도 가지 않는다. 오히려 저 많은 빛들이 하늘을 오염시킨다는 것을 생각하면 감흥은 커녕 화가 나버린다. 물론 야간 일을 하거나 어두운 도로의 가로수 등 안전을 위해 쓰는, 꼭 필요한 빛은 이해한다. 하지만 굳이 없어도 되는, 단지 '보기만 위한' 감상용 불빛들, 관광용 조명들, 나무에 설치하는 조명, 크리스마스 트리, 광안대교 불빛, 홍콩 야경, 서울 야경 등 도심의 야경 그 어느것도 과한 조명은 싫다. 없어도 되는 빛이라는 말이다. 인간의 이기심, 환경파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나에게 야경이 좋다는 뜻은 밤하늘이 어두워 별빛이 잘 보인다는 뜻이다.

별빛이 잘 보일수록 야경이 좋은 것이다.

밤의 경치라는 아름다운 말을 인공 빛 따위에 내어주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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