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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탄쟁이 Apr 02. 2024

성인대접을 해주지 않는 아버지

가족

안녕 마왕. 난 스무 살이 된 대학생이야.

스무 살이면 나라에서도 인정해 주는 성인이야. 난 성인이라면 자신의 일은 자신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고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해. 하지만 난 성인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어

우리 아버지 말인데, 날 자꾸 그늘에 두려고 하셔.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야. 부모란 자식이 50살이든 60살이든 언제나 어린애로 보니까.

하지만 내가 너무 숨이 막혀. 청주에서 대전에 있는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통학을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자취를 하게 됐어. 버스 타고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교통비랑 자취방 월세랑 거의 비슷했거든

아버지는 밤 10시만 되면 전화를 하기 시작하셔. 솔직히 10시면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잖아. 물론 걱정되는 건 알겠는데 10시부터 전화를 하기 시작하니까 너무 짜증이 나는 거야. 아직도 밖에 있냐. 들어가라.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계속 이런 말씀만 하셔. 저번엔 친구들이랑 술약속이 있어 밖에 나간 적이 있어. 그때도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지. 친구들이랑 술 마시고 있다고 하니까 너 그런 짓 하려고 자취시켜 달랬냐 막 혼내시는 거야.

나 중학교 고등학교 동안 아버지 말씀 따라서 공부밖에 안 했어. 마왕한테만 하는 얘기지만 고등학교 때 술도 마실줄 알고 놀 줄 알기도 했지만 부모님 걱정 끼쳐드리기 싫어서 자제했어. 이제 성인이 되면 얼마든지 그런 걸 즐길 수 있고 말이야. 

아버지한테 내가 그랬어. 아버지한테 내가 언제 걱정 끼쳐드린 적 있냐고. 나 아버지 말 잘 듣고 공부만 했다고. 내가 언제 사고 친 적 있냐고. 왜 내 말을 못 믿고 자꾸 날 감시하냐고. 아버진 아무 말씀 없으시지. 감시는 계속되고 있어. 마왕 어쩌면 좋을까? 난 성인이니까 누구의 감시도 받고 싶지 않아.




앤 데요? ㅋㅋㅋㅋ 아직 아이이신데요? 

"난 이제 스무 살이구, 스무 살 성인이니까 아무한테도 간섭받지 않아야 하구, 못견디게쪄!" 

귀여우세요.


나중에 결혼해서 애를 셋 낳아봐라 아버지한테 잔소리 안 듣나. 밤 10시에 꼬박꼬박 아버지가 전화기 들 기력이 있다는 게 고마운 거예요. 그리고 아버지한테 대응을 하시는 태도 자체가 어린애의 태도로 아직도 대응을 하고 계시잖아요. 그러니까 어린애로 보죠. 

적당히 달래가면서 등 두드리고 배 만지면서 기만 전술로 대충 얼르고 달래 놓고 그다음에 자기 할 거 하고 스리슬쩍 해가면서 "아~ 짜증 나 또 아빠" 그러면서 사는 거예요. 그러면서 사는데 일단 말투 자체가 바뀌어요. 여유가 없으시잖아요. 스무 살에 잔뜩 뭔가를 기대하고 있는데, 간섭 들어오는 건 싫고. 고 때가 사고 나기가 쉬어요 ㅋㅋㅋㅋ


운전도, 초보때 사고 나는 거 아닙니다. 근데 이제 창문 열어놓고 한 손 뜩 걸쳐놓고 한 손으로 핸들 실실 돌리면서 운전하고 요렇게 되면 그때 사고 나는 거거든요. 운전 조금 늘었다고 잘난 척 하기 시작할 때. 그리고 이제 진짜 숙련 운전자가 돼서 속도가 얼마나 무서운 거며, 운전이라는 것은 항상 겁쟁이 자세로 해야 되며, 이런 걸 깨닫고 운전을 하면서부터는 이제 그 차에 타는 사람들은 안도감이 있는 거거든요. 자 그러니까, 딱 사고 나기 좋아요 지금. 사고 나기 좋고ㅋㅋㅋ 아버지 눈에는 지금 그게 보이는 거예요. 


그리고 말씀 자체를 아버지한테 그렇게 하지 마시고 

"내가 언제 아버지한테 걱정 끼쳐드린 적 있어요?!" 이게 아니라 

"아버지~ 할거 다 하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응? 놀고 있는 거 아니거든~? 아버지 그리고 친구들이랑 술 마시러 다니고 얘기도 하고 직장생활에서 회식 빠질 수 없듯이 학교 생활의 일부거든. 그러면서 하는 얘기 다 공부 얘기하고 술 먹으면서 막 좋은 얘기 하고 그러니까 좋은 친구들 사귀고 있으니까 걱정 마." 

그래봐야 아버지 꿈쩍도 안 하세요. "내가 언제 너를 그렇게~!!$!@#" 

그러면 이쪽도 마찬가지야. "아~걱정 마 걱정 마" 


이 태도가 일단 자세가 나와야지 자세가. 그니까 부모님도 저게 이제 좀 어른이 되어가나 보다 하시려면 자세가 나와야 돼. 부모님이 볼 때도 너무나 착하고 올바르게 행동하면 부모님이 인정해 주실 거라고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 착하게 눈빛을 반짝거리면서 "아버지 그러지 마시어요. 제가 언제 아버지 말씀을 거역한 적이 있나요?" 이러고 얘기해 봐야 얘는 애인 거예요. 


여기서 "어쭈 이거 봐라?" 싶은 자세가 나와줘야 되는 게, 집에 오랜만에 내려가서 밥 먹다가 아버지랑 얘기할 때 자세가 이렇게 나와야 돼. 

"아버지, 그냥 집구석에만 앉아있으면 내 생각이 나서 죽겠고 내가 집에 안 들어와 있으면 누가 납치해 가나 붙잡아가나 그 생각밖에 안 나지 응?".. 따님이신가요 아드님이신가요? 딸이라 가정하고 얘기하면, "내가 너~무 예뻐서 사방에서 다 잡아갈 것으로 보이지 응? 집구석에서 그 생각만 하지 아빠?" 

이렇게 기어 올라가시고, 등도 두드려주시고, 저기 좀 내버려 둬도 사람구실은 하려니 이런 생각이 들려면, 껄껄껄껄 하면서 여유 있는 성인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거든요. 눈 빤짝거리면서 항의해 봐야 아무 소용없어요 ㅋㅋㅋㅋ


아버지의 간섭이 씨도 안 먹힐듯한 표정과 자세와 이게 좀 나와줘야 됩니다. 그러려면 최소한 서른은 되야죠. 그럼 앞으로 10년 더는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기만 전술이라니까요. 적당히 등 두들이고 배 만지고 놀 거 놀고 다 할 수 있다니까요. 무슨 감시카메라 달아놓은 것도 아니고 쇠사슬에 끼인 것도 아닌데. 참내. 기만전술을 연구하세요 기만전술, 기만전술과 여유 있는 모습. 


무슨 스무 살 되면 나라에서 인정해 주는 성인이야 성인이 ㅋㅋㅋㅋ


@2007년 3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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