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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탄쟁이 Sep 25. 2016

나의 한국현대사 (유시민 / 돌베개)

대한민국의 성장통 진단서

“ 인류 역사는 숱한 반란, 봉기, 내전, 혁명, 전쟁으로 점철되었다. 

사태의 원인과 계기, 전개과정과 결과는 저마다 다르지만 적어도 한가지는 같은 게 있었다. 

사건의 한가운데에 있는 사람들을 덮친 것이 혼돈이었다는 사실이다. 

무리를 지어 폭력으로 부딪치는 격동의 순간에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동기와 지향에 따라 제각기 활동한다. 

모두에게 익숙한 일상의 소통방식이 무너진 상황에서는 냉철한 논리와 이성이 아니라 감정과 충동이 행동을 지배한다. 

어디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 누구도 전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다. 

모든 것이 끝나고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역사가들이 사태의 전모를 명료하게 정리하고 해석한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의 역사, 대한민국현대사도 예외가 아니다. 

제주 4ㆍ3사건, 6ㆍ25전쟁, 4ㆍ19혁명, 5ㆍ16쿠테타, 5ㆍ18광주민주항쟁, 6ㆍ10민주항쟁의

한복판에 있던 사람들이 본 것은 혼돈이었다. ”

p. 227   


유시민 작가는 우리 아버지와 동갑이다. 그래서 1959년은 나에게 특별히 낯설지 않다. 유시민 작가가 직접 자라면서 본 한국의 현대사에 대해 자신의 감정을 주관을 담아 기술하고 있다. 내 아버지에게서 듣지 못한 당신의 삶을 보는 듯했다. 동시에 부모님이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하는 마음이 들면서 그 격동의 시대를 버텨오신 것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작가의 주관을 담은 역사를 올바른 역사책으로 볼 수 있을까? 유시민 작가는 역사적 사실 그 자체가 객관적인 진리를 이야기한다고 믿는 것은 순진한 착각일 뿐이라고 말한다.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학위를 받은 전문 역사연구자가 쓴 민족사에서부터 평범한 시민이 쓴 소박한 개인사까지 다 마찬가지로 역사이다.(p.29) 그래서 중요한 것은 어떠한 역사적 현상에 대해서 -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분야의 일(경제, 정치, 과학, 이슈, 시사, 연예 등 뉴스를 구성하는 모든 카테고리)이 모두 다 역사적 현상이다 -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논리적이고 타당하게 잘 전달하느냐가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역사 문제에 있어서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심한 이유가 상대의 주장을 타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큰 원인은 전세계적으로 유일한(정말 유일한지 의문이지만) 분단국가인 특수한 상황이라는 장애물이다. 이는 모든 갈등의 원인을 설명하면서도 그나마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 과연 대한민국은 어떤 점이 55년 전보다 훌륭한가? 무엇이 그 변화를 만들었는가? 어떤 면이 아직도 부끄럽고 추악하며 앞으로 우리는 어떤 변화를 더 이룰 수 있을까?' 역사를 알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과거를 반면교사로 삼아 더 나은 미래를 이뤄가기 위해서이다. 과거 중에서도 가까운 현대사의 과거가 현실적으로는 우리 삶과 밀접한 연결이 되어있기 때문에 수세기 전의 역사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급격한 성장을 이루며 너무 빨리 달려오느라 중요한 사항들을 당시엔 지나쳤던 부분이 많다. 이제 국가 수준이 어느정도 안정궤도에 올라간 만큼, 한번 호흡을 가다듬고 과거에 못 챙겼던 부분을 돌이켜보아야 한다. 과거의 잘한 부분은 인정하고 못한 부분을 비파하는 것은 결코 배은망덕한 짓이 아니다. 못난 아이에겐 떡 주고 예쁜 아이에겐 매 준다는 속담처럼, 비판할 부분은 매정하게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으면서 든 느낌은, 우리 대한민국이 심한 '성장통'증상을 앓고 있는 것 같았다. 보통 선진 국가라면 백 년도 넘게 투자하여 이루어낼 성장을 불과 50~60년 만에 이루어냈으니 그 과정이 얼마나 아팠을까. 다양한 이데올로기적 갈등(간첩사건, 북한 관련)과 경제적 문제(비정규직, 노동문제, 외환위기), 수많은 격동의 민주화 항쟁, 대형 안전사고들, 얽히고 섥힌 역사의 아이러니.. 이러한 안타까운 사건들의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 볼 수 있었다.


나는 부끄럽게도 역사에 관심있는 척하며 살아왔지만 사실은 관심도 없었고 중요한 건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현재의 정치적 현상에 대해 기본적인 주장은 있지만 크게 소리낼 수가 없었다. 단순히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듣지도 못한 몰랐던 무수한 간첩조작 사건들, 셀 수 없는 민주화 운동의 역사, 일련의 정치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소설을 읽는 듯한 사건들과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시간의 서술로 읽는 내내 마치 영화 한편을 보는 듯했다. 책 전체적으로 통과하는 느낌 중 하나는, 당시 학생들과 현재 시대의 학생들이 안타깝게도 비교가 된다는 점이었다. 우리 현대사 수많은 민주항쟁의 주역은 학생이었다. 심지어 초등학생, 중학생도 있었다. 우리 또래들, 나보다 훨씬 어린 아이들이 그렇게 대한민국을 생각하며 행동으로 실천한 부분들은 믿어지기가 힘들 정도이다. 정말 평균수명이 길어질수록 정신 연령도 비례하여 늦춰지는 것일까. 부끄럽고 존경스러웠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책을 읽고나니 그 격동의 시절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으로서 이제야 그 때와 무관하지 않게 연결되어 오는 현재의 정치사항과 한국의 현대사에 대해 들을 수 있는 귀가 트이고 말을 할 수있는 입이 조금이나마 생기게 되었다. 인터넷에 너무나 가볍게 생각하고 뱉어내 버리는 쓰래기같은 역사 인식들, 학생 어른 할 것 없이 그런 사람들은 현대사에 대해 얼마나 공부하고 내뱉는 걸까? 그렇게 쉽게 내뱉어버리기에 한국의 현대사는 너무나 복잡한데 말이다. 안타까운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분명한 건, 그래도 이것도 불과 수 년 전에 비해 많이 나아진 편이라는 위안이다. 성장통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마음에 안드는 일이 너무나도 많지만, 빨리 성장한 어쩔 수 없는 대가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느끼고 싶은 감정이다. 이제 더욱 더 관심을 가지며 살아가야겠다.





나는 그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은 사람들과 죽어간 사람들이 느꼈을 기쁨과 슬픔, 자부심과 분노, 역사가 그들의 인생에 각인한 성공과 좌절의 흔적을 본다. 대통령들이 품었던 야심과 포부를 읽는다. 독일 루르지역 탄광의 자하갱도와 리비아의 사막에서 석탄 검댕과 흙먼지를 먹으면서 일했던, 기계에 손가락과 팔다리를 잘리고 목숨을 잃었던, 중금속에 중독되고 갖가지 직업병에 시달렸던 노동자들의 고통과 희망을 느낄 수 있다. 스마트폰, 주상복합 아파트, 풀 옵션 승용차, 벽걸이 텔레비전, KTX열차, 국적항공기, 문무대왕함, 인천국제공항의 해외여행자 행렬, 다도해 국립공원의 쾌속선, 오늘 우리가 누리는 어느 것 하나도 하늘에서 거저 떨어지지 않았다. 청년들에게는 그 모든 것이 원래 거기 있던 것처럼 보일 지 몰라도, 한국 경제의 50년 궤적을 몸으로 밀어왔던 사람들은 이런 것을 보면서 꿈을 꾸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p. 119 


대한민국 사회 내부에서 생겨난 자생적 사회주의 혁명운동과 민족해방 혁명운동은 전두환 정권의 학살과 독재가 만들어낸 '이념적 열병'이었다. 

p. 243 


주체사상을 전파하는 일에 몰두했던 사람들이 '북한인권운동가'로 전향해 그때 북한과 어울리지 말라고 말렸던 사람들을 '종북세력'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인간의 부박함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것이다.

p.250 


6월 민주항쟁도 4ㆍ19혁명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권력주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재야와 학생운동 세력은 민주주의 정치혁명을 이루기 위해 연속적, 동시다발적, 전국적 도시봉기를 조직하는 데는 유능했지만 그 승리를 자기 것으로 만들 능력은 없었다.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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